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50년이 벌써 지난 1973년에 15사단 화학대(참모부; 화천명월리)에서 근무할 때, 뒷산(사진에서 굴뚝 귓편) 언덕에 "알아야 산다! 화생방"이라는 글을 하얀돌로 박석하였던 글귀를 생각하고, 이 글의 제목을 알아야 산다 라고 했습니다. -dhleepaul
호 6:1-3-여러번 반복하여 익히시고 구절을 요해하시기 바랍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歸向)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打傷) 싸매어(纏裹;전과, 얽어서 포장하다)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蘇醒)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務要(무요, 중요하게 여기는 일 또는 임무)여호와를 알자 힘써(竭力追求)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出現)은 새벽빛 같이 어김없나니(確)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滋潤)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제임스 패커(James Packer)'라는 유명한 신학자, 목회자가 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27년 동안 교수 및 목회사역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입니다. 이 책에서 여섯 가지를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으신다는 주장을 합니다.>
① 하나님의 생명은 변하지 않는다.
피조물들은 시작과 끝이 있지만,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 없으시다. 하나님의 생명은 불변의 기준이다. <늙지도 않으시고, 약해지시지도 않고, 더 강해지시도 않는다. 이미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질병, 노환, 역경을 거치면서 좋았던 성격도 나빠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성품(인자, 자비, 긍휼)은 변하지 않으신다.
③ 하나님의 진리를 변하지 않는다.
이는 성경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읽은 내용은 언제나 바르고 참된 것입니다.
④ 하나님의 구원의 길은 변하지 않는다.
⑤ 하나님의 목적들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역사의 굴곡 앞에서 좌절하시거나 전에 작정한 일을 수정하시는 일이 없다.
⑥ 하나님의 아들은 변하지 않으신다.
히브리서 13장 8절 “에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주님은 '영생은 참 유일하는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성숙한 삶도 예수님을 아는 것에서 완성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줍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면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안다'는 말은 지식이 아니라 체험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지식으로, 체험으로, 의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숙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갑니다. 우리의 바르고 참된 삶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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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열쇠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분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열쇠는 -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사도행전 3:19 참조).
죄에서 돌이키기 위해 우리는 죄로부터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오직 예수 안에만 구원이 있습니다(행 4:12).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를 영접합니다: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그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죄 사함을 제공했으며,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인 지식에 이르는 길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예수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으므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 14:9-10; cf. 요 17:6). 예수가 행하신 모든 일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요 5:19). 예수가 하신 모든 말씀은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요 12:49).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기 위한 또 다른 핵심 요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약속과 뜻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긍휼 많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사랑과 충성이 많으신 하나님"(시편 86:15)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두려우시며 편애하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않으시는"(신명기 10:17)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불멸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왕"이시며 "세세토록 존귀와 영광"(딤전 1:17)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것은 성경에서 읽은 것에 순종하겠다는 우리의 결심을 통해서도 옵니다. 우리는 선한 행실로 구원받았으며(에베소서 2:10), 주님께 순종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가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맛을 세상에 전하고 어둠 가운데서 빛을 비추기 위해 계획된 소금과 빛입니다(마 5:13-14). 예수 자신도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마 22:37-40).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열쇠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기도하고, 다른 신자들과 교제하고, 신실한 예배를 드리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일에 헌신할 것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성령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성령에 대한 세상의 무지와 제자들의 지식을 대조하셨다: "세상이 그를 볼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함이니라. 그러나 너는 그를 알지니 그가 너와 함께 거하시고 네 안에 계시리라"(요한복음 14:17). 하나님의 영을 통해 우리는 "아들 신분에 입양"됩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느니라"(로마서 8:15-16). 그리스도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의 삶은 하나님으로 충만해질 수 있으며, 우리는 그분을 진정으로 아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당시 백성들에게 외쳤던 말이 바로 '여호와를 알자'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고, 그것이 있어야 모든 것이 풀어짐을 선포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풀리지 않은 문제의 현장에서 우리는 호세아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하나님을 알아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발견합니다.
- 공의의 하나님
호세아는 분열왕국시대 북쪽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나라가 갈라진 이후 북 왕국은 급속도로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총체적인 부패와 우상숭배가 만연했습니다. 그 중심에 지도자, 리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누구보다도 지도자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특히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기는 왕국의 마지막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는 혼란과 쇠퇴의 시기였습니다. 이제 나라는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백성들은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있었고, 죄와 우상숭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호세아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본문은 호세아의 선포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선포의 말씀입니다. 그는 여기에서 먼저 하나님을 아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워줍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줍니다. 먼저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기에서 그가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다, 치셨다는 말입니다. 매우 가슴 아픈 표현이지만 이 말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찢고, 가혹하게 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범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주변 이방나라와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어둠에 빠져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경건을 추구하지 않았고, 제사에 소홀하며 성전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절기를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변나라보다 더 악하여 하나님을 몹시 실망시키고, 아프게 하였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잠잠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말씀하고, 경고하고 깨우쳤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진노의 매를 드시고, 심판의 잔을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공의입니다. 이것이 택한 백성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 편이요, 나를 선택하고, 영원히 품고 하늘까지 이끄시는 분이시지만, 그분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어두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죄를 싫어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간격을 벌리게 만드는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죄입니다. 죄가 아니면 하나님과 우리사이가 멀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59:1-2)
- 사랑의 하나님
1절의 말씀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찢고 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한다면 도로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 아울러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잘못하며 죄를 범했을 때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했고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찍 북쪽은 아수르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남쪽 유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멸망을 당합니다. 나라는 초토화 되었습니다. 성전은 파괴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무수히 죽고, 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역사에서 하나님의 관점은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시는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였습니다. 호세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도로 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상처받은 육신과 영혼을 치유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을 싸매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고난 중에 다시 일어서고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그리고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진노하시며 죄를 물리치지만, 상처받은 영혼을 품어 주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언제나 공의와 사랑이 병행합니다. 일반적으로 구약의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이고, 신약의 성품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약 속에 사랑이 있고, 물론 신약 속에도 공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두 가지가 함께 갑니다. 균형과 조화를 이룹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 심판과 긍휼의 하나님, 진노와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안다면 우리도 모든 삶에서 공의와 사랑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오직 공의만 주장합니다. 은혜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공의와 사랑, 정의와 은혜가 언제나 함께 가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기에 잘못한 것도 그냥 모든 것을 은혜로 넘어가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기에 잘못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이해하고, 자비를 베푸십니다. 불쌍히 여기고 품으십니다. 이것이 실현되는 공동체가 좋은 곳입니다. 뭔가 잘못을 찾으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사람을 매장시키는 각박한 세상에서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 불변의 하나님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은 일정하게, 어김없이, 변함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1:17) 예수님에 대해서도 이렇게 소개하며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13:8) 주님은 동일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그분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변함이 없습니다. 한번 우리를 택하시면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구원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설령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범죄하고, 잘못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버리고, 배신하고, 나를 떠나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변함없이 나와 함께 합니다. 한결같이 나에게 다가오시고, 일정하게 우리를 대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신 것처럼 신실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은 한마디로 신실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곧 '신실'을 의미합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젊어서나 늙어서나,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엎드려 기도하고, 맡겨진 일에 충실한 사람들이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오늘 이 시대는 바로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너무도 변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대이기에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바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