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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법문 027-1/퇴옹 성철

작성자發菩提心|작성시간16.04.24|조회수80 목록 댓글 0

백일 법문 027-1/퇴옹 성철

1. 심식설(心識說)의 근원 01


유식학(唯識學)을 구성하는
주요 사항 가운데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있습니다.

실로 유식학은
이 아뢰야식을
구심점으로 하여
집약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이 아뢰야라는 말이
불교에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가에 대해
일부에서는
대승불교에 들어와서 창안되어
사용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사용된 말입니다.

곧 부처님이 법을 설하던
근본불교시대에
이미 이 말을 사용한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지는
문제가 없지 않으나,

어쨌든 아뢰야라는 말이
부처님 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을 윤회하는 주체가
식(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부파불교(部派佛敎)와
유식파에서 특히 강한데,

이와 같은 모습도
역시 근본불교의 경전에
간결하게나마 설해져 있습니다.

그 밖에도 유식학에서는
인식의 주체인
심(心). 의(意). 식(識)을
각각 제8식,
제7식, 제6식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그 심의식이라는 말은
이미 부파불교에서 논의되었고 ,
그보다 앞서
근본불교에서도 설해진 것입니다.


근본불교의 경전인
[아함경(阿含經)]에
이러한 말이 나오지만,

여기서는 유식파가 말하듯이 ,
그 심의식이
세 가지로 구별되지 않고
동일한 의미를
여러 가지로 부여하여
설명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와 같이 원시경전에는
아뢰야식 및 심의식 등
후대의 대승불교에서
중요시하는 개념들이
원초적인 모습으로 설해져 있습니다.

이하에서 이러한
몇 가지 주요 사항에 대하여
원시경전의 설명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때에
세존은 조용히 앉아
묵묵한 채로 사념하였다.

내가 증득한 이 법은
매우 깊어서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적정하고 미묘하여
생각의 경계를 초월하고
지극히 미세하여
지혜로운 사람만이 능히 알 바이다.

그런데
이 중생은 아뢰야를 즐거워하고
아뢰야를 기뻐하고 아뢰야를 좋아한다.

그러나
아뢰야를 즐거워하고
아뢰야를 기뻐하고
아뢰야를 좋아하는 중생으로서는
이 연의성(緣依性),
연기(緣起)인 도리는 보기 어려우며,
또 일체 제행(諸行)의 고요히 그침,
일체 의거(依據)의 내버림,
갈애(渴愛)의 모든 소며,
떠남(離).
소멸(滅). 열반(涅般)의 도리도
심히 보기 어렵다.

만약 내가 법을 설하여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피로하고 곤궁할 뿐이다.”

(律藏三 南傳大藏經 第3券 p. 8
相應部經典 1券, p. 234)


부처님께서
우루빈나 마을
니련선나(尼蓮禪那)강변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7일간 해탈의 기쁨을 누리시면서

초저녁에 연기(緣起)를
순역(順逆)으로 살펴보시고
한밤중과 새벽에도 연기를
순역(順逆)으로 살펴보셨습니다.

그리고
칠일이 네 번 지난 후
자신이 깨친 법을
일체 중생에게 전하려고 생각하니
위에 인용한 말씀과 같이
중생들이
아뢰야에 장애되어
이 연기법을 이해하지 못할 것
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아뢰야는
범어로 alaya로서
a는'없다, 아니다'의
부정사(否定詞)이고,
laya는'없어진다'는 뜻이므로

아뢰야는
영원히 존재하며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역으로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인
'무몰(無沒)'이라고도 번역합니다.

그러나
이 아뢰야가
alaya의 음을 표기한 경우에는
저장한다는 뜻인
장(藏)이라고 번역하는데,

오늘날은 대개
이 후자를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현재 있는 것이 아니고
과거 전생에도 있었고
미래 내생에도 있을
이 아뢰야는
계속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것으로서
중생의 근본 생명입니다.

여기에 의지해서
중생세계가 벌어지는데,
이것을 근본무명이라고도 합니다.

이 근본무명이
아주 뿌리 뽑아져야만
연기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지로 연기법을 알아서
부처님 같은 정각을 이루려면
반드시 근본 장애물인
이 아뢰야를
뿌리 뽑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 원시경전에 나오는
아뢰야라는 말은,
후대 대승불교의
유식파에서 주장하는
아뢰야식과
똑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이 경전의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중생들이 이에 집착하여
단절하기 어렵고,
진리를 장애하여
무명의 원인을 이루는 점에서,
원초적인 형태로
아뢰야식의
연원을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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