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 법문 037-1/퇴옹 성철
5. 유식중도설(唯識中道說)01
법상종에서 주장하는
중도설을 찾아보면
먼저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
거론하는 바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성유식론에서는
'아(我)와 법(法)은 있는 것이 아니며
공(空)과 식(識)은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유식설이 중도교(中道敎)이지
공견(空見)이나 유견(有見)에
집착한
변견(邊見)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이 뜻을 이어받아서
[성유식론술기]에서는
그 의미를 상세히 논하여
유식종의 중도설을
선양하고자 하였습니다.
이하에서 먼저
유가사지론의 중도설을 소개한 후
성유식론의 주장과
그에 대한 술기의 해석을 참조하여
법상종에서 말하는
중도설을 해명하겠습니다.
“있음과 있지 않음의
두 가지를 함께 멀리 떠나는 것은
법상(法相)이 포섭하는
진실한 성품의 일이니
이것을 둘이 아니라고 이름 한다.
둘이 아니므로 중도라 이름하며
양변을 멀리 떠남을
또한 위없음이라고 이름 하느니라.”
有及非有의 二俱遠離는
法相所攝의 眞實性事니
是名無二니라
由無二故로 說名中道요
遠離二邊을 亦名無上이니라
(瑜伽論;大正藏 31, p. 487 上)
유식학의 소의경전인
유가론(瑜伽論)에서
무엇을 최고 원리로 삼았느냐 하면
있음(有)과 없음(無)의
두 변을 떠난 둘이 아닌 중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수승하고
위없는 이치라고 하였으니
유식학에서 주장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두 변을 여읜 중도에 있는 것입니다.
그 중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를
뒷날 유식학의 큰 비중을 차지한
성유식론에 의거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증. 감 양변을 여의어서
유식의 뜻을 성취하고
중도를 깨닫느니라.”
由斯遠離增減二邊하여
唯識義成하고 契會中道니라.
(成唯識論;大正藏 31, p. 39 上)
'증. 감의 양변'이란
양변이 늘거나 줄어드는 등
생멸(生滅)이나 유무(有無)의
양 극단에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양변에 집착하면
이는 유식을 모르는 사람이며,
이 양변을 여의어야
유식의 근본뜻인
중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식의 궁극적인 목표가
중도를 성취하는 것이라는
성유식론의 주장은
유가론의 사상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식에 대하여
응당 깊이 믿어 받아들이라.
아(我)와 법은 있는 것이 아니며,
공(空)과 식(識)은 없는 것이 아니다.
있음을 떠나고
없음을 떠나므로
중도에 계합하느니라.”
故於唯識에 應深信受하라
我法은 非有로
空識은 非無니라
離有離無일새 故契中道니라.
(成唯識論 ;大正藏 31 p. 39 中)
유식에 대하여
마땅히 깊은 신심을 내어
유식의 도리를 바로 알아야 됩니다.
자아와 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며(非有),
또 자아와 법이 공하다고 해서
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니(非無),
있음도 떠나고 없음도 떠나서
비로소 중도에 계합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식에서 주장하는
중도의 내용입니다.
성유식론의 이 구절에 대한
유식술기의 해석은 아래와 같습니다.
“술기에서 말하였다.
마음 밖에 실재하는 것으로
헤아리는 자아와 법은
있는 것이 아니요,
진여(眞如)의 공리(空理)와
능연(能緣)의 진식(眞識)은
없는 것이 아니라 하니,
혹 공은 그 이치며
식은 세속의 일이다.
처음에는 있음을 떠나고
나중에는 없음을 떠나므로
중도에 계합하느니라.”
述曰謂心外所計實我法은 非有요
眞如理空과
及能緣眞識은 非無라 하니
或空卽其理며 識卽俗事라
初離有後離無하여 故契中道니라.
(唯識述記 ;
大正藏 43 p. 489 下 - p. 490 上)
'술(述)'이라는 것은
유식술기를 말합니다.
마음 밖에 실재하는 것으로
계량(計量)되는
자아니 법이니 하는 것은
다 공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非有),
진여공리와 능연진식은
없는 것이 아닙니다(非無).
아집이나 법집의 경계 전체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아와 법이 다한
진여공(眞如空)도
아주 없는 것이 아니며
이를 반연하는
능연의 진식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있고 없음을 떠난
이것이 유식법상종에서 말하는
중도의 근본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