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 때가 있다
여름 내내 기세등등했던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이제는 조석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의 질감에서 가을을 느낀다.
물러가지 않을 것 같은 그 폭염도 이렇게 때가 되면 저만치 사라지고 만다.
이런 계절의 질서를 보고 있으면 세상일에는 그 때가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세상일은 그 때를 통해 매듭이 지어지고 그 매듭으로 인해 성숙해지는 것같다.
이런 이치 때문에 우리는 그때그때의 변화를 통해 안으로 여물게 되는 것이다. 변화가 없으면 삶의 리듬이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살이도 이런 법칙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시작할 때가 있으면 정리할 때가 있고, 참아야 할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다.
그러므로 그때를 거부하거나 외면하는 태도는 삶의 질서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 때를 기다릴 줄 알고, 또 그 때가 오면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인생이 보다 성숙하다.
우리 생 최후의 때가 다가오더라도 당당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 자세, 이것을 나는 수행이라고 정의 한다.
이웃 종교의 가르침에 이런 말씀이 있다.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 시기와 때는 어떤 절대자나 신이 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신의 섭리이기 이전에 우주의 질서며 조화다.
인간 또한 이 신비로운 질서 속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이든 그때가 오면 도망치거나 두려워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는 다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의 삶에서 어떤 일이 잘 안 풀리면 ‘안 되는 때’라고 위로하면 될 이다.
또한 현재 당신의 일이 뜻대로 잘 풀린다면 ‘잘 되는 때’라고 겸손해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병고로 고생하고 있다면 ‘아플 때’라고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일은 ‘한때’이기 때문에 필경 우리 삶의 언저리를 지나가고 말 것이므로.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결국에는 지나간다.
그래서 상처는 상처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우리를 키우고 성장하게 만든다.
모든 일은 언젠가는 지나가게 되어 있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지나갈 수밖에 없다.
권력이나 명예일지라도 세월이 지나면 무너지고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까 모두가 한때일 뿐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무상’이라고 표현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가르침이다.
아무리 빛나는 보석일 지라도 언젠가는 빛을 잃게 되어 있고 그 어떤 단단한 물건도 결국 부서지게 되어 있다.
한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는 이러한 진리를 알지 못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진리를 부정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영원할 것처럼 그 대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집착은 그 어떤 대상이든 우리를 구속하게 되고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이 가르침에는 두 가지의 뜻이 내표되어 있다.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로 나눌 수 있겠다.
흔히 영원하지 않다고 말하면 가치 없고 무의미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것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젊음과 건강을 더 유지하고 싶은데 이것이 점점 무너져가니까 마음이 괴롭다.’
이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역전의 인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금 사업에 실패하여 힘든 시기라고 했을 때, 재기가 가능한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법칙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공도 실패도 영원하지 않은 순환의 구조라서 그렇다.
이것을 달리 정리해보면, 지금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산다 하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복된 시절을 맞이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현상이 변하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다.
따라서 무상의 본뜻은 ‘좋은 것이 없어진다’는 허무의 느낌보다는 ‘나쁜 것도 없어진다’는 긍정적인 내용을 더 많이 지니고 있는 셈이다.
세상이 덧없다는 것은 허무하거나 가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대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아무리 즐거운 일도 집착하면 그때부터는 병이 되고 고통이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명제는 삶의 자세에서 아주 중요한다.
이 가르침만이 세상의 모순을 위로해 줄 수 있으며 개인적인 욕망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이 가르침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현재의 삶에 집착하고 매달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행복의 길을 열어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한때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과정 속에는 행복도 있고, 기쁨도 있고, 불행도 있고, 슬픔도 있고, 좌절도 있고, 용기도 있고, 희망도 있다.
자신에게 언제나 좋은 일들만 다가오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행복이 오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슬픔이 오면 그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에 머물러 있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까 슬픔에도 머물지 말고 기쁨에도 머물지 말고 받아들이라.
출처 ; 현진 스님 / 행복은 지금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