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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큐티나눔]6월 둘째 주 그룹큐티나눔

작성자아라호(김범진)|작성시간26.06.13|조회수33 목록 댓글 0

6월 둘째 주 그룹큐티나눔

성령의 전

고린도전서 6:12-20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찬송 8장, 구 9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 봅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기에, 사람은 어떤 일이든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선택은 자신은 물론,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의 자유가 말씀의 울타리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말씀의 빛 아래 있을 때 가장 빛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가 자기 몸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도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자유는 유익함을 위해 있고 몸은 주님을 위해 있습니다(12-14절).
1)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라는 주장에 대해, 바울은 무엇이라고 응답합니까?(12절)
“다 유익한 것이 아니며, 나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겠다.”
‘내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말은 당시 고린도 지역 사람들의 구호였다. 그들은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으며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바울은 이들의 주장을 일부 인정한다. 성도는 죄와 사망의 권세, 율법의 권세로부터 해방된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것이 곧 방종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사람에게 자유가 있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행위가 다 유익한 건 아니다. 즉 성도가 자유를 부르짖으며 무책임하게 타인 또는 공동체의 생명과 자유를 침해한다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범죄다. 진정한 자유는 자기뿐 아니라 교회의 지체에도 유익이 되어야 한다. 자유롭게 행한다고 하면서 방종한 삶을 사는 것은 오히려 자기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기 권리를 통제할 줄 아는 것이다.

2) 몸을 욕구 충족의 도구로 여기는 사고방식에 반대하는 바울의 해석은 무엇입니까?(13절)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신다.”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는 말 역시도 당시 고린도 사람들의 대표적인 구호였다. 당시 헬라의 영육 이원론 사상에 의하면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 그래서 배에 어떤 음식을 채우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상은 단지 배의 음식 문제만이 아니라 몸의 성적인 문제로도 확장된다. 어차피 육체는 물질이기에 문란하게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더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런 사상에 대해 ‘몸은 음란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주를 위해 있으며, 주도 몸을 위해 있다’라고 반박한다. 특히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주를 위해 자기 몸을 써야 한다(참조. 롬 6:12-14; 갈 2:20).

나눔 1 성경은 ‘몸’을 자기 욕심이나 즐거움을 위해 함부로 쓰지 말고 공동체와 주님을 위해 제한하라고 가르칩니다. 주님과의 깊은 교제나 주님의 명예를 위해, 혹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내 몸(의 일)을 어떻게 절제할지 나눠 봅시다.

2.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자 성령의 전입니다(15-20절).
1) 우리 몸을 음란한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15-17절)
음행은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의 몸을 죄와 정욕의 지체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선언하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교회)의 지체들이라고 한다(참조. 고전 12:27).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연합한 자들이며, 예수와 함께 살아야 할 존재들이다(참조. 롬 6:3-1 1). 마치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듯이 그리스도와 교회는 하나로 연합되어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다(참조. 엡 5:2 3). 그런데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의 몸을 창기와 합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한 몸’(연합) 됨을 깨는 행위다. 음행은 단지 육체적인 죄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내는 심각한 영적인 범죄다.

2) ‘음행’이 다른 죄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18절)
다른 죄는 몸 밖에 있지만,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음행을 피하라’(헬, 퓨게테 뗀 포르네이안)를 직역하면, ‘음행으로부터 도망치라’이다. 이것은 음행을 저지를 만한 어떤 환경도 만들지 말라는 거다. 음행과 우상숭배의 유혹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정도 유혹은 견딜 수 있다’고 교만을 떨며 음행의 자리를 전전해서는 안 된다. 아예 음행을 저지를 환경 자체를 조성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철저히 음행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음행의 죄가 다른 죄와 달리 그 사람의 몸에 부정을 각인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의 몸은 주께 속하고 주를 위해 써야 할 몸이다. 그런데 그 몸을 창기와 연합시키면 그 사람은 자기 몸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상태로는 주님과 연합할 수 없다. 음행은 단지 부적절한 육체관계가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심각한 영적인 죄다.

3) 우리 몸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19-20절)
우리의 몸(성도, 교회)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며, 값이 지불된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다(참조. 요 1:14; 2:19-2 1). 바울은 예수님의 이 성전론을 이어받아 건물이 아닌 예수님과 연합된 교회가 성전이라고 선언한다(참조. 엡 2:20-2 2). 본문 19절에서도 ‘너희 몸’은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라고 한다. 바울은 교회가 성전이며, 그리스도인 각자의 몸이 또한 성전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음란한 행동으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을 부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또한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산 존재이기에(구속받은 자) 더 이상 사탄(죄)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나눔 2 그리스도의 지체답게 살지 못하도록 나를 유혹하는 환경은 무엇입니까? 그 유혹을 ‘피하기’(18절) 위해 오늘 내가 실천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눔 3 단순히 나쁜 일을 피하는 수준을 넘어, 하나님의 소유인 나와 우리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일은 무엇일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정욕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게 하소서.
공동체 - 우리 개인과 공동체가 성령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전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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