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법문 031-2/퇴옹 성철
3. 심식설(心識說)
1) 5식송(五識頌)
5식(五識)은
전5식(前五識)을 말합니다.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우리의 심리상태를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말나식(末那識).
아뢰야식(阿賴耶識)의
8식으로 나누는데,
이 중에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의 다섯 가지를
전5식이라 하고
의식을 제6식,
말나식을 제7식,
아뢰야식을 제8식이라고 합니다.
전5식은
우리의 심리상태에 있어서
정신활동의 전위 부대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해설한 것입니다.
“성경이고 현량이며,
세 가지 성품에 통하니”
(性境現量이요 通三性이니)
전오식, 즉
감각작용은
경계로 볼 때는 성경(性境)이며,
실제 작용하는 면으로 볼 때는
현량(現量)입니다.
'성경(性境)'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인식하는 경계를
성경(性境).
독영경(獨影境).
대질경(帶質境)의
세 가지로 나눈 것 중의 하나로 ,
이 성경에는 마치
거울에 물건이 비치는 것과 같이
어떠한 분별이 조금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눈에 무엇인가가 비칠 때,
즉 수정체 안구에
무엇인가가 비치는
그 찰나를 말하는 것으로,
이 비춰진 대상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이
검다, 푸르다, 좋다, 나쁘다
등의 분별을 하지만
이 분별은 이미
제6식인 의식이 작용하는 것이지
전5식이 작용하는 바는 아닙니다.
전5식은
분별작용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량(現量)'이란
사물을 지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거울에 어떤 사물이 비칠 때
그 사물이 그냥 비치기만 할 뿐
거기에는 사량과 분별이 없듯이 ,
전5식은 외계의 사물을
직접 지각할 뿐이므로
당연히 현량의 성질을 갖는 것입니다.
“불과 중에서도
오히려 스스로
진여를 계회(契會)하지 않느니라.”
(果中에 猶自不詮眞이라.)
과(果)는
불과(佛果)를 이루는 것을 말하고,
진(眞)이란 진여(眞如)를 말합니다.
불과를 이루는 것도
후득지에 해당하여
진여의 무분별을
연려하지 않으므로
이것은 후득지 중에서
진여를 반연한다고 주장한
안혜(安慧)논사의 견해를
반박한 것이라고 합니다.
“대원경지가
먼저 발생하니
무루(無漏)를 이루어”
(圓明初發에 成無漏하여)
이것은 제8식이 전환하여
대원경지(大圓鏡智)가
발생함을 의미합니다.
대원경지는
제8식인 아뢰야식이
청정하게 전환하여
불과(佛果)의 지혜가
열리는 경지를 뜻합니다.
이때에는
전오식도 따라서 전환하여
무루(無漏)의
성소작지(成所作智)가 됩니다.
즉 전오식은
본래 제8식인
아뢰야식의 상분(相分)에
의지하는 것으로
그 본체가 같은 것이므로
제8식이 전환하여
대원경지가 되어야만
전오식도
함께 성소작지가 되는 것입니다.
“세 종류로 몸을 나투어
괴로운 윤회를 그치느니라.”
(三類分身하여 息苦輪이로다.)
세 종류의 몸이란
대화신(大化身).
소화신(小化身).
수류화신(隨類化身)을 말하는 것인데,
대화신이란
크게 몸을 나투는 것이고,
소화신은
조금 몸을 나투는 것이며,
수류화신은
중생의 종류를 따라
몸을 나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 종류의 몸을 나툰다는 것은
축생을 위할 때에는
축생의 몸을 나투고
남자를 위할 때에는
남자의 몸을 나투듯이,
각각의 종류에 따라
몸을 나투어 고해에 빠져
윤회하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식은
인연을 따라 나타나는데
혹은 갖추기도 하고
혹은 갖추지 않기도 하니
파도가 물을 의지함과 같으니라.”
(五識隨緣現한대
或俱或不俱하니
如濤彼依水니라)
(大正藏 31, p. 60 中,第15송)
이글은
유식삼십송에서
전5식을 설한 것입니다.
아홉 가지
연(九緣)을 갖추어 발생하는데,
아홉 가지 연을
다 갖추어야 일어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연(緣)을 갖추고
전5식이 제8식에
의지하여 활동하는 것은
마치 파도가
물에 의지하여 일어나듯이
제8식과
불가분리의 관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