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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물든 솔숲 앞에서

작성자남청도|작성시간26.06.23|조회수21 목록 댓글 0

 

붉게 물든 솔숲 앞에서

 

애국가 첫 소절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우리에게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산과 들을 지켜 온 수호자이자, 사계절 푸름을 잃지 않는 절개의 상징이며, 수많은 문인과 화가

들이 사랑한 우리 민족의 정신 그 자체이다. 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묵묵히 푸른 빛을 간직한 소나무는 오래전부터 선비

의 품격과 닮은 나무로 여겨졌다.

사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얼핏 보면 비슷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 묶음부터 다르다. 두 개씩 모여 있는 잎은

소나무이고, 다섯 개씩 모여 있는 잎은 잣나무이다. 솔방울의 모양도 다르다. 잣나무의 솔방울은 크고 그 안에 귀한 잣

을 품고 있다. 산길을 걷다 보면 둘은 금세 구별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형제처럼 서로 닮아 있다.

 

동아시아 불교 문화에서 잣나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 선종의 유명한 공안인 ‘뜰 앞의 잣나무’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 수행자가 깨달음의 본뜻을 묻자 조주 선사는 긴 설명 대신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답했다. 언뜻 엉뚱하게 들리

는 이 말은 진리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의 현실 속에 있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옛

사찰에는 소나무와 더불어 잣나무가 유난히 많다.

잣나무는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혹독한 추위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묵묵히 제 모습을 지킨다. 불교에서는 이를

수행자의 이상적인 모습에 비유하였다. 또한 잣나무 숲은 은은한 향기와 부드러운 바람 소리를 품고 있어 참선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 잣은 귀한 공양물이자 영양 공급원이었고, 깊은 뿌리는 산사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었다. 수행의 상징성과 실용성이 한데 어우러져 잣나무는 오랜 세월 절집의 벗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산을 오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부산을 비롯한 경남과 경북의 산야를 뒤덮고 있던 소나무 숲 곳곳

이 붉게 변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단풍이 든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이미 죽어 버린 나무들이다. 소나무

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들이다.

 

한때 푸른 파도를 이루던 능선은 군데군데 갈색 상처를 드러낸다. 살아 있는 숲이 아니라 서서히 죽어 가는 숲의 색깔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감염된 나무를 베어 내고 훈증 처리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제 수단이라고 한다. 병든 나무를 살리기보다는 더 이상의 확산을 막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 형편이다.

산길에서 마주친 붉은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생각도 함께 떠오른다. 재선충은 원래 우리

땅의 병이 아니었다. 해외에서 들어온 목재와 포장재 등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처음부터 원목 수입

과정에서 철저한 검역과 소독이 이루어졌다면 지금과 같은 참담한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재난을

완벽하게 예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위험을 알면서도 소홀히 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우리는 지금 숲을 통해 배우

고 있다.

옛사람들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고 말했다. 작은 틈을 가볍게 여긴 결과가 얼마나 큰 재앙으로 돌아

오는지 경고하는 말이다. 재선충 피해는 바로 그 속담의 살아 있는 증거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몇 그루의 고사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방심과 늑장 대응이 이어지는 사이 수많은 산과 계곡이 병들어 갔다.

 

숲은 말이 없다. 소나무는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는다. 그저 제 몸을 붉게 말려 가며 인간에게 한 가지 사실을 보여 줄

뿐이다. 자연은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지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도 산등성이 위에는 살아남은 소나무들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애국가 속 그 소나무처럼, 문인화 속 그 소나무처럼,

그리고 수백 년 동안 사찰과 마을을 지켜 온 그 소나무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젠가 다시 푸른 숲이 능선을

뒤덮기를 바라며, 우리는 지금이라도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눈앞의 이익보다 먼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지혜, 작은 위험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경계심, 그리고 숲을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주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붉게 죽어 가는 소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조주 선사의 말을 떠올린다. “뜰 앞의 잣나무.”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앞에 서 있는 붉은 소나무 또한 하나의 가르침일 것이다. 자연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

함을 깨닫지 말라는, 너무도 아프고 무거운 가르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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