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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를로 아쿠티스 (1991-2006) 유해 인천교구 성당 순례 중

작성자홍보분과장(소화데레사)|작성시간26.06.14|조회수92 목록 댓글 0



성 가를로 아쿠티스(1991-2006)
세계 청년대회 주보성인
축일 10월 12일



성 카롤루스 아쿠티스(Carolus/Carlo Acutis, 또는 가롤로/카를로 아쿠티스)는 1991년 5월 3일 당시 업무를 위해 영국 런던(London)에 머물던 이탈리아 출신 안드레아와 안토니아 살차노(Andrea e Antonia Salzano)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그해 5월 18일 런던의 고통의 성모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9월에 가족과 함께 밀라노(Milano)로 돌아왔다.
그는 가정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며 4살 때부터 유치원을 다녔다.
그리고 의무 교육 시기가 되자 밀라노의 산 카를로(San Carlo) 교육원에 입학해 초등 교육을 받았고, 3개월 후에는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어려서부터 조용하고 친절하며 개방적이고 쾌활한 성격을 지녔던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은
1998년 6월 16일
첫영성체를 하는 날이었다.
그는 성체성사에 참여하려는
강렬한 열망으로
첫영성체를 준비하며 요청했고,
그의 영적 지도자인
돈 일리오 카라이(Don Ilio Carrai)와
전에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
5월 29일)의 개인 비서였던
파스칼레 마키(Pasquale Macchi)
대주교의 특별 허락을 받아
평소보다 빠른 7살의 나이에
첫영성체를 받았다.
그의 첫영성체 예식은
밀라노 북쪽 레코(Lecco)의
페레고(Perego)에 있는
산탐브로조 앗 네무스(Sant’Ambrogio ad Nemus)
수도원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그의 상냥함과 따뜻한 유머 덕분에 친구들은 늘 그를 주목했고,
그는 친구들이 컴퓨터를 능숙하게 사용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컴퓨터 관련 자격증들을 취득하면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친구와 가족들에게 기꺼이 재능을 나누어주었다.

그는 방학이나 휴일에는 아시시(Assisi)에 있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평화를 누렸다.
그렇게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마을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와 성녀 클라라(Clara, 8월 11일)와
그들의 영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피조물을 존중하고
물질적인 집착에서 벗어나
가장 가난한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법을 배웠다.
천사적 사부인
성 프란치스코와 파도바(Padova)의
성 안토니오(Antonius,
6월 13일)의 모범은
그가 가난한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노숙자들,
이민자들을 위해
자선을 실천하도록 이끌었고,
그는 매주 용돈에서
저축한 돈으로 그들을 도왔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을
복음화하고 하느님께로
인도하고자 했다.


성 카를로 아티쿠스 영성의 핵심은 성체성사 안에서 주님을 매일 만나는 것이었다.
그는 종종

“성체는 하늘나라로 가는
고속도로/
나의 길입니다!”
라고 말했다.
첫영성체 후에 그는 매일 미사에 참례하기 시작했고, 복사로서 제대 위에서 봉사하였다.
파티마의 성모님 발현과
메시지에 깊이 감동한 그는
파티마의 어린 목동들을 본받아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작은 희생을
봉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학교 친구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성체성사를 알리는
사도직을 수행하고자 노력했고,
자신의 컴퓨터 능력을 활용하여
‘성체의 기적’을 주제로
국제 전시회를 기획하고 제작하였다.
이 전시회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교회의 인정을 받은
성체의 기적(약 136건) 중
일부를 소개하는 대규모의
사진 전시회였다.
그는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해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과
기쁨을 전하려는 사도직의 선구자였다.
그는 또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심을 갖고 있었다.
매일 티 없으신 성모 성심께
묵주기도를 봉헌하고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며
컴퓨터를 통한
복음화 계획을 구체화했다.
그는 또한 인간의 마지막 순간에
관해서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천국과 연옥에 대한
자료를 모아 웹사이트에 올리며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에
더 큰 관심을 두길 원했다.

그런데 그의 활발한 활동과 삶이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아 멈추게 되었다.
그는 2006년 10월 초에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
처음에는 단순한 독감으로 진단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다
가장 공격적인 백혈병으로 여겨지는
M3형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밀라노의 데 마르키 클리닉(De Marchi Clinic)에
입원했다가 상태가 악화해 몬차(Monza)의
산 제라르도(San Gerardo)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는 이 유형의 백혈병을 치료하는
전문 센터가 있었다.
그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도
평온함과 쾌활함을 유지했고,
이제 곧 하느님을 만나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행동과 말로써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를 치료하던 간호사와 의사들은
그가 자신의 질병과 고통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병원에서 한 사제에게
병자성사를 받은 그는
2006년 10월 11일 저녁에
뇌사 판정을 받았고,
다음날인 10월 12일 오전 6시 45분에
심장이 멈추며 선종하였다.
그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은
친구들과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즉시 퍼졌다.
그의 시신이 자택에 안치된 후
많은 사람이 찾아와
그에게 조의를 표했다.
장례미사는 10월 14일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세그레타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는 밀라노
서쪽 비엘라(Biella)의 테르넨고(Ternengo)에 있는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2007년 2월 그에게
깊은 감동을 준 성 프란치스코의
도시에 묻히고 싶다는
생전의 희망에 따라 아시시
시립 묘지로 이장하였다.
시복 절차가 진행되던
2019년 4월 6일에 그의 유해를
아시시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
성당으로 옮겨 투명한 유리관 안에
안치하였다


특히 성 카를로 아티쿠스는
모든 시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성체성사 안에
결코 우리를 실망하게
만들지 않는
구원이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깊이 묵상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그는 다양한 민족,
언어, 전통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포용과 평화를 증진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그는 전 세계 거리에서
마주치는 노숙자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하도록
사람들에게 호소하였다.
폭력, 전쟁, 심지어
가정 내에서조차 갈등이 만연할 때,
그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선택하고
성모 마리아의 모성적 보호에
맡길 것을 권고하였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모든 환경에서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었고,
그의 삶은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 빛나는
본보기가 되었다.
성 카를로 아쿠티스가
새로운 세대,
새천년 세대(Millennials)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는 우리에게 제한된
지상의 지평만 바라보지 말고,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되어
내세에서 완성될 현실을 향해
삶을 투신하도록
권유하기 때문이다.


성 가를로 아쿠티스,
모든 어린이들,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가를로 아쿠티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카를로 아쿠티스(10.12) - 가톨릭정보 - 가톨릭굿뉴스 https://share.google/UYFV6LEMoqagNwr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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