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소담이는 꿈결에서 어떤 희미한 소리를 감지했다. 그리곤 잠에서 깨었다.
창문을 살그머니 여는 ‘스르륵’ 소리 같기도 했고, 누군가가 침대 위로 올라올 때 나는 ‘삐거덕’ 소리 같기도 했다. 왠지 겁이 나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할머니한테서 들은 옛날이야기 가운데 유독 도깨비얘기와 귀신얘기가 많았기 때문에 도깨비나 귀신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겁이 났다.
문득 덮어쓴 이불이 마냥 무겁게 느껴졌다. 분명 누군가가 이불 위에 올라와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소담이는 무겁기도 하고 또 갑갑하기도 하여 몸을 뒤척이려 했으나, 마치 온몸이 굵은 밧줄로 꽁꽁 묶여있기라도 한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몸에는 식은땀이 솟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살려주세요!’
소담이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그마저도 입안에서 맴돌뿐이었다.
‘아이…. 엄마 아빠는 뭘 해?’
이럴 때 엄마 아빠가 옆에 있어주지 않은 것이 소담이로서는 짜증이 났다. 소리라도 지를 수만 있다면, 엄마 아빠는 물론 옆방에서 잠자고 있을 할머니라도 깨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위아래 입술들끼리 철썩 들러붙었던지 아무리 용을 써도 벌려지지 않았고, 그 어떤 소리도 목구멍이 꽉 잠겨 나오질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소담이는 이윽고 용기를 내었다. 이마까지 덮어쓴 이불을 살며시 눈이 드러나도록 겨우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꼭 감은 눈을 살그머니 떴다.
‘아악!’
눈앞에 드러난 물체를 본 순간, 소담이는 너무 놀라서 정신을 잃을 뻔했다. 눈이 시리도록 차디차게 밝은, 그리고 쟁반같이 크고 둥근 물체가 바로 코앞에서 소담이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담이는 얼른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덮었다.
한참만에 두근거리는 가슴은 겨우 진정시켰으나 여전히 이불을 통해 그 물체의 무게가 느껴졌고, 그로인해 가슴이 짓눌린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건 뭐야?’
분명 눈코입이 없는 그저 둥근 물체였음에도 그 둥근 형체가 얼굴임엔 틀림없다 여겨졌다. 그리고 분명 쏘아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제법 시간이 지났다 여겨졌다. 모든 신경을 곧추세우고 이불 밖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어떤 낌새도 없었다.
‘내가 괜히 겁에 질려 헛것을 봤나?’
소담이는 또 다시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눈을 떠보았다.
‘어?’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덮고 있던 이불 또한 여느 때처럼 가벼웠다.
‘좀 전까진 분명 누군가가 이불 위에 올라 탄 듯 무겁기만 했었는데….’
희미한 달빛에 비쳐진 방안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돈된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방안에 들어왔다 나간 흔적도 없었다.
다만 커튼이 활짝 열어젖혀진 상태에서 창문 또한 반쯤 열려있었고, 무심코 바라본 보름달이 손에 닿을락말락한 거리에서 휘황한 달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맞아. 바보같이 겁에 질려 헛것을 본거야.’
소담이는 비로소 안심을 하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밤에도 소담이는 무엇인가 묵직한 것에 짓눌린 기분으로 잠에서 깨었다. 문득 어젯밤과 똑같은 둥근 물체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역시 겁이 잔뜩 났으나 ‘이번엔 절대로 안 속는다’란 각오를 다지며 눈을 살며시 떴다.
아니나 다를까, 어젯밤처럼 쟁반같이 크고 둥근데다 허연 빛을 발하는 물체가 바로 코앞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구세요?”
소담이는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곤, 둥근 물체에게 물었다.
‘나는 달의 전령이란다.’
둥근 물체는 직접 말을 하진 않았으나, 그의 목소리가 소담이에게 머릿속의 울림으로 전해져왔다.
“달의 전령이라면, 달님인가요?”
‘달이냐고 묻는다면, 달이라 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달이 지닌 수천억만 개의 혼불 중에 하나라 할 수가 있단다.’
“혼불이 뭔데요?”
‘혼불은 생명을 잉태하는 씨앗이란다. 마치 작은 불씨와 같은 것이지.’
“근데, 달이 수천억만 혼불을 지녔다는 게 무슨 말이예요?”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체엔 예외 없이 저마다 하나씩의 혼불을 지니고 있단다. 사람마다 각각의 혼불을 하나씩 지니고 있듯이, 땅속에 숨어 사는 지렁이에게도 땅 위를 기어다니는 개미에게도, 그리고 소나 말이나 돼지 같은 동물에게도 혼불이 각각 하나씩 있단다. 혼불이 있어야 세상에 태어날 수가 있고, 또 죽음을 맞게 되면 그때 혼불도 몸을 떠나게 되는 것이지.’
“그렇다면 혼불이 곧 영혼이겠네요?”
‘글쎄다. 사람들이 혼불을 가리켜 영혼이라 여기는 것 같다만, 사람들이 믿고 있듯 생각도 감각도 느낌도 있고, 또 보고 듣고 말할 줄도 아는 그런 영혼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단다. 오로지 혼불만 존재할 뿐이지.’
“그럼, 혼불은 생각도 할 수 있고, 감각이나 느낌도 갖고 있나요? 그리고 보고 듣고 말할 줄도 아나요?”
‘만약에 혼불이 스스로 생각도 하고 감각이나 느낌을 갖고 있다면, 또한 보고 듣고 말할 줄도 안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영혼과 다를 바가 없겠지. 혼불은 무상무념의 존재로서 그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씨앗일 뿐이란다.’
“그럼, 말도 못하는 혼불이라면서, 어떻게 나랑 얘기를 주고받을 수가 있지요?”
‘나는 달의 전령이니까. 너와 내가 주고받는 얘기는 실제론 네 머릿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이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내게도 혼불이 있겠네요.”
‘그럼, 당연히 네게도 혼불이란 게 있지. 네가 살아있는 동안, 너의 혼불은 늘 너와 함께 있을 거야.’
“그렇담, 내가 죽으면 내 혼불도 달에 가 있겠네요?”
‘당연하지. 죽음을 맞은 모든 생명체의 혼불들이 달에 모여들기 때문에 달이 지금처럼 밝을 수 있는 거야.’
“그럼 혼불도 좋은 혼불과 나쁜 혼불이 있는가요?”
‘혼불엔 그런 차이가 없단다. 모든 혼불은 다 똑같아.’
“그럼 좋은 사람의 혼불과 나쁜 사람의 혼불과의 차이도 없겠네요.”
‘그렇지는 않단다. 좋은 사람에게 머물렀던 혼불은 달에 갈 수 있겠지만, 나쁜 사람에게 머물렀던 혼불은 소멸된단다.’
“소멸된다니요?”
‘나쁜 사람이 생전에 지은 죄를 불사르고는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이지.’
“아주 없어진다고요? 그렇다면 너무 무서워요.”
‘태초의 달은 지금보다 훨씬 밝았단다. 그렇지만 혼불이 자꾸 줄어들면서 달빛도 예전처럼 밝지가 않구나.’
“나쁜 사람들의 혼불이 사라져서 그런가요?”
‘당연하지. 혼불은 무한하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수효가 정해져 있거든. 따라서 매년 태어나는 생명체의 수효도 정해져 있지. 그 때문에 사람들의 수효가 늘어나는 만큼 반대로 다른 생명체의 수효는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야.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수효가 늘어나는 만큼 나쁜 사람들의 수효도 늘어나게 마련이라, 그만큼 혼불의 수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야.’
“달빛이 더 이상 어두워지지 않으려면, 나쁜 사람들이 없어져야겠네요?”
‘그렇지. 그래서 내가 달의 전령으로 소담이를 찾아온 거야.’
달의 전령은 그 말을 끝으로 소담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담이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손에 잡힐 듯 둥두렷이 떠있는 보름달을 바라다보았다.
수천억만 혼불들로 휘영청 밝혀진 보름달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소담이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