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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으로부터의 자유 - 부활 신앙을 믿는 자의자유함

작성자dhleepaul|작성시간25.02.23|조회수37 목록 댓글 0

사망으로부터의 자유 - 부활신앙을 믿는 자의 자유함

 

믿는 사람은 사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다.

사망은 세 가지가 있다. 육체 안에 있는 영혼의 영적 죽음, 영혼으로부터 육체가 죽은 자연적 사망 그리고 영혼과 육체가 죽는 영원한 사망 등이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두 번째의 죽음에 대해서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바울의 표현을 보면 "영혼은 잠시 잠드는 것이다."  영혼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한다. - 고전 15:12~19 참조.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고서 어떻게 새 봄에 싹을 틔우는가?

 

사도바울은 고전15:1-11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말한 바울은 12절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에 바탕을 두고 믿는 자(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말한다. 그는 부활에 대해 세 가지 사실을 함께 연결하여 말했다.

첫째는 죽은 자의 부활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부활이고 셋째는 우리의 믿음이다. 그는 말하기를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었을 것이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며 확실한 사건임을 설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바클레이(Barclay)는 고린도전서 15장은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웅대하며 동시에 가장 어려운 장이라고 했습니다.
베이커(Baker)라는 사람은 고린도전서15장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출현에 대하여 기록된 현존하는 최초의 기록이라고 했고, 매튜헨리(M.Henry)는 고린도전서 15장은 복음의 총체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활신앙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구원의 조건과 관계하고 있습니다.
고전 15:2절에서 보면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전한 부활의 진리를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으며 헛되이 믿지 아니하며, 아무렇게나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믿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은 이렇게 구원의 조건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떻게 이루워 졌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주님의 예언대로 모두 되었습니다. 
고전 15:3-4절에서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말과 성경대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이나 예수님의 부활사건이 우연이나 돌발적인 사건이나 어떤 사람들의 조작이 아닌 성경에 예언된 대로라는 말입니다.
이사야 53장에서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니 구구절절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예언하고 있으며 시편 22편에서 보면 버림받고 멸시받는 메시아의 모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구약성경 도처에 예언되고 있는데 (호 6:2)에서 보면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3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라고 했고 (사 53:10)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들은 모두 다 메시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이 친히 부활생명에 대해서 말씀 했습니다. (요 12:24)절에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리라 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전 15:3-4)절에서 성경대로라는 이 한마디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신과 진정성 그리고 역사성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리고 성경의 모든 예언과 진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성경대로 이루워진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한 진리인 것입니다.

 

신앙은 성경대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는 신앙인이 부활을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못믿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나는 육적으로 누구누구의 몇 대 조 후손이라고 족보에 나온대로 믿고 어디다 성씨를 말하고 이력서에 쓰고 다닙니다. 몇 백년 전의 죽은 조상의 이야기도 믿고 사는데 어찌 성서의 권위를 못 믿는 것인지 답답합니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선서를 할 때에 성서에 손을 올리고 선서합니다. 한국은 헌법에 선서합니다. 그런데 그 선서는 공갈입니다. 계엄령이나 선포하고 장기 집권할 준비나 합니다. - 국가와 민족을 훔치는 놈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이렇게 믿는 것이 부활신앙이요 헛되이 믿지 않는 것입니다. 헛되이 믿지 않는자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부활 아침에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마 28:5-10).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야고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승천하실 때 500여 성도들이 부활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이 맨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보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믿는 자"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자입니다. 히브리서 11장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여러 형제들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부활하셔서 나타난 예수를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전파합니다.

 

나는 오늘 아침에 고후 7장10절 말씀으로 설교단에서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회개와 구원을 낳게 하는 영적 유익이 됩니다. 바울 서신에서 드러난 대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보시기에 근심되는 일이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영적 지도자들에 따라서 파벌을 형성하여 분쟁을 일으킨 문제(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또 교회의 영적 성장을 오직 은사운동(방언, 신유…) 중심으로 이끌려고 하였던 문제, 믿는 자들 사이의 문제를 교회 밖 세상 법정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버릇, 성도들 사이의 음행과 관련된 문제… 등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모습을 보고서 이것이 무슨 교회인가? 하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상 교회의 문제는 모든 죄인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사도들과 말씀 사역자들의 가르침에 따라서 찔림을 받고 회개하고 영적인 변화를 가져와서 올바른 구원(참 교회다운 모습)을 회복한다면, 참으로 유익한 경건한 근심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일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시대마다 선지자들과 말씀을, 사도들과 말씀 사역자들을 보내주셔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완전하게 펼쳐지게 하십니다. 궁극적으로는 복음(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신자로 하여금 죄와 죽음과 사단의 권세를 이기게/왕 노릇하게 하시는 근심(고통)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세상 근심’도 분명하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말씀을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 6:31∼32) 이런 것은 사람의 필요들로서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연히 자기의 자녀들(그리스도의 제자)에게 공급하신다고 알려줍니다. 또한 사도 요한도 이렇게 교훈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자녀들아, 아비들아, 청년들아, 아비들아, 아비들아, 청년들아…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7∼17) 결국 죄와 죽음과 사단의 권세에 종노릇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세상 근심(고통)’일 것입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 여기서 내일 걱정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일이'라는 명사가 해결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는 자의 신앙입니다. 내가 내일 일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라는 '한 날'- 해의 날을 말합니다. 그 해의 날이라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날이요 하나님의 과업입니다. 우리가 해를 일으키고 해를 져물게 합니까? 마찬가지로 내일의 염려를 나의 계획과 실천이 이루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의 자세가 아니다.

부활신앙도 내가 갖는다고 부활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부활신앙의 첫 걸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것을 전파합니다. (요한복음 11:25-26)절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사신 부활의 예수님을 우리는 믿고 전파합니다.
이것을 믿고 전파하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사는 영생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죽은 자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다시 살아난다는 이것은 하나의 창조 원리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원칙을 정하지 않으셨다면 죽은 자가 다시 사는 일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원칙을 정하셨다. 만일 하나님이 그런 원칙을 정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하나의 정해진 창조 원칙에 따라 일어난 일이었다.

삶과 죽음의 모든 문제, 우주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정하신 원칙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나면 또한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나면 죽는다’는 것만 정하신 원칙이 아니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 그래서 혹은 천국으로 가서 영생하고 혹은 지옥으로 떨어져서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는 것도 정해진 원칙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부활은 기적이나 특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정하신 우주의 법칙의 하나이며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셔서 그러한 부활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시기까지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이 놀랍고 신기한 일이 되었을 따름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람 가운데서는 처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되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와 같이 모든 사람을 죽은 후에 다시 살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부활이 아니라 ‘어떠한 부활이냐’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한 영광의 부활이면 좋지만 마귀와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기 위한 부활 즉 ‘두 번 죽기 위한 부활’(계20:14,21:8)이면 절망인 것이다.  

바울은 부활의 실재(사실)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고전15:35-49의 말씀을 통해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부활의 실례를 들어 보인다. 그는 농부가 씨를 뿌려서 곡식과 열매를 거두는 것을 통해서 부활을 실증하였다. 여기에 본문 고전15:35-49 절을 읽습니다.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생명체의 현상은 부활이 일상적인 원리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밀은 그 줄기와 잎과 열매를 어떻게 보존하며 확대하는가? 그 씨를 통해서이다. 농부는 단지 씨를 뿌릴 따름이지만 그 씨 안에 밀의 생명이 있음으로 인해 그것이 자라면 밀의 형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씨는 분명히 밀이 아니며 밀의 생명을 보존하고 있는 하나의 원리일 뿐이다. 그나마 땅에 묻혀서 썩고 변형되는 과정을 거친 후에 밀로 자라게 된다.

 

사도신경에서도 우리는 영생을 믿사오며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dhlee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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