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
법과 국가와 양심과 사실과 가치의 경계에 선 실존
(이 글은 영화의 이야기를 일부 포함하지만 스포일러 수준의 완전한 결말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참고바랍니다)
케이트(에밀리 브런트)는 FBI소속의 요원이다. 그녀는 마약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최대규모의 조직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특별작전 팀에 들어가는데 이 팀의 총 책임자는 CIA 소속의 맷(조슈 브롤린)이고 그와 함께 마약 조직의 특별 자문책이라는 이름으로 멕시코의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가 수수께끼의 인물로 합류한다. 이 스페셜 작전 팀은 멕시코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후아레즈와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 지역을 배경으로 마약 조직 카르텔을 섬멸하기 위한 작전을 전개한다. 겉으로 드러난 목표는 조직 카르텔의 섬멸이지만 팀에 합류한 세 명의 인물이 각기 다른 소속에서 왔으므로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점점 드러나게 되면서 갈등과 긴장이 증폭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한국도 이 문제에서 점점 예외지역이 아니게 되어 가지만 북미, 남미를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마약 문제는 조직범죄, 강도살인 등의 사회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심각한 여러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이 소재는 범죄 느와르 장르와 맞물려 기존 할리우드에서 남의 문제가 아니기도 하므로 다양한 형태의 소재와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온 것은 자연스런 일에 가까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재의 심각성이 작품성의 뛰어남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할리우드에서는 예전의 범죄 느와르의 걸작으로 볼 수 있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3부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 본다면 풍부하고 다양하게 나왔음에도 대부분의 영화들은 범죄와 액션의 가시적인 효과나 물량적 외형에 가까운 형태가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드니 빌뇌브 감독은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통해 액션을 위한 액션, 킬링 타임용의 긴장이나 범죄 활극의 시선을 가볍게 벗어난다. 그에게 있어서 마약 범죄는 아메리카 대륙의 심각한 범죄소재에서 사회문제, 국가문제, 가치관과 정의의 문제까지 건드리는 소재의 출발일 뿐이다.
영화의 기본적인 시선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형태이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케이트의 관찰자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케이트는 특수 범죄 작전에 투입되고는 하는 유능한 FBI 요원이지만 이 스페셜 작전에는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지휘 요원 두 명의 아우라가 케이트로 하여금 위축되게 할 정도이며 심지어는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관찰자의 시선에서 들러리의 시선(?)에 가까운 역할로 인해 갈등이 증폭된다. 케이트가 맷과 알레한드로, 이 두 명의 베테랑에 대해 그나마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것은 양심 혹은 합법적인 활동을 가급적 지키려는 모범 요원(!)으로서의 이미지 역할이다. 그러나 이것을 지키기 위한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다. 이 스페셜 작전 팀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 지역을 넘나들며 합법과 비합법을 넘나들며 양심과 행동의 경계를 넘나든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의 합법을 가장하되 그것이 통하지 않는 지역은 그나마 무용지물일 뿐이다.
이 스페셜 팀에 합류한 3명의 주요 인물은 각자의 목표가 있기도 하지만 조직에서 요구한 목표치도 있다. 또한 이들에게 있어서 이 작전은 도덕과 가치의 준수라기 보다는 결과치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게임에 가깝다. 그들은 작전이 끝나면 각자의 위치로 돌아갈 것이고 그 결과의 실적에 따라 자신의 지위 또한 변화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양심의 수호와 합법의 가치는 저 멀리 떨어진 등대의 희미한 불빛과도 같아서 가고 싶어도 가기 힘들거나 너무 먼 잣대이다. 그들은 이것 이전에 자신부터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 게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존재이다. 그들이 각자 도달한 지점은 상처뿐인 영광의 훈장일까, 어찌 되었든 자신만은 살아남아 있다는 그나마의 안도감일까.
드니 빌뇌브 감독은 개인과 조직과 문화가 충돌하는 갈등과 긴장의 상황을 기본적인 무게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현실적인 입장에서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기존 범죄 액션 활극에서 필요 이상으로 혹은 오락적인 요소로 가득 차서 보여주는 장면들은 거의 배제한 채 사실적이고도 다큐적인 시선으로 관객들을 실감나는 관전자로 참여시키고 있다.
지엽적이고 단말마적인 소재로 쓰일 개연성이 충분하고도 남을 이 영화의 시선과 영상을 이렇게 실감나는 인간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역량은 로저 디킨스의 무게중심을 잃지 않는 카메라에도 힘있은 바 클 것이다. 또한 조한 조한슨의 음악은 영상과 긴밀한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의 흐름을 긴장과 무게로 이끌어 간다. 이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마지막까지 올라갈 데까지 나는 그의 음악을 듣느라 자리를 뜰 수 없었다.
CIA로부터 온 총 책임자의 역할로 능수능란한 베테랑의 이미지를 보여준 조슈 브롤린의 역할이나 FBI요원으로 가능한 한 자신의 임무와 합법의 범위에서 일을 하려는, 그러나 새로운 팀의 합류에 많은 것이 의문점과 불안함 이 교차되는 역할을 보여준 에밀리 브런트의 역할도 이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이 두 역할의 매력을 넘어서는 베네치오 델 토로는 이 영화가 화룡정점을 찍기 위한 필수적인 출연으로 보인다. 그의 개성과 알 수 없는 끝모를 심연의 표현 연기는 이 영화가 범죄 느와르나 액션의 한 영화로 남지 않고 인생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여주는 데에 일조를 했을 것이다. 고독한 존재이자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 적도 친구도 없는 백척간두의 위치에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 존재는 처한 위치만 다를지언정 실존의 입장에서 항상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입장과 교차하는 범위에 서 있다.
<그을린 사랑>으로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던 드니 빌뇌브 감독은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통해 그의 작가의식의 시효가 짧지 않고 오래될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헐리우드류의 오락 범죄 액션 활극이 범람하는 영화계에서 그의 영화는 이 소재에 친숙하지 않더라도 삶의 이야기, 인간의 이야기, 문화 충돌의 이야기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 하다. 영화와 거대 자본은 현재 시점에서 뗄레야 뗄수 없는 수준의 커넥션으로 작용하지만 자본을 이용하되 그것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이런 작가주의적 영화가 나온다는 것은 다행일 것이다. 하긴 자본이 작가주의자들에게 전혀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면 영화는 예술로서의 위치를 포기하는 셈이니, 그것은 모두가 바라는 바가 아닐 터이니.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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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율리시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12.22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겁니다. 범죄 액션 느와르의 장르에 한정시키기에도 미안해 보일 정도로 훌륭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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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산유화 작성시간 15.12.24 드디어 광주에서도 상영합니다.^^ 두서없이 쓰신 후기가 이렇게 훌륭하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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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pure 작성시간 15.12.24 오우~잘되셨네요.이번에도 쟁취하신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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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산유화 작성시간 15.12.24 이번에는 저는 아닙니당. ㅋㅋ
그런데, 하루에 단 2회 아침 8시, 심야 27시에 상영합니다 ㅠㅠ -
작성자pure 작성시간 15.12.24 베네치오 델 토르가 내년에 제작될 스타워즈 에피소드8에 출연한다고 하네요~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