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nard Bernstein Overture "Candide" Ltd. (Limited Edition 2nd CD)
Simon Rattle / Berliner Philharmoniker (EMI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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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이먼 래틀 / 베를린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5번(위 재킷사진 참조) (Limited Edition)의 두번째 CD에 수록된 곡을 리뷰한 것입니다. 영상물과는 달리 음반으로 듣는 래틀의 말러 5번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말러도 한번쯤 진지하게 들어봐야겠습니다.
Leonard Bernstein ㅣ Overture "Candide"
번스타인의 캔디드 서곡을 듣노라면 언제나 없던 힘이 샘솟음을 느끼곤 하는데 래틀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절도있는 해석은 그 어떤 연주보다도 사람을 한껏 들뜨게 한다. 베를린필의 연주력은 두 말할 나위 없이 흠잡을 곳 없는 완전무결함 그 자체다. 물론 미국 오케스트라의 그것과는 또 다른 미묘한 느낌의 차이는 있지만 영국인이 운전하는 독일전차(사실 BPO는 다국적 조직체지만)는 어색하기 보단 새로운 날개를 단듯 유연하고 섬세하며 동시에 스릴감마저 준다. 나는 번스타인 자신의 독보적인 해석과 권위를 지닌 음반보다 이 연주가 훨씬 낫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시원스럽고 군더더기 하나없이 화끈하게 폭발하는 피날레는 정작 이들의 말러 5번에서는 느끼기 힘든 고농도의 쾌감이다. 저 푸른 창공을 멋지게 날아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들과 함께하시라!!
Antonin Dvorak ㅣ Slavonic Dances No.3 & 1
애초에 래틀에게서 슬라브적인 정서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점이 있기에('캔디드'와는 상황이 다르다) 이들의 슬라브 무곡은 깊고 애틋한 동유럽의 정서는 거의 느껴볼 수 없다. 물론 베를린필의 합주력을 앞세워 거침없이 질러대는 맛은 일품이긴 하지만 말이다. 조금만 두텁고 정갈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연주인데 그래서인지 감상자의 귀에 착착 감기는 맛은 다소 기대하기 힘들다.
Johannes Brahms ㅣ Hungarian Dance No.3
브람스의 헝가리무곡 3번은 래틀이 베를린필 취임연주회에서 말러 5번 연주가 끝나고 앵콜로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 영상물을 통해 봤던 그 느낌 그대로 3번만의 감각을 잘 살려냈는데 연주를 듣는 중에도 래틀 특유의 코믹한 리얼 표정들이 머리속에 떠올라 절로 미소짓게 된다. 그래서인지 자꾸 반복해서 듣게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Modest Mussorgsky (orch. Maurice Ravel) ㅣ The Great Gate of Kiev
비교적 최근에 나온 이들의 동곡 음반과는 또 다른 맛을 느껴볼 수 있는데 파워나 세련미로 따지자면 오히려 이 연주가 신작을 훨씬 더 앞선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런 스타일로 시종일관 질주하는 '전람회의 그림'이라면 당장에라도 구입하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다. 만남 초기엔 이토록 확고한 해석과 음향을 들려주었던 이들이 왜 요즘들어서는 그 색체가 점점 바래지고 있는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래틀이여, 베를린필이여, 다시 돌아가라! 이 시절로...
Erk Satie (orch. Claude Debussy) ㅣ Gymnopedie No.3
프랑스 음악 특유의 몽환적 감수성은 래틀과 상극을 이루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곡 자체를 지나치게 파리지앵적으로 해석하다보면 감상자의 입장에선 심리적 괴리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곡 자체가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상황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 연주 하나만 놓고 그런 앞선 판단을 한다는건 어불성설이지만 굳이 래틀임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아름답게 조탁된 이 연주는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맛보기성 연주치고는 그 흡입력이 너무 강해 문득 전곡을 듣고싶어지게 만드는 연주다.
Maurice Ravel ㅣ Ma Mere l`Oye (Mother Goose), The Fairy Garden
라벨의 어미거위 중 마지막 곡 '요정의 정원'은 전곡 '짐노페디'의 연상선상에서 곡을 대하는 그만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의미있는 선곡이다. 이 역시 전곡 음반을 반드시 사서 들어봐야겠다는 강한 의무감을 안겨줄 만큼 끌리는 연준데 래틀의 연주 스타일을 새삼 재확인함과 동시에 프랑스 음악에 대한 접근방식, 그리고 곡 특유의 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몽상가적 기질은 모든 지휘자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그만큼 남다른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뜻일텐데 자유분방함의 대명사 사이먼 래틀이기에 그에게 까다로운 정통성을 요구하지만 않는다면 어느 곡에서나 탁월한 적응력을 보여주는 그가 우리 시대에 있어 딱 맞는 스타일의 지휘자인 것만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어떤 면에선 서글픈 결론이지만 말이다.
Edward Elgar ㅣ Pomp and Circumstance March No.4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역시 그답게 엘가를 택했다. 위풍당당 행진곡 4번... 흔히 듣게되는 유명한 1번보다는 4번을 택한 센스가 남다르다. 게다가 래틀만의 스타일을 보다 엣지(edge)있게 표현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니 말이다. 생각보다 그들의 연주 스타일이 그리 영국적이지 않다는건 다소 의외지만 상당히 맛깔스럽게 연주된 것만은 분명하다. 베를린필도 어깨힘을 빼고 영국식 맛을 내기위해 나름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뒷맛까지 개운한 진수성찬을 즐겁고 배부르게 맛보고 나온듯한 흐뭇함이 절로 느껴진다. 래틀은 세계 최고의 베를린필을 자신의 수족으로 맞아들인 뿌듯함과 넘치는 기쁨을 아마도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지휘봉 하나로 세상을 손 안에 쥔 음악계의 적자(適子)니까...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