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와 옵티컬 이미지
1980년대 초반 이론에 익숙한 관람자들에게 미국작가 데이비드 살이 보여 준 하나의 구성 안에 여러 가지 이미지와 단어를 병치하는 작업은 관람자에게 이미지와 텍스트를 결합하여 그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텍스트는 그동안 관람자가 서사적 이미지의 작품을 읽는 과정에서 오는 오류를 정정하고 이미지로 전달할 수 없는 관념적 의미의 대상을 표현하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여 왔다. 이제 텍스트는 인쇄기술의 발전과 함께 복제나 복사가 가능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텍스트가 언어의 시각적 형태이고 리얼리티의 요소를 갖추고 있는 이런 요건은 현대미술에서 의미 표현을 위해 언어를 이용하는 방식에서 기호,은유,해독,캡션,도입,논평,요소,목적등으로 활용되는것을 찾아볼 수 있다.
시각 예술가들이 이론이나 학술적 담론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작가들은 이미지 하나만으로 표현
하기 어려운, 사상이나 묘사, 논쟁, 이야기, 자유분방한 공상 등 의미를전달해 주기 때문에 텍스트를 사용한다.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텍스트의 영역은 무한히 열린 공간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의 작품에서 언어의 실체인 텍스트는 대상 전체 이미지를 덮는 작업으로 초기 밑그림의 이미지를 볼 수 없고 텍스트의 혼합된 흔적으로 대상의 실루엣 같은 이미지만 관람자에게 제시하여 다른 방식의 해석을 요구하는 언어의 형태적인 의미와 텍스트 본질의 언어로서 작용하는 의미의 은유 방식으로 의도하였다. 본인의 작업에서 지식․정보의 시대가 가져온 급격한 텍스트의 속도 변화는 텍스트의 재료가 어떻게 형태와 의미 모두에서 개인의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반응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는지를 검토하도록 자극한다. 현대의 디지털 환경에서 인터넷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만들고 조작하고 보급하는 강력한 권력의 매체로 자리 잡고 있다. 가상공간의 매체에서 생성되는 이미지와 텍스트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소멸되는 과정에서 과잉의 부산물은 겹겹이 쌓여가고 있다. 이런 현실 상황의 시각적 의도와 과잉정보에 소비되는 노동의 시간을 암시하기 위해 연구자의 작업에서는 과다한 텍스트의 중첩과 파기를 반복시키고 있다. 평면의 이미지에 텍스트를 끌어들인 '핑크 프릭<Pink Frick>'에서도 텍스트는 이미지 결합하여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데 부합하다.
이 그림은 18세기 초반 네덜란드 작가 빌럼판 펠더 2세(Willem Van de Velde the Younger)의 바다 풍경위에 작가 켄 앱터카(Ken Aptekar)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가르쳐준 암실 현상법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텍스트로 적어 넣은 작품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그림을 네거티브로 전환시켜 항해사의 지도가 없는 상황을 아이의 불안한 심리로 묘사한 이중적 의미를 암시한다. 텍스트는 유리판 위에 쓰여 이미지와 텍스트가 상호작용으로 관람자를 담론에 끌어 들이는 의도를 보인다. 작가는 작업에서 푸른 망망대해의 원본을 붉은 색으로 전환시켜 바다가 가지고 있는 넓은 공간과 거친 파도의 험난한 과정을 반전하여 시각적 요소와 시공의 환경을 끌어 들이고 이를 작가의 인생 여정으로 코드화 시켰다. 작업에서 패널의 4조각은 크기의 운반을 고려한 의도보다 타인의 심리적 공유 대상을 창을 통해 보는 관망자의 파편적 기억을 의도한 작업과정으로 읽혀진다. 이미지는 작가의 삶의 배경을 설명하기에는 많은 이야기들을 거친 바다의 시각적 이미지 언어로 전달하고 텍스트는 이미지로 설명할 수 없는 기록을 유리판위에 텍스트로 한 화면에 제시하였다. 실제 이미지는 작가와 무관한 차용의 대체물이고 반전은 작가의 맥락으로 전환 시킨 인식으로 읽혀진다. 유리판을 투사한 이미지는 작가의 메시지 정보를 심화시키는 매체로 기용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의도적인 오브제로 대체되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켄 앱터카. <핑크 프릭 Pink Frick>. 나무에 유화물감. 모래분사 유리.볼트.각각 약 1.5x1.5의 패널4개. 1993.
아래 <텍스트의 생산자>는 스티브잡스의 스텐포드 대학 연설 오프닝에서 세 가지 주제를 이야기할 것을 명확히 말하고 시작되는 연설문을 의도한 텍스트로 대학관련 잡지와 신문에서 선택한 직간접 데이터를 가지고 '스토리'를 꾸며 나아갔다. 밝은 면은 실천과 희망적인 텍스트를 응집시키고 어두운 면에는 사회 일면이나 이슈 등 관심 부분의 텍스트를 무차별적으로 중첩하여 <그>의 얼굴 이미지를 인식되도록 표현하고 있다. 인식된 이미지는 네거티브로 전환시켜 텍스트의 대량 생산의 제공자로써 텍스트의 과잉으로 잊혀져가는 시간의 과정을 보이고자 하였다. 켄 앱터카의 작업에서 그가 전하고자 했던 밑그림의 시각적 언어와 유리면에 쓰인 텍스트는 다중적인 상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텍스트생산자>는 과잉된 정보가 수신자와 송신자의 전달을 혼란스럽게 하고 정보의 본질까지도 파악하기 힘든 매체로서 작용한다. 그리고 텍스트는 언어 기호체로서 기의적인 의도만 선행되고 본질(밑그림)의 정보와 단절되는 물성을 우선한다. 수신자가 얻게 되는 정보는 텍스트의 중첩에서 일어난 희미한 이미지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정보는 필요한 것이나 과잉된 정보는 수신자의 판단까지 흐리게 하는 노이즈 마케팅의 소비 형태로 오인되거나 작가와 관람자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식·정보를 자신의 맥락에서 재구성되는 연구자의 작업은 정체성을 깨우는 옵티컬이미지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여기에서 이미지의 선택은 <그>가 정보와 소통을 확장시킨 사회적 공헌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는 의미와 무책임한 텍스트의 난립 생산으로 예술의 본질까지도 변질될 수 있는 네거티브의 환경을 제시하고자하는 의도도 담겨있다.
<텍스트 생산자>,인쇄물 텍스트(printed text collage on panel). 134x117cm, 2013.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의 과잉과 텍스트/이미지 조합의 확산은 시각적 재현에만 한정되어 작업하는 작가에 의해서는 온전히
표현될 수 없다. 오늘날 이용할 수 있는 복잡한 정보처리 시스템은 사진 이미지와 손으로 제작한 이미지, 사운드 음악, 음성
언어, 텍스트를 활용한다.
작가들은 재현과 정보, 소통의 교류가 가능한 이 모든 형식을 도입할 수 있다. 본인은 디지털 환경의 허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하이퍼텍스트와 이미지의 시각적 재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조합의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에서 현실의 물질에서 파생되어 불가피하게 폐기되는 텍스트를 본인의 의지에 의한 선택된 텍스트로 대상의 전체를 덮는 것이다. 과장되고 무책임하게 꾸며진 문장이나 문맥이 읽힐 수 없도록 텍스트에 관여하여 해체해 버린 텍스트는 어원의 본질적 의미만 남는다. 이렇듯 리얼리티의 언어 텍스트로 이루어진 본인의 작업은 감추어진 이미지 조합과 드러나 텍스트의 이미지 관계에서 작가의 의도와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중계자가 된다. 해체된 텍스트는 이미지와 결합하여 또 다른 텍스트 의미를 생산하는 계체의 옵티컬메세지가 되어 관람자를 작가와 함께 작업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