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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법문 033-3/퇴옹 성철

작성자發菩提心|작성시간16.04.27|조회수19 목록 댓글 0

백일 법문 033-3/퇴옹 성철

3. 심식설(心識說)

4) 8식송(八識頌)03


“처음은 아뢰야식이니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이다.

가히 알 수 없는 집수(執受)와
처(處)와 요(了)이니

항상 촉. 작의. 수. 상. 사와 상응하느니라.

오직 사수(捨受)이며 무부무기이니
촉(觸)등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항상 전변함이 폭포수가
흐르는 것과 같아
아라한의 지위에서 버리느니라.”

初는 阿賴耶識이니
異熟이며 一切種이라
不可知執受處와 了니
常與觸作意受想思와 相應하니라.
唯捨受요 是無覆無記니
觸等亦如是라
恒轉如瀑流하여
阿羅漢位에 捨하니라.
(大正藏 31, p. 60 中, 第2송-第4송)


이 글은
유식삼십송에서
아뢰야식을 설한 것인데
마음을 심층에서 표층을 향하여
능동적인 입장에서 고찰하면

제일 처음이
초능변(初能變)
이라고도 불리는 아뢰야식입니다.

이 아뢰야식을
인과 상속의 관계에서 보았을 경우
이숙식이라고 부르며

일체제법과의 관계에서 보았을 경우
종자식이라고 부릅니다.

또 여기에는
일체의 훈습된 종자가
함장되는 곳이기도 하고
무몰식(無沒識)이라고 하듯이
없어지지도 아니하며,
일체의 원인과 결과를 갖추고 있는
근본적 장소
또는 중심체로서
우리가 알기 어려운
미세한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뢰야식은
51가지 마음작용 중에서
촉(觸). 작의(作意).
수(受). 상(想). 사(思)의
5가지와 상응하여 작용할 뿐이며,

그 감수하는 성질은
선. 악. 무기 중에서 무기이며
특히 번뇌가 없는 무부무기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무부라고 하는 것은
번뇌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중생에게는 너무나
그 존재형태가 미세하여
그렇게 말할 뿐입니다.

이처럼 미세하여 알기는 어렵지만
그 작용은 마치
폭포수가 간단없이 흘러내리듯이
끊임없이 작용하며 존재하는 것으로
아라한(阿羅漢)
의 위치에 가서야
비로소 없어지는 것입니다.

능엄경에 그러한 비유가 있듯이,
물이 아주 깨끗하면
그 물이 폭포수 같이 흘러내려도
그 행상을 모르는 것처럼,

아뢰야식도 이와 같이
그 행상이 극히 미세하여
중생들은 이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라한의 자리에서
없어진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 의미를 좀더 세분하면
아라한의 자리에서는
장식 즉,
아뢰야식이라는 이름만 버릴 뿐
이숙식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제8식 자체가
다 없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뢰야식이라는 명칭을 버리는
아라한의 자리는
삼승(三乘)의 무학위(無學位)인
아라한을 뜻하지만 ,

여기에는 제8지 이상의
대승보살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집을 영구히 끊어서
아뢰야식의 명칭을
버릴 수 있는 것은
삼승의 아라한과
제8지 이상의 보살만이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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