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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산행

PCT 오리건주 Big Lake에 멈추다

작성자객꾼|작성시간26.06.14|조회수44 목록 댓글 0

비교적 따뜻한 밤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머문 곳이 그렇게 낮지만도 않은 1800쯤이었다



어제밤 벌려 놓은 숯덩이들 다시 끌어모아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인다
아직 매점에서 얻은 식량들이 제법 남았다
콩을 끓이고 감자 식량에 더운 물을 부어 12분 기다린 후 코펠에 부어 다시 볶는다
우리가 하는 방식이 어느것 하나 옳다고 말할 게 없다
그냥 대충 불리고 삶고 볶아서 먹는다
신기한 것은 밥과 김치가 그렇게 그립지가 않다는 점이다
씰데없는 바램은 창자들도 아는 모양이다



오늘은 8km 정도만 가면된다
축축한 장비들을 햇볕에 말려서 느긋하게 출발하자 하였다
햇살을 기다리며 불멍을 때리는 망중한도 한 재미다



햇살이 충분히 떠오르고 난 후 길을 나섰다
이곳도 온통 타버렸구나



다만 우리가 지나온 곳과 달리 이쪽은 거진 자연 복원된 모습이다
어린 전나무들이 온 숲 속으로 빽빽하다
그 너머로 오늘 우리의 목적지 Big Lake가 모습을 비친다
그 호숫가에 Youth Camp가 있는 모양이다



호수에 당도하니 너무나 살풍경한 모습이다
PCT 지도에는 식당표시가 있어 그런줄 알았는데 사람의 그림자도 찾기 힘들다



아마도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케빈형 휴양지인 모양이다
우리가 호숫가에 어정거리고 있으니 저쪽에 사람의 어련거림이 있다
말도 못 붙이고 저만치서 쭈뼛거리고 있는데 궁댕이가 엄청나게 큰 젊은 처자가 다가온다
온통 영어로 씨부려 제치는데 대충 들어보니 PCT라는 말이 나오고,
하이커 휴게소라는 말이 있다
둘 다 행색 초라한데다 하얀 수염마져 기르고 있으니 PCT 하이커가 맞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우리는 아무런 퍼밋이 없다고 하자(500마일 이하의 PCT를 걷는 하이커들도 별도 퍼밋이 있어야 된다고 지도에 적혀 있다) 그런건 자기가 다 있다고 하는 말투같다
표정에 미안함이 스며있는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다
여하튼 이 건물로 안내하는데 보니 PCT 하이커 우짜고 하는 글을 창문에 붙여 놓았다



우리를 안으로 안내 하더니 체크인 하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나가 버린다
찬찬히 둘러보니 이곳은 PCT 하이커들을 위해 공단에서 준비해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하는 일종의 휴게소다
진즉 문을 열어 두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한 표정이었던 모양이다
보급을 위해 종주자들이 미리 보내둔 소포들이 한곳에 쌓여 있고, 책에서만 읽은 하이커 전용박스엔 하이커들이 남겨둔 음식이며 장비들이 담겨 있다

보니,
세탁기, 건조기, 샤워, 화장실, 냉장고, 가스렌지, 가스 스토버 등이 구비되어 있고 다 무료다
먼저 식량 박스를 뒤져보던 중환은 음식이 있기는 한데 쥐들이 다 갉아 먹었다며 빈손으로 돌아온다
저놈이 배가 불렀구나
아무 봉지나 주워 쥐가 뜯어 먹으나 사람이 베어 먹으나 뭐가 다르냐는 표정으로 맛나게 먹고 있으니 저도 그 중 하나를 고르더니 따라 먹는다

우리는 그곳에 약 5시간을 머물며,
하이커들이 남기고 간 음식은 싹 다 먹어 치웠고(쥐들한테 미안타),
빨레, 건조, 샤워, 흰수염까지 밀어 깍았다



원래는 2km쯤 걸어가면 텐트장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실것을 추천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뱃시를 이곳에서 만나야 하고,
또한 텐트장으로 가면 30불 정도 지불해야 할 것인데 일을 만틀어 어렵게 할 필요가 있나
나의 주특기를 발휘하여 멋진 곳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호수가로 지는 일몰도 지켜 보았다
너무나 청명한 바람이 부는 곳이다
경봉 선사의 오도송조차 읖조리게 한다
淸風月上時 萬像自然明이라
내 마음이 이렇게 고요해 지고나니,
세상 모든 모습에 진리가 있더라
쉽게 말해 개눈에는 똥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는 말이다



몸 컨디션도 안 좋고,
아직 학생들의 채점이 끝나지 않았다며 두가지 안을 제시하는 뱃시의 카톡에 답했다

우리에게는 두통씩의 감자가 있고, 만땅으로 충전된 예비 밧데리가 있고,
빨레와 샤워는 모두 해결한 상태이니 하루를 여기 더 머물러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제 내일 뱃시를 만나,
그의 집으로 가서 몇가지 정리를 해 줘야 하고,
그리고 우리를 공항으로 데려다 주면,
공항에서 밤을 새우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그랑 파라디소 국립공원 안으로 걸어가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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