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법어집
영원한 자유
++++++++++++++++++++++++++++
제 5 편 영원한 자유인
1. 선로(宣老)스님
송(宋)나라 때,
시인이며 대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곽공보(郭功甫)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이 사람을 잉태할 때
그의 어머니가 이태백의 꿈을 꾸었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를
이태백의 후신(後身)이라고 했는데,
뛰어난 천재였다고 합니다.
곽공보의 불교스승은
귀종 선(歸宗宣) 선사인데
임제종의 스님이었습니다.
어느 날 귀종 선 선사가
곽공보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앞으로 6년 동안
곽공보의 집에 와서 지냈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곽공보는 스님께서 연세가 많긴 하지만
어째서 자기의 집에서
6년을 지내려 하시는지 알 수 없어
이상하게 생각 하였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안방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 부인이 큰 소리로
"아이쿠,
여기는 스님께서 들어오실 곳이 아닙니다."
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깨어났습니다.
부인이 꿈에
큰스님께서 자기들이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왔다고 하는 말을 듣고
곽공보는 낮에 온 편지 생각이 나서
불을 켜고 부인에게 그 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사람을 절에 보내 알아보니
어젯밤에 스님께서
가만히 앉아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편지 내용과 꼭 맞았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곽공보의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편지를 보낸 것이나 꿈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귀종 선 선사가
곽공보의 집에 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달리 지을 수가 없어,
귀종 선 선사의 '선(宣)'자를 따고,
늙을 '노(老)'를 넣어
'선로(宣老)'라고 했습니다.
생후 일 년 쯤 되어
아이가 말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누구를 보든
'너'라고 하며 제자 취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법문을 하는데
스님의 생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어린애 취급을 할 수가 없어
무두다 큰스님으로 대접하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아이의 엄마, 아버지도 큰절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소문이 났습니다.
당시 임제종의 정맥(正脈)을 이은
유명한 백운 단(白雲端) 선사가
이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세살 되는 어린애를 안고 마중을 나갔더니
이 아이가 선사를 보고
"아하, 조카 오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생의 항렬로 치면
백운 단 선사가
귀종 선 선사의 조카 상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니
"사숙님" 하고
어린아이에게 절을 안 할 수 없었습니다.
백운 단 선사 같은 큰스님이
넙죽 절을 하였던 것입니다.
백운 단 선사가
"우리가 이별한 지 몇 해나 됐는가?"
하고 물으니,
아이는 "4년 되지.
이 집에서 3년이요,
이 집에 오기 1년 전에
백련장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조금도 틀림없는 사실을 말하자
백운 단 선사는
아주 깊은 법담(法談)을 걸어 보았습니다.
법담을 거니
병에 담긴 물이 쏟아지듯
막힘이 없이 척척 받아 넘기는데,
생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법담은 장황하여 다 이야기 못하지만
<<전등록(傳燈錄)>>같은
불교 선종 역사책에 자세히 나옵니다.
이것이 유명한
귀종 선 선사의 전생담입니다.
그후 6년이 지나자
식구들을 모두 불러 놓고는
"본래 네 집에 6년만 있으려 하였으니
이제 난 간다"
하고는 가만히 앉아 입적 했습니다.
이처럼 자유자재하게 몸을 바꾸는 것을
격생불망(隔生不忘)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전생, 후생으로 생을 바꾸어도
절대로 전생의 일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