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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이야기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One and Three Chairs>를 중심으로

작성자댕기|작성시간13.06.21|조회수2,581 목록 댓글 0

-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One and Three Chairs>를 중심으로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의 1965년 <One and Three Chairs>는 사진과 실물, 'chair'의 설명한 프린트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의자’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대상의 사물인 의자와 그것을 재현한 그림(사진), 의자의 사전적 설명 프린트로 기호학적인 접근방법에서 상호 연계된 기표와 기의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Joseph Kosuth. <One and Three Chairs>. 1965.

 

이것은 1960년대 생성된 개념미술(Concepture Art)의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개념미술은 시각적인 대상보다는 그 대상을 바라보는 관념, 즉 작품의 의도나 개념,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미술이다.  솔 르윗은 1967년 아트포럼에 “개념예술에서 이념이나 개념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양상이고, 이념은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라고 서술하였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고정된 하나의 의미를 권위 있는 원천인 것처럼 텍스트와 담론, 시각적 재현을 해독하여 이해하는

과정에서 고질적인 습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대신 해체(해석이나 개인의 이해)의 과정에 다양한 소통의 기호들을 개방하였다. 이런 해체는 대안적인 문화의 관점에서 메세지나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조셉 코수스의 작품에서 의자는 매개체를 종래의 예술에 대한 관념에서 재현된(사진)의자라는 대상을 실물, 그림, 언어를 이용하여 작가의 선택을 한 자리에 모아 배열해 놓음으로서 사물과 재현 이미지, 언어의 개념 관계를 제시한 작품이다. 에릭 쿠의 ‘CHAIR’는 언어가 구축되는 구조 자체에 주목하고 있는데 ‘C’, ‘H’, ‘A’, ‘I’, ‘R’, 다섯 개의 알파벳으로 각 각의 형태를 만들어 이를 결합하고 하나의 의자(구조물)를 보여준다. 이는 기호학적인 의미보다는 언어의 생성 과정을 보이는 것 같다. “언어는 더 이상 사상의 순수한 운반체가 아니다. 의미의 네트워크와 추상적 상징 네트워크 그리고 상징을 이용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재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가?’라는 제시는 다다이즘의 마르셀 뒤샹 이 후 예술은 개념이며 예술은 더 이상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갖고 있는 예술의 개념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현대미술은 갈수록 개념화되고 대형화되는 추세이다. 정교한 붓질보다 개념적 의미의 설치미술과 미디어, 퍼포먼스 혹은 아이디어가 더 많은 관심과 이슈가 되었고 컨템퍼러리(Contemporary) 아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과 영역까지도 흔들리는 멈출 수 없는 가속도로 현실(가상현실까지)을 앞서가는 무책임한 논리와 담론에 부딪혀 있다는 추론이다.

본인의 작품 <지리산의 운무>는 일상에서의 기록을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이 작업에서 문자 언어인 텍스트를 분리하여 관념으로 끌어 낸 조셉코수스의 텍스트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넘을 수 있는 것은 회화에 담긴 모든 언어가 시각적 언어라는 의미로 해석 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회화 속에 텍스트를 포함하는 작가의 ‘메세지’ 언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본인이 체험한 기억의 리얼리티 기록이다. 2010년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각인된 기억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전환하였다.

 

                                                    <지리산 운무>, 텍스트 인쇄물 printed text collage on panel, 73x91cm, 2010.

 

이 작업에서 하부의 텍스트 사용은 지리산 종주 기간 동안 시간과 장소로부터 단절되었던 일간지에서 사용되었던 광고와 영화, 주요 기사의 정보를 담고 있고 위쪽은 다섯 명의 동반자가 지리산 운무의 장엄한 비경을 함께 보던 체험의 장소에서 얻은 기억의 리얼리티 텍스트(실제 신문에서 사용된 텍스트)를 수집하여 겹겹의 지리산 풍경처럼 중첩한 텍스트로 작업하였다. 하부의 절단된 면은 정보의 단절이미지로 텍스트는 수직의 정렬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솝 우화에서 장님들이 코끼리에 대한 체험을 언어로 설명한 텍스트 조각들로 코끼리의 이미지를 재현할 수 없는 촉각적 경험의 텍스트이다. 물론 코끼리에 대한 개념을 조셉 코수스의 작업으로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전환을 시도한 이 작품은 또 다른 의미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작가의 의도된 옵티컬 메시지를 관람자가 이해와 통찰로 읽어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로 소통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서사적 감성과 논리의 개념을 ‘메세지’로 드러낸 이번 작업은 텍스트 표면 위로 일어나는 아카데미적인 리얼리티와 허구적인 일루전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런 작업은 연구자 자신이 의식과 표현 영역을 닫지 않고 관람자를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포옹력으로 텍스트의 즐거움과 시각적 즐거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다시 <One and Three Chairs>를 보자. 조셉 코수스의 의자는 어느 것을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가? 실제 의자는 의자라는 개념을 전달하기 위한 기호로써 사용되고 사진은 실제 의자의 재현으로 실체를 가지지 못하는 존재의 시각적 인증(증거물)이다.  텍스트는 하나의 관념으로 의자라는 형상과 이미지를 연결하는 하나의 관념어일 뿐이다. 조셉 코수스는 기표와 기의를 한 공간에 동시에 제시하여 사물과 의미 사이의 개념화 과정을 작품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작품은 이론이나 논리의 담론에 무관심하게 텍스트를 재구성하여 이미지로 귀의함으로써 개념의 형이상학적 철학에서 비틀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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