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法頂스님] 명상으로 일어서기
[법정法頂스님] 명상으로 일어서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쁜 일상사에 쫓기느라고,
자신을 한 웅덩이 속에만 가두어 놓고 그 속에서 부침한다.
그들은 끝내 넓은 강물의 넘치는 흐름 속에 합류하려고 하지 않는다.
버스와 열차와 선박 그리고 항공기와 같은
교통수단의 대형사고가 있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수많은 생명을 싣고 나르는
운전사와 기관사, 선장 그리고 기장은
평소에 운행기술뿐 아니라
정신적인 훈련도 함께 닦아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버스와 열차와 선박과 항공기는
순조로운 운행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갑작스런 돌발상황에 부닥치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항상 고도의 주의력과 순간적인 판단과
대처능력이 몸에 그림자처럼 따라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 어디에도 얽매임 없이
순수하게 집중하고 몰입할 때
저절로 평온해지고 맑고 투명해진다.
마음의 평온과 맑고 투명함 속에서
정신력이 한껏 발휘되어
고도의 주의력과
순발력과 판단력을 갖추게 된다.
명상은 그같은 정신력을 기르는 지름길이다.
명상은 특수한 계층에서 익히는 특별한 훈련이 아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놀고 자고
혹은 배우고 익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상은 우리들 삶의 일부분이다.
명상은 안팎으로 지켜보는 일이다.
자기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와 언어 동작,
생활습관들을 낱낱이 지켜본다.
여러가지 얽힌 일들로 인해
죽끓듯하는 그 생각과
생각의 흐름을 면밀히 주시한다.
지켜보는 동안은 이러쿵 저러쿵 판단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강물을 강둑 위에서 묵묵히 바라보듯이
그저 지켜볼 뿐이다.
명상은 소리없는 음악과 같다.
그것은 관찰자가
사라진 커다란 침묵이다.
그리고 명상은 늘 새롭다.
명상은 연속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지나가버린 세월이 끼여들 수 없다.
같은 초이면서도 새로 켠 촛불은
그 전의 촛불이 아닌 것처럼
어제 했던 명상은 오늘의 명상과 같은 것일 수 없다.
이와 같이 명상은 흐르는 강물처럼 늘 새롭다.
[법정法頂스님] 명상으로 일어서기
2026.06.22.
(우041-1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