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총 73:51
Columbia Symphony Or.
2번 총 73:40
New York Phil & Westminster Choir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Columbia Symphony
제가 가지고 있는 말러 1&2번은 Super Bit Mapping 방식이라고 써있는데요, 음질은 정말 좋은 것 같네요. 좀 특이한 것은 CD 1번에 1번 전곡이랑 2번 1악장이 담겨 있다는 것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
아래 참고 글도 한번 봐주세요.
출처:http://windshoes.hihome.com/classic-walter.htm
"나는 말러의 제1교향곡을 그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칭하고 싶다"
-브루노 발터-
마에스트로의 마에스트로 - 브루노 발터
미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중에 아론 코플란드가 있다. 한번은 어떤 사 람이 찾아와 콜럼비아 교향악단을 지휘해 줄 것을 부탁했는데 코플란드 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에 콜럼비아 교향악단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었다. '나는 그런 교향악단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또 있다손 치더라도 시시한 오케스트라를 날보고 지휘하라니 그런 모욕이 어디 있느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찾아온 사람은 정중하게 어쨌든 한번 와보고 지휘를 하든 안 하든 결정하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코플란드는 그와 함께 가게 되었다. 콜럼비아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이미 오케스트라는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막상 지휘대에 올라서서 단원들을 훑어보던 코플란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1바이올린으로부터 모든 단원들은 현악4중주 멤버들이 아니면 유명한 독주자들로 짜여져 있었다. 또 그들 중의 많은 얼굴들이 코플란드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코플란드는 콜럼비아 교향악단을 지휘하게 되었다. 실상 콜럼비아 교향악단은 콜럼비아회사가 세계적인 지휘자 브루노 발터 (1816-1962)와 레코드 녹음만을 하기 위해 만든 오케스트라였기 때문에 일반연주도 없을 뿐 아니라 따라서 잘 알려져 있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휘의 거장 브루노 발터의 예술을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게된 것은 콜럼비아 교향악단의 덕분이라고 하겠다. SP시대로부터 LP를 거쳐 스테레오에 이르기까지 많은 녹음을 했던 발터의 디스크 가운데 음질 좋은 스테레오는 모두가 클럼비아 교향악단의 녹음인 것이다.
1876년 유태계의 독일인으로 베를린에서 태어난 브루노 발터는 처음 엔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슈테른 음악원에 입학해서 피아노를 공부했 었다. 13세가 되던 해 한스 폰 뷜로가 지휘하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듣고는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지휘야말로 나의 천직 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는 약관 17세에 괼른에서 정식으 로 지휘자로서 데뷔했다. 데뷔한 지 1년 후에 발터는 작곡가요 치휘자인 구스타프 말러를 만나게 되었다. 말러와의 만남은 발터의 인생에 있어서 여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게 아니었다. 때마침 말러는 함부르크 가극장의 지휘자로 있었는 데 발터는 부지휘자로 일하기 위해 말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말러는 '당신은 피아노를 잘 치나요' 하고 물었고 이에 답해 발터는 그때 연습 중에 있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피아노로 쳐 나가 답을 해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말러는 발터를 자기 집으로 초청했고 이 자리에서 발터는 용기를 내어 '당신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자 이번에 말러가 피아노에 앉아 자신의 교향곡1번을 피아노로 쳐주었다는 것이다. 이날 이후 발터는 말러 예술의 최고 해석자가 되었고 말년에 가서도 말러는 발터를 끔찍이도 아껴 주었다.
1922년 그의 나이 46세 때 처음으로 미국악단에 데뷔, 뉴욕 교향악단을 비롯해서 보스턴, 디트로이트 등을 지휘했다. 이때부터 그의 지휘 여행은 전세계를 누비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있어서 예술적으 로 행복했던 시기는 비엔나 궁정 가극장의 악장으로 있던 시기며, 음악적으로 볼 때도 이 시기의 해석이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전이다, 낭만이다 하는 것은 작곡가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 하지만 브루노 발터는 영락없이 낭만주의자임에 틀림이 없다. 아름답고 윤기있 는 그의 지휘력은 특히 모짜르트의 작품에서 빛난다. '모짜르트의 작품을 모짜르트답게 연주할 수 있다면, 최고의 연주가다'라는 말은 바로 발터의 명언이기도 한데, 그러나 운명은 그를 낭만주의자로 두지 않았다. 유태인이었던 그는 나치의 쫓김을 받아 미국으로 가게 됐고, 미국의 물질문명은 꿈과 낭만을 그로부터 빼앗아 미국 오케스트라 즉 콜럼비아 의 녹음 디스크에서는 매우 찬 인상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복잡한 악보일지라도 그는 질서정연하게 파헤쳐 재조립함으로써 특히 내성의 움직임에 큰 의미를 부여, 그의 녹음 가운데에서도 모짜르트, 브람스의 교향곡, 그리고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등은 말러의 녹음과 더불어 명반으로 손꼽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에도 조예가 깊었다. 당대의 소프라노 로테 레만의 피아노 반주를 담당, 녹음한 콜럼비아 오딧세이 시리즈 슈만의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는 1941년 녹음으로 상태는 썩 좋지 않으나 중후하고도 사랑에 찬 조화가 역시 들어볼 만한 디스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말년의 발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있는 비버리 힐즈의 저택에서 생활하면서 지휘와 저작생활로 보냈다.
'나는 물질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나는 정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말은 발터가 1962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쓴 글 속에 들어 있는 한 귀절이다. 그의 말처림 그는 현대에 살면서도 비현대적인, 그러니까 때묻지 않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다간 우리 시대의 거장이요, 위대한 지휘자였다.
사랑과 겸손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끈 진정한 인격자 - 브루노 발터
한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두 발의 총알이 든 총이 있고 당신 앞에는 ‘지휘자’와 ‘히틀러’와 ‘스탈린’이 서있다. 당신이 누구든 두 사람을 골라 마음대로 쏠 수 있다면 누구와 누구를 쏘겠는가?”
단원은 서슴없이 답했다.
"지휘자! 지휘자에게 두 발 다 쏜다." 위와 같은 농담은 물론 카리스마의 극단을 치달은 20세기의 지휘자들을 비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단원들의 지휘자에 대한 존경심 없이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브루노 발터. 이 지휘자야말로 앞서 말한 두 발의 총알을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항상 감사와 겸손과 존경의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어갔다. 단원들의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온 것은 두말할 나위없었다.
그는 한편 일상의 인간들에게 평범하게 내재된 소중한 정감과 서정을 통해 고귀한 영혼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성선설적 음악혼’이 가장 소박하고 따스한 모습을 통해 가장 높은 경지를 드러내줄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 어느 곡을 들어보아도 그의 음악에는 모나고 각진 곳이 없다.
발터의 본명은 브루노 발터 슐레징거다. 베를린에서 유태인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1889년 13세 때 베를린 필과 협연까지한 그가 피아니스트가 아닌 지휘자가 된 것은 당시 한스 폰 뷜로의 연주를 듣고서 한눈에 반해 버린 탓이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운명적인 만남이 그를 맞이했다. 1895년 함부르크 오페라극장에 부지휘자로 가면서 말러를 만난 것이다. 그는 말러의 충고로 슐레징거라는 유태계 성을 버렸고, 말러를 따라 빈 필의 부지휘자로 간다. 웬만하면 홀로서기를 주장해도 좋을 시점까지 그는 말러를 섬겼다. 그의 죽음 뒤에도 발터는 평생토록 말러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
1913년에 뮌헨 오페라극장, 25년에 베를린 시립오페라극장을 맡았던 그는 1929년 푸르트벵글러의 후임으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이 된다. 독일에서도 가장 인정받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이 된 그에게 곧 시련이 닥친다. 1933년 나치가 들어서며 유태인인 그의 활동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1936년에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옮겼으나 나치의 마수는 오스트리아마저 삼켜버렸고, 그는 결국 유럽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39년 미국땅에 닻을 내린 그는 이미 63세의 거장이었다. 이로부터 그는 뉴욕 필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56년, 고령으로 은퇴했으나 CBS가 당시 개발된 스테레오 녹음에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콜롬비아 오케스트라를 구성했다. 삼고초려 끝에 복귀한 80대의 발터가 남긴 녹음들이 오늘날 그의 명반이 되어 남아 있다. 모차르트 후기 6대 교향곡과 브람스 교향곡 전집(소니, 59∼60년)이 그중 대표적인 것이다.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제1번 [거인](The Titan)은 그가 24세 때 착수하여 29세에 완성한 곡이다. 그의 다른 교향곡에 비하면 짧은 편에 속하며 연주 시간 약 50여 분에 불과하다. 이 교향곡은 4년 전에 작곡한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 1884)와는 쌍둥이와 같은 관계를 지닌다. 말러의 모든 작품 중에서도 가장 친밀감을 주는, 아름다운 정감으로 넘치는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가 그대로 이 교향곡에 사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푸르트뱅글러 지휘 피셔 - 디스카우의 명반(<Seraphim> 60272, 1952년 녹음)으로 이 가곡집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한층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말러에게 가곡과 교향곡은 서로 다른 세계를 주장하는 별개의 표현 형태가 아니고 오히려 같은 표현 의식의 뿌리에서 솟아난 두 개의 가지에 불과했다. 그의 가곡은 대부분 관현악 반주로 되어 있으며, 슈베르트나 슈만, 볼후 등의 리트가 말과 음악이 서로 변증법적으로 작용하여 작곡된 것과는 달리, 텍스트가 암시하는 '감정의 풍경'을 출발점으로 하고 모든 표현을 인성과 관현악의 팔레트로 그려 내려는 점에서, 그의 가곡이 본질적으로 교향적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육성은 관현악 전개에 알맞은 자리를 베풀어 주는 몫을 할 뿐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것은 순기악적인 형식을 따른 교향곡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러 음악의 본질적인 특징이었다. 민요적 성격을 지닌 소박한 전음계적 선율선과, 그러한 소박함과는 정반대의 다채롭고 섬세한 화성 및 풍성한 음향, 그리고 그 두 가지 요소가 서로 협력하여 만들어 내는 오묘한 심정의 무늬 등 모순되는 두 개의 대립적 성격의 독특한 결합 위에 말러 음악은 성립되어 있다. 즉 그의 교향곡은 비록 육성과 말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에도 언제나 하나의 '무언가'였던 것이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와 함께, 다감한 청춘과 낭만적인 환상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교향곡 제1번 제1악장의 제1주제는 가곡집의 제2곡 '아침 들판을 건너가면'의 젊음으로 넘치는 명랑한 멜로디가 그주제를 이룬다. 또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제4곡 '연인의 푸른 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보리수'의 선율, 즉 젊은이가 실연의 아픈 가슴을 안고 보리수 나무 그늘에서 흩날려 떨어지는 꽃송이를 보며 비로소 영혼의 안식을 찾아내는, 평화와 고요로 가득 찬 꿈처럼 아름다운 선율이 제3악장의 트리오 부분에 나타난다. 그리고 교향곡 제1번은 이 제1, 제3악장이 가장 아름답다.
제1악장은 전원의 새벽에서 시작한다. 청명한 아침의 맑은 기분, 이윽고 해가 돋아 오르고 뻐꾸기가 흥겹게 운다. 한가로운 오스트리아의 전원 풍경이 차례로 펼친다. 그리고 곡은 차츰 고양되어 격렬함의 정점에 이른다. 제2악장은 거친 시골의 무곡 같은 스케르쪼와 부드러운 월쯔의 트리오로 이루어져 있다. 제3악장은 앞에서도 말한 대로 고요한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보리수'의 선율을 트리오에 지닌, 장송행진곡풍의 악장이며 팀파니의 리듬을 타고 저현이 어두운 민요풍의 주제를 연주한다.
이어 표정적인 오보에의 대선율이 얽혀든다. 이 두 개의 멜로디가 매우 인상 깊어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제4악장은 가장 길고 푹풍처럼 격렬한 감정을 쏟아부은 부분이며, 말러의 괴로움이 가슴 아프게 파고든다. 그러나 표면상의 격렬함과 정열에 비해 곡의 내용은 다른 악장만큼 충실하지 못하다. 차이코브스키풍의 강요하는 듯한 절규적 요소가 너무 강하다. 그렇다고 이 교향곡 전체를 손상할 정도는 물론 아니다.
말러의 가장 가까운 벗이며 제자였던 발터는 이 곡 연주에서 말러의 감정을 남김없이 전해 주고 있다. 그 많은 발터의 레코드 중 최고 걸작의 하나로 꼽는 명반이다. 제1악장 서두의 은은한 분위기에는 온갖 음악적 뉘앙스와 아름다움이 물씬 감돌고 있다. 뻐꾸기 울음 소리 하나를 예로 들어도 그 절묘한 리듬감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짐작할 수 있다. 멀리서 들려오는 호른의 뿔피리 소리 위에 겹쳐 울리는 플룻과 클라리넷의 뻐꾸기 소리가 얼마나 싱싱한가! 현과 금관에 발터의 입김이 스며들면 악단은 단연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넘치면서 눈부신 클라이맥스로 치달아 올라간다.
제1악장과 제2악장의 거칠고 소박한 시골 무곡이 풍기는 매력적인 연주는 발터의 저 잊을 수 없는 베토벤 제6번 교향곡 [전원]의 명연주를 연상시킨다. 제3악장의 짙은 농도도 인상적이다. 어떤 사소한 세부도 소홀함 없이 완전히 낭만적인 표정을 돋보인다. 트리오에서는 매혹적인 레가토와 하모니가 황홀한 도취경을 이룩한다. 제4악장의 태풍처럼 몰아치는 처절함도 특기할 만하다. 아무리 격렬함이 치영해도 거기에는 여유가 있어 딱딱함이나 위협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 발터 특유의 은은함과 온화함이 배어 있다.
발터 지휘의 교향곡 제1번은 그가 자기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도 모두가 말러의 음악 자체에 동화되어 있고 또 나아가서는 말러의 음악 자체도 개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보편성을 얻고 있다. 발터, 말러라는 음악가에 대한 좋다, 싫다는 따위의 사사로운 감정을 초월하여 만인을 감동시키는 예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야말로 지휘자의 최고의 경지라고 아니 할 수 없다. 특히 제3악장에서의 구슬픈 주제에 이은 매혹적인 오보에의 선율과 리듬은 발터가 아니고는 절대로 들려줄 수 없는 표현이다. 자칫 잘못하면 젊은이의 천박한 격정만을 돋보이기가 십상인 제4악장도 발터의 손이 닿으면 어김없이 뛰어난 음악이 되어 흘러 넘친다.
그 풍성한 하모니와 느린 템포, 유려하게 흘러 넘치는 멜로디는 말러 연주의 제1인자인 발터의 진가를 충분히 감지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이 레코드를 듣는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만족시키고 곡의 아름다움을 진한 감동으로 인식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말러 교향곡 연주에서 하나의 이정표 같은 명반이라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와 브루노 발터
브루노 발터는 그 자신이 쓴 '음악과 연주'에서 지휘자의 최우선 과제로 연주에 정감을 쏟는다던가 하는 것보다 음악을 분명히 표현하는 것을 꼽는다. 이 말은 어쩌면 '모차르트를 위한 눈물'로 알려져 온 발터의 음악관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각 단락을 묶는 음악적 끈이 여느 지휘자들과는 달리 대단히 탄력있고 부드러운 것이 발터의 음악이란 사실을 오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876년에 베를린에서 출생한 발터는 슈테른 음악원을 거쳐 쾰른 시립오페라의 지휘자로 데뷔했다. 그는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조수였으며 말러와는 친구 사이었다. 코벤트 가든과 뮌헨 오페라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로 단단한 명성을 얻은 그는 1932년, 뉴욕 필의 객원이 되어 토스카니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1962년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모차르트 지휘자로 남아있었다.
비인 필하모닉·뉴욕 필하모닉, 그리고 콜럼비아 심포니 등 그가 '지배했던' 세 오케스트라 가운데 특히 CBS가 주선했던 콜럼비아 심포니의 창설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발터의 모차르트를 빛내 주는 것은 그 비길 데 없는 우아한 선율선과 디미누엔도 등도 있겠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정확한 해석이 기본적으로 기여한다. 그의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일 뿐 도 다른 장기 레퍼토리인 말러나 브람스와는 애초부터 달랐다. 바로 그 점이 발터의 모차르트를 오늘날까지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 위의 글들은 제 글이 아니라 월간 「객석」 등의 글을 인용한 것을 밝힙니다. 브루노 발터에 대한 제 흠모는 아주 오랜 것이기는 하나 아직도 그에 관한 글 한 줄 제대로 쓰지 못할 만큼 전 미약합니다. 훗날 기회가 닿는 데로 보충할 것을 약속드린다.>
Columbia Symphony Or.
2번 총 73:40
New York Phil & Westminster Choir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Columbia Symphony
제가 가지고 있는 말러 1&2번은 Super Bit Mapping 방식이라고 써있는데요, 음질은 정말 좋은 것 같네요. 좀 특이한 것은 CD 1번에 1번 전곡이랑 2번 1악장이 담겨 있다는 것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
아래 참고 글도 한번 봐주세요.
출처:http://windshoes.hihome.com/classic-walter.htm
"나는 말러의 제1교향곡을 그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칭하고 싶다"
-브루노 발터-
마에스트로의 마에스트로 - 브루노 발터
미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중에 아론 코플란드가 있다. 한번은 어떤 사 람이 찾아와 콜럼비아 교향악단을 지휘해 줄 것을 부탁했는데 코플란드 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에 콜럼비아 교향악단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었다. '나는 그런 교향악단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또 있다손 치더라도 시시한 오케스트라를 날보고 지휘하라니 그런 모욕이 어디 있느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찾아온 사람은 정중하게 어쨌든 한번 와보고 지휘를 하든 안 하든 결정하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코플란드는 그와 함께 가게 되었다. 콜럼비아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이미 오케스트라는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막상 지휘대에 올라서서 단원들을 훑어보던 코플란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1바이올린으로부터 모든 단원들은 현악4중주 멤버들이 아니면 유명한 독주자들로 짜여져 있었다. 또 그들 중의 많은 얼굴들이 코플란드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코플란드는 콜럼비아 교향악단을 지휘하게 되었다. 실상 콜럼비아 교향악단은 콜럼비아회사가 세계적인 지휘자 브루노 발터 (1816-1962)와 레코드 녹음만을 하기 위해 만든 오케스트라였기 때문에 일반연주도 없을 뿐 아니라 따라서 잘 알려져 있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휘의 거장 브루노 발터의 예술을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게된 것은 콜럼비아 교향악단의 덕분이라고 하겠다. SP시대로부터 LP를 거쳐 스테레오에 이르기까지 많은 녹음을 했던 발터의 디스크 가운데 음질 좋은 스테레오는 모두가 클럼비아 교향악단의 녹음인 것이다.
1876년 유태계의 독일인으로 베를린에서 태어난 브루노 발터는 처음 엔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슈테른 음악원에 입학해서 피아노를 공부했 었다. 13세가 되던 해 한스 폰 뷜로가 지휘하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듣고는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지휘야말로 나의 천직 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는 약관 17세에 괼른에서 정식으 로 지휘자로서 데뷔했다. 데뷔한 지 1년 후에 발터는 작곡가요 치휘자인 구스타프 말러를 만나게 되었다. 말러와의 만남은 발터의 인생에 있어서 여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게 아니었다. 때마침 말러는 함부르크 가극장의 지휘자로 있었는 데 발터는 부지휘자로 일하기 위해 말러를 만나게 된 것이다. 말러는 '당신은 피아노를 잘 치나요' 하고 물었고 이에 답해 발터는 그때 연습 중에 있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피아노로 쳐 나가 답을 해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말러는 발터를 자기 집으로 초청했고 이 자리에서 발터는 용기를 내어 '당신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자 이번에 말러가 피아노에 앉아 자신의 교향곡1번을 피아노로 쳐주었다는 것이다. 이날 이후 발터는 말러 예술의 최고 해석자가 되었고 말년에 가서도 말러는 발터를 끔찍이도 아껴 주었다.
1922년 그의 나이 46세 때 처음으로 미국악단에 데뷔, 뉴욕 교향악단을 비롯해서 보스턴, 디트로이트 등을 지휘했다. 이때부터 그의 지휘 여행은 전세계를 누비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있어서 예술적으 로 행복했던 시기는 비엔나 궁정 가극장의 악장으로 있던 시기며, 음악적으로 볼 때도 이 시기의 해석이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전이다, 낭만이다 하는 것은 작곡가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 하지만 브루노 발터는 영락없이 낭만주의자임에 틀림이 없다. 아름답고 윤기있 는 그의 지휘력은 특히 모짜르트의 작품에서 빛난다. '모짜르트의 작품을 모짜르트답게 연주할 수 있다면, 최고의 연주가다'라는 말은 바로 발터의 명언이기도 한데, 그러나 운명은 그를 낭만주의자로 두지 않았다. 유태인이었던 그는 나치의 쫓김을 받아 미국으로 가게 됐고, 미국의 물질문명은 꿈과 낭만을 그로부터 빼앗아 미국 오케스트라 즉 콜럼비아 의 녹음 디스크에서는 매우 찬 인상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복잡한 악보일지라도 그는 질서정연하게 파헤쳐 재조립함으로써 특히 내성의 움직임에 큰 의미를 부여, 그의 녹음 가운데에서도 모짜르트, 브람스의 교향곡, 그리고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등은 말러의 녹음과 더불어 명반으로 손꼽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에도 조예가 깊었다. 당대의 소프라노 로테 레만의 피아노 반주를 담당, 녹음한 콜럼비아 오딧세이 시리즈 슈만의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는 1941년 녹음으로 상태는 썩 좋지 않으나 중후하고도 사랑에 찬 조화가 역시 들어볼 만한 디스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말년의 발터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있는 비버리 힐즈의 저택에서 생활하면서 지휘와 저작생활로 보냈다.
'나는 물질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나는 정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말은 발터가 1962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쓴 글 속에 들어 있는 한 귀절이다. 그의 말처림 그는 현대에 살면서도 비현대적인, 그러니까 때묻지 않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다간 우리 시대의 거장이요, 위대한 지휘자였다.
사랑과 겸손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끈 진정한 인격자 - 브루노 발터
한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두 발의 총알이 든 총이 있고 당신 앞에는 ‘지휘자’와 ‘히틀러’와 ‘스탈린’이 서있다. 당신이 누구든 두 사람을 골라 마음대로 쏠 수 있다면 누구와 누구를 쏘겠는가?”
단원은 서슴없이 답했다.
"지휘자! 지휘자에게 두 발 다 쏜다." 위와 같은 농담은 물론 카리스마의 극단을 치달은 20세기의 지휘자들을 비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단원들의 지휘자에 대한 존경심 없이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브루노 발터. 이 지휘자야말로 앞서 말한 두 발의 총알을 피해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는 항상 감사와 겸손과 존경의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어갔다. 단원들의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온 것은 두말할 나위없었다.
그는 한편 일상의 인간들에게 평범하게 내재된 소중한 정감과 서정을 통해 고귀한 영혼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성선설적 음악혼’이 가장 소박하고 따스한 모습을 통해 가장 높은 경지를 드러내줄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 어느 곡을 들어보아도 그의 음악에는 모나고 각진 곳이 없다.
발터의 본명은 브루노 발터 슐레징거다. 베를린에서 유태인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1889년 13세 때 베를린 필과 협연까지한 그가 피아니스트가 아닌 지휘자가 된 것은 당시 한스 폰 뷜로의 연주를 듣고서 한눈에 반해 버린 탓이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운명적인 만남이 그를 맞이했다. 1895년 함부르크 오페라극장에 부지휘자로 가면서 말러를 만난 것이다. 그는 말러의 충고로 슐레징거라는 유태계 성을 버렸고, 말러를 따라 빈 필의 부지휘자로 간다. 웬만하면 홀로서기를 주장해도 좋을 시점까지 그는 말러를 섬겼다. 그의 죽음 뒤에도 발터는 평생토록 말러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
1913년에 뮌헨 오페라극장, 25년에 베를린 시립오페라극장을 맡았던 그는 1929년 푸르트벵글러의 후임으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이 된다. 독일에서도 가장 인정받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이 된 그에게 곧 시련이 닥친다. 1933년 나치가 들어서며 유태인인 그의 활동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1936년에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옮겼으나 나치의 마수는 오스트리아마저 삼켜버렸고, 그는 결국 유럽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39년 미국땅에 닻을 내린 그는 이미 63세의 거장이었다. 이로부터 그는 뉴욕 필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56년, 고령으로 은퇴했으나 CBS가 당시 개발된 스테레오 녹음에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콜롬비아 오케스트라를 구성했다. 삼고초려 끝에 복귀한 80대의 발터가 남긴 녹음들이 오늘날 그의 명반이 되어 남아 있다. 모차르트 후기 6대 교향곡과 브람스 교향곡 전집(소니, 59∼60년)이 그중 대표적인 것이다.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제1번 [거인](The Titan)은 그가 24세 때 착수하여 29세에 완성한 곡이다. 그의 다른 교향곡에 비하면 짧은 편에 속하며 연주 시간 약 50여 분에 불과하다. 이 교향곡은 4년 전에 작곡한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 1884)와는 쌍둥이와 같은 관계를 지닌다. 말러의 모든 작품 중에서도 가장 친밀감을 주는, 아름다운 정감으로 넘치는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가 그대로 이 교향곡에 사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푸르트뱅글러 지휘 피셔 - 디스카우의 명반(<Seraphim> 60272, 1952년 녹음)으로 이 가곡집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한층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말러에게 가곡과 교향곡은 서로 다른 세계를 주장하는 별개의 표현 형태가 아니고 오히려 같은 표현 의식의 뿌리에서 솟아난 두 개의 가지에 불과했다. 그의 가곡은 대부분 관현악 반주로 되어 있으며, 슈베르트나 슈만, 볼후 등의 리트가 말과 음악이 서로 변증법적으로 작용하여 작곡된 것과는 달리, 텍스트가 암시하는 '감정의 풍경'을 출발점으로 하고 모든 표현을 인성과 관현악의 팔레트로 그려 내려는 점에서, 그의 가곡이 본질적으로 교향적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육성은 관현악 전개에 알맞은 자리를 베풀어 주는 몫을 할 뿐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것은 순기악적인 형식을 따른 교향곡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러 음악의 본질적인 특징이었다. 민요적 성격을 지닌 소박한 전음계적 선율선과, 그러한 소박함과는 정반대의 다채롭고 섬세한 화성 및 풍성한 음향, 그리고 그 두 가지 요소가 서로 협력하여 만들어 내는 오묘한 심정의 무늬 등 모순되는 두 개의 대립적 성격의 독특한 결합 위에 말러 음악은 성립되어 있다. 즉 그의 교향곡은 비록 육성과 말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에도 언제나 하나의 '무언가'였던 것이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와 함께, 다감한 청춘과 낭만적인 환상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교향곡 제1번 제1악장의 제1주제는 가곡집의 제2곡 '아침 들판을 건너가면'의 젊음으로 넘치는 명랑한 멜로디가 그주제를 이룬다. 또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제4곡 '연인의 푸른 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보리수'의 선율, 즉 젊은이가 실연의 아픈 가슴을 안고 보리수 나무 그늘에서 흩날려 떨어지는 꽃송이를 보며 비로소 영혼의 안식을 찾아내는, 평화와 고요로 가득 찬 꿈처럼 아름다운 선율이 제3악장의 트리오 부분에 나타난다. 그리고 교향곡 제1번은 이 제1, 제3악장이 가장 아름답다.
제1악장은 전원의 새벽에서 시작한다. 청명한 아침의 맑은 기분, 이윽고 해가 돋아 오르고 뻐꾸기가 흥겹게 운다. 한가로운 오스트리아의 전원 풍경이 차례로 펼친다. 그리고 곡은 차츰 고양되어 격렬함의 정점에 이른다. 제2악장은 거친 시골의 무곡 같은 스케르쪼와 부드러운 월쯔의 트리오로 이루어져 있다. 제3악장은 앞에서도 말한 대로 고요한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보리수'의 선율을 트리오에 지닌, 장송행진곡풍의 악장이며 팀파니의 리듬을 타고 저현이 어두운 민요풍의 주제를 연주한다.
이어 표정적인 오보에의 대선율이 얽혀든다. 이 두 개의 멜로디가 매우 인상 깊어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제4악장은 가장 길고 푹풍처럼 격렬한 감정을 쏟아부은 부분이며, 말러의 괴로움이 가슴 아프게 파고든다. 그러나 표면상의 격렬함과 정열에 비해 곡의 내용은 다른 악장만큼 충실하지 못하다. 차이코브스키풍의 강요하는 듯한 절규적 요소가 너무 강하다. 그렇다고 이 교향곡 전체를 손상할 정도는 물론 아니다.
말러의 가장 가까운 벗이며 제자였던 발터는 이 곡 연주에서 말러의 감정을 남김없이 전해 주고 있다. 그 많은 발터의 레코드 중 최고 걸작의 하나로 꼽는 명반이다. 제1악장 서두의 은은한 분위기에는 온갖 음악적 뉘앙스와 아름다움이 물씬 감돌고 있다. 뻐꾸기 울음 소리 하나를 예로 들어도 그 절묘한 리듬감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짐작할 수 있다. 멀리서 들려오는 호른의 뿔피리 소리 위에 겹쳐 울리는 플룻과 클라리넷의 뻐꾸기 소리가 얼마나 싱싱한가! 현과 금관에 발터의 입김이 스며들면 악단은 단연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넘치면서 눈부신 클라이맥스로 치달아 올라간다.
제1악장과 제2악장의 거칠고 소박한 시골 무곡이 풍기는 매력적인 연주는 발터의 저 잊을 수 없는 베토벤 제6번 교향곡 [전원]의 명연주를 연상시킨다. 제3악장의 짙은 농도도 인상적이다. 어떤 사소한 세부도 소홀함 없이 완전히 낭만적인 표정을 돋보인다. 트리오에서는 매혹적인 레가토와 하모니가 황홀한 도취경을 이룩한다. 제4악장의 태풍처럼 몰아치는 처절함도 특기할 만하다. 아무리 격렬함이 치영해도 거기에는 여유가 있어 딱딱함이나 위협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 발터 특유의 은은함과 온화함이 배어 있다.
발터 지휘의 교향곡 제1번은 그가 자기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도 모두가 말러의 음악 자체에 동화되어 있고 또 나아가서는 말러의 음악 자체도 개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보편성을 얻고 있다. 발터, 말러라는 음악가에 대한 좋다, 싫다는 따위의 사사로운 감정을 초월하여 만인을 감동시키는 예술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야말로 지휘자의 최고의 경지라고 아니 할 수 없다. 특히 제3악장에서의 구슬픈 주제에 이은 매혹적인 오보에의 선율과 리듬은 발터가 아니고는 절대로 들려줄 수 없는 표현이다. 자칫 잘못하면 젊은이의 천박한 격정만을 돋보이기가 십상인 제4악장도 발터의 손이 닿으면 어김없이 뛰어난 음악이 되어 흘러 넘친다.
그 풍성한 하모니와 느린 템포, 유려하게 흘러 넘치는 멜로디는 말러 연주의 제1인자인 발터의 진가를 충분히 감지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이 레코드를 듣는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만족시키고 곡의 아름다움을 진한 감동으로 인식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말러 교향곡 연주에서 하나의 이정표 같은 명반이라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와 브루노 발터
브루노 발터는 그 자신이 쓴 '음악과 연주'에서 지휘자의 최우선 과제로 연주에 정감을 쏟는다던가 하는 것보다 음악을 분명히 표현하는 것을 꼽는다. 이 말은 어쩌면 '모차르트를 위한 눈물'로 알려져 온 발터의 음악관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각 단락을 묶는 음악적 끈이 여느 지휘자들과는 달리 대단히 탄력있고 부드러운 것이 발터의 음악이란 사실을 오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876년에 베를린에서 출생한 발터는 슈테른 음악원을 거쳐 쾰른 시립오페라의 지휘자로 데뷔했다. 그는 리하르트 시트라우스의 조수였으며 말러와는 친구 사이었다. 코벤트 가든과 뮌헨 오페라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로 단단한 명성을 얻은 그는 1932년, 뉴욕 필의 객원이 되어 토스카니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1962년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모차르트 지휘자로 남아있었다.
비인 필하모닉·뉴욕 필하모닉, 그리고 콜럼비아 심포니 등 그가 '지배했던' 세 오케스트라 가운데 특히 CBS가 주선했던 콜럼비아 심포니의 창설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발터의 모차르트를 빛내 주는 것은 그 비길 데 없는 우아한 선율선과 디미누엔도 등도 있겠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정확한 해석이 기본적으로 기여한다. 그의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일 뿐 도 다른 장기 레퍼토리인 말러나 브람스와는 애초부터 달랐다. 바로 그 점이 발터의 모차르트를 오늘날까지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 위의 글들은 제 글이 아니라 월간 「객석」 등의 글을 인용한 것을 밝힙니다. 브루노 발터에 대한 제 흠모는 아주 오랜 것이기는 하나 아직도 그에 관한 글 한 줄 제대로 쓰지 못할 만큼 전 미약합니다. 훗날 기회가 닿는 데로 보충할 것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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