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우리는 흔히 “어떻게 왔어?” 하고 묻는다. ‘어떻게’라는 말의 뜻에 충실히 해석을 하면 어떤 방법으로 왔느냐는 말이다. 그러니까 승용차를 타고 왔는지 버스를 타고 왔는지 묻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실제 뜻은 여기까지 온 용무를 묻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일로 왔어?”라고 묻는다면 상대방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런 식의 말투에는 여기에 온 저의가 무엇이냐 하는 뜻이 은연중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낱말의 의미만 따져 말을 만들면 분명히 우리말이지만 어쩐지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없이 삭막한 의미만 굴러다니는 듯하다. 이것은 말이란 그 말을 사용해 온 특정 집단의 언어 관습에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일전에 어느 영어 교재 광고에서 재미있는 걸 읽은 적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 영어를 배울 때 맨 처음 나오는 말이 ‘I am a boy'와 'You are a girl'이지만, 정작 영어권에는 이런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영문법에는 조금도 위배됨이 없는 정확한 문장이지만 그들은 이런 말을 쓰는 일이 없으니 우리가 헛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도 마찬가지인 성싶다. ‘나는 소년이다’ 또는 ‘너는 소녀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내가 ‘나는 사내다’라고 떠들고 다니거나 여자에게 ‘당신은 여자냐’고 묻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1. 이건 아버지 사진이다.
2. 이건 아버지를 찍은 사진이다.
3. 이건 아버지가 찍힌 사진이다.
위에서 어떤 말이라도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2와 3은 우리가 쓰지 않는 말이다. 우리의 언어 대중으로부터 생명을 얻지 못한 말이므로 개념만 있지 쓰이지 않는 말이다.
근래에는 하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니,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이런 생명이 없는 말들을 마구 생산해 내고 있다.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외국어를 옮길 때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할 때에도 이런 이상한 말투가 튀어나오게 된다. 이런 형상은 언어 공해라 할 만하다.
'I have three pencils.'를 우리말로 옮기라고 하면 백이면 백 ‘나는 세 자루의 연필을 가졌다’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연필 세 자루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런 우리말이다. ‘세 자루의 연필’과 같은 표현법은 ‘아버지를 찍은 사진’과 같이 우리말다운 표현법이 아니다. ‘다섯 말의 쌀, 다섯 자루의 연필, 다섯 개의 사과’라고 하지 않고 ‘쌀 다섯 말, 연필 다섯 자루, 사과 다섯 개’라고 하는 것이 우리말이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데도, 자꾸만 ‘왜냐하면’이라는 부사를 발어사처럼 쓰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because'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말은 뜻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까지 실어 나른다. 분명히 우리말이기는 한데, 우리말 같지 않은 말, 우리 정서는 증발해 버리고 개념만 남은 말이 횡행할 때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삭막하지 않겠는가.
<우제욱, ‘잘못쓴 우리 말글 90가지-삐삐와 깜박이(삶과꿈刊)’에서 퍼왔습니다. 우제욱님은 이곳 말글사랑방 두 번째 회원님이신데, 요즘 통 안 들어오셔서, 이유를 여쭤봤더니 우연히 가입은 했는데 가입 이후로는 까페 접속 방법을 몰라서 들어가고 싶어도 못 가신다고요. 48년생이시니 이해할 만합니다.>
일전에 어느 영어 교재 광고에서 재미있는 걸 읽은 적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 영어를 배울 때 맨 처음 나오는 말이 ‘I am a boy'와 'You are a girl'이지만, 정작 영어권에는 이런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영문법에는 조금도 위배됨이 없는 정확한 문장이지만 그들은 이런 말을 쓰는 일이 없으니 우리가 헛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도 마찬가지인 성싶다. ‘나는 소년이다’ 또는 ‘너는 소녀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내가 ‘나는 사내다’라고 떠들고 다니거나 여자에게 ‘당신은 여자냐’고 묻는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1. 이건 아버지 사진이다.
2. 이건 아버지를 찍은 사진이다.
3. 이건 아버지가 찍힌 사진이다.
위에서 어떤 말이라도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2와 3은 우리가 쓰지 않는 말이다. 우리의 언어 대중으로부터 생명을 얻지 못한 말이므로 개념만 있지 쓰이지 않는 말이다.
근래에는 하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니,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이런 생명이 없는 말들을 마구 생산해 내고 있다.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외국어를 옮길 때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할 때에도 이런 이상한 말투가 튀어나오게 된다. 이런 형상은 언어 공해라 할 만하다.
'I have three pencils.'를 우리말로 옮기라고 하면 백이면 백 ‘나는 세 자루의 연필을 가졌다’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연필 세 자루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런 우리말이다. ‘세 자루의 연필’과 같은 표현법은 ‘아버지를 찍은 사진’과 같이 우리말다운 표현법이 아니다. ‘다섯 말의 쌀, 다섯 자루의 연필, 다섯 개의 사과’라고 하지 않고 ‘쌀 다섯 말, 연필 다섯 자루, 사과 다섯 개’라고 하는 것이 우리말이다.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데도, 자꾸만 ‘왜냐하면’이라는 부사를 발어사처럼 쓰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because'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말은 뜻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까지 실어 나른다. 분명히 우리말이기는 한데, 우리말 같지 않은 말, 우리 정서는 증발해 버리고 개념만 남은 말이 횡행할 때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삭막하지 않겠는가.
<우제욱, ‘잘못쓴 우리 말글 90가지-삐삐와 깜박이(삶과꿈刊)’에서 퍼왔습니다. 우제욱님은 이곳 말글사랑방 두 번째 회원님이신데, 요즘 통 안 들어오셔서, 이유를 여쭤봤더니 우연히 가입은 했는데 가입 이후로는 까페 접속 방법을 몰라서 들어가고 싶어도 못 가신다고요. 48년생이시니 이해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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