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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여백

꼰대 선언

작성자탄감자샘|작성시간26.06.11|조회수20 목록 댓글 0

꼰대 선언

 

                                       송춘길

 

 

장남으로 태어났다. 삼십 년 넘게 선생으로 살았다. 퇴직하여 따박따박 연금 받으며 조용히 살려 했다. 건강 챙기며 가늘고 길게 똥 싸려 했다. 더 이상 꼰대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꼰대로 살만큼 살았으니, 선비처럼 살든가, 스님처럼 살든가, 나는 자연인이다 그렇게 살기로 했다. 어쨌든 오륙 년 치매 모친 돌보며 입 다물고 살아 봤다.

 

오늘 나는 다시, 꼰대로 살기로 선언한다. 단 자식이나 마누라, 혹은 친구나 지인에게는 꼰대질 하지 않겠다고 공약한다. 정치 문제나 종교, 삶의 가치나 역사에 대해서도 꼰대질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꼰대질은 끝내 싸움질 되기 쉽고, 이런 꼰대질로 사람이 바뀌진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대신 힘 있는 자, 권력 있는 자, 돈으로 사람 무시하고 조롱하는 자, 정의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자, 그런 자들에게 내 주특기 발휘하여 적극 꼰대질 하겠노라 선언한다. 경찰서나 관공서 같은 곳에 고발이나 신고하기, 민원제기나 정책 제안 같은 공식적 꼰대 활동에 매진하겠다고 공약한다. 법이나 규정을 무기로, 논리와 근거를 총알로, 꼰대질 하겠노라 다짐한다.

 

하는 일 없고 시간 많아 올레길 걷고, 사람 사는 모습 찬찬히 살피며 다니다보니, 정말 입이 근질근질 못 살겠더라. 허파 뒤집어져서 못 살겠더라. 그 추잡한 저의와 속셈 뻔히 보이는 인간들 보니 역겹더라. 모른 척 그냥 지나가기에는 도저히 못 참겠더라. 차라리 쓴소리 하고, 따지고, 목청 높이는 편이 훨 낫겠더라.

 

그래서 나는 오늘 다시, 꼰대로 살겠노라고 선언한다. 동문시장에서 관덕정으로, 칠성통에서 산지천으로 싸돌아다니고, 서부두 사라봉도 둘러보겠다. 골목골목 휘저으며 뭐 지적질 할 거 없나, 쓴소리할 거 없나, 청소할 거 없나, 살피려 한다. 국민신문고에도 올리고, 민원게시판에도 올리고, 언론사에도 제보하려 한다. 노년을 이렇게 다시 꼰대로 살려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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