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가사문학](2026. 여름호)서지월시인의「시가 있는 만주기행」미당 서정주 시 '滿州에서' 현장을 가다

작성자미인송|작성시간26.06.16|조회수6 목록 댓글 0

■■[오늘의 가사문학](2026. 여름호)서지월시인의「시가 있는 만주기행」미당 서정주 시 '滿州에서' 현장을 가다

미당 서정주 시「滿州에서」현장을 가다

서지월 (시인.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공동의장)

한민족 오천년 역사의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되는 미당 서정주시인이 만주에 대한 시를 읊었다는 것, 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미당 서정주시인이 일제식민치하 만주 간도에 가서 살았다는 것, 이는 북만주에 가서 살았다는 청마 유치환시인과 괘를 같이 한다.
적어도 한국의 시인이라면, 오천년 한민족 역사의 시원의 땅인 만주땅을 밟아보지 않은 시인이라면, 진정한 한국 시인이라 말할 수 있으리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웅혼한 우리 민족의 기상과 이 스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백두산을 필두로 광활한 그곳의 흙과 하늘은 우리의 것이었다.
이를 시로 읊은 시인이 있었으니 역시 미당 서정주시인이 있었던 것이다.

부연하자면, 중국 조선족시단에서는 몽롱시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한국시단에서는 낯선 말임엔 틀림없다. 풀이하자면 글자 그대로 몽롱한, 불분명한 상상력의 조합으로 해석된다. 몽롱시를 새로운 시도나 기법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 현대시 관점에서 보면 새롭다기 보다 그저 그런 제스츄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정주시인은 시는 늘 새로워야 된다고 했고 황동규시인은 ‘시는 구체적일 때 진실과 만나다’ 고 했고 보면 어떠한 부류나 이즘이 최상일 수는 없을 것으로 안다.

그럼, 서정주의 시 <滿州에서>를 보자.

참 이것은 너무 많은 하눌입니다. 내가 달린들 어데를 가겠읍니까. 紅布와같이 미치기는 쉬웁습니다. 멫 千年을, 오ㅡ 멫 千年을 혼자서 놀고온 사람들이겠습니까.

鍾보단은 차라리 북이있읍니다. 이는 멀리도 안들리는 어쩔수도없는 奢侈입니까. 마지막 부를 이름이 사실은 없었읍니다. 어찌하야 자네는 나보고, 나는 자네보고 웃어야하는것입니까.

바로 말하면 하르삔市같은것은 없었읍니다. 자네도 나도 그런것은 없었읍니다. 무슨 처음의 복숭아꽃 내음새도 말소리도, 病도, 아무껏도 없었습니다.

ㅡ서정주 제2시집『 귀촉도』 에서, 시「滿州에서」전문. (당시 표기를 그대로 차용했음을 밝힘)

한국에서는 단군 이래 최대의 시인이라는 찬사와 함께 '시의 정부'라까지 칭하며 어떤 말을 가지고도 마음대로 놀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독보적인 시인으로 접신의 경지에까지 이렀다 하는 서정주의 시이기도 하다.
미당 서정주라는 대시인의 수제자인 황동규시인 역시 고은, 박재삼시인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시인이다. 황동규시인도 미당 서정주시인 팔순잔치 행사장에서,
ㅡ"이 땅에 未堂을 읽지 않고 詩를 쓴 사람 나와 봐라!"
라고 역설했고 보면, 전무후무한 시인임엔 틀림없다.「이 땅(한국문단)에 미당을 읽지 않고 시를 쓴 사람 나와 봐라!」이 말뜻은 한국에서 시를 쓴다면 미당 서정주 시에 영향 안 받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또 미당의 시를 읽지 않고 어떻게 시인이라 자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滿州에서>라는 시 역시 과연 어떻게 쓰여졌는지 분석검토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첫 구절에서 '참 이것은 너무 많은 하눌입니다. 내가 달린들 어데를 가겠읍니까.'라고 읊었다. '너무 많은 하눌'이란 그만큼 만주땅이 광활하다는 것을 하늘을 가져와 표현한 것도 예사의 표현이 아니다. <내가 달린들 어데를 가겠읍니까> 역시 만주땅이 너무나 광활한 벌판이기에 가도가도 맨 그 자리 머물러 있는 것과 다름아니라는 말이다.
도입부에서부터 이렇게 겉으로 보기엔 쉬운 산문문장으로 널어놓은 것 같이 보여도 未堂 특유의 필치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어지는 구절은 <紅布(홍포)와같이 미치기는 쉬웁습니다>인데 紅布(홍포)''란 붉은 옷감이니 붉은 비단으로 해석되는데 의미하는 바는 눈에 잘 띄는 즉, 유혹되기 쉽다는 뜻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만주벌판을 바라보니 감개무량 하다는 의미 그 자체로 보여진다. '멫 千年을, 오ㅡ 멫千年을 혼자서 놀고온 사람들이겠습니까.'에서는 몇 천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도 그대로 광활한데 '혼자서 놀고온 사람' 즉 누구나 혼자 살아온게 아니라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나라를 형성하며 더불어 역사를 가지고 살아온 땅이라는 것이다. 그런 만주땅인데 벌판은 변함없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으니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이 '鍾보단은 차라리 북이있읍니다.'라고 읊었는데, '종'보다는 '북'이라 했으니 북소리가 웅장하고 멀리 울려퍼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니 만주벌판의 웅장미를 표현하자면 '종'보다는 '북'에 비유될 수 있으며, '있읍니다'라는 어미에서는 그만큼한 큰 울림의 도도한 역사가 존재한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또한 '이는 멀리도 안들리는 어쩔 수도없는 奢侈(사치)입니까.'라 의문형으로 처리했는데 너무나 광활하기에 멀리서는 들리지 않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奢侈(사치)'라는 말이 도입됐는데 '奢侈(사치)'란 꾸밈 또는 매력포인트가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멀리서는 안들리는 너무나도 넓고 끝없는 만주땅이 사치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렇게 함부로 쓸 수 없는 과감한 단어 '奢侈(사치)'를 가지고 와 마음대로 갖다 붙이면 좋은 시어(詩語)로 자리매김 되는 것이다.

다음 이어지는 구절이 '마지막 부를 이름이 사실은 없었읍니다.'인데 만주땅이 너무나 광활하여 끝도 안보일정도로 펼쳐져 있으니 저 멀리까지 소리쳐도 들리지 않으니 '마지막 부를 이름' 도 아예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하야 자네는 나보고, 나는 자네보고 웃어야하는것입니까' 이 대목을 보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서로 알아볼 수도 없듯이 수인사 나누며 서러 아는 척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만큼 웅장하며 광활한, 그리고 감개무량한 만주땅임을 여러 의미를 부여하는 직조해 낸 것이다.

마지막 연이 되는데 '바로 말하면 하르삔市같은것은 없었읍니다.'를 보면, 이렇게 끝도 없이 넓은 벌판은 현재도 그러하지만 '하르삔市같은' 즉, 도시문명이나 사람들에게 새롭게 형성된,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그대로인 벌판 그 자체뿐이었다는 것이다. '자네도 나도 그런 것은 없었읍니다.'에서는 태초에 인간도 존재하지 않은 순수한 대자연 원시의 세계라는 것이다.

'무슨 처음의 복숭아꽃 내음새도 말소리도, 病도, 아무껏도 없었습니다.'라고 끝을 맺고 있는데 이 구절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먼저 '처음의 복숭아꽃' 이런 표현은 未堂 徐廷柱만이 구사해낼 수 있는 재간으로 보여지는데 '처음의 복숭아꽃' 즉, 처음으로 유혹이라는 것도 그리고 인간도 병도 없는 원시 그자체의 순수원시세계가 만주땅이라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는 듯하고 간직하고 있는 만주땅이라는 것이다.역시 현실세계를 직시하면서 근원은 원초적인 생명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는데 이 시의 핵심이 있다 하겠다.

서정주시인은 1939년 만주로 가서 양곡주식회사 간도성 연길시지점에 경리사원으로 입사해 용정출장소로 전근 갔으며 이듬해인 1940년 봄에 귀국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만주에서 지내며 경험했던 사연을 가지고 또 한 편의 시로 쓴 게 있는데 한국에서는 대단한 주목을 받고 있는 <新婦>라는 작품이 있다.

新婦는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新郞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新郞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新婦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 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 년인가 오십 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新婦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新婦방 문을 열고 들여다 보니 新婦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ㅡ서정주 제6시집『 질마재 神話』 에서, 시「新婦」전문.

미당 서정주시인이 생전에 필자에게도 이 시 <新婦>에 대해 피력한 적이 있는데, 만주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재구성해 본 작품이라는 것이다. 물론 들은 이야기이니 내용으로 보면 다를 바 없겠지만 미당 특유의 문체라는데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나 그 내용을 가지고 와서 쓴다고 시의 품격을 유지하는 좋은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미당 서정주의 시 <동천(冬天)> 을 두고 한국 현대시사 100년의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하는데 어떤 이는 <新婦> 또한 한민족 고유정서를 읊은 최고의 수작으로 보기도 한다. 알다시피 설화를 배경으로 읊었는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야 한 둘이겠는가.

주안점은 그 설화의 배경 속에서 건져낸 정신사가 관건인 것이다. 이 설화는 민간에서도 많이 전해져 온 것으로 아는데 즉 우리 민족만이 갖는 고유정서, 즉 고유풍습이 살아숨쉬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만이 갖는 고유정서란 무엇인가. '사십년인가 오십년'인가 하는 세월이 지나도 신부가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앉아 있'어야 하는 말하자면 평생 수절하며 살아야 하는 과거 우리 한국 여인들의 정조관념과 한(恨)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고유풍습이란, 신부가 '초록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기다리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 ' 의상이 신부를 상징하는 색채미인 것이다. 한 편의 시로서의 역할을 뛰어넘어 우리민족의 얼이라 할 수 있는 고유뮨화를 보는듯 하다.

서정주 이전 이런 시를 아무도 시도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느 시인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서정주시인만이 해낼 수 있었던 한국시 위상을
ㅁ♧♣︎♧♧♧♧♧
드높인 작품으로 읽힌다.
문체 역시 맛깔스러운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라는 이런 평범한 말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찰진 문장을 구가하는데 한 몫해내고 있는가 하면, 마지막 행에서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가 전달의 의미가 아니라 되받아서 '초록 재는 초록 재로 다홍 재는 다홍재로' 분리되어 '내려앉아 버렸다'는 이 놀라운 시각적 표현을 보라. 한 구절도 예사로 다루는 일 없이 능란한 수사(修辭)의 잔치를 벌이기도 하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그 민족의 고유정서라면 이 시 <신부(新婦)>는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먼 훗날에도 한민족의 긍지를 손색없이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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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시인은 1939년 만주로 가서 양곡주식회사 간도성 연길시지점에 경리사원으로 입사해 용정출장소로 전근 갔으며 이듬해인 1940년 봄에 귀국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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