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가사문학](2026' 여름호)서지월시인의「시가 있는 만주기행」(40)길림 동단산을 가다

작성자미인송|작성시간26.06.17|조회수6 목록 댓글 0

■[오늘의 가사문학](2026' 여름호)서지월시인의「시가 있는 만주기행」(40)길림 동단산을 가다

 

길림 동단산을 가다

서지월 (시인.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공동의장)

 

 

동단산은 길림시 시가지를 관통하며 흐르는 송화강변에 있다. 길림시조선족문화예술관과 도라지문예잡지사, 조선족백화점이 있는 시가지에서 송화강대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굽이 돌아가면 나타나는데 굽어돌기 전 맞은 편에 우뚝 솟은 산이 하나 보인다. 그 유명한 용담산성(龍潭山城)이다. 일명 고구려산성, 부여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단산성은 고구려 시조왕이며 광개토대왕에게는 18대 할아버지가 되는 주몽왕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곳이며, 광개토대왕은 18대 할아버지의 고향땅까지 회복하러 이곳 용담산성까지 북진해 온 것이다. 할아버지의 땅을 회복하러 온 광개토대왕의 피끓는 혈육지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이 고구려 제2의 도읍인 압록강변 집안땅에서 여기까지 북진정벌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바로 이 용담산성이다.

동단산은 바로 남쪽 야트막한 산으로 발 아래로 절경이라 할 수 있는 송화강과 너른 벌판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굽이쳐 흐르는 송화강 강변에 어머니의 젖무덤 같이 볼록한 산이 하나 솟아있다.

 

광개토대왕이 26세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이곳까지 말갈퀴 휘날리며 북진해 영토를 확장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면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을 일컬으며 동성성왕의 고향땅이 되는 셈이다. 바로 주몽의 어릴적 고향이 동단산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어머니 유화부인과 알에서 태어났다는 주몽이 22세까지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위인전을 통해서 주몽이 알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인 유화부인과 22세까지 함께 살다가 그해 금와왕과 대소왕자의 감시를 피해 동부여를 탈출해 송화강 즉 엄수대수를 따라 남하했다는 그 시발지가 되는 곳이다.

 

송화강대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굽이돌아 15분가량 들어가면 시골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길거리 간판도 그러하지만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다. 택시 한 대가 겨우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과 나무판자로 울타리 한 흙집, 그리고 뛰놀고 있는 닭, 염소, 오리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택시에서 내려 도라지 잡지사 전경업 주필과 한국에서 동행한 대구시인학교 제자들과 함께 마을의 비좁은 골목길을 들어서서 산언덕을 향해 오르니까 먼저 들국화·마타리·초롱꽃들이 잘 왔노라고 반겨주었다.

 

뒤쪽 산길로 올라 앞쪽 산길로 내려가는 코스의 산길이었다. 정상에 오르니 길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아래 변함없이 흘러오고 흘러가고 있는 송화강의 물굽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보면,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는 고려 말기 길재의 회한가가 떠올려졌다.

 

내려서는 산중턱의 집채만한 바위에는 '동단산(東團山)'이란 대형 붉은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곳이 부여국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실제 유적이 발굴되고 있으며 속칭 '남성자(南城子)'로 불리는 유적지이다.

온갖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나무 한 그루마다 스며있을 옛 우리 민족의 숨결이 잎새들의 출렁거림 속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산능선의 나무숲을 거의 다 빠져나왔을 무렵, 오래된 기와조각을 발견했다. 손에 받아쥐고 보니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 가버린 역사의 버려진 흔적에 불과했지만 필자와 같은 음력 5월 5일 단오날 태어났다는 주몽의 끓어오르는 피의 순환이 내 손바닥 위에 전율해 오는 것 같았다.

 

아아 길림!

2000년전 까마득한 옛날

광개토대왕도 태어나지 않은

그 까마득한 옛날

해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에

알로 태어난 주몽

마굿간, 들판, 숲속으로 버려져

다시 그 알을 방안에 두었더니

세상의 모든 햇빛 이곳에 비추어

드디어 태어난 주몽

어머니 유화부인과 함께 살던 곳

400년 후, 광개토대왕이 시조 주몽왕

옛땅 찾으러 북진해 온 이곳 길림!

옛날은 가고 없고 난데없는

붉은 바탕의 중화인민공화국 깃발이

하늘 높이 펄럭이며

자기들땅이라고 우기더라니까

 

- 서지월 시 「다시, 길림에 와서」전문.

 

'어찌된 것이냐 /한줌 흙 풀 한 포기 /구르는 돌멩이마저 말 없으니 /여기가 내 아버지의 아버지 땅 아니더냐 /벌판을 휘둘러 온 저 바람마저도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그냥 불고 간다 /어찌된 것이냐 /강과 언덕아 나무들아 /분명 이곳은 낯선 땅이 아닌데 /저 광개토대왕의 말발굽소리 /이곳에까지 닿아 북벌 향해 /북소리 울렸다 하는데 /어찌된 것이냐 그 옛날 /유화부인과 주몽이 살았다는데 /활 잘 쏘는 주몽의 화살은 /어디 가고 /물 긷던 동네 아주머니들 /물항아리는 어디에서 쉬고 있는가 /송화강 물 길어 저녁밥 지으면 /지붕 위론 새하얀 박꽃 피던 /시간마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아, 이리도 내 마음 /답답해져 오는 것은 휘돌아 흐르는 /저 강줄기 벌판을 향해 /함께 흐르지 못하기 때문인가' (서지월 시 <동단산성에 올라> 전문) 이렇게도 읊어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후예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찾을 길이 없다. 한 나라의 흥망과 함께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이곳에도 대부분 중국 한족들이 살아가고 있을 뿐 고구려의 후예들을 찾을 길 없다. 조선족이 있다 해도 이는 1945년 8. 15 광복 이전 한반도에서 건너가 이주한 조선민족이니 말이다.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마을과 인접한 산밭에는 주로 감자, 콩, 옥수수 등 잡곡들과 원추리꽃이 눈에 띄었다. 길가에는 아무도 손대는 이 없는 대마초가 무성했다. 마을앞에는 철길이 놓여있어 기차가 지나가며 굉음을 질렀는데 송화강 철교를 가로질러 위로는 장춘, 하얼빈, 아래로는 돈화, 연길, 도문으로 이어지는데 그 기적소리는 가버린 역사의 시간을 다시 깨우는 듯이 요란하게 들렸다.

(계속)

 

<사진 자료>ㅡㅡㅡㅡㅡ

◆'동단산(東團山)'이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동단산 중턱 바위 모습. 옛 부여국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실제 유적이 발굴되고 있으며 속칭 남성자(南城子)로 불린다.

◆'동단산'의 유래를 말해주는 비문이 새겨져 있는 비석 앞에서, 한국 서지월시인과 길림 도라지잡지사 전경업 주필.

◆주몽의 고향마을로 불리는 '동단산성' 전경.

◆동단산성에서 내려다 본 길림시가지의의 풍경.

◆'동단산성'의 유래를 말해주는 비문이 새겨져 있는 새 비석앞에서, 한국서지월시인과 길림조선족문화예술관 전경업관장.

◆광개토대왕이 정복한 용담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송화강과 동단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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