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백일 법문 033-1/퇴옹 성철

작성자發菩提心|작성시간16.04.27|조회수23 목록 댓글 0

백일 법문 033-1/퇴옹 성철

3. 심식설(心識說)

4) 8식송(八識頌)01


“성(性)은
오직 무부무기이며
다섯 가지 변행이니
계(界)와 지(地)에서
다른 업력을 따라서 생하느니라.”

性唯無覆며 五遍行이니
界地에 隨他業力生이라.

제8식에는 5변행인
촉(觸). 작의(作意).
수(受). 상(想). 사(思)가
작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행상 즉 작용이
미세하여 알기 어려우며,
수행에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에
무부(無覆)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원경지에서
진여본성을 증득하고서 보면
무부가 아니라
유부(有覆)가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무부라고 한 것은
작용이 너무나
미세하고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8식은
삼계구지(三界九地)에서
각기 다른 업력에 따라서 생하는 것입니다.

삼계구지는
미혹에 빠진 유정들이
윤회하는 세계를 말하는데,

크게 나누면 삼계가 되고
자세히 나누면 구지가 됩니다.

삼계(三界)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말하며,

구지(九地)는,
욕계의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의
욕계오취(欲界五趣)를 합한
하나의 지(一地)와,

선정의 차이에 따라 구분한
색계의 네 지(四地)를 합한 것입니다.

모든 생류들은
각자의 업력을 따라서
이 삼계구지의 어느 곳엔가 생하며,
그때의 주체가 바로 제8식입니다.


“이승은 요해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미혹하여 집착하니
이로 말미암아 능히 논주들의
쟁논을 흥기하였느니라.”

二乘은 不了因迷執하니
由此에 能與論主諍이라.

제8아뢰야식의 행상(行相)이
극히 미세하기 때문에
이승(二乘)인
성문과 연각은 잘 모르므로
미혹하여
제8아뢰야식을
근본진여로 집착합니다.

그러므로 후대에 와서
유식파의 여러 논사들은
이 아뢰야식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논쟁을 했던 것입니다.

[해심밀경]에서 부처님이

"이승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아뢰야를 이승에게는 설명하지 못한다."

고 한 것은
아뢰야의 행상이
너무나 미묘하기 때문에
이승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여로 집착하므로
그것을 지적한 말씀입니다.

인도에서는 이승들은
아뢰야의 존재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없다고 주장했지만

대승논사들은
분명히 있다고 주장하면서
갖가지 증거를 보이고 있으며,

유식론(唯識論)등을 보면
상세하게 열거되어 있습니다.

일부 일본학자들은
이러한 논쟁을 취급함에 있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합니다.

즉 대승논사들이
논쟁을 하기는 했지만
아뢰야가
꼭 있다고는 입증하지 못했으며,

그들의 이론으로는
아뢰야의 존재 증명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아뢰야의 주장과
전생 또는 윤회에 대한 교설은
전적으로
방편에 불과하다고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실험심리학에서의
전생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논란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합니다.

만약에 전생이 입증된다면
제8아뢰야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히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실험심리학에서는
전생의 존재가
증명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아뢰야식의 존재는
부정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전에 이미
여러 큰스님들께서
아뢰야가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많이 증명했습니다만

그 증명하는 방식이
다소 철저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것만으로는
후세학자가 그에 의거하여
아뢰야를 입증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던 것이
대단히 어렵고 미묘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광대한 세 가지 장(藏)은
끝을 다할 수가 없으며,”

活活三藏은 不可窮이며,

아뢰야는
장(藏)이라고 번역하는데,
이 장에는
능장(能藏). 소장(所藏).
아애집장(我愛執藏)
의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물론 아뢰야식은
이렇게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뢰야식이
너무나 넓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성격에 따라
편의상 나누어 설명한 것에 불과합니다.

능장(能藏)이란
제8아뢰야식과
종자와의 관계에서
아뢰야식이
일체만법을 낳는 종자를
간직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소장(所藏)은
만법의 종자가
아뢰야식에 갖추어져 있다는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아애집장(我愛執藏)은
아뢰야식이
끊임없이 계속 이어져서
중생의 주체가 되므로
제7말나식이
이것을 잘못 알고
나(我)라고 집착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의미를
포괄하는 아뢰야식은
그 뜻이 깊고 넓기 때문에
그 궁극을 범부로서는
가히 측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근원이 깊어서
전7식은 물결이며
경계는 바람이 되고,”

淵深하여 七浪境爲風하고.

제8식의 근원은 깊어서
전7식(前七識)인
제7식과 전6식은
제8식의 바다에서 파도와 같고
그 경계는
바람과 같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훈습을 받아
종자와 근신과 기계를 지니며,”

受熏하여 持種根身器하며,

'훈습을 받는다'함은
아뢰야식이 전7식의
모든 훈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제6식이 죄를 지으면
자연히 제8식에 훈습되어
제8아뢰야식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에 상응하는
종자와 신체(根身)와
자연계(器界)가 나타나게 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