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기본 자료실

Re: Re: Re: 朱子家禮 全文 권3.석문

작성자이준설|작성시간26.01.05|조회수41 목록 댓글 0

  欽定四庫全書
  家禮卷三
  宋 朱子 撰
  昬禮
  議昬
  男子年十六至三十女子年十四至二十
  司馬公曰古者男三十而娶女二十而嫁今令文男年十五女年十三以上並聴昬嫁今為此説所以参古今之道酌禮令之中順天地之理合人情之宜也
  身及主昬者無期以上喪乃可成昬
  大功未𦵏亦不可主昬 凡主昬如冠禮主人之法但宗子自昬則以族人之長為主
  必先使媒氏往來通言俟女氏許之然後納采
  司馬公曰凡議昬姻當先察其壻與婦之性行及家法何如勿苟慕其富貴壻苟賢矣今雖貧賤安知異時不富貴乎苟為不肖今雖富盛安知異時不貧賤乎婦者家之所由盛衰也苟慕其一時之富貴而娶之彼挾具富貴鮮有不輕其夫而傲其舅姑養成驕妬之性異日為患庸有極乎借使因婦財以致富依婦勢以取貴苟有丈夫之志氣者能無愧乎又世俗好於襁褓童㓜之時輕許為昬亦有指腹為昬者及其既長或不肖無頼或身有惡疾或家貧凍餒或喪服相仍或從宦逺方遂至棄信負約速獄至訟者多多是以先祖太尉嘗曰吾家男女必俟既長然後議昬既通書不数月必成昬故終身無此悔乃子孫所當法也
  納采納其采擇之禮即今世俗所謂言定也
  主人具書
  主人即主昬者書用牋紙如世俗之禮若族人之子則其父具書告於宗子
  夙興奉以告於祠堂
  如告冠儀其祝版前同但云某之子某若某之某親之子某年已長成未有伉儷已議娶某官某郡姓名之女今日納采不勝感愴謹以後同 若宗子自昬則自告
  乃使子弟為使者如女氏女氏主人出見使者
  使者盛服如女氏女氏亦宗子為主人盛服出見使者非宗子之女則其父位於主人之右尊則少進卑則少退啜茶卑使者起致辭曰吾子有恵祝室某也某之某親某官有先人之禮使某請納采從者以書進使者以書授主人主人對曰某之子若妹姪孫蠢愚又弗能教吾子命之某不敢辭北向再拜使者避不荅拜使者請退俟命出就次若許嫁者於主人為姑姊則不云蠢愚又弗能教餘辭並同
  遂奉書以告於祠堂
  如壻家之儀祝版前同但云某之第㡬女若某親某之第㡬女年漸長成已許嫁某官某郡姓名之子若某親某今日納采不勝感愴謹以後同
  出以復書授使者遂禮之
  主人出延使者升堂授以復書使者受之謂退主人請禮賓乃以酒饌禮使者使者至是始與主人交拜揖如常曰賓客之禮其從者亦禮之别室皆酧以幣
  使者復命壻氏主人復以告於祠堂
  不用祝
  納幣古禮有問名納吉今不能盡用止用納采納幣以從簡便
  納幣
  幣用色繪貧富隨宜少不過兩多不踰十今人更用釵釧羊酒果實之屬亦可
  具書遣使如女氏女氏受書復書禮賓使者復命並同納采之儀
  禮如納采但不告廟使者致辭改采為幣從者以書幣進使者以書授主人主人對曰吾子順先典貺某重禮某不敢辭敢不承命乃受書執事者受幣主人再拜使者避之復進請命主人授以復書餘並同
  親迎
  前期一日女氏使人張陳其壻之室
  世俗謂之鋪房然所張陳者但氊褥帳幔帷幙應用之物其衣服鏁之篋笥不必陳也 司馬公曰文中子曰昬娶而論財夷虜之道也夫昏姻者所以合二姓之好上以事宗廟下以繼後世也今世俗之貪鄙者将娶婦先問資装之厚薄将嫁女先問聘財之多少至於立契約云某物若干某物若干以求售其女者亦有既嫁而復欺紿負約者是乃狙儈賣婢鬻奴之法豈得謂之士大夫昏姻哉其舅姑既被欺紿則殘虐其婦以攄其忿由是愛其女者務厚其資装以悦其舅姑者殊不知彼貪鄙之人不可盈厭資装既竭則安用汝女哉於是質其女以責貨於女氏貨有盡而責無窮故昏姻之家往往終為仇讐矣是以世俗生男則喜生女則戚至有不舉其女者用此故也然則議昏姻有及於財者皆勿與為昏姻可也
  厥明壻家設位於室中
  設倚卓於兩位東西相向蔬果盤盞匕筯如賔客之禮酒壺在東位之後又以卓子置合

一於其南又南北設二盥盆勺於室東隅右設酒壺盞注於室外或别室以飲從者 

音謹以小匏一判而兩之
  女家設次於外 初昬壻盛服
  世俗新壻帶花勝以擁蔽其面殊失丈夫之容體勿用可也
  主人告於祠堂
  如納采儀祝版前同但云某之子某若某親之子某将以今日親迎於某官某郡某氏不勝感愴謹以後同 若宗子自昬則自告
  遂醮其子而命之迎
  先以卓子設酒注盤盞於堂上主人盛服坐於堂之東序西向設壻席於其西北南向壻升自西階立於席西南向賛者取盞斟酒執之詣壻席前壻再拜升席南向受盞跪祭酒興就席末跪啐酒興降席授賛者盞又再拜進詣父坐前東向跪父命之曰往迎爾相承我宗事勉率以敬若則有常壻曰諾惟恐不堪不敢忘命俛伏興出非宗子之子則宗子告於祠堂而其父醮於私室如儀但改宗事為家事 若宗子已孤而自昬則不用此禮
  壻出乘馬
  以二燭前導
  至女家俟於次
  壻下馬於大門外入俟於次
  女家主人告於祠堂
  如納采儀祝版前同但云某之第幾女若某親某之第㡬女将以今日歸於某官某郡姓名不勝感愴謹以後同
  遂醮其女而命之
  女盛飾姆相之立於室外南向父坐東序西向母坐西序東向設女席於母之東北南向賛者醮以酒如壻禮姆導女出於母左父起命之曰敬之戒之夙夜無違爾舅姑之命母送至西階上為之整冠歛帔命之曰勉之敬之夙夜無違爾閨門之禮諸母姑嫂姊送至於中門之内為之整裙衫申以父母之命曰謹聴爾父母之言夙夜無愆非宗子之女則宗子各于祠堂而某父醮於私室如儀
  主人出迎壻入奠鴈
  主人迎壻於門外揖讓以入壻執鴈以從至于㕔事主人升自阼階立西向壻升自西階北向跪置鴈於地主人侍者受之壻俛伏興再拜主人不荅拜若族人之女則其父從主人出迎立於其右尊則少進卑則少退 凡贄用生鴈左首以生色繪交絡之無則刻木為之取其順陰陽往來之義程子曰取其不再偶也
  姆奉女出登車
  姆奉女出中門壻揖之降自西階主人不降壻遂出女從之壻舉轎簾以俟姆辭曰未教不足與為禮也女乃登車
  壻乘馬先婦車
  婦車亦以二燭前導
  至其家導婦以入
  壻至家立於㕔事俟婦下車揖之導以入
  壻婦交拜
  婦從者布壻席於東方壻從者布婦席於西方壻盥於南婦從者沃之進帨婦盥於北壻從者沃之進帨壻揖婦就席婦拜壻荅拜
  就坐飲食畢壻出
  壻揖婦就坐壻東婦西從者斟酒設饌壻婦祭酒舉殽又斟酒壻揖婦舉欽不祭無殽又取

分置壻婦之前斟酒壻揖婦舉飲不祭無殽壻出就他室姆與婦留室中徹饌置室外設席壻從者餕婦之餘婦從者餕壻之餘
  復入脫服燭出
  壻脫服婦從者受之婦脱服壻從者受之 司馬公曰古詩云結髪為夫婦言自少年束髪即為夫婦猶李廣言結髪與匈奴戰也今世俗昏姻乃有結髮之禮謬誤可笑勿用可也
  主人禮賓
  男賓於外㕔女賔於中堂
  婦見舅姑
  明日夙興婦見於舅姑
  婦夙興盛服俟見舅姑坐於堂上東西相向各置卓子於前家人男女少於舅姑者立於兩序如冠禮之叙婦進立于阼階下北面拜舅升奠贄幣於卓上舅撫之侍者以入婦降又拜畢誧西階下北靣拜姑升奠贄幣姑舉以授侍者婦降又拜 若非宗子之子而與宗子同居則先行此禮於舅姑之私室與宗子不同居則如上儀
  舅姑禮之
  如父母醮女之儀
  婦見於諸尊長
  婦既受禮降自西階同居有尊於舅姑者則舅姑以婦見於其室如見舅姑之禮還拜諸尊長於兩序如冠禮無贄小郎小姑皆相拜非宗子之子而與宗子同居則既受禮詣其堂上拜之如舅姑禮而還見於兩序其宗子及尊長不同居則廟見而后往
  若冡婦則饋於舅姑
  是日食時婦家具盛饌酒壺婦從者設蔬果卓子於堂上舅姑之前設盥盤於阼階東南帨架在東舅姑就坐婦盥升自西階洗盞斟酒置舅卓子上降俟舅飲畢又拜遂獻姑進酒姑受飲畢婦降拜遂執饌升薦於舅姑之前侍立姑後以俟卒食徹飯侍者徹餘饌分置别室婦就餕姑之餘婦從者餕舅之餘壻從者又餕婦之餘非宗子之子則於私室如儀
  舅姑饗之
  如禮婦之儀禮畢舅姑先降自西階婦降自阼階
  廟見
  三日主人以婦見於祠堂
  古者三月而廟見今以其太逺改用三日如子冠而見之儀但告辭曰子某之婦某氏敢見餘並同
  壻見婦之父母
  明日壻往見婦之父母
  婦父迎送揖讓如客禮拜即跪而扶之入見婦母婦母闔門左扉立於門内壻拜於門外皆有幣婦父非宗子即先見宗子夫婦不用幣如上儀然後見婦之父母
  次見婦黨諸親
  不用幣婦女相見如上儀
  婦家禮壻如常儀
  親迎之夕不當見婦母及諸親及設酒饌以婦未見舅姑故也

가족예절(사천서편) / 3권

<가족 예절(SikuQuanshu 판)

← 2권가족 예절 3권제4권 

  송나라 주희가 쓴   『 사
  보전』 제3권, 『애도 의 예법 』   . 애도에 대한 논의 : 남자는   16세에서 30세, 여자는 14세에서 20세 . ( 사마공은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는 남자는 30세, 여자는 20세에 결혼했다. 지금은 법으로 남자는 15세, 여자는 13세 이상에 결혼할 수 있다 . 이는 과거와 현재의 관습을 고려하고, 예법 에 따라 천지운을 따르며, 인간의 감정에 부합하는 것이다. "   ) 애도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은 최소 [불명확] 기간 동안 애도해야 한다. 최종 애도 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애도 의식을 거행할 수 없다 . [불분명한 텍스트 ] 의 방법은 성인식 주례자의 방법과 동일하지만, 장남의 경우에는 가문의 수장이 주례자가 됩니다 .   중매쟁이는 먼저 양가와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해야 합니다. 양가의 동의가 있어야만 약혼이 이루어집니다. ( 사마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혼을 논할 때는 먼저 신랑 신부의 성품과 행실, 그리고 가문의 전통을 살펴보아야 한다. 재물과 지위를 탐내서는 안 된다. 남편이 지금은 가난하더라도 미래에 부자가 될 수도 있고, 품행이 바르지 않으면 지금 부자라 할지라도…") 생안지여, 여자가 미래에 가난하거나 신분이 낮아질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가문의 흥망성쇠는 여자의 재물과 지위에 달려 있습니다. 일시적인 재물과 지위 때문에 결혼하는 사람은 대부분 남편을 무시하고 시댁 식구들에게 오만하게 굴며, 자만심과 질투심을 키워 장래에 끝없는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설령 여자의 재산으로 부자가 되고, 그녀의 권력으로 지위를 얻는다 해도, 남자다운 야망을 가진 남자가 어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겠는가? 더욱이, 사람들은 자녀가 갓난아기일 때 쉽게 결혼을 승낙하고, 심지어 태아 때부터 약혼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부적절하거나 무책임하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가난에 허덕이거나, 상복이 있거나, 멀리 떨어진 사람과 결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아이들이 약속을 어기고 감옥에 가거나 소송에 휘말린다. 그러므로 나의 선조이신 대사령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가문에서는 아들딸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결혼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 몇 달 안에 결혼을 확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후손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 (약혼식은 오늘날 흔히 "약혼 "이라고 불리는 의식입니다.) 주최측 약혼식 을 주관하는 사람)이 편지를 준비합니다 . 편지는 관례대로 종이에 씁니다. 씨족의 아들인 경우, 그의 아버지가 씨족의 장남에게 편지를 씁니다 . 장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조상 사당에 편지를 바칩니다 . ( 이것은 성인식 공고와 비슷합니다. 기도패 앞의 글귀는 같지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구누구의 아들, 또는 누구누구의 친척의 아들이 장성하여 미혼이 되었습니다. 그는 누구누구의 관리의 딸이자 누구누구의 집안의 딸과 약혼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약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는 이와 같은 약혼식을 거행해 주시기를 정중히 청합니다." 만약 집안의 장남이 이미 잠들어 있다면, 그가 직접 공고할 것입니다. )   그런 다음, 남동생이 사절로 보내집니다. 만약 여성이 집안 사람이라면, 안주인이 나와 사절을 맞이합니다. ( 사절은 여인과 마찬가지로 완전한 예복을 입고 있다. 여인이 같은 씨족의 일원이라면, 여주인도 완전한 예복을 입고 나와 사절을 맞이한다. 만약 그녀가 장남의 딸이 아니라면, 그녀의 아버지는 여주인의 오른쪽에 앉는다. 어른들은 약간 앞으로 나아가고, 젊은이들은 약간 뒤로 물러선다. 사절은 차를 마시고 일어나서 말한다. "저희 아들이 아무개 씨의 친척이자 아무개 씨의 관리의 딸인 아무개 씨와 결혼하겠다는 호의를 받았습니다. 조상의 의례에 따라 저희는 아무개를 보내 약혼식을 요청했습니다." 시종이 편지를 건네자 사절은 편지를 여주인에게 건넨다. 여주인은 대답한다. "내 아들이나 누이, 아니면 조카가 어리석어서 내 아들을 가르칠 수 없구나.") 사절은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북쪽으로 두 번 절을 한다. 사절은 절을 하지 않고 다음 지시를 기다리며 떠나겠다고 요청한 후, 지정된 자리로 향한다. 결혼할 여성이 주인의 고모라면, 그것은 어리석거나 가르칠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직 사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당에 편지를 바쳤다. ( 사위 예식은 이전과 같았지만, 편지에는 "저의 딸, [이름]의 장녀 또는 [이름]의 딸이 장성하여 [이름]의 아들, [관리 이름] 또는 [이름]의 딸 또는 [이름]의 딸과 오늘 약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우 감격하여 이 편지를 공경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 다음 그는 사자에게 답장을 전하고 정중하게 대접했다. 주인 은 사자를 홀로 초대하여 답장을 전했다. 사자는 답장을 받고 "어서 가시오."라고 말했다. 주인은 손님들을 연회에 초대하고 사자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사자가 도착하자 그는 평소처럼 절을 하며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손님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정중을 표했다. 그의 수행원들도 정중하게 대접받았다. 각기 다른 방에서 선물을 받았다.) 사자는 사위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상 사당에서 주인에게 다시 알립니다(더 이상의 축복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선물을   바칩니다 고대 예식 에는 성함을 묻고 길상 선물을 드리는 것이 포함되었지만 ,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므로 이것만 사용했습니다). 약혼식은 간소하고 명료합니다 화폐  신부의 재력을 반영하여 색색으로 장식되지만, 두 개에서 열 개를 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비녀, 팔찌, 양, 술, 과일도 사용합니다 .   신부 가족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신부 가족이 편지를 받고 답장을 보내면 사신이 다시 보고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약혼식과 동일하게 진행됩니다 . 이 의식은 조상 사당에 알리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약혼식과 동일합니다. 사신이 축사를 하고, 약혼은 화폐로 대체됩니다. 시종들이 편지와 화폐를 바치고, 사신은 주인에게 편지를 전달합니다. 주인은 "내 아들이 옛 전통을 따라 나에게 이처럼 후한 선물을 주었으니, 감히 감사를 표할 수 없구나"라고 답합니다. 거절할 수 없고, 감히 불복종할 수도 없다." 그러자 그는 편지를 받아들였다. 시종들은 돈을 받았고, 주인은 두 번 절을 했다. 사신은 절을 하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 추가 지시를 요청했다. 주인은 답장을 건넸고, 나머지는 동일했다 . 결혼식은 하루 전에 열렸다   . 신부 측에서는 사람들을 보내 신랑의 방을 준비했다. ( 흔히 "방 준비"라고 하지만, 실제로 준비하는 것은 침구, 커튼, 기타 필수품뿐이고, 옷은 상자에 보관되어 있어 굳이 진열할 필요가 없다. 사마공은 "문중자가 '결혼에서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의 길이다'라고 말했다"라고 했다.) 결혼은 두 가문을 결합하고, 하늘의 조상 사당을 섬기며, 땅의 후손을 이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의 탐욕스럽고 파렴치한 자들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때 먼저 혼수품의 규모를 묻고, 딸을 아내로 맞이할 때는 먼저 혼수품의 액수를 묻는다. 약혼 선물. 심지어 딸을 팔기 위해 특정 물품을 명시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혼 후 계약을 어기고 속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상인이 하녀와 노예를 파는 수법과 다름없는데, 어찌 선비와 관리의 결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시부모가 속으면 화를 풀기 위해 며느리를 학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시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호화로운 혼수를 마련하려고 애쓰지만, 탐욕스럽고 파렴치한 이들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혼수가 떨어지면 딸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딸을 담보로 돈을 요구합니다. 돈은 한정되어 있지만 요구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맺어진 가문이 결국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이 아들의 탄생을 기뻐하고 딸의 탄생을 슬퍼하며, 심지어 딸을 키우기를 거부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개입된 결혼은 절대 고려해서는 안 됩니다. 신랑 측에서는 방에 상을 차려 놓고 두 사람을 앉힙니다. 손님 접대 예절에 따라 동쪽과 서쪽으로 마주 보는 탁자에는 채소, 과일, 컵, 숟가락, 젓가락 등이 차려져 있습니다. 술 항아리는 동쪽에, 다른 탁자는 남쪽에 놓입니다. 세면대와 국자는 각각  . 술 항아리와 잔은 마실 용도로 방 밖이나 별도의 방에 둡니다. 시중드는 사람은 작은 조롱박에 담긴 내용물을 조심스럽게 두 조각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신부   측은 야외에 상을 차립니다. 먼저 신랑은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준비합니다 . ( 신랑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꽃 머리띠를 쓰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는 남성에게 무례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 주인은 조상 사당에서 ( 약혼식과 비슷하게) "오늘 누구누구의 아들 또는 누구누구 친척의 아들이 직접 신랑을 맞이할 것입니다"라고 발표합니다. 누구누구의 가족입니다. 감격에 겨워 정중히 이 사실을 알립니다. (다음 내용도 동일합니다. 장남이 이미 결혼했다면 본인이 직접 알립니다 . ) 그런 다음 신랑은 결혼식을 올리고 신부를 맞이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 ( 먼저 연회장에 포도주와 음식이 차려진 상을 마련합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은 주인은 연회장 동쪽 날개에 서쪽을 향해 앉습니다. 신랑의 자리는 서쪽에 마련됩니다.) 신랑은 남쪽을 향해 서쪽 계단을 올라 돗자리에 섭니다. 시종은 남서쪽을 향해 잔을 들고 포도주를 따라 신랑의 돗자리로 가져갑니다. 신랑은 두 번 절하고 돗자리를 올라 남쪽을 향해 잔을 받아 무릎을 꿇고 포도주를 바칩니다. 일어나 돗자리 끝에 무릎을 꿇고 포도주를 뱉고 다시 일어나 돗자리를 내려와 시종에게 잔을 건네고 두 번 더 절한 후 아버지 자리로 가서 동쪽을 향해 무릎을 꿇습니다. 아버지는 지시합니다. 신랑은 "가서 인사를 드려라. 자네가 가문의 일을 맡게 되었으니 공손히 행하도록 힘써라. 정해진 관습이 있다"라고 말한다. 신랑은 "예, 제가 그분께 합당하지 못할까 두렵고, 당신의 말씀을 잊을 수 없어 부디 그러 겠습니다 " 라고 대답하며 절을 하고 일어선다. 만약 신랑이 씨족 장남의 아들이 아니라면, 장남이 사당에서 가족들에게 혼인신고를 하고, 아버지는 예식대로 사당 안의 방에서 혼례를 올리되, 씨족의 일을 가족 일로 바꾸어 지낸다. 장남이 고아가 되어 죽은 경우에는 이 의식을 치르지 않는다. 신랑은 ( 두 개의 촛불을 든 말을 타고 신부 집으로 가서 기다린다. ( 신랑은 대문 밖에서 말에서 내려 기다린다 .) 신부 가족은 사당에서 가족들에게 ( 약혼식과 비슷하게) "이 사람은 누구누구의 딸이거나 누구누구 친척의 딸인데, 오늘 결혼한다"라고 알린다. 누구누구의 고위 관리의 딸과 누구누구의 가족과 결혼한다. 신부 측 가족은 깊이 감동하여 이 전통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딸의 결혼식 이 거행 되었습니다
  .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은 딸은 남쪽을 향해 밖에 서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서쪽을 향해, 어머니는 동쪽을 향해 앉았습니다. 딸의 자리는 어머니의 북동쪽에 남쪽을 향해 마련되었습니다. 사위의 결혼식처럼 주례자는 포도주를 건넸습니다. 어머니는 왼쪽에서 딸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일어나서 "공손하고 조심하며, 장인 장모님의 말씀을 절대 어기지 마라"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서쪽 계단으로 데려가 모자와 예복을 고쳐 입으며 "공손하고 조심하며, 집안의 예절을 절대 어기지 마라"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들, 이모들, 올케들, 그리고 다른 여자 친척들이 딸을 가운데 문으로 데려가자, 딸은 치마와 예복을 고쳐 입으며 부모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풀이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절대 어기지 마라" 만약 그녀가 장남의 딸이 아니라면, 장남들은 각자 사당에서 혼례식을 거행하고, 특정 여성의 아버지는 자신의 방에서 혼례식을 거행합니다. 혼례식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 이 나와 사위를 맞이하면 , 사위는 선물로 거위를 들고 들어옵니다. 주인은 문 밖에서 사위를 맞이하며 절을 하고, 사위는 거위를 주인에게 가져다줍니다. 주인은 동쪽 계단을 올라 서쪽을 향해 서고, 사위는 서쪽 계단을 올라 북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거위를 땅에 내려놓습니다. 주인의 시종이 거위를 받으면, 사위는 깊이 절을 하고 일어서서 두 번 더 절을 합니다. 주인은 서른 번 절을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선물이 같은 씨족 구성원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아버지는 주인을 따라 나와 딸의 오른쪽에 서서 맞이합니다. 아버지는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는 약간 앞으로 나아가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는 약간 뒤로 물러납니다. 선물은 항상 살아있는 거위인데, 왼쪽 머리에는 얽힌 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얽힌 선이 없으면 나무로 조각한 것인데, 이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성자는 "이는 같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 라고 말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딸을 배웅하여 마차에 태웁니다 . 시어머니가 딸을 중앙 문 밖으로 배웅하고 않습니다데리고" 라고 말합니다. 딸은 마차에 오릅니다. 사위는 아내의 마차 ( 두 개의 촛불이 선두에 서 있었습니다 ) 앞에서 말을 타고 갑니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를 안으로 안내합니다. (사위는 집에 도착하여 탁자에 서서 아내가 마차에서 내리기를 기다렸다 . 그는 아내에게 절을 하고 안으로 안내했다.) 사위와 아내는 서로 절을 했다. (아내  시녀들은 사위를 위해 동쪽에 자리를 깔아주고, 사위의 시녀들은 아내를 위해 서쪽에 자리를 깔아주었다. 사위는 남쪽에서 손을 씻었고, 아내의 시녀들은 그에게 물을 따라주고 수건을 건넸다. 아내는 북쪽에서 손을 씻었고, 사위의 시녀들은 그녀에게 물을 따라주고 수건을 건넸다 . 사위는 아내에게 절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내는 그에게 절을 했고, 사위는 다시 절을 했다. ) 그들이 자리에 앉아 식사를 마친 후, 사위 가 나왔다. ( 사위는 아내에게 절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내의 시녀들은 그의 동서쪽에서 포도주를 따르고 음식을 차렸다. 사위는 제물을 바치고 포도주를 더 따랐다.) 신랑은 아내에게 절하고 잔을 들어 제물을 바치거나 실수를 하지 않고 마셨다. 그런 다음 포도주를 조금 떠서 아내 앞에 놓았다. 신랑은 아내에게 절하고 잔을 들어 제물을 바치 거나 실수를 하지 않고 마셨다. 그런 다음 신랑은 나가서 다른 방으로 갔다. 아내와 장모는 방에 남았다. 음식은 치워서 방 밖에 놓았다. 방 밖에는 돗자리가 깔렸다. 신랑의 시녀들은 아내에게 남은 음식을 먹여주고, 아내 의 시녀들은 신랑에게 남은 음식을 먹여주었다. 그런 다음 신랑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고 촛불을 꺼냈다. 신랑이 옷을 벗자 아내의 시녀들이 그것을 받았다. 아내도 옷을 벗자 신랑의 시녀들이 그것을 받았다. 사마공은 이렇게 말했다. "옛 시에 '머리를 묶으면 부부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젊은 남자가 머리를 묶는 순간부터 이미 부부가 된다는 뜻이다. 이는 이광이 '머리를 묶는 것은 흉노와 싸우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오늘날에는 결혼식에서 머리를 묶는 의식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며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이런 관습은 없어야 한다. 주인은 손님들을 맞이한다 ( 남자 손님은 밖에, 여자 손님은 본당 안에 ). 신부는   시부모님을 . 내일 신부는 일찍 일어나 시부모님을 만날 것이다. ( 신부는 일찍 일어나 정장을 차려입고 시부모님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립니다. 두 사람은 홀에서 탁자를 마주 보고 앉습니다. 시부모님보다 어린 남녀 가족 구성원들은 성인식처럼 두 줄로 서 있습니다.) 신부는 앞으로 나아가 동쪽 계단 아래에 서서 북쪽을 향해 시부모님께 절을 합니다. 그런 다음 탁자 위에 선물을 올리고 시부모님께서 선물을 만지십니다. 시종이 탁자를 가져가면 신부는 계단에서 내려와 다시 절을 합니다. 절을 한 후 서쪽 계단을 내려가 북쪽을 향해 시부모님께 절을 합니다. 그런 다음 선물을 올리고 시부모님께서 선물을 받아 시종에게 전달합니다. 신부는 계단에서 내려와 다시 절을 합니다. 만약 신부가 장남의 친아들이 아니지만 장남과 함께 살고 있다면 이 의식을 먼저 거행합니다. 여성이 시부모의 개인 거처에 거주하고 장남과 함께 살지 않는 경우, 의식은 위와 같이 진행됩니다 시부모  ( 딸에게 제사를 지내는 부모의 의식과 유사한 ) 의식을 거행합니다 그런 다음 여성은 어른들을 만납니다. 적절한 의식을 치른 후, 서쪽 계단을 내려와 시부모님 댁으로 들어갑니다 . 시부모가 외삼촌과 외숙모보다 더 존경받는 경우, 외삼촌과 외숙모를 아내로 맞이하여 방에 함께 거주하게 합니다. 그런 다음 성인식처럼 두 줄로 늘어선 방에 계신 모든 어른들께 절을 합니다. 선물은 주고받지 않으며, 젊은이와 그의 아내는 서로에게 절을 합니다. 이 경우 장남의 아들은 아니지만 장남과 함께 살게 됩니다. 정식 예식을 마친 후에는 장인, 장모님께 드리는 예식과 같이 본가로 가서 절을 하고, 두 줄로 늘어선 방들에서 차례로 절을 합니다. 장남과 장로들이 함께 살지 않는 경우에는 먼저 조상 사당을 참배한 후 본당으로 갑니다 기혼 여성은 시부모님께 음식을 공양합니다 . (이날 식사 시간에는 아내가 술 항아리를 준비하고, 시녀들은 시부모님 앞 본당 상차림에 채소와 과일을 차려 놓습니다. 동쪽 계단 남동쪽에는 세숫대야를 놓고, 동쪽에는 휘장을 칩니다. 시부모님께서 자리에 앉으시면 아내는 손을 씻고 서쪽 계단을 올라가 잔을 씻고 술을 따릅니다.) 아내는 상을 외삼촌의 자리로 옮겨 외삼촌이 술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린 후 다시 절을 합니다. 그런 다음 고모에게 술을 대접하고 고모는 이를 받습니다. 신부는 다시 절을 하고 음식을 받아 시부모님 뒤에 서서 그분들께 바칩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하인들이 남은 음식을 치워 별도의 방으로 가져가 나누어 줍니다. 신부는 고모할머니 쪽에서 남은 음식을 먹고, 시녀들은 외삼촌 쪽에서 남은 음식을 먹습니다. 그다음 시댁 식구들이 신부 쪽에서 남은 음식을 먹습니다. 본가 출신이 아닌 아들들은 예의에 따라 따로 방에서 남은 음식을 먹습니다 . 시부모님은 신부 와 함께 식사를 합니다 ( 아내에게 맞는 예의에 따라). 예식이 끝나면 시부모님이 먼저 서쪽 계단으로 내려가고, 신부는 동쪽 계단으로 내려갑니다 사찰 참배:   3일 후, 주인은 신부를 사당에 모십니다 ( 옛날에는 3개월마다 사찰을 참배했지만, 거리가 멀어지면서 아들의 성인식처럼 3일 동안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분은 누구누구 부인입니다."라고 말하며 작별 인사를 합니다. 사위는 장모님 댁을 방문합니다. 다음 날, 사위는   장모님 댁을 찾아갑니다. 장모님은 손님을 대접하는 예의를 갖춰 무릎을 꿇고 장모님을 집 안으로 모시고 들어갑니다. 장모님은 문 왼쪽에 서 계시고, 사위는 문 밖에서 절을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선물을 드립니다. 만약 장모님이 같은 씨족이 아니라면, 먼저 씨족 구성원들과 그 배우자들을 만납니다. 선물은 필수는 아니지만, 위와 같은 예의를 갖춥니다 그 후 장모님을 만납니다 . 다음으로 장모님의 친척들을 만납니다 . 선물은 필수가 아니며, 여성들이 서로 만날 때도 같은 예절을 따릅니다. 사위는 일반적인 예절을 따릅니다 . 결혼식 전날 밤에는 사위가 신부의 어머니나 다른 친척들을 만나서는 안 되며 , 잔치도 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신부가 아직 시부모님을 만나 뵙지 못했기 때문이다 . ( 가족 예절, 제3권 , 고전, 예절, 잡례, 가족 예절)
  
  
  
  
  
  
  
  
  
  
  
  
  


  
  
  
  
  

  
  
  
  
  
  
  
  
  
  

  
  

  
  
  
  
  










  

이 작품은 저자가 100년 이상 전에 사망했고 1931년 1월 1일 이전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공공 영역 에 속합니다.










  家禮卷三
<經部,禮類,雜禮書之屬,家禮>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