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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항해, 그리고 테세우스의 배

작성자남청도|작성시간26.06.19|조회수16 목록 댓글 0

 

인생이라는 항해, 그리고 테세우스의 배

 

항구에 정박한 한 척의 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사람의 삶이 떠오른다. 배와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다.

배는 설계도 위에서 태어난다. 수많은 계산과 도면, 그리고 기술자들의 손길을 거쳐 마침내 조선소에서 세상으로 나온다.

사람 역시 부모의 사랑과 인연 속에서 한 가정에 태어난다. 배가 진수식의 축포와 함께 바다를 향해 첫걸음을 내딛듯,

사람도 울음소리와 함께 인생이라는 넓은 바다에 첫 출항을 시작한다.

배는 이름을 얻고 등록번호를 부여받는다. 국제항해를 위해 IMO 번호를 받고 세상 속에서 하나의 존재로 인정받는다.

사람도 이름을 갖고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아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그 순간부터 배와 사람은 단순한 물체와 생명체가

아니라, 저마다의 이력과 이야기를 가진 존재가 된다.

 

배는 선급에 가입하여 정기검사를 받는다. 선체에 균열은 없는지, 기관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항해에 위험한 요소

는 없는지 끊임없이 점검받는다. 사람도 의료보험의 보호 아래 건강검진을 받으며 몸의 상태를 확인한다. 우리는 종종

건강을 잃고 나서야 몸의 소중함을 깨닫지만, 배도 사고가 난 뒤에야 예방의 중요성을 절실히 알게 된다.

오랜 항해를 하다 보면 배는 고장이 난다. 프로펠러가 손상되기도 하고 기관이 마모되기도 하며 선체에는 녹이 슨다.

그때마다 배는 도크에 들어가 수리를 받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병이 들고 상처를 입으며 때로는 큰 수술을 받기도

한다. 어떤 이는 심장을 치료받고, 어떤 이는 인공관절을 이식받는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는 테세우스의 배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의 배는 낡은 판자를 하나씩 새것으로 교체하다가 결국 원래의 부품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배는 여전히 같은 배일까?

사람도 비슷하다. 어린 시절의 세포는 대부분 사라지고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 머리카락은 빠지고 새로 나며, 피부도

끊임없이 바뀐다. 젊은 날의 몸과 노년의 몸은 구성 요소가 거의 다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인공관절을 달고, 인공수정

체로 세상을 보며, 인공심박동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다른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일까?

아마도 사람의 정체성은 부품에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배 역시 선체의 철판 몇 장이 아니라 항해의 기록 속에 존재한다. 태풍을 견딘 기억, 수많은 항구를 드나든 역사, 선원들의

땀과 사연이 그 배를 그 배답게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은 손과 발, 심장과 뼈가 아니라

살아온 시간과 기억, 사랑과 후회, 그리고 꿈이다.

배는 바다를 항해한다. 사람은 세월을 항해한다.

배가 거친 파도를 만나듯 사람도 인생의 폭풍을 만난다. 실패라는 암초에 부딪히고, 이별이라는 안개 속을 지나며, 때로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배가 목적지를 향해 침로를 수정하듯 사람도 다시 일어나 자신의 길을 찾는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 배는 마지막 항해를 마친다. 목적항에 도착하여 화물을 모두 내려놓고, 선체를 아무리 수리해도

더 이상 바다를 건널 수 없는 날이 온다. 그때 배의 선령은 대개 30년 안팎에서 끝난다.

 

사람 역시 언젠가는 마지막 항해를 마친다. 아무리 건강을 관리하고 몸을 보수해도 백 년 남짓한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인생의 종착역에 이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항해의 길이가 아니다.

짧은 항해를 했더라도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실어 나른 배가 있고, 긴 항해를 했어도 아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배가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 어떻게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다.

테세우스의 배는 우리에게 묻는다.

"모든 것이 바뀌어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인가?"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렇다."

 

몸의 부품이 바뀌고, 얼굴이 늙고, 생각이 변해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항해자다.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살과 뼈가 아니라

삶의 연속성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 청년의 나, 그리고 노년의 나는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하나의 항해일지로

연결되어 있다.

결국 사람은 한 척의 배다.

태어나는 순간 출항하여 수많은 만남과 이별의 항구를 지나고, 기쁨과 슬픔이라는 파도를 건너며, 사랑과 추억이라는

화물을 싣고 항해한다.

그리고 마지막 항구에 도착하는 날, 비록 몸이라는 선체는 낡아 사라질지라도 그 항해의 기록만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테세우스의 배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깊은 의미일 것이다. 배를 배답게 만드는 것이 부품이 아니

듯,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도 몸이 아니라 그가 지나온 항해 그 자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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