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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 절기 풍습

6.10만세 기념일

작성자간동농부|작성시간26.06.10|조회수8 목록 댓글 0

6.10만세 기념일

순종이 사망한 날짜를 기점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이다

 

19264월 순종이 사망하자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이 연합하여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고, 학생층에서도 만세 시위를 추진하였다.

 

조선 공산당과 천도교 청년회, 그리고 학생 대표들은 순종의 인산일인 610일에 만세 시위를 하기로 합의하였다.

 

시위 준비 과정에서 천도교 청년회 측에서 격문을 인쇄하기로 하였으나 사전에 경찰에 발각되어 압수되었고, 조선 공산당 간부들도 체포되었다.

 

그러나 조선 학생 과학연구회를 비롯한 학생 조직은 발각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격문을 인쇄하고 태극기를 만드는 등 예정대로 준비를 진행하였다.

 

6105천여 명의 일본군과 경찰이 서울 시내를 경비하는 가운데, 학생들은 인산 행렬이 지나는 곳곳에서 격문을 뿌리면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일본 군경은 시위 현장에서 전문학교와 고등 보통학교 학생 등 2백여 명을 체포하였다.

 

전국에서 약 5,000여 명의 시위대가 연행되었고, 2차 조선공산당 탄압사건으로 확대되어 약 100여 명이 대거 검거되었다.

 

6·10 만세 운동은 학생들이 항일 민족 운동의 주체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자각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본질을 명확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학생들은 독서회와 비밀 결사 등을 만들고, 식민지 교육 정책에 맞서 동맹 휴학을 실행하는 등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한편,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은 이때의 협력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단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후 신간회를 창설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2020128<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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