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꽁트

[문예공모작] 168계단 이바구도깨비

작성자은유시인|작성시간25.09.01|조회수28 목록 댓글 0

 

168계단 이바구도깨비

 

 

난, 이바구란 이름을 지닌 도깨비예요. 난 덩치도 작고 인상도 꽤나 짓궂어 뵈지만 장난기 또한 많아 사람들만 눈에 띄면 쓰윽 다가가 놀래키기도 하고, 특히 어린친구들을 만나면 옛날얘기를 들려주길 좋아해서 이바구란 별칭이 붙었지요. 딱히 한 가지 섭한 게 있다면 애어른 할 것 없이 나만 보면 혼비백산(魂飛魄散) 도망가기 바쁘더라고요.

까마득한 옛날, 그러니까 이곳 주민들이 정착하기 훨씬 이전부터 나는 터줏대감이자 수문장처럼 이 일대를 지켜왔지요. 그러니까 초량동 산복도로와 그 밑 동네를 오르내리는 168계단, 그리고 그 주변이 내가 활동하는 주 무대예요. 도깨비들끼리도 영역다툼이 워낙 치열하거든요. 특히 시야가 탁 트여 명당(明堂)이라 여겨지는 곳이라면 더욱 그러하지요. 따라서 한번 영역이 정해지면 좀처럼 벗어나기도 어렵지만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함부로 나다닐 수가 없어요.

6.25 전쟁 당시 수많은 피난민들이 전화(戰火)를 피해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대거 몰려들었지요. 특히 산지가 많은 부산의 지리적 특성상 평지에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대부분 피난민들은 산비탈에 옹기종기 집을 지어 달동네를 형성하며 살았고, 그 결과 평지로 이어지는 산비탈엔 경사길이 유독 많이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168계단이에요.

168계단은 하늘과 맞닿을 만큼 까마득히 높고 게다가 168개의 계단으로 이어진 무척 가파른 계단이에요.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무수한 마을주민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내 주요 일과거든요. 고지대 사는 이들은 대개 나이 지긋한 사람들로 계단을 오를 땐 중간중간 걸음을 멈추고 턱까지 치닿은 거친 숨을 진정시키려 무진 애를 쓰는 모습을 반은 호기심으로 반은 동정심으로 쭉 지켜봐왔어요.

물이 부족했던 시절엔 마을 아낙네들이 양동이로 물을 길어 나르기 위해 계단 아래 우물가에 길게 줄을 서며 다음 차례를 기다렸고, 남정네들은 이 계단을 앞다투어 내달려 일터인 부산항으로 향했지요.
따라서 이 우물터는 자연스레 주민들 사이엔 만남의 장이 되었으며 고된 삶의 애환과 이웃 간의 정, 그리고 희망을 나누던 소통의 공간이자 모든 소문이 퍼져나가는 근원지가 되었답니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날, 168계단은 초량동의 관광 테마인 ‘초량이바구길’로 거듭 태어났으며 이 이바구길을 따라가다 보면 물씬 풍겨오는 옛 정취와 함께 부산의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답니다.

계단이 워낙 가팔라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다보니 2016년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이 설치되었으며, 20
25년 3월엔 경사형 엘리베이터로 대체되어 ‘초량168계단하늘길’이라 명명됨으로써 새로운 명물로 자리하게 되었고, 새로 조성된 ‘이바구플랫폼’을 따라 다양한 가게들이 입점하여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답니다.

168계단 맨 위쪽엔 부산항 너머 먼 남해바다까지 시야가 탁 트인 ‘스카이웨이전망대’가 있고 계단 중간엔 부산 동구 출신이자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인 김민부 이름을 따서 만든 ‘김민부전망대’가 있어요.

좁은 계단 곳곳에는 아름다운 추억사진의 배경이 될 알록달록한 벽화들과 아기자기한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고, 계단 위쪽엔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파는 ‘625막걸리’가, 그 밑엔 커피와 추억의 도시락 등을 파는 ‘168도시락국’이 자리하고 있어 잠시 숨을 고르며 허기진 배를 달랠 수도 있답니다.

주변을 한번 살펴볼까요? 머잖은 곳엔 의사로서 사회활동가로서 널리 알려진 장기려 박사의 ‘장기려기념관’과 한국 시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청마 유치환 시인의 문학적 업적과 예술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유치환의우체통’이 자리하고 있어 그들의 명성과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답니다. 그리고 초량산복도로 일대의 역사와 이야기를 그득 품은 ‘망양로산복도로전시관’과 ‘이바구공작소’도 자리하고 있답니다.
그렇지만 이 주변은 현재도 주민들이 거주하는 엄연한 주거공간이에요. 이곳을 둘러보기 위해 찾아주신 관광객 여러분! 이곳 마을주민들의 삶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최대한 예의를 갖춰야겠죠? 나 이바구도깨비 또한 우리 모두의 명소인 168계단이 먼 미래의 후손들 위해 영원히 보존되게끔 부리부리한 눈으로 지켜볼 거예요.

 

 

20250512 / 동구청 제1회 계단문학상 공모작품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