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증(反證)' 알레르기 겪는 교열자가 많을 것이다. '반증'은 '반대되는 증거'라는 뜻이므로 '그 현상을 입증할 만한 주변 증거'라는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다는 주장. 이럴 때는 '방증'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 교열계의 일반 논리다.
이를 뒤집을 만한 근거가 두 개 있다.
첫째는 '방증'의 쓰임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교열자는 흔히 '~임을 반증한다'를 '~임을 방증한다'로 고치는데, 이게 문제다.
'방증'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표준대사전, 연세대사전 두 곳 모두(다른 사전은 없어서 모르겠음) '방증하다'꼴은 나와 있지 않다. 즉 '방증'은 '-하다'가 붙을 수 없는 명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증하다'를 '방증하다'로 고쳐야 한다는 말은 일단 어불성설일 확률이 무쟈게 높다.
둘째, 사람들이 '반증(反證)'의 뜻을 비교적 좁게 해석하는 데서 오는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자어 '反'의 일차적 뜻(=반대)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표준대사전도 마찬가지여서 더욱 안타깝다. 표준대사전은 '반대 되는 증거', '어떤 사실과 모순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것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는 사실' 등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를 보자면 '反'의 뜻을 '반대, 逆(證)' 등으로 한정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연세사전의 아래 '반증'에 대한 풀이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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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어떤 주장에 대해 반대되는 입장을 명확한 증거를 들어 증명하는 것, 또는 그러한 증거.
¶그들은 대부분 이기적이라는 지적에 발끈할 것이고, 더러는 적극적으로 어떤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음을 반증으로 내세울 것이다.
② 반영하여 나타내는 것.
¶당신이 불안해하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해서 떳떳하지 못하다는 반증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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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번을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서 '反은 반대나 반역이란 뜻이 아니다. '반영하다'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反'의 뜻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중 '도리어'라는 뜻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반복, 반성 등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반증도 '반대'보다는 '도리어'라는 뜻이 더 강하게 적용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연세사전은 ②번 항목을 통해 우리가 그토록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반증'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 주었다. 연세사전의 결론은? 써도 좋다는 것이다. 얼마나 통쾌한지!
내가 제일 꺼리는 게 있다. '방증하다'이다. 나는 언젠가 '반증하다'를 대했을 때, 워낙 주변 교열자들이 그 단어를 싫어하므로 '방증하다'로 고쳐봐 준 일이 있다. 그리곤 해당 글을 한번 더 읽어보았다가 내 컴퓨터 키보드를 부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요즘은 펜을 부러뜨리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글을 모르고, 우리말을 모르는 사람의 글고치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눈치 보다가 '입증'으로 고쳤다. 지금은, 떳떳하게 '반증'을 사용한다.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전통 교열계의 안티맨이라는 것을 반증이라도 하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