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홍석원-부산시립교향악단ㅣ말러 교향곡 8번
6.18(목) / 19:30
부산콘서트홀
소프라노/ 박소영 (죄 많은 여인)
소프라노/ 김은희 (참회하는 여인)
소프라노/ 박하나 (영광의 성모)
알토/ 정주연 (사마리아의 여인)
알토/ 양송미 (이집트의 마리아)
테너/ 이범주 (성모를 공경하는 박사)
바리톤/ 김종표 (법열의 신부)
베이스/ 송일도 (심연의 신부)
부산시립합창단
울산시립합창단
김해시립합창단
클래식부산합창단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
김해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 홍석원
연주/ 부산시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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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위로 이끈다
G. MahlerㅣSymphony No.8
Part I. Hymnus: Veni, Creator Spiritus
[1부] 찬가: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시여
Part II. Final Scene from Goethe's "Faust"
[2부] 괴테 "파우스트" 중 마지막 장면
참 오랜 시간 모질게 기다려온 공연이었다. 부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마냥 가볍진 않았지만 초입의 거대한 낙동강대교를 건너며 바라보는 풍경에 기분이 좋아졌다. 부산은 내게 알 수 없는 편안함과 기대를 안기는 도시다. 사랑하는 이곳에 다시 오니 행복함을 가눌 길이 없다.
공교롭게도 올해 두 번의 부산행은 모두 <말러 교향곡 8번> 관람이 목적이었다. 지난 1월, '낙동아트센터 개관 연주회'에 이어 오늘의 부산시향 공연에 이르기까지 5개월이란 시간은 숙련의 기간이었다. 그 사이 4월, 진솔-말러리안 오케스트라 '말러리안 시리즈 9'가 폭풍우처럼 지나갔으니 이 또한 잊을 수 없는 말러적 사건이다.
오늘 공연은 홍석원 지휘자의 부산시향 수석객원지휘자로서 마지막 연주이기도 했다. 그의 짧지만 강력했던 부산 시절이 대곡으로 마무리되는 건 의미가 크다. 누군가는 그의 이별을 대단히 아쉬워할 테고 또 누군가는 반길지도 모를 일이다. 음악계와 정치의 커넥션은 생각보다 깊고 단단하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앞서 문화예술계의 성공여부 기준은 결국 성과로 귀결된다. 홍석원 지휘자가 부산시향에서 이룬 전석 매진 행렬은 가히 압도적이었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질적 향상을 이뤘다. 이는 내가 직접 목격했던 지난 수차례의 공연을 통해 증명된 것이기도 하다. 그가 부산을 떠나 서울로 향한 것은 분명 환영할 일임과 동시에 부산 음악계, 시민에겐 가장 중요한 인재를 잃게 되는 충격적 사건이기도 하다. 부산 시민은 물론 그동안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이곳으로 향했던 수많은 애호가들이 더 이상 부산을 찾지 않게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나로선 도무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기에 이 안타까운 현실을 모두가 인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 애호가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해야만 했고 필연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부산을 다시 찾을 원동력을 상실한 슬픔과 탄식의 심정도 이렇게 고백해야 했다.
이제부터 오늘 공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련다. <말러 교향곡 8번>은 언급할 요소가 너무 많지만 그만큼 실연으로 만나는 일도, 무대에서 온전한 연주를 경험하기도 쉽지 않은 곡이다. 올해 경험했던 백진현-낙동아트센터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진솔-말러리안 오케스트라, 그리고 홍석원-부산시향 역시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여건이 갖춰진 부산콘서트홀, 그리고 상설 오케스트라의 강점이 조합된 오늘 공연은 연주력의 완성도 면에서나 앙상블의 조화, 무엇보다 파이프오르간이 사용돼 음향효과적 측면에서도 단연코 최고 수준의 연주였다고 자부한다. 지방에서, 그것도 부산에서만 총 3회의 공연이 이뤄졌다는 건 분명 대사건이면서 우리나라 말러 연주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Part I. Hymnus: Veni, Creator Spiritus
[1부] 찬가: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시여
강렬한 오르간 서주, 그리고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대규모 합창단의 음향적 향연은 그 자체로서 전율이었다. 다만 평소 부산콘서트홀 사운드의 명징하고 청명한 울림이 지나치게 건조한 형태로 발현돼 당혹감을 안겼다. 무대를 장악한 연주자들과 전석 매진이란 연주환경은 콘서트홀의 강점을 상쇄시킨 주된 원인이었다. 홍석원은 꼼꼼하고 강직한 프레이징과 극적 진폭 대비를 통해 장쾌한 충격을 주는 가학적이면서도 이성적인 흐름으로 일관했다. 이 상극의 요소를 하나의 틀에 가두는 작업은 보통 파괴적 결과를 안기기도 하지만 강력한 지휘자의 명석한 설계는 이 복잡하고 거대한 작품에 단정한 통일성을 부여해 관객들에게 최선의 결과로 부합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성악진은 실력 편차가 느껴졌지만 매 순간 서로 무난한 조화를 이뤘고 특히 소프라노 박소영, 김은희, 테너 이범주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홍석원의 '강력한 통제력'은 오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거대 앙상블의 난국을 헤쳐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지휘자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음악적 역량이다. 그간 목격한 홍석원-부산시향의 말러(2, 3, 8번) 모두가 예외 없이 동일한 흐름을 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최대 장기인 쇼스타코비치나 시벨리우스 또한 그렇다. 유독 말러에서 큰 약점을 보였던 그이지만 오늘만큼은 절제된, 명징한 지휘로 큰 실수 없이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선보인 건 그의 음악적인 확신에서 비롯된다.
Part II. Final Scene from Goethe's "Faust"
[2부] 괴테 "파우스트" 중 마지막 장면
1부보다 2부의 드라마틱한 대비와 아름다운 선율미를 훨씬 선호하는데 오늘 홍석원은 극단의 템포 조절을 통해 작품의 대비감을 완벽히 형상화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위험한 시도였지만 개인적으론 취향을 저격하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현악사중주를 이루는 각 현악 수석들의 앙상블 조화도 일품이었고 솔로 파트도 훌륭했다. 합창단의 장엄한 음향도 잊을 수 없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 오케스트라와 이루는 화학반응은 말러에 대한 경외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어린이 합창단 속성상 불가항력의 음향 공백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만 하는 부분이었다. 현실적으로 이 곡을 완벽하게 재현할 방법과 적합한 공간을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곳 부산콘서트홀 역시 객석이 가득 찰 때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을 오늘 이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찰을 이루며 한계에 봉착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오늘의 훌륭한 연주에도 불구하고 최적의 순간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경험과 실패를 반복해야 하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Das Wichtigste in der Musik steht nicht in den Noten." - Gustav Mahler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보 속의 음표에 있지 않다."는 말러의 말처럼 음악은 단지 음표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증거 한다. 이는 지휘자, 연주자의 상상력, 미세한 힘과 감성, 그리고 디테일이 결합해 창조되는 새로운 세계가 바로 음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말이다. 단순히 실수하지 않고 악보의 모든 음표를 정직하게 구사하는 행위만으로는 음악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통찰을 우린 말러를 통해 다시 깨닫는다.
영광의 성모, 소프라노 박하나의 등장도 반가웠다. 2004년 11월 28일, SNU심포니오케스트라와 <말러 교향곡 4번>을 협연했던 그녀와의 첫 만남이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의 조우를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합창석 우측 상단에 등장한 영광의 성모는 성량이 다소 약해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고혹적인 목소리는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피날레의 강력한 폭주는 악상의 대비감을 입체적으로 승화한 지휘자의 노련한 해석적 접근법 덕분에 더욱 뜨겁게 귓가를 울렸다. 인간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오롯이 오케스트라만의 총주가 콘서트홀을 장악한다. 실로 압도적인 사운드가 모든 관객들에게 내리 꽂히는 경험, 그 실체적인 충격은 말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통렬한 쾌감이 아닐까 싶다. 이는 단순한 소리의 폭발이 아니라 영혼 깊숙한 곳을 울리는 최대, 최상의 엑스터시다.
거대한 총주(Tutti)로 연주가 종료되고 객석을 향해 돌아선 홍석원 지휘자의 표정은 제법 담담했다. 분명 만감이 교차했을 테다. 후련했을지 아쉬웠을지 알 순 없다. 다만 그가 부산땅에 남긴 족적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뜨겁게 찬사 받아 마땅하다. 그는 아픈 기억이 있는 부산으로 변함없이 날 향하게 했고 그런 부산을 가슴 깊이 사랑하게 만든 존재이기 때문이다. 홍석원과 부산시향의 동행은 여기서 멈췄지만 그를 이어 좋은 지휘자가 선임돼 부산시향의 위상을 한층 더 위로 이끌어주길 간절히 원한다. 그리하여 내가 다시 부산으로 향할 수 있도록 이정표가 되어주길 바란다. 나의 부산 사랑은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