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와 캐리어
어제 인천에 사는 큰딸에게서 뜻밖의 선물이 도착했다. 친정어머니가 시장을 보실 때 쓰시라며 캐리어 하나를 택배로
보내온 것이다. 마침 캐리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더욱 반가웠다.
그동안 시장에 다녀오신 아내는 물건이 많아지면 으레 지하철역에서 전화를 했다. 그러면 나는 짐꾼 노릇을 하러 나갔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집까지 오는 일이 번거롭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짐을 나르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나는 지게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섯 살 무렵, 어른들이 지게에 짐을 지고 다니
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따라 하고 싶다고 아버지를 졸라댔고, 결국 아버지는 내 몸에 맞는 작은 지게
를 만들어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어린 농부가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보리를 수확할 때도, 벼를 거둘 때도 제법 많은 짐을 져 날랐다. 밭에서 캔 고구마와 무, 배추를 옮겼고,
산에서는 겨울을 날 땔감나무를 져 왔다. 지게는 참으로 신기한 도구였다. 무거운 짐을 멜빵으로 어깨와 등에 분산시켜
사람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게 했다. 길이 없는 논두렁도, 울퉁불퉁한 산길도 문제없었다.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지게도 함께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딸이 보내준 캐리어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지게와 캐리어는 단순히 짐을 나르는 도구의 차이가 아니라 시대의
차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지게가 사람의 힘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발명품이라면, 캐리어는 바퀴의 힘을 이용하는 발명품이다. 지게를 지면 짐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지만, 캐리어는 바퀴가 대신 무게를 나누어 준다. 사람은 끌기만 하면 된다. 힘의 시대에서
기술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 역시 이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바퀴의 발명은 인간의 노동을 획기적으로 줄여 주었고, 물류와 교통,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수천 년 동안 굴러온 바퀴는 결국 오늘날의 자동차와 기차, 비행기, 로봇에까지 이어졌다. 인간의
역사는 어쩌면 더 적은 힘으로 더 큰 일을 해내기 위한 노력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반면 지게는 인간의 의지와 근면함을 상징한다. 아무리 좋은 도구가 있어도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게가 아무리 훌륭해도 캐리어가 등장한 시대에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 나은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AI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의 지게가 캐리어로 바뀌었듯이, 이제는 캐리어마저도 스스로 움직이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육체노동뿐 아니라 지식노동까지 도와주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반도체와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성공에 안주한다면 그것은
지게를 지고 있으면서도 캐리어의 등장을 외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대의 수레바퀴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어제의 혁신은 오늘의 평범함이 되고, 오늘의 자랑은 내일의 추억이 된다.
나는 딸이 보내준 캐리어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지게를 떠올렸다. 지게는 내 삶의 뿌리이고, 캐리어는 오늘의 현실이다.
그리고 AI는 다가오는 미래이다. 중요한 것은 지게를 버리는 것도, 캐리어만 맹신하는 것도 아니다. 지게를 지던 성실함은
간직하되, 캐리어를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를 갖는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쉼 없이 굴러간다. 그 바퀴를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지지만, 성실한 두 다리와 새로운 바퀴를 함께 갖춘
사람은 더 멀리 갈 수 있다. 어쩌면 지게와 캐리어의 차이는 단순한 운반 도구의 차이가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
는 인간의 지혜와 발전의 상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