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말 기본 자료실

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선언서와 자료

작성자이대로|작성시간08.09.22|조회수71 목록 댓글 1


全國漢字敎育促進國民總蹶起大會
宣 言 書


지금 우리는 經濟政策 잘못으로 國家不渡를 당할지도 모르는 史上 최악의 經濟危機에 처해 있다. 이러한 危機를 당하게 된 原因을 表面的으로는 지난政府의 확고한 經濟政策 不在로 볼 수 있겠으나, 根本的으로는 光復以來 半世紀 동안 百年樹人의 확고한 敎育政策 不在에서 累積되어 온 結果라는 事實을 우선 깨달아야 한다.

敎育政策 不在 중에서도 특히 지난 半世紀 동안 跛行으로 거듭해 온 文字政策의 失踪으로 지금 이 나라에는 知識不在, 思想不在, 哲學不在의 空洞化現象에 처하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國家百年大計의 政治思想도 經濟政策도 樹立될 수 없음은 明若觀火한 사실이다.

나라가 이처럼 어려운 經濟危機에 처하여 있는데 文字政策을 擧論하느냐고 혹자는 疑訝스럽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라의 앞날에 예상되는 더 큰 危機를 이 땅의 知識人들로서 坐視할 수 없어 未然에 有備無患의 汎國民運動을 展開함이요, 결코 단순히 文字 論爭을 위한 私心이 秋毫도 없음을 우선 밝히는 바이다.

우리는 歷史의 리듬을 탄 國運과 危機에 强靭한 특유의 民族性으로써 이번 經濟難局을 반드시 打開할 수 있으리라고 確信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一時的 經濟危機가 아니라, 未久에 닥쳐 올 文化危機라는 사실을 우리 全韓國民은 覺醒해야 한다.

이번 國難을 契機로 全國民과 政府는 한 나라의 文字政策이 國家와 民族의 발전을 위하여 얼마나 重且大한가를 깊이 인식하고, 다시는 이러한 國難을 당하지 않도록 未然에 對備策을 講究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爲政者들이 國家와 民族의 將來를 위하여 所信 있는 政策을 펴지 못하고, 官職자리를 지키는데만 연연하여 온 것과 같이 吾不關焉으로 文字政策을 또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 民族의 强靭性이나 勤勉性으로도 再起가 不可能한 可恐할 文化危機가 반드시 닥쳐오게 되어 있다. 실은 이미 심각한 상태의 文化危機에 처해 있는데 일반에서 절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物質的인 國難은 全國民의 團結로 克服할 수 있겠지만, 民族의 精神世界와 傳統文化가 바탕으로부터 墜落하고 斷絶된다면 歷史는 終末을 告하고 民族은 亡할 수밖에 없다.

우선 지금까지의 誤導된 교육으로 우리의 文字 여건이 마치 劣惡한 것처럼 인식하여 온 현실의 잘못된 國民意識을 하루속히 바로 잡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실로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表意文字인 漢字(東方文字)와 가장 과학적으로 창제된 表音文字인 한글을 兼備하고 있다. 이는 마치 새의 두 날개와 같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한글과 漢字를 필요에 따라 잘 活用하면 先進文化를 이룩할 수 있는 文字與件의 最理想國이 될 수 있다.

우리 韓國語는 세계 어떤 民族의 言語와도 다른 특수한 構造를 가진 言語이다. 곧 韓國語의 語彙는 視覺性 어휘와 聽覺性 어휘로 구성되어 있으며, 視覺性 어휘인 漢字語彙가 半數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 구조 자체가 漢字와 한글을 겸용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韓國語의 특수구조를 무시하고, 그동안 初等學校課程에서는 아예 漢字를 교육하지 않고, 中高等學校에서는 漢文科目이 있기는 하지만 入試 준비에 밀리어 소홀히 한 결과, 大學에 入學한 학생들이 敎材를 읽지 못하고, 新聞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심각한 현실을 招來하게 되었다. 현실 상황이 이러한데 한글 專用을 주장하는 것은 마치 兵法을 모르고 敵陣에 돌진하려는 것과 같은 無謀한 일이다.

한국어의 구조는 中國이나 日本과 달라서 언제나 반드시 漢字를 쓸 필요는 없다. 한글만으로 써도 좋을 때는 한글만을 쓰고, 한글과 漢字를 겸용하는 것이 더 좋을 때는 겸용한다면, 이는 마치 농부가 農器具를 편리에 따라 活用하는 것과 같아서 더욱 원활한 絶長補短의 문자생활을 圖謀할 수 있다. 이렇게 편리한 文字生活을 도모하려면, 우선 두가지 문자를 모두 철저히 어려서부터 교육해야 한다. 알고도 안 쓰는 것과 몰라서 못 쓰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곧 初等學校課程에서부터 漢字敎育을 철저히 하되, 그 使用與否는 개인의 자유와 필요에 따라서 선택한다면 「한글專用」이냐 「國漢文混用」이냐의 是非를 굳이 가릴 필요도 없다.

우리는 祖國이 光復되면서 오로지 日帝가 우리 語文을 抹殺하려고 했던 사실에 흥분하여 한글을 좀더 宣揚하려 했던 것인데, 일부 偏見에 의하여 「한글 專用」의 잘못된 정책으로 굳어져, 실제로는 한글 專用을 한 번도 실시해 보지도 못하고, 이미 死文化된 「한글 專用法」에 묶기어 새 世代들을 半文盲으로 빠뜨리는 결과만을 招來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 나라 젊은이들 자신의 頭腦가 나쁘거나 努力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政府의 확고한 文字政策의 缺如로 어느 나라의 젊은이들보다도 優秀한 頭腦를가진 우리의 젊은이들이 半文盲의 被害者가 되었다는 事實을 우리 旣成世代는 覺醒하고, 그 책임을 痛感해야 한다.

한글이 文盲退治나 一般知識의 大衆化에 貢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專用에는 한계성이 있기 때문에 한글 專用을 단행하였던 北韓에서도 이미 初等學校課程에서부터 漢字를 철저히 교육하고 있는 根本理由를 알아야 한다. 世界化에 부응하기 위하여 英語도 早期敎育하면서 地理的으로나 歷史的으로 더욱 절실히 필요한 亞太文化圈의 共用文字인 漢字를 교육하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孤立과 落伍를 自招하는 모순된 文字政策이 아닐 수 없다.

한글 專用論者들이 主張하는 대로 한글 專用이 과연 國益에 도움이 되었다고 政府當局에서도 확고한 소신이 선다면, 즉시 한글 專用을 國策으로 실시하여 모든 公用文書, 新聞, 書籍 등에서 漢字를 一切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글 專用의 피해에 대해서는 이미 科學的으로 詳細히 분석하여 놓았지만, 실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初等學生에게 한글만 가르쳤을 때 그 학생이 社會人이 되어 손해보는 학생은 있어도, 漢字를 배워서 손해보는 학생은 단 한 사람도 없음은 是非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한글 專用이 國益에 전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文化危機를 自招하는 결론이 明明白白히 내려졌는데, 政府는 더 이상 躊躇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左顧右眄 시간을 끌지 말고, 卽時 初等學校課程에서부터 漢字를 철저히 교육하는 斷案을 내려야 한다. 文字敎育은 道具敎育이기 때문에 어려서 시작할수록 부담도 적고 成果도 크다는 분명한 사실을 재삼 强調하는 바이다.

이로써 國語敎育은 正常化될 수 있고, 극도로 저하된 人性敎育은 회복될 수 있고, 거의 斷絶된 傳統文化는 繼承될 수 있고, 當面한 文化危機를 克服할 수 있으며, 다가오는 亞太文化圈時代의 主導國이 될 수 있음을 確信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歷代政府가 우리 나라 말의 特殊性을 인식 못하고, 확고한 文字政策을 수립하지 못한 결과, 오늘의 危機를 초래한 根本原因을 새 政府에서는 철저히 인식하여, 지금 우리가 主張하는 올바른 文字政策의 輿論을 수렴하고, 즉시 初等學校課程에서부터 한글과 漢字를 철저히 교육하여, 21세기는 韓國의 文化가 世界로 浮上할 수 있도록 邁進하기를 강력히 建議하는 바이다. 이는 時代의 使命이며 民族의 所望이므로 우리의 主張이 관철될 때까지 最善을 다하여 努力할 것이며, 擧國的으로 國民蹶起運動을 展開할 것을 闡明하는 바이다.

<全國 漢字敎育 促進 建 議 文>
지금 우리는 經濟政策 잘못으로 國家不渡를 당할지도 모르는 史上 최악의 經濟危機에 처해 있다. 이러한 危機를 당하게 된 原因을 表面的으로는 지난政府의 확고한 經濟政策 不在로 볼 수 있겠으나, 根本的으로는 光復以來 半世紀 동안 百年樹人의 확고한 敎育政策 不在에서 累積되어 온 結果라는 事實을 우선 깨달아야 한다.
敎育政策 不在 중에서도 특히 지난 半世紀 동안 跛行으로 거듭해 온 文字政策의 失踪으로 지금 이 나라에는 知識不在, 思想不在, 哲學不在의 空洞化現象에 처하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國家百年大計의 政治思想도 經濟政策도 樹立될 수 없음은 明若觀火한 사실이다.
나라가 이처럼 어려운 經濟危機에 처하여 있는데 文字政策을 擧論하느냐고 혹자는 疑訝스럽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라의 앞날에 예상되는 더 큰 危機를 이 땅의 知識人들로서 坐視할 수 없어 未然에 有備無患의 汎國民運動을 展開함이요, 결코 단순히 文字 論爭을 위한 私心이 秋毫도 없음을 우선 밝히는 바이다.
우리는 歷史의 리듬을 탄 國運과 危機에 强靭한 특유의 民族性으로써 이번 經濟難局을 반드시 打開할 수 있으리라고 確信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一時的 經濟危機가 아니라, 未久에 닥쳐 올 文化危機라는 사실을 우리 全韓國民은 覺醒해야 한다.
이번 國難을 契機로 全國民과 政府는 한 나라의 文字政策이 國家와 民族의 발전을 위하여 얼마나 重且大한가를 깊이 인식하고, 다시는 이러한 國難을 당하지 않도록 未然에 對備策을 講究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主張


1. 初等學校課程부터 한글과 基礎漢字 1,000字 정도를 철저 히 敎育하여 國語敎育을 正常化할 것을 촉구한다.

2. 各級 학교의 모든 敎科書에 한글과 漢字를 혼용할 것을 촉구한다.

3. 公用文書·標識板·看板 등에 漢字를 혼용 또는 倂記할 것을 촉구한다.

4. 新聞·雜誌 등 言論媒體에서 漢字를 가급적 혼용할 것을 촉구한다.

5. 漢字 敎育을 통하여 傳統文化를 계승 발전시켜, 저하된 人性敎育을 적극 회복할 것을 촉구한다.

6. 亞太文化圈의 孤兒로 轉落되는 文化危機를 未然에 대비 할 것을 촉구한다.

7. 컴퓨터의 발달로 漢字의 機械化가 實現되었으므로, 이를 活用하여 情報化 時代에 앞장서 나갈 것을 촉구한다.

本聯合會 創立 이래 重要 成就 事項


여러 推進委員님들께서 적극 活躍하시어 다음과 같이 漢字敎育 推進을 위한 큰 일들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1) 公用文書에 漢字를 倂記하도록 國務會議에서 決定한 일.
(2) 住民登錄證의 姓名에 漢字를 倂記하도록 再調整한 일.
(3) 地下鐵을 비롯하여 각종 標識板, 案內板에 漢字를 倂記한 일.
(4) 2005年부터 大學入試 修學能力試驗에서 「漢文」科目을 選擇하게 한 일.
(5) 歷代 敎育部長官 13분이 政府에 「初等學校 漢字敎育의 실시를 促求하는 建議書」를 낸 일.
(6) 國務總理賞ㆍ敎育人的資源部 副總理賞 懸賞公募로 初ㆍ中ㆍ高ㆍ大學生 및 一般人들에게 「漢字敎育 振興을 위한 글」 施賞을 3回에 걸쳐 실시한 일.
(7) 本聯合會를 社團法人으로 許可를 받아 法人登錄(2002年 12月 2日)한 일.
(8) 月刊誌 「한글+漢字 문화」를 현재 通卷 70號까지 發行하여 國內外에서 優秀한 敎養誌로서 好評을 받고 있는 일.
(9) 濟州ㆍ慶南ㆍ京畿南部ㆍ忠北ㆍ京畿ㆍ서울ㆍ江原ㆍ慶北ㆍ大邱ㆍ全北ㆍ鎭海 및 美國ㆍ日本ㆍ中國支會를 結成한 일.
(10) 全國 新聞ㆍ放送의 言論이 初等學校 漢字敎育의 推進을 적극 支持하는 社說과 記事가 150여 회에 걸쳐 나오게 한 일.
(11) 國內外 當代 知性들이 漢字敎育 推進 運動에 3萬餘名 同參하고 있는 일.
(12) 高麗朝語硏究 國際學術大會를 文化觀光部, 中央日報 後援으로 開催한 일.
(13) 經濟5團體 및 企業에서 入社時 漢字試驗 實施토록 한 일.
(14) 全國의 初等學校에서 裁量時間에 漢字敎育을 實施토록 한 일.
 

任 員 名 單

◎ 會    長 : 白樂晥

◎ 理 事 長 : 陳泰夏

◎ 首席代表 : 權彛赫 鄭喜卿 李平宇

◎ 共同代表 :

姜映淑 孔魯明 奇世勳 金玟河 金相鴻 金聖鎭 金守漢 金鎔采 金宗西 金俊燁

朴源弘 孫性祖 辛春浩 呂澈淵 柳琦諪 李基文 李大淳 李龍兌 李應百 鄭光謨

鄭亨植 趙   淳 趙舜衡 崔根德 洪一植

◎ 顧 問

姜信浩 姜英勳 具平會 權達洙 權智庸 金   信 金光旭 金基鐸 金基衡 金斗熙

金命年 金敏洙 金相廈 金聲翰 金壽煥 金榮寬 金一斗 金章煥 金在淳 金昌圭

金   哲 南悳祐 南興祐 盧信永 盧在鳳 劉貞得 李相洙 李春和 文鴻柱 朴景利

朴東鎭 朴忠勳 朴泰俊 方又榮 白景基 白善燁 卞務寬 卞廷煥 徐潤福 成慶麟

成進永 孫敬植 宋月珠 宋仁相 申國柱 申鉉碻 安秉煜 安椿生 梁好民 吳在璟

禹亨圭 柳根昌 柳根桓 兪相玉 柳承國 劉載興 劉彰順 兪泰興 尹德炳 李根植

李能雨 李大永 李東恩 李同浩 李榮德 李宇柱 李源京 李元範 李一珪 李在福

李載浩 李鍾贊 李哲承 李泰熙 李漢東 李漢彬 李恒寧 李惠求 李勳燮 李熺性

張基鳳 張志良 張忠植 全仲潤 張泰玩 全海宗 鄭銶永 丁來赫 鄭明煥 鄭元植

鄭鎭肅 丁海昌 趙慶哲 趙炳華 趙永植 趙完圭 趙鏞九 趙龍沂 趙正勤 趙香祿

朱槿源 朱軫淳 智   冠 車柱環 蔡命新 蔡汶植 崔斗高 崔明憲 崔彰鳳 許景渤

許東華 玄   惺 玄勝鍾 洪秉圭 洪禹俊 黃壽永 黃寅性

◎ 指 導 委 員

姜吉泰 姜富子 姜相淑 姜永奎 姜義植 姜賢錫 姜   瀅 康麟濟 姜在哲 姜熙英

高光鐘 高明三 高成大 高永根 郭鐘赫 丘秉朔 丘仁煥 具滋聖 具仲書 權奇悰

權寧壎 權德周 權斗喆 權丙鉉 權相祚 權伍龍 權五龍 權五哲 權正浩 權正孝

權昌倫 權宅鎭 權琥基 權熙泰 琴震鎬 奇宇卓 奇雲舒 金慶洙 金慶吾 金慶漢

金冠均 金貴年 金奎弼 金基元 金琪中 金基赫 金棋鉉 金基亨 金起鎬 金基桓

金吉洛 金吉濟 金吉弘 金洛元 金南洙 金南鉉 金魯洙 金大淵 金大忍 金大哲

金大顯 金大煥 金悳鎭 金道鉉 金東求 金東奭 金東益 金東集 金東炫 金東顯

金東煥 金斗光 金斗宣 金斗燦 金得中 김녹현 金侖世 金萬洙 金明植 金命祚

金美子 金炳基 金炳洙 金秉學 金寶今 金福文 金奉郡 金烽洙 金三煥 金相九

金相國 金相培 金祥源 金祥哲 金商勳 金石根 金善林 金聖東 金聖敏 金晟秀

金聖洙 金世新 金世煥 金秀錫 金水映 金淑喜 金承源 金時晃 金麗煥 金英均

金榮石 金榮淑 金榮玉 金榮一 金榮鎭 金永秋 金榮煥 金英輝 金容伯 金容淑

金容元 金湧精 金容漢 金元植 金侖世 金潤珠 金潤煥 金銀淑 金乙生 金日勳

金長濬 金在敦 金在哲 金在春 金在浩 金貞培 金貞淑 金宗圭 金鍾祥 金鐘宇

金宗太 金鍾煥 金鎭斗 金振鳳 金鎭晟 김진신 金鎭永 金鎭協 金   暢 金昌辰

金哲吉 金澈運 金徹進 金春錫 金忠勇 金太智 金泰淸 金   憲 金賢子 金顯中

金洪哲 金暉東 金熙久 南基成 南基顯 南相恂 南善祐 南宗祐 南豊鉉 盧鳳九

盧載源 盧   椿 道   允 董   勳 劉秉昊 柳日新 柳興洙 李容善 李仁浩 李在奐

李鍾九 李昌範 林栽重 孟寬永 孟仁在 孟亨奎 文奎植 文龍鱗 文仁龜 閔庚燦

閔庚賢 閔丙寬 閔丙晙 閔賢植 朴甲洙 朴鏡文 朴景華 朴權欽 朴大淳 朴東奎

朴龍輝 朴明鎬 朴普熙 朴三來 朴相根 朴商烈 朴錫武 朴星來 朴城亨 朴世直

朴壽仁 朴承緖 朴信遠 朴容基 朴鏞武 朴元國 朴元浩 朴銀鎬 朴仁香 朴正圭

朴貞柱 朴鐘洙 朴鍾允 朴鍾益 朴鍾喆 朴鍾泰 朴鍾憲 朴柱瑛 朴鎭東 朴春錫

朴椿浩 朴泰根 朴泰玉 朴亢用 朴海盛 朴衡圭 朴亨錫 朴虎君 朴弘燮 朴興洙

方徹柱 裵光彦 裵奎聖 裵   渡 裵東鎭 裵秉烋 裵淳錫 裴英淑 裵源龍 裵振善

白松彬 白源鐵 白鎭禹 邊榮鐘 卞完洙 봉두완 司空壹 徐康和 徐敎一 徐首生

徐英錫 徐한샘 釋龍雲 宣君星 鮮于仲皓 宣柱善 薛順姬 成斗煥 成宗國 成春福

蘇在英 孫基台 孫大俊 孫容根 孫元日 孫製錫 孫周恒 宋基中 宋明鎬 宋   敏

宋炳循 宋錫球 宋錫準 宋信一 宋雙鍾 宋榮邦 宋在祿 宋貞淑 申庚林 申道均

辛東大 申東益 申東峻 申明鎬 申武淳 辛奉承 申世薰 申榮相 辛容局 愼鏞廈

申周均 申昌淳 申採湜 申弘均 沈東錫 沈佑燮 沈雨晟 沈鉉三 安炅弘 安炳周

安秉喆 安秉華 安商燮 安順權 安有鎬 安允玉 안종운 安昶範 安春植 安泰鏡

安泰鉉 楊基成 梁奉玟 梁俊鎬 楊澈愚 梁海焌 魚允大 嚴圭白 嚴基元 嚴相皓

嚴周井 余美玉 呂丞九 呂元九 吳瓊淑 吳炳文 吳世鈗 吳寧心 吳有善 吳寅泳

吳正善 吳宗植 吳春根 吳浩成 禹寅燮 禹鍾淏 禹洪九 元星裁 圓   行 元仁浩

元仲植 兪萬根 兪炳利 柳炳賢 兪榮九 劉完彬 兪鎭珏 兪昌均 劉哲秀 劉太鍾

柳昌勳 柳澤熙 柳姬淑 尹庚爀 尹悳湘 尹邦夫 尹炳曦 尹相稷 尹勝雲 尹雨坤

尹應壽 尹鎰均 尹正愛 尹和一 尹鎬重 殷斗基 李康龍 李康振 李健珩 李建鎬

李敬洙 李景濬 李桂成 李果珍 李光澤 李敎雄 李權宰 李圭仁 李奎鎬 李圭煌

李圭孝 李根愚 李金泳 李?周 李基澤 李大根 李大鎔 李大憲 李度珩 李敦熙

李東建 李東秀 李東益 李東宰 李東熙 李明學 李文雨 李敏弘 李範俊 李炳銑

李炳辰 李炳赫 李祥根 李商萬 李相翊 李相珍 李相鐸 李相回 李錫奎 李石善

李聖根 李成茂 李成美 李誠載 李淑姬 李淑姬 李順遠 李承潤 李時炯 李愼成

李良宇 李延馥 李英根 李英秀 李英淑 李永俊 李英姬 李容達 李容柱 李龍澤

李于錫 李運珩 李元植 李潤子 李殷雄 李仁秀 李在國 李在徹 李在學 李載興

李銓文 李廷植 李鍾三 李鍾祥 李種奭 李宗勳 李俊九 李重基 李珍鎔 李鎭浩

李春馥 李快東 李台燮 李澤來 李澤龍 李海元 李海瓚 李洪淵 李桓儀 李恒載

李泓植 李興柱 李熹宗 林琪石 任奉壎 任承淳 林長春 林中山 任宅根 林熒澤

任洪彬 張丙洙 張鳳祚 張錫晶 張水榮 張守日 張潤錫 張丙洙 張忠植 張赫杓

張炯植 全廣鎭 田   權 全絡樂 全晟雨 田永球 田英培 田英鎭 田允喆 全在琪

全綎九 鄭光河 鄭根謨 鄭琦鎬 鄭悳壎 鄭範謨 丁範鎭 鄭炳植 鄭淑子 鄭良謨

鄭英勳 鄭龍起 鄭愚相 鄭雲在 鄭雲燦 정   유 鄭仁熙 鄭在文 鄭在禹 鄭畯泳

鄭震權 鄭泰守 鄭泰連 曺甲女 曺甲周 趙貴任 趙根亨 趙乃璧 趙民濟 趙炳舜

趙炳直 曺祥鉉 趙成祐 趙殷相 趙乙濟 曺廷鉉 趙琮淑 趙鍾業 趙駿河 趙中衡

曺撤鎬 曺泓圭 曺喜旭 朱燉植 朱相宰 朱寧寬 朱貞一 池蓮泰 池幸玉 陳光植

陳圭椿 陳德奎 陳東植 陳敏子 陳在圭 陳載喆 陳哲鏞 陳泰龜 秦泰俊 陳馨根

車官薰 車益敎 車仁泰 千時權 崔慶植 崔光永 崔林淳 崔相燉 崔相震 崔聖奎

崔修五 崔時仲 崔鎔基 崔一鴻 崔廷完 崔鐘烈 崔俊元 崔直祥 崔哲洙 崔泰淵

崔泰祐 崔兌定 崔浩中 崔姬順 秋仁錫 河岡震 河斗鳳 河有楫 河宗彦 韓光鎬

韓世鏞 韓昇洲 韓貞姬 韓喆熙 許   慶 허   명 許文道 許   璧 許順萬 許英桓

許   程 玄明官 玄永柱 洪起容 洪大均 洪大植 洪素瑩 洪淳來 洪淳佾 洪潤基

洪恩杓 黃慶老 黃光燮 黃樂壎 黃義南 黃仁杓 黃一仁 黃在國 黃鍾禮 黃宗奭

黃昌基 黃泰善

◎ 常 任 執 行 委 員

金武鉉 金善豊 金晟均 金秀? 金蓮玉 金在甲 金鐘潤 朴京姬 朴東圭 朴美子

朴連浩 朴榮順 朴湧植 方仁泰 白源國 徐正植 成光秀 成元慶 申潤植 沈在箕

安斗煥 安秀吉 柳豊淵 尹在敏 尹正子 李啓晃 李光徽 金圭性 李起雄 李大老

李秉根 李福榮 李順端 李鍾日 李宗虎 李鎭浩 李河俊 李漢山 林基中 任洪彬

張喜久 全正雨 全漢俊 鄭祥玉 鄭錫元 鄭外成 鄭一權 鄭必順 曺洙麟 趙英姬

朱善弘 池賢求 蔡奎大 최절노 韓明熙 洪光植 洪龍基

◎ 監 事

金永和 李承厚 鄭光漢

◎ 理事

朴甲洙 朴湧植 成元慶 沈在箕 安秀吉 李延馥 李平宇 李河俊 全漢俊 陳泰夏 洪光植


 


Home > 월간 한글+漢字 > 과월호 보기




function zb_formresize(obj) { obj.rows += 3; } function over_img(num,img,border,bb2,bb3,opacity){ var str; if(border==1) border=" border=0 align=absmiddle"; else border=" style=\"border-style:solid;border-width:"+bb2+";border-color:"+bb3+"\" "+opacity+" border=0 align=absmiddle"; str=""; str+="
"; str+="
"; document.getElementById("img_over").style.posLeft=document.body.scrollLeft+event.clientX+10; document.getElementById("img_over").style.posTop=document.body.scrollTop+event.clientY-10; if(num==1) document.getElementById("img_over").innerHTML=str; else if(num==3) document.getElementById("img_over"); else { str=""; document.getElementById("img_over").innerHTML=str; } } function img_open(src,width,height){ if(width>screen.width-100 && height>screen.height-100){ SCwidth=screen.width-100; SCheight=screen.height-100; scrollbar="scrollbars=yes"; } else if(widthscreen.height-100){ SCwidth=width; SCheight=screen.height-100; scrollbar="scrollbars=yes"; } else if(width>screen.width-100 && height원본보기" +"
" +"클릭하시면 닫힙니다.
" +"
"); } function open_info_layer(){ var info_visible=document.getElementById("bbs_info"); if(info_visible.style.display=="none") info_visible.style.display=''; else info_visible.style.display='none'; }
  Total article : 109 Total page : 1 / 10 로그인 회원가입
2008년 8월(통권제109호)    
2008년 7월(통권 제108호)    
2008년 6월(통권 제107호)    
2008년 5월호 (제106호)    
2008년4월 (통권 제105호)    
2008년 3월 (통권 제104호)    
2008년 2월 (통권 제103호)    
2008년 1월 (통권 제102호)    
2007년 12월 (통권 제101호)    
2007년 11월 통권 제100호    
2007년 10월 (통권 제99호)    
2007년 9월 (통권 제98호)    

1 [2][3][4][5][6][7][8][9][10]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다물 | 작성시간 08.09.23 눈으로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네요. 저런걸 왜 쓰려고 하는지 ㅜ.ㅜ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