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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말

Re:생사여탈권인가 생살여탈권인가

작성자개방당주|작성시간04.10.18|조회수563 목록 댓글 1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말그리님의 취지는 ‘생사여탈’과 ‘생살여탈’을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로 단정하지 말고 함께 쓰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직관(直觀)과 느낌을 근거로 하여, 어떤 낱말에 대한 판단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출발하지요.


평소 ‘생사여탈권’이 맞는 줄로만 알았다고 하신 것으로 보아 말그리님은 ‘생사’가 ‘여탈’의 목적어가 되어 있는 구조로 보아 오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와 달리 저는 기본적으로 ‘생살여탈권’을 ‘생살권’과 ‘여탈권’이 합쳐진 말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 고전과 한문 전적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어 잘 모릅니다만, 말그리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생사여탈(살고 죽는 것과 주고 빼앗는 것)과 생살여탈(1. 살리고 죽이는 일과 주고 빼앗는 일. 2.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마음대로 쥐고 흔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다 함께 올라 있습니다.


<<생살여탈은 여탈생살이라고도 합니다. 여탈생살이 생살여탈보다 먼저 나온 말이지요. 중국 고사성어 대전에서 여탈생살이란 성어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周禮’라는 책의 ‘天官, 大宰’ 편에 ‘八柄中有 與, 奪, 生, 誅 等權力’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로부터 여탈생살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제왕이 장악한 상벌생사의 대권이다.」 즉 여탈생살은 여탈생주에서 파생된 말이지요. 주고, 빼앗고, 살리고, 벌로 죽인다는 뜻이지요. 그 여탈생살이 나중에 생살여탈로 바뀌었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겠습니다.>> (인용)


여기서 제왕이 장악한 권력에 ‘與, 奪, 生, 誅 等’이 있으며, 誅가 殺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與, 奪, 生, 誅’는 곧 與權, 奪權, 生權, 誅權(=殺權)을 말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誅’(벌로 죽인다는 뜻)가 ‘死’(죽음)의 뜻이 아니라 ‘殺’(죽임)의 뜻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與’와 ‘奪’이 가깝고, ‘生’과 ‘殺’(=誅)이 가깝기 때문에 ‘여탈’이 붙고 ‘생살’이 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탈생살의 네 가지 권력을 나열한 것이므로 여탈생살이 되든, 생살여탈이 되든 동일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생권+살권+여권+탈권’ → ‘(생+살+여+탈)+권’ → ‘생살여탈권’에서 보듯이 ‘생살여탈권’  ‘여탈생살권’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생살여탈’이란 말이 『한비자(韓非子)』 ‘군주가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三守]’의 셋째 항목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여기에 보면 “군주가 자신이 직접 국정을 돌보는 수고로움을 싫어해서 신하들에게 대신 처리하게 한다면, 이는 바로 권력을 신하들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성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는 권한과, 상과 벌을 움직이는(또는 관직을 주거나 빼앗는) 권력이 대신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이럴 경우 군주는 신하들에게 권력을 침해받게 된다.”라고 나옵니다.

여기에서도 ‘생살권+여탈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다른 쪽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생사여탈’은 있지만 ‘생사여탈권’은 없습니다. 우선 저는 ‘생사여탈’이 틀린 말이라고 쓰지는 않았습니다. ‘생사여탈권’은 ‘생살여탈권’의 잘못이라고 썼습니다. 그게 그것 아니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일반인에게 ‘생살’이란 단어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그것이 좀더 익숙한 ‘생사’로 대체된 것 아닌가 합니다. ‘생살’이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生’과 ‘殺’이 서로 결합하기 어려운 의미구조를 띠기 때문입니다. ‘생’은 ‘살다’라는 자동사, ‘살’은 ‘죽이다‘라는 타동사이거든요. 즉 ’生‘은 ’死‘와 어울리고, ‘殺’은 ‘活’과 어울립니다.>> (인용)


말그리님께서도 얘기하셨듯이 <‘생’은 ‘살다’라는 자동사, ‘살’은 ‘죽이다’라는 타동사>이므로 ‘생사’는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이고, ‘생살’은 ‘살리고 죽이는 일’입니다. 따라서 ‘생사여탈’은 ‘살고 죽는 것과 주고 빼앗는 것’이고, ‘생살여탈’은 ‘살리고 죽이는 일과 주고 빼앗는 일’입니다.


이 두 단어에다 ‘권’을 붙여 보면 ‘생사여탈권’은 ‘삶과 죽음을 주고 빼앗는 권한’의 뜻이 될 것이고, ‘생사’가 ‘여탈’의 목적어가 되는 구조입니다.

‘삶과 죽음을 주고 빼앗는 권한’의 뜻이 아니라면 ‘생사여탈권’은 ‘살고 죽는 권한[生死權]+주고 빼앗는 권한[與奪權]’의 뜻이 되겠지요.


'삶[生]과 죽음[死]에 대한 권한' 또는 '삶과 죽음을 주고 빼앗는 권한'은 오로지 신(神)에게만 있다고 저는 봅니다. '죽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고 하여 '자살(自殺)'한다고 하더라도 말 그대로 '自身'을 '殺'하는 것이지요.

‘생살여탈권’의 뜻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생살’이란 단어가 일반인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점과 그것이 좀더 익숙한 ‘생사’로 대체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에는 동의하지만, ‘生’과 ‘殺’이 서로 결합하기 어려운 의미구조를 띠기 때문이라는 점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생살지권’ ‘생살권’ ‘생살부’(이 ‘생살부’도 ‘살생부’와는 다른 뜻으로 써야 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등이 엄연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사여탈’이 ‘권’과 결합한 ‘생사여탈권’보다는 ‘생살’(=殺活)과 ‘여탈’이(또는 ‘여탈’과 ‘생살’이)  ‘권’과 결합한  ‘생살여탈권’  ‘여탈생살권’이 맞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생살여탈권’이 쓰이는 문맥을 놓고 생각해 봐도 ‘살고 죽는 것’보다는 ‘살리고 죽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중국 고사성어 대전의 설명 중 <제왕이 장악한 상벌생사의 대권>은 <제왕이 장악한 상벌생살의 대권>으로 고치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생살여탈은 옛말이고, 생사여탈은 요즘 말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어떨까요>라는 견해에는 동의합니다. 또 그렇게 쓰는 것이 쉽고 좋다고 하여(중국에서도 ‘生死與奪之大權’이란 표현이 널리 쓰인다고 하니) 언중이 받아들이면 되겠습니다.


‘생사여탈권’과 ‘생살여탈권’을 함께 쓰자는 말그리님의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생살여탈권’이 더 정확하고 맞는 말이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생살여탈권’이라는 말에 대하여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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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바다 | 작성시간 04.10.20 생살여탈권이란 말이 먼저 있었음을 이제사 알았네요. 그나저나 당주님, 잠수 너무 오래 하시면 기계가 녹슬어요. 기름칠도 할겸 이번 토요일 산행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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