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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사 “한자어 지도는 학력 향상의 지름길이다.”를 보고

작성자이대로|작성시간13.08.01|조회수180 목록 댓글 1

중앙일보 기사 “한자어 지도는 학력 향상의 지름길이다.”를 보고

 

                                                        익산 문영이 선생님이 쓴 글

 

우리 겨레가 중국 글말을 배우던 길은 중국이 서기 337년에 ‘태학’을 세운 것을 고구려가 본 땄을 것으로 보이는, ‘태학’을 서기 372년에 세우고, 중국의 경전과 문학을 가르쳐 유학을 드높여 갔다. 백제는 ‘태학’과 같은 학교를 세웠다는 기록은 없으나, 375년에 고흥이『서기』를 펴낸 것으로 보면, 백제도 중국 글말을 배우는 길에서 고구려에 뒤지지 않았다.

 

신라는 최치원의 ‘풍류’와 ‘화랑‧원화’의 가르침으로 젊은이를 키워 나라 힘을 북돋우는 전통을 따로 지니고 있었다. 우리 글자를 만들려고 애 쓴 덕으로 ‘향찰(중국글자를 빌리기는 했지만)’이라는 글자를 개발하여 겨레의 노래인 향가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당나라의 힘을 빌리고 백제와 연합하여 668년 고구려를 무너트리고, 다시 백제를 배신하고 676년 백제마저 무너뜨리고부터, 그동안 연구해 오던 이두니 향찰을 버리고 국왕이 중국글자를 받아들여, 682년에 당나라 학교인 ‘국학’을 세웠다.

 

신라의 ‘국학’ 그 뒤 고려의국자감과 향교‧학당‧공도‧서당을 거쳐 조선의 성균관과 사학부, 향교와 서원, 마침내는 산골 서당에 이르기까지 일천수백 년을 줄기차게 중국 글을 배우는 길에 매달렸다.

 

공자를 섬기는 중국의 사상, 철학, 윤리 역사, 문학, 정치, 풍속을 배우고 그 속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나라를 이끄는 자리를 차지하고서 스스로 ‘작은 중국’임을 자랑하고 아예 ‘동국사상’에 닿지 않았던가?

 

왕조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즈음, 중국이 서양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고 무너지는 실상을 지켜보며, 놀라움과 두려움에 빠져서 독립을 부르짖으며 신식학교를 세웠다. 신식학교는 왕조에서 출발 했으나, 서양교육을 본받아 민주 사회의 학교교육을 꿈꾸며 출발했다. 맨 처음 신식학교로 ‘동문학’이 외국어 학교였고, 둘째 ‘육영공원도’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날 중국을 바라보고 쫓아가던 가르침이 이제는 미국 쪽으로 길을 돌렸으니, 제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쫓아가는 길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고조선 시대까지는 동북아에서 가장 앞서가던 문화를 보면, 우리 겨레 동아리 말은 훌륭했을 것으로 믿는다. 우리 겨레가 중국 글말을 끌어들이며, 중국겨레에게 동북아의 드넓은 땅을 야금야금 내어주고 밀리다가, 조선시대에는 왜족한테도 수모를 겪는 지경으로 힘이 빠져버린 까닭은, 무엇보다도 ‘글과 말이 같지 않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참고삼은 책. 김수업의 『배달말 기르치기』)

 

입으로는 겨레말을 하면서 중국글자를 쓰자니 아무리 힘써도 그 나라 사람을 따라가기 어려움에 부딪치자, 중국을 부러워하던 나머지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 세월이 길어지면서 종(노예)의 마음으로 길들어갔다.

 

기원 앞 10세기 즈음에 서유럽에서는 헬라글말의 힘을 그때 누리에서 다른 말들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알다시피 ‘알파벳’이란 그리스 사람들이 닿소리와 홀소리를 찾아서 글자를 갖추었을 적에 첫째 ‘알파’와 둘째 ‘베타’ 글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낱말이다.

 

기원 앞 3세기부터 그리스에 짓눌려 야만으로 지내던 로마사람들이, 정신을 차려 하찮게 여기던 제 겨레말인 라틴말에 맞추어 ‘알파벳’을 더욱 간추려서 마침내 기원 어름에는 ‘스물여섯 음소글자’만으로 ‘로마자’라는 이름으로 글자가 탄생했고, 그 글자로 헬라의 고전을 뒤치고(번역하고)서야 서양문명의 그릇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이어 ‘로마자’에서 14세기에 이탈리아말글이, 16세기엔 스페인말글이, 프랑스말글이, 영국말글이 잇따라 태어나고, 19세기에야 독일말글이 뒤늦게 합류하면서 20세기에 서유럽 문명은 땅덩이를 온통 뒤덮었다.

 

이렇게 서유럽 사람들은 헬라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나라입말에 맞추어서 글을 다시 만들었고, 우리겨레는 우리 입말을 업신여기고 중국 글자만 따라갔다.

 

글이 입말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손쉽게 말이 글이 되어, 온 겨레가 같이 넓은 길로 내달릴 수 있고, 넓은 길로 내달리는 겨레는 문명의 발달이 빨라지고, 적은 사람들 끼리 글말을 쓰면서 좁은 길로 간신히 달리는 겨레는 문명의 발달이 더뎌진다.

 

그런 이치도 모르고 우리 겨레는 백의 두 사람은 중국글자를 익혀 벼슬길에 오르고, 백의 아흔여덟 꼴인 겨레는 중국 글말을 몰라 구박받던 제 신세가 서러워 스스로 저를 부끄러워하며 업신여기며 살았다.

 

세종임금님은 1446년, 우리 입말의 소리를 음절, 자모, 음운으로 나누고 거기에 맞는 소리글자를 온전하게 만들어서 입말과 글말이 하나 되는 길을 열었으나, 벌써 종의 마음으로 길들어버린 겨레는 한글을 모두 시들하게 여겼다.

 

백의 둘 축에 든 사람들은 벼슬모자 벗겨질세라 중국글자를 더욱 움켜잡고, 아흔여덟 축에 든 사람들은 지난 이천년에 걸쳐 중국글자를 몰라 온갖 창피와 아픔을 참아야 했던 터라, 본능으로 중국글자를 한없이 부러워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생업에 쫓겨 어려운 중국글자는 배울 수 없고, 글자는 필요해 한글을 도둑으로 익히면서도 열등의식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관청과 겨레는 물과 기름이었던 터라, 1592년 왜구의 침입으로 임금이 피난을 가도, 겨레는 “잘한다.”고 코웃음을 쳤다. 그때까지 백성에게 한 번도 한글을 가르친 일이 없던 선조임금은 백성에게 나라의 위기를 알리는 방을 한글로 써서 부쳤다. 백성들은 그제야 곳곳에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위기에서 건졌다.

 

그 뒤 스스로 저를 업신여기던 백성은 “임금님도 쓰신 글이다.” 고 한글 따라 제 스스로 마음에 자랑이 생겼다. 그리하여 광해군 때 허균은 한글로 『홍길동전』을 쓰고, 시훈 해 뒤에 『장길산』이 나오며 우리 말꽃이 피었다.

 

한글을 만들기 앞서는 온 누리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뽐내던 로마자는 한글에 견주면 모자람이 적지 않다.

 

①로마자는 무엇보다도 음소글자를 낱낱이 풀어서 길게 나란히 씀으로 눈에 들어오는 빠르기가 한글보다 느리다. 게다가 반듯이 왼쪽에서 바른쪽으로 한 자씩 써나간다.

 

☀한글은 음소글자를 위아래와 왼쪽 바른쪽으로 한 음절씩 묶어서 네모가 반듯하게 쓴다. 그러므로 읽는데 걸리는 시간이 한글이 로마자보다 훨씬 더 짧다.

 

② 로마자는 반드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자씩 써나가야 하지만,

 

☀ 한글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나갈 수도 있고,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내리달아 쓸 수도 있다. 글쓰기의 길이 이렇게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사실과, 음소글자를 음절에 맞추어 모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전자말 누리에서는 굉장한 힘이다. 전자말의 속도와 영상효과에 커다란 몫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도와 영상효과에서 로마자는 한글에 따라올 수 없는 글자다.

 

③그 뿐 아니라 낱자 수가 로마자는 스물여섯이다.

 

☀한글은 스물넷이라 거기서도 한글이 로마자를 앞지른다. 그런데 요즘 들어 손전화를 만들면서 한글의 낱자가 본디 닿소리 열넷에다 홀소리 셋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아, 열일곱으로 손전화를 만드니 단추 하나에 로마자는 셋씩 맡았지만 한글은 둘씩 맡고도 단추가 남았으니, 문자통신에서 한글이 로마자보다 3분의 2나 더 빨리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앞으로 벌어질 전자말 세상에서 한글과 로마자의 겨루기에서는 갈수록 한글의 뛰어남이 들어날 것이다!

 

④ 또 로마자의 A자가 9 가지로 소리 나고, E자가 11 가지로 소리 내는 것하고 견준다면,

 

☀“한 자 한 소리” “한 소리 한 자”로 쓰는 한글은 참으로 쉬운 글, 좋은 글이다. 이 좋은 글을 놓고, 전자시대에서 한없이 처져서 중국·일본에서 못 버려 안달하는 중국글자를 다시 섞어 쓰자는 것은 밥을 팔아 똥을 사먹는 꼴이다. 중국글자말이 어렵다고 더 어려운 중국글자를 불러들이는 바보가 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이냐?

 

로마가 로마자를 만들어 헬라의 경전을 뒤쳤듯이 세종임금님은 정음청을 두어 중국의 고전을 모두 한글로 뒤쳐내고, 중국글자와 아주 고리를 끊으려 했다. 이 일이 뜻을 못 이루고 오늘까지 중국글자말에 질질 끌려 공용한자 800자를 우리 뒷뉘(후손)에게 지우려 하다니………

 

남의 글자 말을 온 겨레에게 가르치려 말고, 세종임금님의 뜻을 살려 나라에서 뒤침청(번역청)을 두어 남의 문화는 모조리 뒤침청에서 거르고, 겨레(국민)에게는 동북아에서 가장 앞서가던 입말을 이어, 올바른 배달말 공부를 시켜 온 겨레가 글 쓰듯이 말하고, 말하듯이 글 쓰고, 말하며 글 쓰듯이 보이는 것이 있어야 배달말의 첫째 모습이다. 이렇게 입말과 글말과 전자말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곳에 닿으려면 글자가 한글 아닌 중국글자나 로마자일 수 없다. 온 누리 과학자들이 증명한 뒤에야 “그런가!”하지 말고, 이번에는 우리 손으로⦁머리로 증명해 보여야한다.

 

한글은 배달말을 붙들어 글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배달말을 오롯이 지키는 일이 한글 지킴이요, ‘오늘날의 독립선언서’입니다.

 

2013년 8월 1일 익산시 창인동1가 중앙로 5길 42-11 문영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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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버들 | 작성시간 13.08.17 ★여.행,술.친.구,섹.파,애.인 다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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