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31 지혜의 근본 시 111; 신 18:15-20; 고전 8:1-13; 막 1:21-28
나무꾼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한 가난한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를 베다가 그만 도끼가 물에 빠져 버렸습니다. 망연자실한 가운데 물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납니다. 산신령은 금도끼를 보이며 “이 도끼가 네 도끼냐”, “아닙니다” 다시 물속에 들어갔다 은도끼를 가지고 나오면서 “이 도끼가 네 도끼냐”, “아닙니다. 제 도끼는 낡은 쇠도끼입니다” 그러자 산신령은 금은 도끼를 모두 주면서 욕심 없고 거짓 없는 착한 마음에 감동 받아서 모든 도끼를 다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은 욕심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와 유사한 내용이 성서에도 나옵니다. 지혜의 왕이라 불리는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의 재판으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엄마가 한 아기를 데려와서 서로 자기 아들이라 우기며 재판을 요구합니다. 솔로몬은 칼로 아기를 반 잘라서 나눠주라고 합니다. 가짜 엄마는 좋다고 했지만, 진짜 엄마는 차라리 가짜에게 주어서 아기를 살게 해달라고 합니다. 칼로 아기를 반 자르라, 아찔합니다만 진짜 엄마라면 아기를 살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솔로몬 재판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 지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된 배경으로 가보면, 성전건축으로 감동 받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무엇이든 구한다면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때 솔로몬은 맡겨주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지혜를 요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부도 명예도 구하지 않고 백성을 위해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에게 지혜는 물론이거니와 구하지 않은 부와 명예까지 모든 것을 다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도 결론은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을 위하라는 데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철저히 타자를 위한 하나님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생자를 주시고 죽기까지 한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입니다.
시편본문 10절은 말하기를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바른 깨달음을 얻으니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할 일”이라고 합니다. 지혜의 근본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실천이 따릅니다. 그 실천으로 바른 깨달음을 얻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주님을 경외하면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면서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머리로만 안다는 것으로 곧, 지식은 쌓일지 모르지만,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는 삶을 헤쳐나가는 이치쯤으로 해석할 때, 세상은 그런 자를 고리타분한 사람, 문자 주의, 근본주의, 혹은 꽉 막힌 사람으로 부를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판단으로 다른 사람을 재단할 것입니다.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한 바리새인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주객이 바뀐 사람으로, 하나님 위에 선 사람 혹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혹자는 자기 권위를 위해, “하나님 까불면 죽어”라고 합니다. 혹자는 코로나로 죽는 것을 순교라며 모임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복음서 본문은 예수의 가르침을 보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가운데,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고 그 악귀를 쫓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하는 말은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 덧붙이면 그 권위는 율법학자들과 달랐다고 합니다. 예수의 가르침과 율법학자의 가르침이 다르다고 하는데 그 배경이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느꼈을까요? 실천에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전에도 수많은 예수의 행동은 율법학자와 비교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늘 가난한 자와 함께 하였고, 소외자와 함께하였고, 세리와 창녀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치장하지 않고, 검소하였습니다. “공중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고, 여우도 굴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반대로 율법학자들은 겉으로는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치장하고, 윗자리를 좋아하고, 인사받기를 좋아했습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금식하고 헌금했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권력자들과 함께할 때가 많았습니다. 똑같은 가르침, 똑같은 말을 하는데 청중이 듣기에 어떤 사람의 말이 권위가 있을까요? 더욱이 안식일 악한 귀신에 걸린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관심 갖는 것조차 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 사람을 살렸습니다. 온몸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였습니다. 그 권위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르침인 것입니다. 새로운 권위의 가르침은 곧 실천에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본문에 바울은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먹어도 된다, 어떤 사람은 먹으면 죄가 된다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유일한 신이기에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정리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논쟁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으로 재해석합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형제자매가 상처를 받는다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머리에 머문 지식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죽음으로 내몰린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이웃을 그리스도로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를 하나님처럼 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높이지만, 밖에서는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통의 현장으로 내몰리는 것을 보면서도 외면하거나, 심지어 가해자가 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높인다고 합니다. 행함 없이 입으로만 가르치는 율법학자 같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바른 깨달음을 얻습니다. 머리에만 머문 지식이 아니라 온몸으로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길 두 손 모읍니다. 이웃에게서, 형제자매에게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막 대할 수 있을까요?
함께 시편 본문을 읽으며 기도하겠습니다.
시 111
1 2)할렐루야. 내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정직한 사람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
2 주께서 하시는 일들은 참으로 훌륭하시니, 그 일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 일을 깊이 연구하는구나.
3 주님이 하신 일은 장엄하고 영광스러우며, 주의 의로우심은 영원하다.
4 그 하신 기이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기억하게 하셨으니, 주님은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다.
5 주님은, 당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먹을거리를 주시고, 당신이 맺으신 언약은 영원토록 기억하신다.
6 당신의 백성에게 하신 일, 곧 뭇 민족의 유산을 그들에게 주신 일로 당신의 능력을 알리셨다.
7 손수 하신 일들은 진실하고 공의로우며, 주님이 지시하신 법은 모두 믿을 수 있다.
8 그 일들은 영원토록 흔들리는 일이 없으니, 진실과 정직으로 제정되었다.
9 당신의 백성에게 구원의 속량을 베푸시고 그 언약을 영원히 지키도록 명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고 두렵다.
10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바른 깨달음을 얻으니,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할 일이다.
신 18:15-20
15 주 너희의 하나님은 너희의 동족 가운데서 나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세워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16 이것은 너희가 호렙 산에서 총회를 가진 날에 주 너희의 하나님께 청한 일이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기를 '주 우리 하나님의 소리를 다시는 듣지 않게 하여 주시며, 무서운 큰 불도 보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17 그 때에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한 말이 옳다.
18 나는 그들의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세워,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는, 내가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다 일러줄 것이다.
19 그가 내 이름으로 말할 때에,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벌을 줄 것이다.
20 또 내가 말하라고 하지 않은 것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셨다.
고전 8:1-13
1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압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 주십니다.
4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을 두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습니다.
5 남들은 신도 많고 주도 많다고 하고, 이른바 신이라는 것들이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다고 하지만,
6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생겼고,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또한 한 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7 그러나 누구에게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상을 섬기는 습관에 젖어 있어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을 때에는 자기들이 먹는 고기가 참으로 우상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양심이 약하므로, 그 음식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더러워졌다고 생각합니다.
8 그러나 1)"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될 것도 없고, 먹는다고 해서 이로울 것도 없습니다.
9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0 어떤 약한 사람이, 지식을 가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는 것을 보면,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그를 본떠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11 그러면 그 약한 신도는 2)여러분의 지식 때문에 망합니다. 그리스도는 그 약한 신도를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12 이렇게 여러분이 3)형제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음식이 나의 3)형제자매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면, 나는 4)그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막 1:21-28
21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들어갔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곧바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의 가르치심에 놀랐다.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그 때에 회당에 13)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24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25 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하셨다.
26 그러자 악한 귀신은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서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27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이게 어찌된 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그가 악한 귀신들에게 명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면서 서로 물었다.
28 그리하여 예수의 소문이 곧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