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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학/설교문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요16:27-33

작성자dhleepaul|작성시간26.06.07|조회수102 목록 댓글 0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 - 만나성전 Rev. dhleepaul(M.div) .


- 날자: 2026.06.07 주일 낮 예배
- 말씀: 요 16:2733 /찬송(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
- 제목:복음전도자의 사명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은혜찬양: (118) 서로 사랑하자 -by 오세영/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by Anvely

말씀봉독: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터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 본문의 선제적 요지

오늘의 본문 요한복음 16:33에서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신자들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예수님이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기 위한 것이며, 그들의 믿음이 승리로 이어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Thlipsis"라는 용어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단어이며 "환난" 또는 "압박"으로 번역되며 육체적 고난뿐만 아니라 영적 투쟁과 신앙의 도전도 나타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약속이 큰 환난 조차 오지 않은, 즉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고난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대에 거쳐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종내에는 내가 세상적인 환난과 고난을 모두 물리쳤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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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세상의 환난에서 평안을 주시는 주님

사실 요한복음 16장 말씀은 대체적으로 제자들이 닥쳐 올 고난을 이겨내고 평안까지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말 중에 샬롬(שָׁלום)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말하고 그리스어로는 에이레내 (εἰρήνη)라고 합니다. 이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9가지 성령의 열매입니다. 평화 또는 화평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이레네’는 ‘결합하다’ 라는 뜻의 ‘에이로’(eiro)에서나온 말로 하나로 결합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어 평안을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

따라서 같은 평안 또는 화평이라는 히브리어의 샬롬(שלום)은 ‘완전, 건강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회복하다, 보답하다’ 라는 뜻의 히브리어의 솨람(םלש : shaw-lam)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성경의 문어적인 해석은 그 당시에 사용된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에이레네는 단순히 평화를 유지하려는 태도라기 보다는 주님과 함께 결합되어(eiro)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누구라도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없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그러한 제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저들에게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용서가 없다면 제자들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저들이 아무리 몸부림치고 의지가 강해도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아십니다. 자신들의 뜻대로 다가오는 고난이나 시련을 통과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십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 부딪혔을 때, 제자들이 죄책감으로 인해 절망에 빠지는 것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눈앞에 둔 지금 미리 제자들에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의 그 연약함과 그 결과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저들에게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연약함을 이기고 사명자로서의 길을 걸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시는 주님의 평안은 인간적으로 느끼는 평안함이 아닙니다. 먹고 자고 입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믿음 안의 평안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잠자는 곳까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마태복음 6:25-27절 말씀에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너희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생명이 음식보다 더 중요하고 몸이 옷보다 더 중요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를 보아라. 새는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새를 기르신다. 너희는 새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 중에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키를 한 치라도 더 늘릴 수 있느냐? 인간은 먹고 마시는 것이 평강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화는 인간세상의 잡다한 것들, 말하자면 머고 마시는 것을 위한 돈이나 명예 또는 권력이 아닙니다.

지난 주에는 우리나라 기초단체 및 광역시도 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아예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세상적 권세를 위해서 아귀 다툼하는 난장판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빌립보서 4:4-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세상에는 결코 관용(toleration, tolérance)는 정치, 종교, 도덕, 학문, 사상, 양심 등의 영역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념을 말합니다. 원래 기계적 공업용어로서 톨러런스는 공차를 말합니다. 공차란 공업적으로 수치가 조금 벗어나도 그것을 허용하는 용어입니다.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세상도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볼테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을 옳게 생각합니다.

볼테르, 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나는 네가 말한 것을 비난하지만, 그것을 말할 네 권리를 나는 죽을 때까지 지키겠다.

나는 검을 주려고 세상에 왔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34-42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화명은 세상적 화평이 아닙니다. 세상적 화평은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주고받는 야합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화평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의에 길을 택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적 영생의 화평입니다. 할렐루야

 

2.우리로 세상을 이기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오늘의 본문에서 주님게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하시는 세상적 환난은 앞에서 살펴 본 대로, 주님을 핍박하는 유대인들 로마병사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주님을 한낱 목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것을 두고 볼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이제 눈 앞에 둔 주님의 멍애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스스로 선택하십니다. 세상과 십자가를 주님은 환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 흩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마저 예수를 떠납니다. 배반이 있고 배신당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겼노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승리는 십자가의 승리요 부활이요 생명의 영광입니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자가 세상적 작은 서우치를 얻었지만 생명의 월계관을 썻습니까? 아니지요 그 배후에는 음모와 술수와 비방과 허무한 거짓선전만 가득합니다. 누가 자기의 선거공약을 다 지켰습니까? 누가 누구를 지키기 위하여 피선되었습니까? 남을 모해하고 위해하고 모략하여 잡아 챈 비참한 승리입니다. 이것들을 물리쳐라는 하늘의 검을 주러 주님께서는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의와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승리는 곧  진정한 자유요 화평입니다. '내 평안을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다'---승리는 평안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인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 필연적으로 환난을 당하게 될 것과 그 때 예수님의 제자가 취해야 하는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길에는 환난이 있을 수밖에 없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제자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자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자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9절에 보면 예수님은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4절에서는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적 안목이 아닌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매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 로마인들이 죄수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에 걸어가게 강제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 처형 도구를 지고 내내 조롱을 받으며 죽음의 자리로 걸어간다는 걸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자신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완전한 복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가복음 9:24-25; 마태복음 16:26; 마가복음 8:35-36). 이 요청은 어렵지만 그에 따르는 보상은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무리를 몰고 다니셨습니다. 이 무리들이 때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해 따랐지만 이들의 메시아에 대한 관점은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자들로부터 자신들을 자유롭게 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데리고 있던 제자들조차도 왕국이 곧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19:11). 예수님이 이제 곧 유대 지도자들과 이방인 권력자들의 손에 죽게 되리라고 예고하시기 시작하자 (누가복음 9:22) 예수님의 인기는 폭락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많은 군중들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진실로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계획, 욕망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3. 제가의 길은 헌신의 길 - 자기를 버리는 길

삶이 평안할 때는 예수님을 따르기가 쉽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참된 헌신은 시험 속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시험이 제자들에게 닥칠 것이라고 확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33). 제자도에는 희생이 요구되고 예수님은 그 사실을 결코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 9:57-62에서,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세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더 많은 것을 질문하시자 이들의 헌신이라는 게 기껏해야 반쪽짜리였음이 드러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수반되는 대가를 몰랐습니다. 어떤 이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십자가에 자신의 관심사를 못박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4: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린도후서 11:24-28에서 받은 바울의 고난을 다시 한 번 더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여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 밖에 있는 그 일들 외에도 날마다 내게 닥치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 11:24-28).

어떻게 바울은 이런 환경 가운데서도 평안을 가졌다 말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평안을 가졌었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4:6-7에서 그 답을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바울은 많은 환난과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을 말했습니다.

 

- 마치는 말씀 - 빌 4:6-7

사랑하는 만나성도 여러분은 인생에서 환난과 어려움을 지날 때,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해할 겁니다. 오늘의 말씀 가운데에서 . “내가 모든 것을 견뎌내고 주님이 원하시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현재의 이 고난을 견뎌낼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말하셨듯이, “세상에서는 여러분이 환난을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사도바울은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것은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토록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겨졌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아니라. 이 모든 것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통해 정복자들보다 더 나은 자들이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 (롬 8:35-39)

 

우리가 세상적인 고난에 처해 있을 때, 주님께서는 환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터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막 13:12-13).

예수님께서 만나성도 및 이 땅위에서 가장 고통받는 많은 형제들을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죗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시어 무덤에서 나오셨습니다. 우리 만나인 모두는 주님의 부르심에 감사하고 주여 감사합니다. 라고 내 온 몸과 마음과 영혼을 주님에게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줄을 믿으며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살저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all circumstances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주거,문화,과학,기후 등) 또는 처지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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