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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이야기

명화의 비밀

작성자댕기|작성시간11.05.25|조회수228 목록 댓글 0

  ■  참고문헌: 데이비드 호크니.

     『명화의 비밀』2003.한길아트.김경태 옮김

 

명화의비밀 목차
1. 개요

    1) 원근법 원리

    2) 렌즈 사용법

2. 시각적 증거

    1) 원근법의 사례

    2) 다 시점의 사례

    3) 작가 비교 사례

    4) 렌즈사용 사례

    5) 렌즈사례의 오류

3. 배경과 전개

4. 결론

    1) 감상자 시각의 다 시점

    2)개인 작업


1. 개요 

인간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재현을 통해 시각적 사물을 미술,음악 무용 등 예술 의 행위로 표현하고 언어 전달 매체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시각적 예술의 재현에서 화화은 표현 물감의 발전과 함께 더 진짜처럼 보이는 효과를 얻기 위해 과학의 도구와 장치를 이용한 작가의 욕구 흔적이 그림 속에  숨겨져 있다.


「 예술사가 들이 말하는 것처럼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점점 사실성이 향상  되어온 변천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많은 그림들을 놓고 볼 때 분명한 것은 그 과정이 점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광학은 갑자기 도입되어 금세 정착되고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화가들이 사용하는 방법(재료,도구,기법,통찰력)은 그들이 제작하는 성격에 중대하고 직접적이며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변화는 새로운 관찰 방식이라기보다 기술적 혁신이며, 그것이 점진적인 그림 기술의 발달로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명화의 비밀』-p51

 

1) 원근법-원리

15세기 초에 이루어진 혁신적인 회화의 표현법 중의 하나가  바로 분석적 선형 원근법 의 발명이다. 그 덕분에 화가들은 뒤로 물러나 있는 공간을 묘사하는 기법을 얻었고,특정한 시점에서 눈에 보이는 비례 대로 대상과 인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1

*뒤러의 유명한 1525년 목판화를 보면 일부 화가들이 장치를 이용했다는 것을알 수 있다.(도판p17) 뒤러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였지만, 그도 기술에 민감한 관심을 보였다.  판화에서줄을 벽 위의 한 점에 붙여 관찰자의 시점을 표현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줄의 다른 끝은 류트 위에 한 점에 연결하고 나무틀 위를 가로지르는 다른 두 개의 줄을 움직여 위치를 기록한 다음,   경첩을 단 화면에 줄들이 만나는 지점을 표시한다. 이를 되풀이하면 화면에 많은 점들이 생기면서 *류트의 모양이 만들어 진다.

 

2) 렌즈 사용법

볼록거울로 촬영한 정물 투영 사진들이다.(도판 p19-1)왼쪽은 강한 햇빛 속에 배열한 정물 사진이다.(도판 p19-2)바로 아래의 작은 사진 두 장은 어떤 물건들을 다른 것보다 뒤쪽에 배치할 경우 모든 물건에 대한 초점을 한꺼번에 맞추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거울- 렌즈의 심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울이나 종이를 이동시키면 초점을 변화시킬 수 있다. 위의 투영 사진에서는 거울이 유리잔과 커피 깡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도판 p19-3), 아래 사진에서는 과일에 맞춰져 있다.(도판 p19-4) 이것은 사진이 극복해야 할 문제점이지만, 광학을 이용하는 화가에게도 마찬가지다.

2. 시각적 증거

1)원근법 사용법 - 사례 1

 ◀ 어두운 방에서 거울-렌즈로 투영한 이미지다.  마치 회화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여기서는 흰 표면에 이미지를 투영했다. .(도판 p18)

2) 다 시점의 사례

*홀바인의 <대사들>(도판 p20-2) 의 세부에서 우리는 콜라주 구성과 비슷한 것을 보게 된다. 책 두 권의 소실점이 서로 다르다는 분석적 원근법에서 이는 눈높이가 다르다. 이것은 곧 다른 시간,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았다는 뜻이다. 그 점을 말해주는 것은 지구의다. 지구의는 너무도 '정확한' 구형이어서 손으로 그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개의 소실점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홀바인은 화가가 전통을 거부한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게 틀림없다. 그것은 거울-렌즈 콜라주 기법으로써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3) 작가 비교- 사례

불과 몇 년 동안 일어난 일을 다시 강조하기 위 해 이 두 그림을 비교해 보자.

위 그림 (도판 p21-2) 은 1423년 피렌체에서,다른 그림( 도판 p21-3) 은  1436년 브뤼헤에서 그려졌다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의 직물은 정교하지만 시실성이 떨어지며 전반적으로 밋밋하다. *반에이크(van Eyck)의 롤랭(Rolin) 대주교도 마찬가지로 두텁고 밝게 채색된 금색 실의 정교한 무늬의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주교의 옷은 주름 부분이 사실적이고,진짜 사람이 입은 듯한 인상을 준다. 주교의 초상은 대단히 개성적이며,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어느 얼굴보다도 '현대적'이다. 주교의 뒤편에 보이는 건축물도 정확한 구조물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 말기의 작품이 초기보다 휠씬 자연주의적이라는 것만 알았으나 이제 우리는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 즉 자연주의의 급격한 변화는 1420년대 후반이나 1430년대 초반에 플랑드르에서 일어났다. 이것은 광학과 연관된 현상이다.

 

4) 렌즈 사용 

- 사례 1

렌즈는 카바라조의  그림을 더 복잡하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림 (도판 p22-1) 는 그가 1596~98년에서 1601년 사이에 그린 '엠마오에서의 만찬'이다. 오른편의 베드로와 가운데 앉은 그리스도의 팔에서 놀라운 원근법적 효과를 볼 수 있다.  카라바조의 표현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한 불일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오른손은 베드로의 오른손보다 더 가까운데도 크기가 서로 같다. 게다가 베드로의 오른손은 왼손보다 더 커 보인다. 물론 의도적인 예술적 판단일 수도 있지만, 심도의 제한성 때문에 초점을 다시 맞추느라 렌즈와 캔버스를 이동시켰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무늬가 있는 식탁보를 흰색으로 덮었다는 점도 눈여겨보라, 아마 초점을 다시 맞출 때 무늬를 맞추는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 사례 2

광학을 이용하면 그림 (도판 p23-1) 처럼 인물에 비쳐지는 빛과 어둠의 대조(진한 명암법)가 뚜렸하다. *카냐치의 구성은 여타의 광학적 작품들과 아주 흡사하며, 인물들은 거의 같은 평면에 있고 공간의 물러남이 거의 없다. 이것 역시 렌즈의 심도와 관련이 있다. 카냐치는 한 명의 모델만을 써서 의자를 빙 돌아가며 다른 자세를 취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 사례 3

◀*프린스 할스의 1626~28년 작품 (도판 p24-1) 이다.  원근법으로 그려진 손은  감탄할만하다. 어떻게 그렇듯 대담하면서도 '올바르게', 거의 '진짜 같이' 그릴 수 있는 걸까?  또 모델은 이런 자세를 얼마나 오래 취할 수 있을까? 해골 역시 걸작이다. 이빨에 반사되는 빛까지 그럴듯하게 묘사하여   생생하고 섬세하다. 이 작품의 붓 아래에는 이미 렌즈 투영 그림의 확실한 형체 가 있었을 것이다. 이 그림에도 밑그림 같은 건 없고 오로지 붓 자극만있다. 광학을 이용한 아름다운 붓질이다.

 

5) 렌즈 사용의 오류

 – 사례 1

위 인물 (도판 p25-1) *로히르 반 데르웨이덴(Rogier van der Weyden의 공방, (1440경)의 어깨 크기와  오른쪽 여인 초상의 (도판 p25-2)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 (1524~27)의 어깨 크기가 큰 대조를 이루는 것은 흥미롭다. 파르미자니노의 인물은 강한 측면 조명 때문에 아주 '자연스러우며' 각 부분이 '사실적'으로 보인다. 즉 부인의 왼팔과 오른팔은 자체로 보면 올바른 비례를 이룬다. 그러나 한꺼번에 보았을 때는 머리에 비해 어깨가 너무 넓고 반 데르 웨이덴의 반 데르 웨이덴의 인물은 어깨가 너무 좁다.

 

 – 사례 2

* 샤르뎅의 유명한 작품'시장에서 돌아오는 소녀' (도판 p25-3) 는 1739년 파리 살롱전에 처음 전시되었을 때 찬탄을 받았다. 샤르댕의 걸작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채색이 탁월하다. 그러나 소녀는 키가 크고 팔이 아주 길어서 팔꿈치가 두개인 것처럼 보인다.

 

3. 배경과 전개

위 그림은 미술사의 과정과 광학의 사용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붉은색 선은 렌즈 기법이며, 녹색 선은 '눈 굴리기‘ 전통이다. 1430년 이전까지는 붉은색이 분홍색이어야 할 듯 싶다. 이 무렵에 광학이 회화에 도입되었는는 확실치 않지만, 거울과 렌즈는 분명히 존재했고  일부 화가들은 그 효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녹색 선이 붉은색 선에 접근하는 시기가 보이는데, 이는 화가들이 렌즈를 이용하는 기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시기를 말한다. 그 첫번째 경우가 1430년경의 *플랑드르였다. 다른 화가들도 그 결과를 보고 즉각 차용함으로써 그 새 기술은 널리 퍼졌다. 그 방법에 관한 지식은 길드 장인들 사이에 소문으로 전해졌다. 일부 예외는 있지만  소문이 서서히 퍼지면서 그 '비밀'은 북유럽에도 전해졌다. 그때 렌즈의 이미지를 화학 약품으로 고정시키는 방법(사진술)이 발명된다. 졸지에 화가의 솜씨가 전혀 필요 없어진 것이다. 이제 렌즈는 전보다 휠씬 빠르게 퍼져가지만, 아직 초기의 사진술은 부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25년이 지나자 사진술의 위력은 광범위하게 발휘된다.

선구적인 화가들이 렌즈와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려 애쓰는 가운데, 녹색 선은 붉은색 선으로부터 급격히 멀어진다. 이것이 현대 미술의 탄생이다. 다시 어색한 새로운 방식의 화풍이 부활한다.그러나 렌즈는 사진술(및 제도권 화가들)과 만나 여전히 맹위를 떨치다가 결국 영화와 텔레비전으로 이어진다. 미술과의 차이는 더 벌어졌다. 1930년경에 붉은색 선은 더 진해진다. 현실의 가장 생생한 묘사라고 간주되는 영화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4.결론

 

 1) 감상자 시각의 다시점

눈은 시점이 고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사물을 복수의 시점에서 때로는 모순적인 위치에서 바라 보고 이미지의 연상을 조합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두 눈을 지닌 인간의 시야다. 눈의 두 시점의 의혹은 필연이고 이와 달리 한 초점의 렌즈 시야는 궁극적으로 감상자를 수학적인 위치로 전락시키며, 공간과 시간 속의 한 점으로 고정시킨다.광학과 컴퓨터까지 활용하는 현대 미술은 이젠 하이퍼 리얼리티 작가처럼 사진보다 더 적극적으로 수단 방법 가리지않고 감성 없이 접근한다, 좀  감상자와 함께 공감할 수는 없을까?


 2) 나의 작품

인간은 반복된 이미지를 숙지하고 사물을 볼 때 눈의 시야에 몇 군데의 오류가 있더라도 자신의 암기되어 있는 이미지를 원본이 보다 먼저 받아들인다. 그리고 원본을 대충보고 자신의 이미지가 원본인 것처럼 재현된 이미지로 바꾼다.이런 오류는 미술사가나 작가가 쏟아내는 언어들로 교육적 이미지만 전달하고 관람자는  허구의 텍스트 이미지만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갖는다. 감상자는 텍스트가 중첩된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아! 모나리자>하면서 이미 숙지된 자신의 이미지만을  연상한다.교육에 의해 훈련된 복제의 이미지를 원본과 동일시하고 자신의 이미지로 받아들이며 감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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