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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씨버선과 참외씨의 철학

작성자남청도|작성시간26.06.19|조회수21 목록 댓글 0

 

외씨버선과 참외씨의 철학

 

‘외씨버선’이라는 말이 있다. 폭이 좁고 갸름하게 생긴 버선을 이르는 말이다. 양말이 없던 시절부터 우리 여성들이

즐겨 신어 온 아름다운 의복의 하나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왜 하필 버선 앞에 ‘외씨’가 붙었을까?

처음에는 나도 고개를 갸웃했다. 참외씨가 그렇게 예쁜가? 솔직히 말해 참외를 먹을 때 씨앗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감탄하는 사람은 드물다. 꽃처럼 화려한 것도 아니고, 구슬처럼 반짝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외씨를 손바닥에 올려

놓고 가만히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요즘 말로 하면 디자인이 참 좋다.

 

디자인의 생명은 심플함이라고 하지 않는가. 외씨는 군더더기가 없다. 매끈하게 흐르는 곡선, 적당히 길쭉한 형태,

그렇다고 너무 둥글어서 굴러다닐 것 같은 불안함도 없다. 길이와 폭의 비율도 절묘하다. 어쩐지 사람의 키와 몸매를

닮은 것 같아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아마 옛사람들도 그런 균형미를 알아보았기에 가장 아름다운 버선의 모양을

‘외씨버선’이라고 부른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참외를 먹을 때 씨를 따로 발라내지 않는다. 오히려 씨를 둘러싼 물컹한 부분을 더 좋아한다. 과육보다 달콤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숟가락으로 파내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참외의 진짜 비밀은 그 속에

숨어 있는데 말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여름이면 냇가에서 멱을 감고 놀았다. 하루 종일 물장구를 치다가 배가 고프면 참외를 먹곤 했다.

그리고 먹고 남은 껍질과 씨는 대개 아무 데나 던져 버렸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었다.

자갈밭 한구석에 누군가 몰래 눈치 보며 해결해 놓은 똥 무더기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장소를 귀신 나오는 곳처럼

슬쩍 피해 다녔다. 그런데 며칠 뒤 가보면 그곳에서 새싹이 올라왔다. 비를 맞고 햇볕을 받으며 무성하게 자라더니

어느새 노란 꽃까지 피웠다.

한 달쯤 지나 다시 가보면 잎사귀 아래 노랗게 익어 가는 참외가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똥외’라고 불렀다.

 

이름은 고약했지만 맛은 제법 괜찮았다. 오히려 자연의 거름을 듬뿍 먹고 자라서인지 더 달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똥외야말로 완벽한 친환경 농산물이었던 셈이다.

그 모든 시작은 작은 외씨 하나였다.

참외씨 자체는 별맛이 없다. 씹어도 고소한 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배를 채워 주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사람 몸속에

들어가도 잘 소화되지 않는다. 참외를 먹고 다음 날 화장실에 가보면 어제 먹었던 씨앗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나타난다.

처음에는 그것이 신기했다.

"도대체 얘들은 왜 소화도 안 되는 거지?"

 

생각해 보면 조물주의 치밀한 설계다. 씨앗이 모두 소화돼 버린다면 종족 번식이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동물의

뱃속을 통과해도 살아남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참외 입장에서는 사람도 거대한 운송 수단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나는 참외를 먹을 때마다 씨를 둘러싼 말랑말랑한 내용물을 유심히 맛본다. 과육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혹시 그 속에 사람의 몸매를 날씬하게 만드는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요즘 세상은 다이어트 전성시대다. 누구나 살을 빼고 싶어 하고, 누구나 조금이라도 더 날씬해지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만약 과학자들이 참외씨를 감싸고 있는 그 달콤한 내용물 속에서 다이어트를 주관하는 특별한 유전자나 생리활성

물질을 발견한다면 어떨까?

 

그 성분을 추출해 신약을 개발하고, 그것을 복용한 사람들의 몸매가 서서히 외씨처럼 매끈하고 균형 잡힌 모습으로

변해 간다면?

더 나아가 허리선은 가늘어지고 다리의 곡선은 자연스럽게 살아나 어느새 외씨버선을 닮은 맵시를 갖게 된다면?

아마 세상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헬스장도 놀라고, 다이어트 업체도 놀라고, 성형외과마저 긴장할지 모른다. 이름

하여 '외씨버선 프로젝트'.

물론 아직까지는 순전한 상상일 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외씨버선이라는 아름다운 말도 결국은 작은 참외씨 하나

에서 비롯되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씨앗 하나가 아름다운 버선의 이름이 되고, 또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는

미래의 다이어트 비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참외를 먹을 때 씨를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언젠가 과학이 그 비밀을 밝혀낼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외씨버선처럼 날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놀라운 비밀이, 지금도 그 작은 외씨

속에 잠들어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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