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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번 먹자

작성자남청도|작성시간26.06.18|조회수19 목록 댓글 0

 

밥 한 그릇의 약속

 

살다 보면 참 많은 사람을 만난다. 어떤 사람은 스쳐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오래 곁에 머문다. 그리고 우연히 길에서

옛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우리는 으레 같은 말을 한다.

"언제 밥 한번 먹자."

참 따뜻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은 약속이 되기보다 인사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웃으며 헤어지지만,

다시 연락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간다. 마치 바람에 띄운 편지처럼 말은 남고 만남은 사라진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왜 하필 우리는 "차 한잔하자"가 아니라 "밥 한번 먹자"라고 말할까.

우리 민족에게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밥 한 그릇은 생존 그 자체였다. 봄철 양식이 떨어지는

보릿고개에는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부모는 자신의 몫을 덜어 자식에게 내어주었다. 배고픔이 일상이던 시절, 사람들

은 밥 한 숟갈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밥 먹었느냐?"를 안부로 물었다. 건강하냐고, 잘 지내느냐고 묻는 말보다 먼저 밥을 물었다. 밥을

먹었다는 것은 오늘도 무사히 살아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식구(食口)'라는 말도 그렇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함께 밥을 먹는 입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식구는 단순히 한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웃고, 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나누는 일이다.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아버지가 힘들게 번 돈으로 마련한 쌀에는 책임이 담겨 있다. 자식이 부모

와 마주 앉아 먹는 한 끼에는 세월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정말 아끼면 밥을 사주고 싶어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고, 배부르게 해주고 싶고, 한 끼만큼은 걱정을 잊게 해주고 싶다. 그것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행위가 아니다. 상대를 향한 마음의 표현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소중한 기억들 가운데도 밥이 빠지지 않는다.

입학식 날 먹었던 짜장면 한 그릇,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사드린 갈비, 군대 휴가 나와 가족과 둘러앉아 먹었던 저녁밥,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마주 앉았던 식당의 따뜻한 국밥.

우리는 음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함께했던 사람을 기억한다. 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간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래서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사실 생각보다 무거운 말인지도 모른다.

 

그 말 속에는 "당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마음이 있고, "당신과 시간을 나누고 싶습니다"라는 뜻이 숨어 있다. 비록

바쁜 일상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 말의 본래 의미는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문득 오래 연락하지 못한 친구가 떠오른다면 용기를 내어 전화 한 통 해보면 어떨까.

"야, 언제 밥 한번 먹자"가 아니라,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시간 되니? 밥 먹자."

라고 말이다.

말이 약속이 되는 순간, 관계는 다시 살아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짧다. 언젠가는 만나고 싶었던 사람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날이 온다. 그래서 지금 함께할 수 있는 밥 한 끼가 소중하다.

 

따뜻한 밥에서는 김이 오른다. 그 김은 금세 사라지지만, 함께 나눈 마음은 오래 남는다. 한 그릇의 밥은 허기를 채우지만,

함께 먹는 밥은 외로움을 덜어준다.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많이 먹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저녁.

그 평범한 밥상 하나가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따뜻한 기적일지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 한 끼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작은 약속이며, 관계를

이어주는 따뜻한 사랑의 언어다.

밥은 음식이지만, 함께 먹는 밥은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을 품은 밥 한 그릇은 세상 어떤 진수성찬보다도 깊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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