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말씀 5번째

작성시간11.03.13|조회수15 목록 댓글 0

사순절 말씀 제 5 일

 

본문 : 마5장 39-48절

제목 : 사랑의 가르침

 

성경은 인간의 문자로 기록한 율법적인 말씀이므로 이 율법적인 말씀 속에서 진리와 영생을 찾아 우리 심령이 먹음으로 영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속에서 율법적인 속성을 갈라내고 사랑의 속성인 복음(말씀)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이 말씀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악한 자는 무엇인가? 선은 한분뿐인데 그렇다면 악한자란 사단이 분명한데 사단을 대적하지 말라고 하니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아이러니한 말씀이다.

 

그러나 여기서 영해를 할 때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악한 자”란 사단이라고 보지 말고 율법의 정죄하는 속성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율법의 자체는 선한 것이지만 율법은 정죄의 속성이 있고 이 속성은 복음을 대적하는 속성이 나오기 때문에 “악한 자”라는 것이지 율법전체가 악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율법 자체는 선하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고 있지만 그 율법속에서 복음을 대적하는 정죄하고 판단하는 율법의 속성은 “악한 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의 신령한 영적인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지니 좀 표현력이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의 날카로운 검으로 갈라 쪼개어 영과 혼과 육을 갈라버리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선과 악의 대조적인 역학 관계로 “오른편 뺨을 치는” 것은 악이요 “왼편도 돌려 대며”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십자가의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죽어야 사는 속성으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어져서 열매를 맺는 것이 십자가의 도로 죽어야 사는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을 완성하라(40-42)

그래서 다음절에서 율법의 속성과 복음을 대조해 주신다.

[마5: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마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말라

 

이 말씀이 원하는 영적인 상태는 육성이 죽고 칠복의 심령을 가진 자만이 행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믿음을 가진 자로서 첫째부활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

이것은 인간의 차원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차원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태가 되려면 성령을 받았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40절의 말씀을 영적으로 풀어보면 여기서 속옷과 겉옷의 차이는 영적으로 속사람과 겉 사람과 차이고 더 나아가서는 율법과 복음의 차이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끊임없이 율법과 복음을 대조해주시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정죄의 속성과 복음의 속성을 계속적으로 비유로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복음)으로 악(세상, 정죄)을 이기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부터 율법과 복음을 비유하는 것을 살펴보자?

 

그러므로 속옷은 복음을 뜻하는 말이고 겉옷은 율법을 말하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는 우리의 심령에 칠복의 심령을 가져야 하지만 복음으로만 심령이 채워져 있어도 안 되며 또 율법만으로 채워져 있어도 안 되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에는 율법과 복음이 협력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만인 제사장 시대에 살기 때문에 제사장 복을 입어야하는데 속옷(복음)은 (계19:8)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며 겉옷(율법)은 믿음의 모양을 내는 치장일 뿐만 아니라 속옷을 보호해야하는 것이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이다.

즉 속옷을 가지기를 원하는 자에게 겉옷을 가진다는 것은 복음의 완성으로 제사장 에봇을 완성하여 (계20:6)의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여기서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원리가 같은 복음과 율법의 대조를 말하는데 오리는 십리의 절반인데 십리가 천국의 완성이라면 오리는 절반밖에 가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며 또 다른 말로는 “오리”란 율법을 말하는 것으로서 율법으로는 절반의 신앙을 가진 상태이기 때문에 “십리” 즉 완전하게 복음의 심령상태가 되도록 같이 동행하여 협력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구원을 이루도록 율법을 완성하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말라” 여기서도 문자적으로는 나에게 무엇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영적으로 보면 “네게”라는 말은 이미 칠복의 심령을 가진 나에게 이미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말은 나에게 하지만 영적으로는 성령에게 말하는 영적 원리와 같은 말이 된다.

 

다시 말해서 내 심령 속에 성전삼고 계시는 성령님이 역사하여 “구하는 자에게 주” 는 것으로 즉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에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십리까지 동행해서 겉옷(율법)과 속옷(복음)을 전해주라는 영적인 비유인 것이다.

 

이웃사랑과 온전 하라(43-48)

 

[마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율법적인 43절의 말씀은 인간의 육성은 팔이 안으로 굽게 되는 것처럼 율법의 속성도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을 이렇게 대조적으로 비유하면서 반복설명을 하고 있는데도 영적인 눈(말씀)을 가리고 있는 수건(율법)으로 가려져서 말씀을 보아도 보지 못하게 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해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단의 전술이요 술수인 것이다.

 

이렇게 복음과 율법의 역동적인 관계가 율법은 정죄의 속성으로 역사하여 책망하지만 복음은 사랑의 속성으로 용서와 화합을 이끌어내면서 그 심령의 상태가 죽어야 사는 영적인 원리를 말하면서 “원수를 사랑하며”“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면서 즉 육성적인 마인드와 율법의 속성인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들을 사랑(복음)안에서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44절의 복음은 결론적으로 5장에서 말하는 칠복의 심령을 말하며 이런 상태는 사도행전7장에 나오는 스데반을 보아 알 수 있다.

[행7:59-60]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즉 칠복의 심령 상태가 되었을 때만 아들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고 말한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이치가 선과 악이 공존하면서 주님은 공평한 분이시고 악인이나 선인이나 다 같은 기회를 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심령을 다시 한 번 거론하시는 것이다.

[마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천국은 행함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처럼 우리의 중심인 마음에 천국(칠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고 나서 행함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결론적으로 [요일4:15-16]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성령 안에서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성경말씀에서 끊임없이 율법과 복음과 세상과 하나님과 마귀의 속성을 반복적으로 말씀하는 것은 마5장에서 내 십자가를 지고 칠복의 심령을 가진 자로서 주님에게 인정을 받게 되어 세상의 소금의 맛을 내고 또 빛을 등경위에 두어 성령은 나를 통해서 복음(빛)이 전파되어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광야의 길을 가고 있는 자에게 즉 율법적인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 심령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입술로만 시인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즉 마음의 옥토 밭(잠재의식)에 칠복의 심령을 가진 성령을 받은 자가 되어야 내게 저안에 저가 내안에 거하여 주님과 하나가 되어 먹고 마시는 관계로서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심령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과 진리의 성령이 역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진리라는 영맥으로 하나가되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칠복의 심령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인 칠복의 심령을 갖기를 원하는 성령이 역사하는 영적 원리를 보지 못하면 이 세상에 인간 속에서 성령님이 실질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역동적인 능력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영생의 하나님을 느끼지도 못하고 인도함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예수로 보이지 않으면 생생하게 역동적으로 살아있는 영생의 말씀(예수)을 보지 못하고 껍질(가라지, 율법)만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말씀이 예수님으로서 신령 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영적인 원리와 성령의 역학적인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경을 문자적이나 역사적인 관점과 메시지로 전하려고만 연구하고 있거나 아니면 신비를 쫒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말씀의 실체를 보지 못하여 칠복의 심령을 갖지 못하고 말씀을 초등학문으로 해석하여 허탄한 율법적인 이야기를 쫒아가서 사단에게 빌미를 주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5장에서 말하는 핵심은 이 땅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적 같이 땅(내 심령)에서도 이루어 지리이다”의 말씀처럼 천국은 우리의 심령에서 칠복 심령으로 이루어져야 살아서도 죽어서도 천국의 아들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사순절 기간 동안 말씀묵상을 통해서 심령성전에 칠복의 심령을 가지고 주님과 더불어 살며 축복 받은 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감사합니다.

5번 째날

목자교회 까페http://cafe.daum.net/77991491

-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 진리보수 목자교회 담임목사 박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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