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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물외암이 궁금해..

작성자發菩提心|작성시간22.06.02|조회수247 목록 댓글 2

























































ㅡ 요즘 운문의 아침하늘..



오늘은 임인년 하안거 들어
두번째 맞는 삭발,목욕일이었다

첫삭발날은 밭일이급해서
하루종일 밭과 씨름하느라
우리 운문의 주봉이자 백암산 최고봉인
상왕봉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도
대중이 모여 안거를 시작했는데
한번쯤은 최고봉에 올라
육방예를 하고
대중들의
무마 여일정진 확철대오 광도중생
축원은 해야할일...

점심을 김밥과 컵쌀국수로 먹고
잠시 쉬어
석장하나 짚고 길을 나서
상왕봉에 올라 주위도 돌아보고
육방예를 하고
대중들의 무사안녕 화합정진을
축원하고나서
발길을 기린봉을 향해 움직여
백학봉까지 이르고 나니
바로 뒤돌아
운문으로 향하려는 생각이 바뀌어
지난 겨울에
물외암이 새로 불사를 시작했다
멈춰진 상황이란 소릴 들은 기억이 떠올라
가보고 싶은 맘이 일어
약사암을 들려
물외암까지 살펴보고 참배후
운문으로 돌아가자 고 맘먹고
계단길로 들어서
끊임없는 계단 내려서기를 했다.




物外庵물외암...
아래로 글자릴 옮겨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영천굴.영천암설명

영천암은
물외암, 약사암과 함께
백학봉을 배경으로 건립된 암자이다.

이곳은 세 암자 중 가장 동쪽에 입지하며,
가장 깊고 큰 암굴을 지니고 있어
예부터 ‘靈泉窟’이라 불렸다.

‘靈泉窟’은 ‘淨土寺’로 불렸던 백양사와 함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유일한 암자이다.

한편 ‘靈泉’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에 한스님께서 영천토굴서
열심히 정진 하며 지냈는데
여실한 정진에 감응이 있었는지
동굴 한구석 바위에서
매일 하루 먹을 쌀이 나와
탁발 갈일없이 공양지어먹으며
기동정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객스님이 오셔서
하루 묵어가게 되어서
쌀이 부족하겠다 싶어
쌀이 나오던 바위에 가서
저 안에 쌀이 많아서 매일 나오겠지 ?
저 바위를 작대기로 뚫으면
쌀을 더 내놓겠다 싶은 생각으로
작대기로 쿠욱 찔렀더니
살짝 들어가며 작대기는 부러지고
그자리에서 쌀을 내놓는 일은 멈추고
핏자국처럼 붉게 변하더니
그후로는 물이 나기 시작했다 한다.

그런데 그물이 맛이 좋고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는 약수 인지라
靈泉영천, 즉 신령스런약수가 나온다해서
영천굴 靈泉屈 이름을 얻게 되었다.




또한 영천굴 안내판에는
홍락인과 관련된 명칭의 유래가 적혀 있다.

洪樂仁은
1767-1768년(영조 43-44년)
전라 관찰사를 지낸 인물로서,
호남 지역에 대 유행병이 돌자
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이에 왕이
‘靈地를 찾아 크게 기도를 올리도록 하라.’
는 명을 내리자,
백양사 바위에 ‘國際基’라 새기고
이 바위에서 솟는 물을 제단에 올렸으며,
이 물을 사람들에게 마시게 하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










출가해 행자생활을 하던 시절
약사암 참배를 할때가 있었는데
약삼암에 이르니
당시 어른스님께서
물외암을 소개해주며
백양사 일원에서는
가장 많은 견성도인을 배출한
최고의 수행처가 물외암이다.
라고 말씀해주셨다.

녹슨 철재사다리를 절벽을 끼고 오른
물외암은 경이로움 그대로였다
약사암은 기도처라
뭔가 분주한 모습인데
바로 그 옆 절벽을 조금 지나오니
고요의 극치 적정의 도량
신선이 산다면 여기지 싶은...

그때
물방울과 작은 돌들이 떨어지는 자리에
작은 한옥 법당이 자그맣게 자리하고
억지로 만든 조립식 작은 부속건물이
있었는데
모든 생각이 멈쳐 고요해질 수 밖에
없겠다 싶은 천하의 명지...

그 어린시절
가히 충격적 감동이었다

그후로 간간이 들려 감동적 고요에
머물곤 했던 고향같은 토굴 이었다.


근대 지금 이모습이란...

사람 산지 오래라
주변숲은 어지러이 우거져 문란하고
건물들은 질서없이 철거되어
지저분허니 어지럽고
새로 짓는다 터작업은 했으나
기단석을 쌓고
겨우 초석 정도 놓은 상태로
일은 멈추어버린 난잡한 공사현장...

그 예전 그 맑고 고요해
가만 있어도
적멸의 세계로 드는 듯 느껴지던
그 숭고함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예전 중국 구채구를 참관하고자
사천성 성도에서
3일이나 걸려 송판을 가는데
마지막 그 높고 구비구비의 고갯길을
막 넘어서는 촌락 이름이
작은 집이 지어진 제단 같은 곳에
쓰여진 이름
세외촌世外村

충격적이었다
세상밖의 촌락
그 말이 시사하는 철학적 의미...

그보다 더크게 다가온 이름
물외物外
물 밖의 암자
색수상행식 오온의 물적세계를 벗어난
진정한 정토의 암자, 해탈의 암자..

이 도량에 들어서면
자연히 그리 되는 느낌 이었던
그 맛은 다 어디로 갔을꼬?
안타깝고 서운하고 ...

불사가 끝나 정비가 되면
옛맛을 찾으리라 부러 여기며
또한 그러라 축원하고
아픈 마음으로
약사암으로 돌아나와 큰길로 내려와
운문으로 가는길을 묵묵히 걸었다.



어서 멋진 대원력 공덕주가 나와서
인연이 닿아
불사가 원만허니 마무리 되길
기도기도 축원하는 바 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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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發菩提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02 [다음카페] 불교성전 4장01절/ 17.*
    육방예경에 관한말씀
    https://m.cafe.daum.net/mahayeonsutra/sY8Q/372?svc=cafeapp
  • 작성자發菩提心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6.02 [다음카페] 7/3. 여섯 방향에 절하기 https://m.cafe.daum.net/mahayeonsutra/jqaI/110?svc=cafe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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