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가장 먼저 알리고 가을을 가장 늦게 보내는 나무가 있다. 입춘이 되자마자 노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알리고 살얼음이 어는 입동에도 맑고 선명한 붉은 열매를 파란 하늘에 띄우는 나무가 있다. 바로 산수유나무이다.
산수유나무는 사람의 손에 그 씨앗이 널리 퍼졌다. 약재로 가꾸는 나무이기에 밭둑이나 울타리에 많이 심었다. 어느 마을에는 집단으로 심어 봄이면 온 동네가 노란 꽃망울에 한껏 취하기도 한다.
경기도 이천이나 지리산 자락의 산내면에서는 산수유 열매를 약재로 내다 팔기 위해 심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 등의 정원에도 많이 심는 정원수가 되었다. 노란 꽃도 좋고 윤기 나는 잎도 좋고 붉은 열매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지금도 향교가 있는 마을에는 흔히 서너 그루의 산수유나무가 눈에 띈다. 한의사의 역할도 수행했던 유생이나 마을의 어른들이 심어 가꾼 것이다.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충북 제천시 청풍면 교리에 고목으로 자란 산수유나무 대여섯 그루가 있었다. 마을의 이름이 교리인 까닭도 이 마을에 향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텃밭의 배추가 무서리에 허옇게 오그라들 무렵이었다. 그때에 이 마을에 위치한 청풍향교를 둘러 보려고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교리에 갔다.
마을에 들어서자 원숭이처럼 나무에 매달려 노는 아이들이 먼저 눈에 띄었다. 10여세 난 개구쟁이들이 키 작은 고목에 올라 무엇을 열심히 따먹고 있었다. 다가가 살펴보니 아이들이 따먹는 것은 산수유나무 붉은 열매였다.
다소 씁쓸하기도 시큼하기도 떫기도 한 산수유 열매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맑고 선명한 붉은 열매만큼이나 밝고 맑은 아이들의 얼굴이 산수유나무 열매를 빼어 닮았던 것이다. 쌀쌀한 가을 날씨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아이들의 두 볼은 산수유 열매처럼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 이미지는 천재화가 이중섭이 그린 ‘해를 들고 있는 아이들’을 빼어 닮았던 것이다.
아이들을 앞세워 청풍향교를 찾아갔다. 퇴계 선생이 이름 지은 금수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향교를 둘러보고 다시 마을도 돌아왔다. 아이들은 다시 산수유나무에 올라 까치처럼 붉은 열매를 따먹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대여섯 개의 잘 익은 산수유 열매를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시큼털털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져 들어왔다. 늦가을을 상징하는 가을의 입맛이 거기에 있었다.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현방리에는 수령 100년이 넘는 산수유나무 군락지가 있다. 마을이 온통 산수유나무에 둘러 싸인 산수유마을이다. 봄이면 산수유 꽃 축제로 이 마을은 전국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야단법석이다. 산수유 열매로 만든 약재며 산수유 열매로 담근 술로 흥청거린다.
산수유 열매의 신맛은 정력 증강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이 신맛은 체내에서 수렴 작용을 하기 때문에 잠잘 때나 활동할 때 식은땀을 많이 흘리는 허약 체질에 약효가 있다고 한다. 또 신장 기능이 감퇴하면서 생기는 유정이나 조루증에 약효가 있다고 한다. 또 소변을 참지 못하고 자주 봐야 하는 노인성 증상과 야뇨증이 있는 어린 아이에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산수유를 장복하면 성 신경을 자극하여 성 기능이 좋아지고 허리나 무릎이 저리고 아픈 통증이 사라진다고 한다. 여자들에게는 빈혈이나 심한 월경 출혈 등에 약효가 있다고 한다.
산수유나무는 종자를 뿌려서 번식시킨다. 가을에 채취한 열매의 과육을 벗긴 다음 젖은 모래와 섞어 땅에 묻거나 저온 저장한다. 이듬해 봄에 씨를 뿌리면 곧 바로 싹이 돋지 않는다. 대추씨처럼 씨가 단단하여 해를 넘겨 2년이 지나야 비로소 싹이 튼다. 산수유나무는 양지바르고 비옥하며 습기가 많은 땅에서 잘 자란다. 7~8년을 자라면 많은 열매가 달린다.
한 해를 갈무리하는 가을이다. 귀 울림이나 어지럼증에 효과가 있는 산수유 열매를 옛날 아이들처럼 많이 따먹고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