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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과 축원

작성자김수길|작성시간26.06.22|조회수16 목록 댓글 0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산을 바라보고,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어왔다.

바위 앞에 서서 간절함을 말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성을 잘 나타내는 말이 전해진다.

외상이면 소도 먼저 잡아먹고 시작한다.

먼저 일을 벌이고

어떻게든 해결해 가는 방식이다.

결국 이것은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움직이고,

현실은 나중에 따라오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소원을 먼저 빈다.

소원은

대부분 내 입장에서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때 한가지는 알고 빌어야 한다.

이루고자 하는 소원도 들어있지만

갚아야 할 빚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그 소원은 실제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자녀는 성장하고 시대도 바뀌었는데,

부모의 생각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대화가 끊기기 시작한다.

부모는 바라는 마음에 머물고,

자녀는 현실 속 경험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단순한 소원이 관계를 이어주지 못한다.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간격이 생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하면,

부모가 멈추어 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살아가는 시대를 살고,

부모가 살아 온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소원은 이루는 자식을 따라서 부모도 같이 성장해야 한다.

신문을 보고, 사회를 이해하고, 변화하는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자녀와 대화가 되는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중요한 순간에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사라지고

가족 안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고,

자녀들과 남편은 

다른 어른이나 외부의 기준을 찾게 된다.

과거는

 소원이라는 개인의 바람을 비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축원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축원이란 단순히 이루어지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나와 우리 사회가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달라

의식적인 요청이다.

 

개인의 욕심을 넘어서

가정과 사회, 나라와 인류까지 포함한 방향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비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함께 이해하고

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식인은

개인의 소원을 대신 비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길을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역할이 생길 때 비로소

사람은 단순히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하고 책임지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는 더 이상 작은 소원에 묶이지 않는다.

같이 연구해 보아야 한다.

2026622일사회 연구원 김수길

 

나를 위해서 기도하면 소원이 되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면 축원이 된다.

인류를 위해서 축원하면

우리는 인류의

존경받는 민족으로 거듭난다.

정법강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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