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늘 한 가지를 걱정하신다.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아 있는 자식들이
서로 의좋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삿날이 되면
조상님들은 음식을 드시러 오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러 오신다는 생각이 든다.
정성껏 차린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사가 끝난 뒤의 모습이다.
서로 웃으며 안부를 묻고,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모님과 조상님들은 큰 기쁨을 느끼실 것이다.
진정한 대화는 지난 일을 내려놓을 때 시작된다.
어제의 서운함과 오래된 갈등을 꺼내기 시작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오늘 만난 사람과는
오늘부터 다시 인연을 만들어 가야 한다.
어제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지나간 이야기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부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며 과오와 모순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 환경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결과를 원망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오늘부터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연은 참으로 공평하다.
잘못을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도 함께 준다.
과오를 갚아 나가며 성장할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해 준 것이다.
지나간 것을 붙잡고 좋아지는 법칙은 없다.
변화는 언제나 오늘부터 시작된다.
실타래도 처음부터 엉켜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씩 꼬이며 엉킨 것이기에 하나씩 풀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다.
어려움 또한
처음부터 크게 오는 것이 아니다.
작은 문제를 방치한 결과가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 것뿐이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보라.
소나무는 바위를 원망하지 않는다.
바위가 내어준 작은 틈을 의지해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성장할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위를 보지 않고,
그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소나무의 위대함을 바라본다.
우리 삶의 모순도 마찬가지다.
모순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기 위해 주어진 환경일 수 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원망은 감사로 바뀌고,
시련은 내일의 전설이 된다.
결국 가장 빠른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붙들고 후회하는 길도 아니고,
남을 탓하며 돌아가는 길도 아니다.
오늘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부터 바르게 살아가는 길이다.
지금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6년 6월 8일사회 연구원 김수길
매일 만나도 인사를 주고받는다.
어제는
오늘을 만들어낸 환경이라
오늘부터 다시 시작해 달라는 부탁의 말씀이다.
정법강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