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한바탕 소란스러웠다.
저 멀리서 장사하시던 아저씨와 지나가던 손님이
몸다툼 직전까지 갈 만큼 크게 언성을 높였다.
거친 욕설이 오갔고,
주변 사람들이 겨우 말리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되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의외로 시작은 단순했다.
휴대폰을 보고 있던 상인에게
술에 취한 손님이 지나가며 혼잣말로
"장사는 안 하고 휴대폰만 보고 있네." 하고 한마디를 던진 것이다.
그 순간 오늘따라
손님도 없고 답답했던 마음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상인은 그동안 쌓여 있던 불만을 모두 쏟아냈다.
자신을 간섭한다는 이유였다.
사람들은
"별일이 다 있다.",
"오늘 일진이 안 좋네." 하며 지나갔고
시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이 정말 오늘 하루의 문제일까?
얼마 전에도 그 상인은 장사하러 나온 사람과 다툰 적이 있었다.
하루에 얼마를 번다고
그렇게 많은 장세를 받느냐며 언쟁이 있었고,
그때도 결론은 같았다.
"하기 싫으면 안 오면 되지."
그리고 역시 "오늘 일진이 안 좋다."는 말로 끝났다.
우리는 흔히 모든 일을
그날의 운이나 우연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병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고,
사고도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원인들이 쌓이고 쌓여 차례로 드러날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만 커질 뿐이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술에 취한 노인의 말만 보고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분은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나며
상인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일 수도 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을 보아 왔기에
나온 한마디일 수도 있다.
그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안에 담긴 뜻을 한 번쯤 돌아본다면 어떨까.
만약 그것이 나를 돌아보라는 신호인데도 무시해 버린다면,
다음에 오는 환경은 더 강한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
같은 문제를 이해할 때까지
환경은 다른 형태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진행형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보고 듣는 수많은 일들은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중 일부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바라보며
나를 돌아보는가,
아니면 남을 탓하는가에 있다.
요즘 나 자신도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래서 그날 시장의 소란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저 환경을 통해
나를 살펴볼 것인가,
아니면 남의 잘못만 이야기할 것인가는
결국 자신의 인성 수준과 성찰의 깊이에 달려 있다.
알게 되면 멈출 수 있다.
그러나 모르고 지나치면
같은 문제는 진행형으로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삶은 끊임없는 연구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남의 환경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의 환경 속에서 또 다른 배움을 찾는 것.
그것이 성장의 시작이다.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6년 6월 13일사회 연구원 김수길
우리는
늘 어려움이 다가오면
어제 오늘 일들이 아니었다고 말을 한다.
지금 월드컵이 열리고
모든 나라를 소개를 한다.
이렇때 그 나라에 대해서
한번 정리해 놓는다면
보고 들리는 환경들이 다르게 보인다.
정법강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