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원의 어부사(漁夫辭)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것이요(滄浪之水淸兮 可以濁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이 말은 기원전 3세기 초(楚) 나라 대시인 굴원의 어부사에 나온다. 쉽게 말해서 세상 물이 더러우면 내 발가락이나 씻겠고, 세상 물이 맑으면 의관(衣冠) 정제하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 김충열 동양철학 은사님 생각난다. 그분은 '동양에서 절개를 논하려면 반드시 굴원의 어부사(漁夫辭)를 알아야 한다'라고 하셨다. 연산군 때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유명한 김일손의 호가 탁영(濯纓)이며, 1950년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 씨의 호가 창랑(滄浪)이라고 말씀하셨다. 탁영(濯纓)이나 창랑(滄浪) 모두 굴원의 어부사(漁夫辭)에서 유래한 거라면서 자신의 호(號) '미쳐도 맑게 미친다'는 뜻의 청광(淸狂)도 소개했다. 나는 '미쳐도 맑게 미친다'는 그 말이 너무 맘에 들었다. 그래 즉석에서 청광(淸狂)이란 호를 저에게 물려달라고 요청했고, 스승이 승낙해 주셨다.
굴원(屈原)은 주나라 말기 전국시대 초나라의 왕족이다.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뛰어나 회왕(懷王)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삼려대부로 초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헌령(憲令)을 기초하였다. 그런데 상관대부 늑상이 그걸 가로채려 하여 거절하자, 늑상이 '굴원을 학식이 빙자하여 믿고 대왕을 업신여기며 무엇인가 딴마음을 품고 있는 듯하다' 하고 회왕에게 참소하여 조정에서 쫓겨났다. 그 후 초나라는 6백 리의 땅을 베어 주겠다는 진나라의 미끼에 속아 제나라와의 친교를 끊어 끊임없이 침략을 받다가,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가 드디어 초나라 수도 영을 함락시키고 선왕의 무덤인 이릉(夷陵)을 불태워버리니, 이 소식을 듣고 굴원은 '어부사'를 남기고, 분연히 음력 5월 5일 돌을 품고 멱라수(후난 성 상수의 지류)에 몸을 던져 순국(殉國)하였다. 그때 굴원의 나이 62세 때다.
지금 후난 성 도강현 굴원이 투신한 멱라수 옆에 그의 무덤과 사당이 세워져 있다. 굴원이 죽은 음력 5월 5일은 단오절(端五節)이라 하는데, 매년 이 제일(祭日)이 오면 사람들은 뱃머리에 용머리를 장식한 용선(龍船)의 경주를 성대히 벌이고, 갈댓잎으로 싼 송편을 멱라수 물고기에게 던져 주고 있다.
내 나이 이제 팔십 둘이다. 굴원 보다 20년 오래 살았다. 그동안 세상이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욕 할 때 홀로 박정희 대통령 지지하여 고려대에서 외국 언론과 인터뷰했고, 광주 5.18 사태 막아낸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 은거할 때 홀로 찾아갔고, 야당 언론플레이에 속은 군중이 박근혜 대통령 비난할 때 홀로 편지를 썼고, 광화문 세력이 박근혜 탄핵시킨 검찰총장 윤석열에 열광할 때 홀로 딴 사람 지지했다. 네 번 다 고독했다. 2025년 연말에 굴원의 어부사(漁父辭)를 다시 읽어본다.
어부사(漁父辭)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담(江潭)에서 노닐고 못가를 거닐면서 시(詩)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해 있었다. 어부(漁父)가 그를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닌가? 어인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렇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추방을 당했소이다.'
어부(漁父)가 이에 말했다.
'성인(聖人)은 사물에 얽매이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을 따라 옮기어 나가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왜 그 진흙을 휘젓고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며,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으면 왜 그 술 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를 마시지 않고, 무슨 까닭으로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소?'
굴원이 이에 대답하였다.
'내 듣기로, 막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관(冠)을 퉁겨서 쓰고, 막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하였소이다. 어찌 몸의 반질반질 깨끗한 곳에 외물(外物)의 얼룩덜룩 더러운 것을 받겠소? 차라리 상강(湘江)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배속에 장사(葬事)를 지낼지언정, 어찌 희디흰 순백(純白)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쓴단 말이요?'
이에 어부는 빙그레 웃고는 배의 노를 두드려 떠나가며 노래를 불렀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것이요(滄浪之水淸兮 可以濁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그리고 떠나가고 굴원은 다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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