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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강의

[스크랩] 제 3 장 시조의 요소

작성자오쟁이|작성시간21.04.16|조회수862 목록 댓글 0
제3장 시조의 요소


문학의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랜 생명력을 지녀온 것이 시이며, 시 가운데 전통성을 유지해 오는 것이 정형시이다.
한 편의 시조는 그 형태 안에 언어, 율격(음률), 비유, 상징, 문체 등 여러 요소를 내포하고 있고, 이러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됨으로써 한편의 시조가 완성된다.
그러므로 시조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시조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을 파악할 필요가 있으며, 그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작시에 임했을 때 비로소 좋은 시조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시조의 중요한 요소들을 살펴보자

1. 시어

시조(시)는 고도의 언어 예술이다. 미술이 선과 색채로, 음악이 소리로써 도예가 흙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이라면, 시는 언어로 이루어지는 예술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시에 사용되는 말을 시어라 하며, 그 시어란 시에 동원되는 낱말들과 어구들을 일컫는다.
고시조의 경우 평시조는 대체로 운문성을 가진 아어(訝語)나 상투적인 어구들이 많이 쓰이고 있는 반면 사설시조에서는 일상적인 용어나 대담한 낱말들이 많이 쓰여 왔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시조에 이르러서는 어떠한 낱말이든지 시어로 사용되고 있는 터이다.
그렇다고 하여 시에 사용되는 모든 언어가 모두 시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어란 낱말 하나 하나가 독립적인 존재로서 사전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이미지나 리듬 등 어법․어조들과도 긴밀하게 연관되는 유기체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이라고 하면 일상적인 용법으로 쓰이는 말, 즉 대상을 지시하고 뜻을 드러내며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쓰이는 외연적 언어를 일컫는다. 시어 또한 이러한 일상적 언어와 따로 구분되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어로 선택된 언어들이란 내포적인 언어로서 함축적인 의미로 감정을 표현하고 정서를 환기시키는 독특한 기능을 발휘하는 언어들인 것이다. 이와 같이 선택된 시어들은 시조라는 구조 속에서 시조의 또 다른 요소인 음성, 음률, 이미지, 상징, 비유(수사법) 등과 긴밀하게 결합되고 유기적인 조화와 통일성을 이룸으로써 비로소 시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마디의 시어는 한 편의 시조 속에서 그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시조의 시어는, 완결성을 지향하는 시조의 구조에 의해 통일성을 지향하는 만큼 간결하면서도 폭 넓은 상상력을 깨워줄 수 있는 시어들이어야 한다.

한빛 黃土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 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 장부(丈夫)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 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쳐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박재삼 『내 사랑은』

인용 시조에서는 서러운 사랑의 정서가 잔잔한 여운을 자아낸다. 온몸을 태우는 기다림이 부연 들기름 불이 지지지 타는 밤으로 집중되면서 시름에 찬 사랑의 교묘한 배합을 이루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조약돌은 사랑의 상징적 존재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맑은 표상일 수도 있지만, 그 조약돌에 햇볕과 눈물을 적셔 주는 모습으로 지순한 사랑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서럽도록 아름다운 연민의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 작품에는 '황토재', '들기름 불', '사립', '여울바닥' 등 토속적인 언어와 '기다리다', '가라앉다', '저무는', '앓고', '시름', '눈물' 등의 하강적(부정적) 이미지의 시어들이 동원되어 있다. 이러한 토속어들이 질박한 사랑의 순수성을 높여 주고 있으며, 하강 시어들의 비극성과 조화를 이루면서 서럽고도 안타까운 사랑의 정조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조에 동원된 시어들은 심상이나 어조와 유기적인 관련성을 갖고 음률로써 독자의 정서에 깊이 감응하고 있다.

100w 전구들이 눈 밝히고 들어선
지하상가

밤과 낮이 함께 가는
문명의 무덤 속에

빈 가슴
때리는 시계추,

핏빛 울음 낳고 있다.

점으로 떠서 사는 괘종시계
1, 2, 3…… 속
상한 죽지 펴지 못한
새 한 마리 갇혀 있다.

서러워,
하루에도 열두 번
비비종종 우는
새.
이한성 『시계점에서』

이 시조에는 문명어가 동원되어 있다. '100w', '전구', '지하상가', '시계' 등 모두 현대 문명 및 사회적 산물의 명칭이며 용어들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자연히 문명적 요소가 내용을 이루게 되고 표준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누구나 지하상가의 시계포에서 시간을 알리는 새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문명의 편리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핏빛 울음', '상한 죽지', '서러워' 등 부정적 시어들을 결합시켜 그 의미를 정서화하고 있다. 시계라는 문명의 이기가 발명되고 부터 인간은 시간이라는 상자 속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밤과 낮이라는 자연적인 시간을 잃어 버리고 인위적인 시간에 얽매여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즉 문명사회 속에 피폐한 인간 정신과 왜소해진 인간의 모습을 이 시조는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새는 신이 허용한 만큼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인간 군상들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살짝 간 그 여자와 맛이 간 그 남자가 만나
배꼽 드러내고 밤새 시시덕거렸던 게야
한겨울 때 아니게 핀 철쭉꽃을 보자니
저 옛날 寒山拾得 헤프게 웃던 웃음
아마 그 웃음자투리 몰래 고아 먹었던 게야
붉은 뺨 멍자죽도 잊고 배배틀고 있으라니.
백이운『철쭉에 대하여』

풍자성을 띤 기지(wit)의 시조이다. 현대시조의 시어들은 옛 사설시조에서나 볼 수 있었던 언어들만큼 자유롭고 대담해졌다. 산문에 쓰이는 언어와 시조에 쓰이는 언어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살짝)간', '맛이 간' 등의 언어는 정신적 이상을 보이는 사람을 일컫는 속어이자 은유의 언어이다. 이러한 시어들이 '배꼽'과 연결되면서 한시대의 정신 풍토를 여실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윤리의 눈총에 피멍이 든 줄도 모르고 짐짓 '배배틀고'있는 간교한 몸놀림과 헤픈 웃음 위로 그야말로 맛이 간 한 시대의 풍속도가 떠올려지고 있다. 자연적 현상에서 현실을 통찰해 낼 줄 아는 시인만의 예리한 지각이 전하는 메시지이다.

흰 사발 깨지는 소리
영혼 깨진 듯 귀 아리다.

그 굉음 그 울림만큼
세상이 흔들렸다.

다 잃은 적멸구름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박연신 『흰 사발 깨지는 날』

'흰사발'로 상징되고 있는 시적 자아의 사유를 보이고 있는 시조이다. 이런 언어들을 그 단어가 가진 사전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산문적 의미밖에 전달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러한 시조를 감상할 때는 시인이 어떤 단어에 핵심적 의미를 두고 문맥화 시키고 있는지 알아보고, 이를 사회적 가치와 심리적 상황들과 연관시켜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여기에 동원된 언어들은 '적멸 구름'이라는 핵심어에 연결되면서 '적멸구름'의 의미를 상승시키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듯 이 시조는 다 깨어지고 그 굉음조차 사라진 뒤에 떠 있는 적멸구름, 즉 물질적인 것을 잃어버림으로써 각성되는 정신과 영혼의 비어 있는 상태(空)를 지향함으로써 쾌락(정화)의 심리적 상황을 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들에게는 저마다 즐겨 쓰는 시어와 시문법이 있듯이 시어의 유행 또한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유행하는 시어란 그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잔(相殘)의 피가 스민
돌이며 나무 바위

외로운 모국어로
새겨진 비명일레

남몰래
풀어보는 미학
노을 비낀 의미여
이근배『산하일기』에서

풀 위에 풀이 눕고
흙 위에 흙이 얹혀
싸하고 차게 흐르는
전류처럼 아파와도
들풀은 들풀끼리 엉기여
곤한 잠을 포갠다.
이상범『들풀小史』에서

한시대마다 유행하는 시어가 있다. '모국어', '휴전선', '철조망', '풀', '바람집', '구로동', '망월동' 등의 시어들은 50년대 이후 90년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마다의 상황, 즉 조국의 분단 상황과 군사독재, 그리고 시대가 가져다 준 허무주의 및 노동 해방운동과 광주 민주화 항쟁 등 시인이 시대에 대처하는 의식을 표현해 온 시어들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러한 시어들로부터 시대성을 읽게 되는데 이는 유행의 시어들이 갖고 있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행 시어들이란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신선한 느낌을 주지 못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시어의 선택과 기능 등을 살펴보았다. 시어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단순한 사전적 의미로 쓰이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시어로 선택된 언어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 언어여야 하며, 아울러 시조의 여러 요소들과 결합하여 시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유기적 언어이어야 한다.

2. 율격(meter)과 음률(rhythm)

시조(시)는 노래하는 정신에서 발생하였다. 시는 뜻(志)을 말하는 것이며 노래는 말을 길게 하는 것(詩經序:詩言志 歌永言)이라든가 서양에서 서정시를 리릭(rylic)이라고 이름한 것도 시와 노래가 본디 하나의 양식으로 인식한 좋은 예가 된다.
따라서 가창을 위주로 한 시조이든 음영(吟詠)을 위주로 한 시조이든 가락과 박자 감각을 가지기 마련이며 오늘날 현대시가 형태상 자유롭고 또 산문적 표현을 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로서 존재케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률이다.
우리가 시조를 읽을 때 일종의 흥취를 느끼고 감동을 받게 되는 것도 실은 시조의 본질적 요소인 그 음율적 효과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래시가 문자로 정착되어 눈으로 읽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노래스러움보다는 그 말스러움에 독자들의 관심을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현대시조에서 노래를 제기했을 때 음률 대신 말의 의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의미 단위인 구의 반복에 따른 구수율(句數律)에 의해 형성되는 의미율의 기능이 발휘되면서 시적 의미가 정서적 감흥을 일으키게 되고 보격을 밟아 더욱 시적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시조의 음률을 구수율 즉 의미율로 파악하는 것은 바로 이에 근거한 것이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시조는 정형시이다. 정형시란 작품에서 요구하고 있는 음율(rhythm)이 일정한 틀(율격)을 갖추고 있는 시를 말한다. 이러한 틀을 형식이라고 하며 그 형식을 그 어족의 언어상의 특성과 긴밀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어족의 사고 방식과 미의식이 결합하여 이루어 낸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정형시의 대표적 유형으로는 한시(漢詩)의 절구(絶句)와 율시(律詩), 일본의 당까(短歌)와 하이쿠(俳句), 서양의 소네트(sonnet) 등을 들 수 있다. 한시가 운(韻)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그들의 언어가 고립어이기 때문이며, 당까와 하이꾸가 음수율로 이루어지는 것은 일본어가 음절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양의 소네트(sonnet) 역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굴절어이기 때문에 강음절과 약음절의 강세 율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조의 율격은 어떠한가. 한국 시가는 부착어인 모국어(민족어)의 특성에 따라 4음절을 기준으로 하는 등장(等長:等時)음보의 규칙적인 반복과 연첩에 따라 형성되는 율격시이다. 그러면서도 각 한 음보의 리듬이 음수(글자수)에 따라 많은 변화를 보이는 데 형식의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론가들은 율격이 리듬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같은 율격을 따른 시들이라도 그 내용, 쓰인 말, 어조, 분위기 등에 따라 그 리듬이 달라진다. 즉 율격은 순수한 형식적․추상적인 틀인 반면에 리듬은 그 틀을 각개의 작품이 이용한 결과 실제로 조성된 형상이다. 순수 형식적 요인으로서 율격과 각 개 작품의 말소리의 자연스런 억양이 서로 상호 작용하여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조성한 것이 리듬인 것이다.
이상섭『문학 비평 용어 사전』에서

시조의 율격은 한 편의 글이 생경한 말의 한 토막이 아니라 재정리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경험을 말에 의해 질서화 하고 율격에 따라 말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율격이 질서를 지향하는 인간의 충동에서 오는 것이라면 음율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며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시조를 읽을 때 시조와 생활이 구분되는 소위 시적 감흥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행여나 다칠세라 ( 3 4 )
너를 안고 줄 고르면 ( 4 4 )

떨리는 열 손가락 ( 3 4 )
마디마디 애인 사랑 ( 4 4 )

손 닿자 애절히 우는 ( 3 5 )
서러운 내 가얏고여 ( 4 4 )
정완영『조국』1수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 3 4 3 )
너는 지금 어디메 있나 ( 4 5 )
누더기 한 폭 걸치고 ( 3 5 )
토막 속에 누워 있나 ( 4 4 )
네 소원 이룰 길 없어 ( 3 5 )
네 거리를 헤매나 ( 4 3 )
이은상『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1수

위의 예는 다 같이 조국을 노래한 시조이다. 시조의 율격을 의식하면서 읽었을 때 이들 시구(음보)들이 지닌 특유의 음률이 생긴다. 그리고 각기 다른 리듬임을 느낄 수 있다.
다같이 조국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소리의 질과 어조가 다르기 때문에 리듬이 달라 진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모든 시조들에서 두루 나타나는 현상이며 동일한 작자의 작품에서도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음성적 조직, 느낌, 호흡, 휴지 및 의미에 대한 고려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음율은 그 자체 독자성을 지닌 것이라기보다는 의미와 정서의 변화에 따라 작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시조의 틀(율격)은 일정하지만 음률은 상당히 다르다. 소리의 질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음률이 달라지는 예가 된다. 시조가 4음보율이라는 율격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의미와 감동으로써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음률의 다양성에 따른 의미의 구현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조가 700여 년의 오랜 생명력을 지녀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특성들 즉 3장의 전체적인 틀 속에서 자유롭게 음률을 구사할 수 있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며, 전통 시로서의 창조적 계승과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3. 비유(譬喩, metaphor)

비유(metaphor)란 원래 그리스어 mata(초월)와 phorein(전하다)의 합성어로서 자리바꿈, 옮겨 놓음이라는 뜻을 가진 용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물에게 다른 것에 속하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옮겨 넣는 일'은 유추를 근거로 하여 보편에서 특수, 특수에서 보편, 또는 특수에서 특수로 바뀜으로써 생긴다고 하였다.
그 목적은 장식, 선명감, 의미의 명확성 또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수께끼를 위해서라고 수사학자들은 말하였다.
우리가 어떤 새로운 현상과 사물에 부딪치거나 또는 독창적인 세계를 제시하고자 할 때, 이미 있는 언어로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필요한 언어들을 선택하여 비유를 통해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정서나 체험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비교, 대조, 유추, 유사성, 병치, 동일성 충돌을 융합의 원리로 결합시켜 하나의 복합개념을 만들거나 제3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내는 언어의 결합체가 비유인 것이다.
이와 같은 비유는 시인의 독특한 직관력에서 나오며 알려진 사실을 통하여 알지 못하는 또는 분명치 않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는 일을 한다. 언어의 전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같은 비유는 유사성에 근거하여 서로의 관련성을 함축하는 것으로 시적 의장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수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유는 그 형태에 따라 몇 가지 종류를 나뉘어지지만, 사유적 비유와 수사적 비유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자는 전이 혹은 역전에 의해 의미를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하며, 후자는 말의 수사학적 효과를 위해 쓰임을 말한다. 여기서는 시조의 창작과 직접 관련되는 수사학적 측면에서 그 유형들, 즉 직유․은유․상징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1) 직유(直喩)

모든 비유의 구성은 원관념(元觀念)과 보조관념으로 이루어진다.
원관념이란 의미재(意味材;取義大義)를 말하며, 보조관념이란 재료재(材料材)로서 매개체(매개어)를 말한다.
직유는 두가지 사물을 직접적으로 비교하여 형용하는 수사법이다. 원관념과 보조관념, 즉 취의와 매개어(媒介語)가 직선적으로 연결하여 주된 사물을 강조하거나 개념을 뚜렷이 하며 나아가 중의(重義)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꽃처럼 아름다운 여인', '바보처럼 울었다'와 같이 두 사물(꽃과 여인)을 연결시켜 주는 연결사인 '~같은', '~처럼', '~듯이', '~(인)양', '~마냥', '~보다', '~망정' 등의 관계사를사용하여 두 사물의 유사성을 비교하고 동등하게 관계 지우는 역할을 한다.

불 속에 구어내도 얼음 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지다
흙 속에 잃은 그 날은 이리 순박(純樸)하도다
김상옥『백자부(白瓷賦)』1수

백자의 하얀 빛이 얼음에 비유된다.
얼음이 보조관념(매개어)이고, 살결(백자)이 원관념이다. 이와 같이 보조관념과 원관념이 '~같이'라는 연결사에 의해 관계지워지면서 백자의 희고 투명한 빛깔이 시인의 투명한 감성에 의해 순수무구(無垢)함의 의미로서 형상화되고 있다.
그러나 맑고 투명한 얼음과 백자의 한백(寒白)색 빛깔은 단순하게 착색된 색깔이 아니라 뜨거운 열기에 온몸을 태움으로써 비로소 얻어진 색깔이다. 온갖 시련(고난)을 이겨내고서야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백자와 도공의 정신을 유추해 냄으로써 하나의 직유가 이해된다.

텅 빈 DJ박스
무반주로 시작되는
도심의 새벽은 늘
암회색으로 눅눅했다
철 셔터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 신음 가득한…….

골목을 흩고 가는
미답의 저 종소리
파지처럼 널브러진
바람들을 주워 모아
하루는 어느 첨탑을 돌아
획을 하나 그으려나.
나순옥『하루는』

『백자부』의 '~같이'가 물성의 유사성을 연관지워 주는 관계사라면 여기서의 '(파지)처럼'은 보이지 않는 형상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연결사이다. 바람의 외적 형상이 드러나지 않을 때는 그 의미가 모호해진다. 그러나 독자는 파지라는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바람'에서 구겨지고 널브러진 시간의 의미를 연상하고 내적 형상을 유추하게 됨으로써 비유의 의미를 전달받게 된다.
이처럼 직유는 '~같이', '~처럼', '~듯이', '~(인)양' 등의 관계사로 이루어지는 A=B라는 표현법이다. 그런데 직유란 보조관념과 원관념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즉 단어와 단어가 보조 형용을 매개로 하여 서술하는 단순 직유뿐만 아니라 낱말과 월(구절)을 또는 월과 월을 연결하여 의미를 충족시키는 확대 직유도 사용되고 있다.

목숨을 끊는 양 누워 슬픔을 새김질해도
내 귀엔 피 닳는 소리 살 삭이는 소리
산, 너는 죽어서 사는 너무도 큰 목숨이다.

그 황토흙 무덤을 파고 슬픔을 매장하고 싶다
다시는 울지 않게 천의 현을 다 울리고 싶다
풀 나무 그것들에게도 울음일랑 앗고 싶다.

어느 비바람이 와서 또 너를 흔드는가
뿌리치려 해도 누더기처럼 덮여오는 세월
깊은 잠 가위 눌린 듯이 산은 외치지도 못한다.
이근배 『내가 왜 산을 노래하는가에 대하여』

'큰 목숨'을 가지고 싶은 염원을 산에 기대어 표현하고 있는 시조이다. 직유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끊은)'양',(누더기)'처럼',(눌린)'듯이' 등이 그것이다. 1수는 보조형용을 매개로 하여 서술하고 있는 단순 직유이면서 동시에 확대 직유이다. 뿐만아니라 3수의 경우 세월이 누더기로 직유된 것을 다시 세월이 '(가위 눌린) 듯이 외치지도 못한다'를 확대 비유하고 있다. 곧 역사 의식으로의 확대 비유이다.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진 단어들이나 이질적인 단어들을 연결시켜 울음조차 울 수 없는 억압된 실존의 존재론적 의미를, 신(국토)의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직유는 단순 직유이든 확대 직유이든 '~같이', '~처럼', '~듯이', '~(인)양' 등의 연결사로 보조관념과 원관념이 연결되어 사물을 선명하게 표현하거나 의미를 확장시킬 목적으로 사용되는 수사법이다. 흔히 직유는 단순하다거나 낡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직유이든 은유이든 시적 표현의 적절성과 효과의 기여도에 따라 선택되고 활용된다.

2) 은유(隱喩, metaphor)

은유는 비유법 가운데 고도의 직관력과 상상력을 요구하는 수사법이다. 직유가 'A는 B와 같다(A=B)'고 표현한다면, 은유는 A와 B의 공통성을 전제하고 단번에 동일화시켜 버리는 수사법이다.
예컨대 '호수 같은 내마음'이라고 하면 직유가 되지만 '내 마음은 호수다'라고 하면 은유가 된다. 이와 같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동일시하여 형용하는 것이 은유이다. 또 A는 B라고 할 때, A가 본질로 바뀌어 B에 접근함으로써 A도 아니고 B도 아닌 새로운 본질을 드러내기도 한다. 은유가 비유법 가운데 고도의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것은 바로 이를 일컫는 말이다.
은유 중에는 원관념이 비교적 쉽게 파악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상당히 복잡한 유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파악할 수 없는 은유도 있다.

너는 위안이다 말없는 약속이다
짓밟혀서 돌아오는 어두운 사내를 위해

누군가 몰래 두고 간
테라스의 불빛 하나.
이우걸 『섬』

여기서의 '섬'의 상징적 의미는 '불빛'이다. '너는 위안이다', '(너는)약속이다'와 같이 사물과 관념이 결합되고 은유가 두 번 겹쳐져 이미지가 확대되고 있다. 섬을 의인화하고 다시 은유화하고 있으며, 마침내 '섬'은 '불빛'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테라스의 불빛'은 관념을 시각화한 은유로서, '불빛'의 이미지로부터 떠돌다 '돌아오는 어두운 사내', 즉 짓밟힌 한 시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시조가 쓸쓸하고 어렵고 힘든 삶을 달래 주기도 하고 먼 기다림의 사랑을 비춰주기도 하는 것이라면「섬」의 은유적 의미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은유는 환치 은유와 병치 은유로 다시 갈래지을 수 있다. 그 예를 시조 작품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비워두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것은 바람 속의 깃발도 아니었다.
역사를 바꾸어 놓을 축제의 장(場 )도 아니었다.
한 시대의 물굽이가 방향을 잃어버려
바위보다 무거운 침묵이 다가오는데
갈라진 이 유역에서 다시 듣는 외침들.
김교한『광장』

위의 인용 시조는, 제목인『광장』을 각 장의 시행들이 은유하고 있다. 은유는 유사성과 동질성을 문면에 드러내는 내용과 그 속의 뜻하는 바를 나타내는 겉과 속의 관계이다.
광장은 굴절된 현대사의 굽이마다 아프디 아픈 절규와 영광의 축포를 쏘아 올렸고 그것이 곧 광장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 무거운 침묵만이 짓누르고 있는 광장, 비어 있는 광장은 이미 그 의미를 잃은 광장이다.
시인은 침묵 속에 갇혀 있는 불가시적 관념을 청각화하여 들을 수 있도록 은유하고 있다.
그러나 각 시행을 독립시켜 보자면, '광장'과는 어떠한 관련성도 읽을 수 없다. 각 행이 모여 '광장'이라는 구체적인 공간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유추해 낼 수 있을 뿐이다.
이와같이 병렬과 종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 내는 것이 병치 은유이다.

괭이로 내려 찍는 땅
살이다
가슴이다
아무리 파헤쳐도
피만 흥건한 자리
치켜 든 괭이에 실은
힘은 울음이다
잠들기 전에 죽자 살자
매달리어
얼굴 묻는 자리마다
묻어나는 꿈과 절망
괭이로 내려 찍으면
땅은 그냥
울음이다.
조영일 『땅을 파는 사람들』

농경문화의 비극성을 노래하고 있는 시조이다.
땅이 ①살(이다), ②가슴(이다), ③울음(이다)으로 은유되고 있다. ①육신으로의 비유가, ②불가시적으로 관념화되고, 다시 ③불가시적 관념의 청각화가 혼합된 은유로서 '절망--울음--찍어내다'의 의미를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서 땅은 몇 가지 보조 관념으로 직접 전이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은 ~이다'의 형식으로 된 은유를 환치 은유라고 하고, <광장>에서처럼 '~이다'가 제거된 은유를 병치 은유라고 한다.
우리가 은유적인 표현을 하고자 할 때 직관력은 물론 모든 사물이나 관념에 대한 유사성과 상상력을 폭넓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참신하면서도 보편성을 잃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3) 의유(擬喩)

의유란 의성(擬聲), 의태(擬態,示姿), 의인(擬人) 등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의성이나 의태는 소리나 모습 또는 동작을 실제와 같이 묘사하는 것으로써 과거의 노래하던 시조에서뿐만 아니라 현대시조에 있어서도 시어나 표현상의 기법으로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찌르릉 벌목(伐木)소리 끊어진 지 오래인데
굽은 가지 끝에 바람이 앉아 운다
구름장 벌어진 사이로 달이 반만 보이고

낮으로 뿌린 눈이 삼고 골로 내려 덮여
고목도 정정(亭亭)하여 뼈로 알림일러니
풍지에 바람이 새여 옷깃 자로 여민다.

뒷 산 모퉁이로 바람이 비도는다
흰 눈이 내려 덮여 밤도 여기 못 오거니
바람은 무엇을 찾아 저리 부르짖느냐
장하보『한야보(寒夜譜)』

의성법은 사물의 소리를 실제와 같이 묘사하는 수사법이다. '찌르릉'은 벌목 소리의 의성어이다.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직유로 표현함으로써 설명보다 함축된 의미의 상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운다','부르짖느냐' 등의 청각 영상이 더해지면서 일제하의 불안 심리와 공포감을 드러내주고 있는 터이다.

플라타나스 잎 속에 숨었던 늦가을 까투리들이
연신 푸덕이며 운동장에 내려앉는다.
몇 놈은 피묻은 날개로 곤두박혀 떨어진다.
푸드득 산등을 날아 하늘에 가 닿던 것들
푸른 지느러미 같은 그 죽지는 부러진 채
우수수 허공을 흔들며 영혼들이 떠난다.

삶과 죽음을 가른 나뭇가지의 높이로
약간의 현기증 같은 여윈 꿈이 퍼덕인다.
숙연한 노을이 깔리는 이 지상의 빈 뜰에.
조주환『낙엽』
의태법은 사물의 모습이나 동작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자법이라고도 한다. '푸덕이며 곤두 박혀', '푸드득', '우수수', '퍼덕인다' 등 날개 치는 모습과 날으는 동작 그리고 떨어지는 모습들이 직유법적인 수사가 덧붙여져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의성어와 마찬가지로 의태어 또한 상징음으로서의 효과를 거두는 수사법이다.
의성어나 의태어는 단순히 소리를 모방하고 형상과 동작을 흉내 내는 것만이 아니라, 직유나 은유의 기법으로 시조 속에 끌어들이게 된다. 청각적 자극이나 시각적 자극에 관심을 두어 시적 활용가치를 높이고자 할 때 사용되는 비유이다.

1 女子, 하늘로
날아오르는 女子
큰 스님 손바닥에
紅燈을 내걸고
봉긋이
물 오른 아랫도리
오, 니르바나
불빛 하나

2 지새는 밤 그리움은
진창이라도 좋다
이것이
네게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내 살에 불, 불을 놓아
그대 江 건너리

3 너를 보변 따뜻한
마을이 보인다
따뜻한 불빛
따뜻한 방
따뜻한 무덤들
연분홍 바람의 살들이
흰 산의 이마
끌고 간다.
이지엽 『蓮』

의인법은 자연물을 인격화시켜서 그 성질과 동작을 표현하는 것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법일 뿐만아니라 시적 표현에 가장 많이 쓰이는 수사법의 하나이다.
위의 예는 의인법을 활용한 시조이다. 연꽃을 인격화하고 다시 여자로 비유하여 초월적 세계와의 친화적인 교감 상태를 보여 준다.

의인법에 명사적 용법, 동사적 용법, 형용사적 용법이 있다.
이와 같이 시인들이 신이나 자연현상과 같이 초인간적인 것에 인간의 성질을 부여하고 동물이나 식물이 인격화하는 수가 있다. 상상력이 분방한 시인이 예술적 세계를 추구하려 할 때 열중하면 할수록 현실적인 사고가 희미해지고 그리고 대상에 대하여 감정이 옮겨가서 의인법을 쓰게 된다고 하겠다.
강우식, 박제천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의성과 의태어의 활용이 원시어의 일차적 기능과 연관된다면 의인법을 인간 중심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감정 이입의 방법을 취한다는 점에서는 은유의 한 변형으로 보기도 한다.

간판들
악을 쓰며 제 몸을 팔아대고

벌레들
소리 죽여 제 이름 버리는데

멀다, 참
거듭 버려도

내 안
속잎 피는 거
정수자 『無明』

활유법을 사용한 예이다. 생명화시킨 무생물과 자연의 생물 현상이 '간판들 악을 쓰며'와 '벌레들~버리는'으로 활유되고 있다.
흔히 의인법과 활유법은 혼동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의인법이란 자연물(생물이나 무생물)을 인격화하고 인간 현상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을 말하고, 활유법이란 사물(무생명체)을 에너지화하고, 생물 현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4) 풍유(諷諭, Allegory)

풍유는 우유(愚喩)라고도 한다. 속담이나 잠언, 풍자적인 이야기 등이 이에 속한다.『이솝우화』와 같이 원관념을 뒤에 숨기고, 보조관념으로서 숨겨진 본래의 의미를 암시하는 표현이 풍유이다.

알레고리는 4가지의 특징을 지닌다. ①많은 의미의 요소로 이루어진다. ②각 요소는 한 개의 의미만을 지닌다. ③요소들 사이의 연관관계는 의미들 사이의 연관관계로 대응된다. ④구체적 의미를 표현한다.
콜웰『학생을 위한 문학 안내』에서


흙냄새나 맡아보자구
애들 몰구 일영에 갔었지

개기름 흐르는 사람들이 개 잡아 먹구 간 둑 아래서 모처럼 그 생김새나 보자구
물 아래로 눈 주니/ 돌빛 닮은 놈은 돌 밑으로 숨고 풀빛 닮은 놈은 풀잎 그늘로 피해
언제쩍 비니루 과자봉지만 멀건 물속에 흔들거리는데/ 그 중 어느 한 마리가 날 빤히
올려 보다간/ 예라 이 싱거운 놈아 뭣하러 예꺼정 왔니? 하곤 쪼르르 내빼지 않겠어

그 뭣한 송사리꺼정두
서울 사는 놈들
참 한심하다는게라
김상묵,『일영 송사리』

풍유는 주로 인간의 탐욕성과 비뚤어진 세태인 도덕적 타락상을 은근히 비판하는 비평 정신에 나온다. '개기름 흐르는 사람들'을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비니루 과자봉지를 산업사회의 황폐한 잔재로, 놀이 다니는 사람을 싱거운 놈으로 각각 암시하고 있다.
시인은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송사리의 입을 통해 순수성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잔악성과 이기심으로 추악해진 세태를 해학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주제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암시하여 꼬집고 깨우쳐 주는 방법이 풍유법이다.
풍유는 일반적으로 동물이나 무생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지만 인간 행위에 빗대어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수법은 사설시조의 전통적 기법이며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5) 반어법(反語法, Irony)

반어법은 어떤 사실을 정반대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넘어진 아이를 보고 잘 했다고 한다든가, 좋으면서도 싫다고 말하는 행위가 그 좋은 예가 된다.

순이는 내 친구
순이 아빤 아편쟁이

"내레 강원도 산골짜길 지내올 때였시오.
까마귀 떼 같이 몰려오는 비행기 서레 죽는 줄 알았디 뭐요. 걸어도 걸어도 사람 하나 못 보다가 해질 때 겨우 하나 만났는데, 나무에 기대 입을 벌리고 웃고 있디 않았갔시오. 내레 반가워 뛰어 가니 웬 여자가 나무에 묶인 채 타 죽어 있디 않았갔시오."

밤마다 화장을 하는
순이 엄만 멋쟁이
유자효 『부산 1953』

'밤마다 화장을 하는 / 순이 엄만 멋쟁이'는 반어이다. 화장 속에 숨어 있는 본 얼굴 즉 본 남편을 잃고 아편쟁이와 살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여인의 실존적 상황이 본래의 의미이다. 그리고 '아편쟁이'와 '멋쟁이'뒤에 말할 수 없는 비극성이 숨어 있음을 볼 때 반어적 구성이 한국전쟁(6․25) 당시의 비참한 사회상을 고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편쟁이'나 '멋쟁이'와 같이 다소의 풍자가 깃들어 있는 반어는 풍유와 마찬가지로 시인 특유의 안목에 따라 문명과 시대 또는 사회를 비판하게 된다.
반어는 겉으로 나타나는 말과 그 뒤에 숨은 뜻과는 반대 관계에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6) 대유법

대유법은 원관념을 연상시키는 매개어나 사물 등 어느 한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낸다든가 전체로서 일부를 나타내는 표현법이다. 대유법에는 제유와 환유가 있다.
제유(提喩)는 그 중 일부로서 전체를 나타내는 효과를 얻어내는 표현방법이다.

겨울 지나 이른 봄 햇살에 눈이 부실 때
꽃은 꽃들끼리, 물은 저희들끼리 모여
이 나라 무성한 소문 따지며 수근거리고.
언제쯤 온 천지에 공평한 날이 와서
물고기 혹은 새 한 마리 제 집 돌아와
한마당 북 장구 치며 노래 불러나 볼거나
그래, 녹수청산 병들지 않은 그리운 땅
내 마음의 나뭇잎 꽃 바람 돌멩이들
그 어디 푸르른 우주 경영하며 살아가리.
오종문 『이 나라 녹수청산』

여기서의 '녹수청산'은 국토를 가리킨다. 즉 녹수청산이라는 국토의 일부로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국토의 전체를 나타내는 효과를 얻어내고 있다. 마치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을 나타내는 것과 같은 제유이다.

환유는 어떤 사물(사상)을 그 속성이나 특성으로 생각되는 것에 대치시켜 제시하는 방법이다. 원인으로 결과를, 형식으로 내용을, 표지로 그 실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한결같은 나날을
이대로 견뎌야 하나.

내 고향 爲美里는 西歸浦로 삼십리, 자배봉 멀리 두고 장끼가 혼자 울어, 헐린 울담에
도 얼룩은 진다마는

산 노을
사위는 뜰에
짐짓 피는 인동초
오승철 『인동초』3

이 시조는 제유와 환유가 함께 사용된 예이다.
서귀포 삼십리로 제주도를 나타내는 제유법과 제주도 사람들의 인고에 찬 삶과 의지를 인동초의 속성(강인성)에 대치시켜 표현한 환유법이 활용되고 있다.
"푸드득 장까가 날더라/ 산을 비워 두더라"(위미리 소고 4에서)에서 장끼가 날아간 뒤의 빈산의 이미지는 원인으로 결과를 나타낸 환유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환유법은 자기가 말하고자 의미를 속성이나 특성으로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내적 관계를 친화적으로 환기시키게 된다.
대유가 단순한 외형상의 유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재적이며 정서적인 결합을 이루어 내야 한다.

7) 인유법(引喩法)

인유법은 고대 신화나 전설, 고전이나 고사, 속담 등 널리 알려진 구절이나 이야기들을 인용해서 의미를 강화하는 수법이다. 이러한 수법은 사설시조의 대화 형식과 엮음 구성 등에 많이 활용되는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강원도 漁盛田 옹장이
김영감 장롓날

상제도 복인도 없었는데요 30년 전에 죽은 그의 부인이 머리 풀고 상여 잡고 곡하기를 "불집 같은 노염이라도 날 주고 가소" 했다는데요 죽은 김영감 답하기를 "내 노염은 옹기로 옹기로 다 만들었다 다 만들었다" 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요.

사실은
그날 상두꾼들
소리였대요
조오현 『無說說』1

이 작품은 3개의 화소(話素)로 이루어진 다성구조(多聲構造)의 사설시조이다. "불집 같은 노염이라도 날 주고 가소 날 주고 가소"라고 하는 부인의 화소와, "내 노염 옹기로 다 만들었다 다 만들었다"고 하는 죽은 영감의 화소가 명인으로 인용되고 있다. 그리고 '사실은/ 그날 상두꾼들/ 소리였대요'역시 암인된 시중(詩中) 화자(시인)의 화소이다.
시중 화자(시인)는 1인칭 시점에 있으면서도 원심조명(遠心照明)의 객관적(초월적) 시점에서 사물(장례 모습)을 조명하여 3인칭 시점으로 진술하고 있다. 발화자의 두 목소리 (부인과 김영감)를 공존시킴으로써 극적 효과를 높이는 한편 시중 화자의 고백적 진술, 즉 '사실은/ 그날 상두꾼들/ 소리였다'는 암인(暗引)된 화소의 '사실'로 만상의 본디 것에 대한 화두의 의미가 강화되고 있다.
대화의 형식과 엮음 구성으로 이루어진 예의 인유의 형식이 이야기의 극적 효과를 나타내기도 하고 선문답의 오묘한 세계에 들게도 한다. 사실 시는 아무런 전제 없이 말을 한다. 그리고 이는 선적 체험과 서로 통한다. 자아(自我)와 타아(他我)의 구별을 거부하고 마음과 사물이 자연스럽게 마주하며 마음의 본성 그 자체를 깨우쳐 주려고 한 '상두꾼들 소리'였다는 진술은 곧 차별의 상(相), 분열의 상(相)을 멀리 벗어나라고 하는 무념(無念)의 선화(禪話)인 셈이다.
이상의 비유법 외에도 대구, 대조, 반복, 생략 등 다양한 수사 양식들이 시조 창작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시조 형식의 특성상 가장 중요시되는 수사법의 하나는 생략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감은 눈 속
님의 길은

반히 열린
외오솔길.

날 오라
손짓하고

만월 하나
걸어 놓고

눈 뜨자
못 미칠
적 적 (寂寂)


들판의
휘파람
박경용 『적(寂)』

시조를 절제의 미학이라고 한다. 불필요한 낱말과 핵심적인 정서 이외의 정서는 완전히 배제시켜 버렸다. 완결성을 추구하는 가장 간결한 시형식이 시조라고 할 때, 생략과 배제의 원리는 시조 작법상의 요체가 된다. 의미의 함축적인 표현만이 단시로서의 시조의 미학을 이루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조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비유의 양식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사실 한 편의 시조란 이상의 비유나 수사법 중 어느 하나의 주된 기법이 원용되기는 하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수사적 요소들이 혼합되거나 종합되어 시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시조의 여러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적절한 표현(법)을 얻었을 때 비로소 좋은 시조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작자들은 의미의 형상화와 전달에 적합한 표현법을 구사해야 한다.

4. 상징(Symbol)


상징(symbol)이란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Symballein'이다. 원래의 뜻은 동사로서 '조립한다'․'짝맞추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명사형으로서 표상(mark)․표시(token)․기호(sign)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와같이 상징이란 근본적으로 두 가지가 결합 또는 연결되어 복합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언어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표상, 표시, 기호 등은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대나무가 절개를 뜻하거나(관습상징), 태극기가 우리 나라를 표상하거나(제도적 상징), 아라비아 숫자가 어떤 수량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기호적 상징)들이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이미 상징 체계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자체로서 다른 것을 대표하는 사물 일체를 우선 상징이라 하겠다. … 문인은 말을 사용하는 만큼 기호적 상징은 물론 사용하며 제도적 상징도 필요한 만큼 사용하지만 특히 문학적 상징이랄 수 있는 상징을 사용하는 일에 정성을 기울인다. 문학적 상징은 우선 심상의 일종으로 본다. 그러나 일반적 심상이 구체적 감각적 사물을 환기시키는 낱말이라면 상징은 그런 사물을 가리키는 또는 암시하는 또 다른 의미의 영역을 나타낸다.
'장미꽃'이라는 낱말이 하나의 구체적 감각적 인상을 되살리는 데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심상이고 이 '장미꽃'이라는 심상이 정열 도는 쉽게 사라지는 사랑의 아름다움 등의 뜻을 가리키든가 암시하면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섭 『문학 비평 용어 사전』에서

상징의 사전적 정의다. 심상과 상징의 차이를 쉽게 차별해 낼 수 있다. 문학적 상징은 물론 기호적 상징이나 제도적 상징뿐만 아니라 관습적 상징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이 같은 상징들이 문학에 쓰일 때에는 주어진 작품의 여러 요소들과의 사이에 내적 관계를 가지고 개인적 상징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의 상징적 의미는 그 작품 속에서만 드러나며 또 다른 영역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용어로서의 상징은 눈 앞에 보이는 세계인 어떤 현상의 세계가, 연상에 의하여 보여지지 않는 세계인 정신 세계와 일치하게 되는 표현 양식을 말한다. 곧 경험이 가능한 세계를 통해서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문학적 상징이란 결국 이미지와 관념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김명인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런데 문학에서의 상징은 하나의 사물을 현실성 있게 표현하면서도 그 작품 속의 다른 사물들이나 인물에 작용하거나 작용을 받아들이는 상호 침윤의 혼융 상태에서 특수한 의미를 띠게 된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는 하나의 단어나 비유에서 찾을 수 있고, 한 장(연)이나 시조 전체의 문맥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둠을 갈고 어둠을 갈다 보면
검은 먹빛 속에 피가 스밀 때가 있다
백성의 타는 뜻일랑 붉은 먹으로 쓴다.

흰 창호지에 蘭도 山水도 붉은 빛깔이다
댓돌 밑에 엎드려 삼 년을 울어도
王朝의 크나큰 아픔을 누가 값하랴.

갓 쓴 놈, 벙거지 쓴 놈, 패량이 쓴 놈,
푸줏간 고기는 모두 한 斤식이다.
흰 옷의 갈기를 세워 旗를 올려라.
이근배 『朱墨畵』

문화적 전통의 상징시조이다. 실학의 상징적 존재의 다산(茶山,정약용)을 시화(詩化)하였다. 어둠으로 표상되는 조선 말엽의 한 시대를 열어가고자 했던 다산의 뜻을 핏물 도는 먹빛과 기(旗 )로 상징화시키고 있다.
'어둠'이라는 단어의 상징적 의미는 개화되지 않는 시대의 한 표상이다. 그리고 '피'는 백성들의 고난에 찬 삶의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사물과 관념이 상호 침윤된 혼융의 상태에서 다산 의지가 민초들이 올리는 깃발로 형상화되고 있다. 여기서 '흰 창호지'나 '흰 옷'의 관습적 상징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붉은 핏빛의 먹물이 스밈으로써 암시성과 다의성을 띤 개인적 상징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낱말 상징, 수(首)의 상징, 문맥 전체적인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선명한 이미지의 제시에 의해 어렵지 않게 다산의 뜻이 전달되고 있다.
이와 같이 "과거의 역사란 문화 속에서 제재를 취하여 새롭게 상징화하는 것을 문화적 전통의 상징"(강우식, 박제천『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이라고 한다.

木手가 밀고 있는
속살이
환한 角木

어느 古典의 숲에 호젓이 서 있었나

드러난
生涯의 무늬
물젖는 듯 선명하네.

어째 나는 자꾸 깎고 썰며 다듬는가.

톱밥
대팻밥이
쌓아가는 赤字 더미

결국은
곧은 뼈 하나
버려지듯 누웠네.
서 벌 『어떤 經營․1』

이 시조는 (곧은)뼈를 각목(角木)으로써 상징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만이 가지는 각목이다. 즉 개인적 상징이다. 개인적인 상징이란 시인의 지적인 상징을 말한다.
각목의 생성과정 즉 생애의 무늬와 적자더미의 다의성이 그 구체성을 띠면서 뼈라는 실존의 의미를 암시한다. 관념(사유)과 인생론적 사물의 결합이 통일된 상징체계를 이루면서 각목의 이미지가 더욱 선연하게 비춰진다.
시조의 특징을 살펴볼 때 시의 개인적 상징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 수 있다.

갈대가 갈대끼리 몸부비는 언덕에 서면
세상은 더없이 크고 공허한 바람집 한 채
갈꽃만 헛말처럼 날리는 바람집 한 채

이길 수가 없다. 오늘 이 벅참들을
비늘 돋던 신명들은 강으로 흘러가고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일어서는 파도여

갈대여, 네 가난한 생각 하나로는
이 아득한 우주를 지킬 수가 없다.
망연히 그저 섰을 뿐
헛말만 흩뿌릴 뿐.
박시교 『바람집․2』

일종의 알레고리적 상징이다. 갈대가 생각하는 사람을 뜻할 때는 관습적 상징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의 갈대는 단순한 관습적 상징물이 아니라 실존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시적 자아의 표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시인은 개인적인 상징물로서의 갈대와 존재론적 성찰의 끝에 인식된 '바람'으로 한 채의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늘고 연약한 갈대의 외로움이 엄청난 무게의 공허를 떠받치고 있다. 그 공허함은 인생론적 사유의 허무일 수도 있고 한 시대의 절망감이 안겨다 준 공허함일 수도 있다. 이렇듯 갈대의 이미지와 바람의 다의성이 결합하여 사실적인 의미 이상을 표상하고 있는 '바람집 한 채'는 헛말뿐인 현실의 공간 위에 지어진 공허한 존재의 집임을 알 수 있다.
이상섭은 "어떤 심상이 어떤 추상적인 의미를 나타내되 막연히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의 의미만을 대표하도록 쓰인 경우에는 알레고리스런 상징"(『문학 비평 용어 사전』에서)이라고 말하고 있다.
'갈대'와 '헛말', '바람집 한 채'의 의미 즉 시대 현실의 중압감아래 무력화하고 왜소화해 가는 인간(시적 자아)의식과 위선과 비리에 찬 한 시대의 절망이 바로 그것이다.

풍지에 바람 일고 구들은 얼음이다
조그만 책상 하나 무릎 앞에 놓아 두고
그 위엔 한 두 숭어리 피어나는 수선화

투술한 전복 껍질 발 달아 등에 대고
따뜻한 볕을 지고 누어 있는 해협 수선
서리고 잠 들던 잎도 굽이굽이 펴이네

등에 비친 모양 더우기 연연하다
웃으며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숭이숭이
하얀 장지문 위에 그리나니 수묵화를
이병기『수선화』

시조에서 특히 많이 쓰이는 상징은 자연 상징이다.
수선화는 2월의 차가움 속에 피어나는 꽃이다. 시인은 그의 생명 감각으로 파악한 수선화의 강렬한 생명력을 한 편의 수목화로 표상하고 있다. '바람', '얼음'이 내표한 상징은 시인이 처한 일제하의 시대적 상황이지만 동시에 겨울로 상징되는 차가운 현실 속에 놓은 시적 자아의 존재 양상을 암시하기도 한다.
2월의 차가움 속에 피어나는 수선화의 생리는 차가움이며 차가운 만큼 강렬한 생명력을 지닌다. 그 생명의 본질이 장지문 위에 빛과 그늘의 의미로 그려지고 있다. 즉 생명의 차가운 생리와 '볕'의 따뜻함을 생명의 에너지로 대비하여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수선화의 모습이 더욱 연연하게 비춰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는 불이었다. 그리움이었다.
구름에 싸여 어둠을 떠돌다가
바람을 만나 예까지 와
한 조각 돌이 되었다.

천둥 비바람에 깨지고 부서지면서도
아얏,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견뎌야 할 목숨이
남아 있음이라.

사람들이 와 '절망을 말하면 절망'이 되고
'소망을 말하면 또 소망'이 되지만
억년을 엎드려도 깨칠 수 없는
하늘 소리.
땅의 소리.
김제현 『돌』

원형 상징과 개인적 상징으로 된 시조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첫째 수는 원형상징의 예가 된다.
원래 원형 상징은 신화와 깊이 관련되는 상징이다. 여기서의 돌의 원형은 지구가 형성되기 전의 혼돈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니까 '불'과 '그리움'은 어둠(미지)에 싸여 있는 상태의 돌의 존재 양상을 외적 형상과 내적 관념을 투사하여 하나의 존재 양식을 암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혼돈 상태를 벗어난 '돌'은 지구 형성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오랜 생명력 지닌 존재로서의 상징성을 띠게 된다.
정신의 투사를 통해 인간의 원형적 정신 구조와 그 모습을 찾고자 할 때나 현상의 투사로서 보편적 인간 경험의 시원성이나 집단 공동체의 무의식 속에 들어 있는 원초적 심상을 표현하고자 할 때 활용되는 상징법이 원형 상징이다.
이러한 상징적 요소는 다양한 연상 작용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때 시인의 자아 의식을 상징적으로 재문맥화함으로써 개인적 즉 문학적 상징을 이루게 된다.
이상 시조 창작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문학적 전통의 상징, 개인적 상징 (문학적 상징), 알레고리적 상징, 자연 상징, 원형 상징,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김명인의 말과 같이 상징이란 워낙 모호한 부분이 많아서 보편적으로 명확히 해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개인의 표상이 은밀하게 드러나는 개인 상징은 더욱 그러하다.
비유나 이미지가 의미의 전이나 역정을 목표로 하거나 구체적이며 감각적으로 사물을 환기시키는 구실을 한다면 상징은 그런 사물들을 가리키거나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징이 문학에 쓰일 때에는 주어진 작품의 제요소들과 그 사이의 내적 관계에 의해 개인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시적 상징의 특색이다.

5. 이미지 (Image)

이미지 (image)란 '그림자'․'모조'의 뜻을 가진 용어로, 우리말로는 '심상'․'영상' 등에 해당하는 말이다.
동양의 시화(詩話)들은 일찍이 '경중시 시중경(景中詩 詩中景)이라 했다. 자연(경치)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경치(자연)가 있다는 뜻으로 시는 모금지기 사물을 그려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시를 볼 대 전반부에서는 경치(사물)를 그리고, 후반부에 시인의 감정(정취, 감흥, 이치)을 표현하는 것이 그 좋은 예가 된다.
서양의 시론가들은 이미지를 "언어로 구성된 그림이다"(C.듈리스)라고 정의하고 시적 이미지는 문맥 속에서 어느 정도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한 다소 감각적인 그림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단순한 마음의 그림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어떤 것에 호소해야 한다"고 웨렌은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들은 다같이 시의 시각적 이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시적 이미지는 단순한 언어의 구현체가 아니라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인간의 정서를 하나의 그림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현대시의 80%가 이미지로 되어 있다"고 한 '뽈 발레리'의 말과 같이 현대시는 거의 이미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러나 시적 이미지가 반드시 시각적 의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시적 이미지는 청각적 이미지도 있고, 감정과 기분을 자극하는 다른 모든 이미지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시조에 시각적 이미지가 도입되고, 그것을 시적 기법으로 활용한 시기는 1930년대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곧 가람의 감각적 시조가 그것이다. 그러나 보다 본격적인 작업은 훨씬 뒤의 일이며, 비록 회화성을 높이고 있다 하더라도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 조화하는 공감각적 이미지의 추구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는 우리의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해 체득된 경험이 마음 속에 잠재해 있다가 새롭게 재생되는 것을 인식할 때 생성된다.

이미지는 신체적 지각에 일어난 감각이 마음속에서 재상된 것이다.…
한때 지각되었으나 현재는 지각되지 않는 어떤 것을 기억하려고 하는 경우나 체험상 마음의 무방향적 표류의 경우나 상상력에 의해서 지각 내용을 결합하는 경우나 꿈과 열병에서 나타나는 환각 등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신체적 지각이 아니라도 마음은 이미지를 역시 생산할 수 있다. 한층 특수한 문학적 용법으로서의 이미저리는 언어에 의하여 마음 속에 생산된 이미지군(群)들을 가리킨다.
프린스턴 대학 {시학 사전}에서

이렇게 성립되는 이미지는 우선 감각의 종류에 따라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내용면에서는 정신적․지각적․비유적․상징적 이미지군(Imagery)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한 편의 시조에는 하나의 이미지만이 아니라 여러 개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 시조는 이미지군(群)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근 숲
여윈 가지 끝에
죽지 접는 새처럼,

물에 뜬
젖빛 구름
물살에 밀린 가랑잎처럼,

겨울 해
종종걸음도
창살에 지는 그림자처럼.
김상옥 『근황(近況)』

이 시조에서 '숲', '새', '구름', '물', '가랑잎', '겨울 해', '그림자' 등이 모두가 이미지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적 영상이 모여 이미지군(Imagery)을 이루고 있다. 이같은 이미지는 시인의 지각 작용에 의해 체득된 경험이 마음속에서 구체적으로 인식됨으로써 생성되는 이미지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는 『근황』, 즉 시적 자아의 심리적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덩어리로 존재하는 세 개의 이미지군이 질서적이고 통일된 느낌으로 시인의 내적 심리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여윈 가지 끝', '(죽지)접는', '(물살에)밀린', '지는' 등과 같은 하강(부정적) 시어들이 정서를 불러일으키며 시인의 인생론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곧 이미지의 힘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심리적 이미지라고 한다. 또한 자기 마음의 감각 영상을 문자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상징적 이미저리라고 할 수 있으며, 시조가 존재하는 이유의 하나는 이런 심리적 이미지들을 시조의 형식 속에 담을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작자 미상 옛 그림 다 자란 연잎 위를
기름종개 물고 나는 물총새를 보았다
인사동 좁은 골목이 먹물처럼 푸른 날

일곱 문 반짜리 내 유년이 잠겨 있는
그 여름 흰 똥 묻은 삐닥한 검정 말뚝
물총새 붉은 발목이 단풍처럼 고왔다

텔레비전 화면 속 녹이 슨 갈대밭에
폐수를 배경으로 실루엣만 날아간다
길없는 길을 떠돌다 되돌아온 물총새
유재영 『물총새에 관한 기억』

시각적․ 상징적 이미지의 시조이다.
'연잎', '물총새', '말뚝', '발목', '단풍', '텔레비전', '녹', '갈대밭', '폐수', '실루엣', '길' 등이 이 시조에 동원된 시각적 이미지이다. 그런데 이미지들은 서로 충돌하고 있으며, '물총새'의 이미지는 세 번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물총새의 이미지군이 패턴화하여 시문맥을 이루면서 시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상징적 이미지의 기본이 되는 것은 반복과 회귀라고 할 수 있다. 3장으로 된 이 시조의 구조는 각기 그 배경을 달리하고 있다. 첫 수는 옛그림, 둘째 수는 유년의 추억, 셋째 수는 텔레비전 화면이다.
이와 같은 배경속에서의『물총새』는 연상작용을 통해 먹으로 그려진 옛그림 속의 물총새와 유년의 기억 속에 천연색으로 살아 있는 물총새의 이미지, 그리고 폐수를 배경으로 날고 있는 실루엣(물총새)의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고 있다. 이미지의 충돌에 따라 떠돌다 돌아온 물총새의 이미지가 더욱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으며, 산업사회가 가져다 준 자연 파괴와 삶의 피폐성이 강렬한 메시지로 전달되고 있다.

상징적 이미지를 말할 때 그 기본이 되는 것은 반복과 회귀이다. 어떤 시적 이미지는 한 작품 속에서 되풀이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반복적인 사용으로 말미암아 달리 확정지울 수 없는 추상적인 큰 뜻을 작품 전체에 내포시키거나 한 개의 이미지로 여러 이미지를 거느리면서 작품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명인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미지란 곧 시각적 영상을 뜻한다. 그러나 모든 시조가 시각적 이미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월남전도 끝나고 월남땅도 망했다지만
우리 집 뒷마루 적막한 방에는
아직도 아주머니의 월남전이 남아 있다.

백마부대 손 흔들며 씩씩하게 떠난 형님
메콩강 기슭에서 군화 소리 높았어도
그 땅을 헤치고 뛰던
형님은 오지 못했다.

사월이라 맑은 날 꽃구름 피어날 때
분홍 잠옷 벗어 두고 어두워지면
아파라, 긴긴 그 밤을
목련꽃
홀로 진다.
이우걸『목련꽃』

하나의 이미지(목련꽃)가 작품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예이다.
형님이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건이 시적 모티프가 되었다. '방', '사월', '분홍', '잠옷', '밤' 등의 이미지가 모여 본능적 정서를 유발시키고 있다. 첫째와 셋째 수의 종장 '아파라', '긴긴 밤', '목련꽃', '홀로 진다' 등의 구절은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이미지이다. 이처럼 상상력은 이미지를 생성시키며 이미지의 힘이 되는 것이 상상력이다.

비와 바람
뇌성도
그리 울어쌓더니

뒤란엔
푸새만이
턱없이 웃자라고

발등에
떨어지는 秒針소리
빈 집에 가득하다.
진복희 『초침』

청각적 이미지로 되어 있는 시조이다.
'뇌성', '울어', '초침소리' 등 청각으로 지각된 단어들이 모여 빈 집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비와 바람/ 뇌성'이 젊은 날의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면, '발등에/ 떨어지는 초침소리'는 지금 시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정서이다. 초침소리의 미시적 청각 요소가 집과 대치하면서 부재(不在)의 적막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작자의 고적한 마음의 한 상태를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이다.
청각적 이미지는 우르르쾅, 책각책각 등의 의성어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시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정오의 빈 들녘에 핏빛 노을이 타오른다
숨찬 경운기 부대 속속 읍내로 들어서고……

물 건너
몰려온 한파(寒波)
우짖고 있는 풀뿌리.

성난 쌀. 그 쌀상여.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만장이여
무너진 상복 행렬 쇠장터에 진을 치고……

한겨울
밤이 깊어도
들불 거푸 치솟는다.

어둡고 차운 고개 허위넘는 떼기침 소리
해진 농기(農器) 몇 개 지쳐 쓰러진 마을 어귀로

뜻 모를
먼동이 튼다
새벽 닭이 홰를 친다.
송선영『신․귀성록(新․歸省錄)』

공감각적 이미지의 시조이다. 시각, 청각, 촉각의 이미지들이 활용되고 있다. '들녘', '노을', '풀뿌리', '만장', '상복 행렬', '들불', '농기(農旗)', '닭'의 시각적 이미지와 '우짖고', '떼기침소리', '(홰를)친다' 등의 청각적 이미지 그리고 '숨찬', '허위(넘는)', '한파(寒波)', '차운' 등의 촉각적 이미지들이 모여 비통함의 정서를 온몸의 감각으로 호소한다.
예컨대 '노을'이 아름다움 말의 느낌을 전달한다면 이미지가 되지 않는다. 핏빛이라는 색깔과 타오르는 동작을 수반함으로써 감각적 인상을 되살리고 있고, '정오'와의 아이러니한 대조에서 구체적인 심상의 이미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토대로 한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여러 이미지들이 모여 '쌀'수입 개방에 따른 농촌의 총체적 위기 의식을 반영해 주고 있다.

그대 앞에 나는 늘 새벽 여울입니다.
그 여울 소리 끝에 불 켜든 단청입니다
다 삭은 풍경(風磬)입니다,
바람입니다, 춤입니다.
박기섭, 『춤』

비유적 이미지로 되어 있는 시조이다. 비유적 이미지란, 비유로 제시되는 이미지를 말한다. 인용 시조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인의 상상력은 물에서 출발하여 사랑의 뮤즈를 상징적인 이미지로 제시한다.
"나는, 여울입니다, 단청입니다, 풍경입니다, 바람입니다, 춤입니다" 들이 곧 확장된 은유 이미지들이다. 시적 자아의 생명 의식이 물에 닿아 있고 그 생명 감각에 의해 지각된 심상을 물의 전화 현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상징에 의해 표출된 시인의 정서가 행간마다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늘 봐도 비실비실 지레 지쳐 굳은 상판
대접도 변변히 받지 못한 툇마루 끝
지금은 땟물 나는 거실 마른 꽃의 꽃받이로.
이름을 다시 달자면 그야 꽃사슴 다리
고봉밥, 술 한 대접, 풋나물, 자반 한 토막
그런 것 고작인 날에 개다린들 황송했지.
때 끼고 윤기 돌고 흠이 간 작은 소반
가다간 혈이 닿아 눈물 찔끔 한도 찔끔
발그레 일그러진 면상 먼 얼굴이 겹친다.
이상범, 『개다리 소반』

이 시조는 이미지가 중첩된 한 예이다. 이미지의 중첩은 주제를 복합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된다. 먼저 '툇마루 끝', '고봉밥', '술 한 대접', '풋나물' 등의 허름한 상차림이 가난을 연상시키며 푸대접을 받는 민초들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그 소반이 지금은 '마른 꽃'을 받치고 있고, 그 이름도 '꽃사슴 다리'로 바뀐다. 곧 장식적 기능의 탁상으로 바뀌면서 그 존재 의미가 무상함의 정서를 전한다.
개다리 소반의 이미지와 꽃사슴 다리의 소반의 상반된 이미지가 과거와 현재의 아이러니한 대조를 이루면서 한 편의 작품 속에 포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미지의 시적 기능은 무엇인가. 시론가들은 이미지가 시 속에서 획득하는 기능으로 신선감, 강렬성, 환기력 등을 들고 있다.
신선감이란 어휘나 소재를 통해 드러나는 새로움을 말한다. 그것을 빚어냄으로써 시의 이미지는 우리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그 무엇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강렬성이란 좁은 공간에 가능한 한 의미심장한 많은 의미를 집중시키는 것을 뜻하며, 환기력이란 시적 정열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말한다.
한편 알렉스(Alex)의『시학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이미지의 기능을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미지는 시 속에서 화자가 말하고 있는 일체의 제재인 인간, 대상, 장소, 행동 등을 지시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또 시 속의 화자의 진술을 통하여 하나의 주어진 제재를 다른 제재와 대조시킴으로써 이미지는 제재인 동시에 상징화되는 기능을 갖게 한다. 그런가 하면 이미지는 시 속에서 일종의 유추 기능을 형성한다.
결국 이와 같은 기능들이 이미지에 의해 수행됨으로써 시인의 사상과 정서는 한 편의 시 속에 담기게 되고 나아가 독자에게도 시적 정황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기능이 중요한 시적 기능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 편의 시조(시)가 이미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의 예시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조의 여러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정서적 조화와 의미의 통일성을 이룸으로써 한 편의 좋은 시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시조의 형식이 이미지를 담아낼 수 있고 또 현대시조가 이미지의 추구를 지향함으로써 그 표현방법상 발전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터이다.

6. 의미

일찍이 동양의 시론(詩論)들은 시를 정의하여 공자는 "시란 뜻을 말하는 것이고, 마음 안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된다.(詩志 在心爲志 發言爲詩)'고 했으며, 백거이(白居易)는 '시는 정을 뿌리로 하고, 말을 싹으로 하며, 소리를 꽃으로 하고, 의미를 열매로 한다."고 했다. 시의 정의 가운데 이만큼 포괄적이며, 구체적인 정의도 없을 것이다.

무릇 시는 뜻(意)을 위로 삼고, 의를 설정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말을 맞추는 것은 그 다음이다. 意는 또한 기(氣)를 위주로 한다. 기의 우열에 따라 뜻의 깊고 옅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기란 천성(天性)에 딸린 것이어서 배워서 이룰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가 떨어지는 사람은 글 다듬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의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체로 글을 깎고 다듬어 구(句)를 아롱지게 하면 아름다워짐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거기에 심후(深厚)한 의가 함축되어 있지 않으며 처음에는 볼 만하나 다시 씹어보면 맛이 없어져 버린다.
이규보 『白雲小說』

여기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바로서의 지(志)나 의(意, 意味)란 시상을 말한다. 그러니까 시상을 잡는 일이 시 짓기에 있어 제일 어려운 일이며, 시어를 선택하고 용사(用事)하는 일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물론 한시(漢詩)의 정형성을 전제로 한 견해이지만 동양 이론의 근본적인 출발점이 시의 형식과 내용 가운데 시적 표현성보다는 그 내용(의미)성을 보다 중요시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는 터이다.
시조란 음보(또는 3․4조)에 따라 아름다운 낱말을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정신을 담아 내는 문장이다. 그 문장 속에는 한 줄기의 정신 내용이 흐르기 마련이고, 그 가닥을 이루는 것이 시상(詩想), 곧 시적 의미의 세계이다. 시조의 이와 같은 의미 세계는 감상적이거나 이성적 세계로 구분하지 않고 지각에서 사유에 이르게 된다. 하나의 낱말에 담긴 의미가 이미지와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구현(스스로 그렇게 됨)하게 된다. 따라서 시조의 의미는 철학이나 과학처럼 개념적이거나 명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서적이며 체험적인 것이며, 미적 쾌감(감동)을 줄 뿐만아니라 깨우침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무상(無常)을 타이르듯
가을 밤 비소린데
서로 죽임을 앞세려
뿌리는 방사능진(放射能塵)
두어도 백년을 채 못할
네나 내가 아닌가
이호우 「聽雨」

시조는 인간주의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①두어도 백년을 채 못 채울 인간의 목숨(종장) ②인간을 살상할 무서운 핵무기의 개발 경쟁(중장) ③무상을 타이르는 가을 밤의 빗소리(종장)의 세가지 사실(또는 선험적 사실)이 역으로 서술되면서 인류를 파괴하려는 핵무기의 개발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즉 전체적인 의미체계가 역으로 구조된 셈이다. 현실적 상황에 대한 인식과 지각이 선험적 사실과 결합하여 시적 의미를 이루고 있으며, 서정성을 깨뜨리고 있지 않으면서 강렬한 반핵(反核)의 의지(주제)를 메시지로 전하고 있다.
이와같이 시조의 언어들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낱말과 낱말이 만나 의미를 생성하고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장(문장)들이 층층이 어울려 새로운 의미의 세계를 창출하게 된다.

벽을 지고 앉으면
일어서는 또 하나의 벽
목숨의 덩굴손만
덧없이 자라는데
투신할
한 평 땅도 없이
나는 한갓 떠도는 섬.

입덧난
한 그루 盆을
창가에 옮겨 놓고
실뿌리만 무성한
내 가슴을 들여다 본다
긴 긴 밤
낫질 일삼는
손길인 듯
불길인 듯.
진복희 「아파트」

이 시조는 일상의 체험을 형상화한 예이다. 시조는 한장의 문장으로 듯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과 장 사이에서 의미가 증폭되면서 깊은 뜻을 드러낸다.
벽과 벽 사이의 유폐된 공간에 채워진 절망감과 투신할 한 평 땅도 없는 부재(不在)의 의미가 외로움의 정서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러한 의미소들이 역으로 덧없는 덩굴손을 자라나게 하고 마침내 입덧난 한 그루의 분(盆)으로 생명화한다.
생명에 대한 지각이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손길인 듯 불길인 듯' 자르고 다듬어가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삶의 의지가 시적 의미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골짜기에 핀대서 다 꽃이 아니듯이
제 빛 늘 지녔지만 그냥 山色이 아니듯이
그림자
길게 끄신대서

밤은 아니다.

質 고운 비단 고르듯
풀섶
지나온
바람,
길목을 지키고 앉아
寂寥를 즐기노니
활활활 타오른다고 해서
그게
불꽃만은
아니다.
한분순 「斷想․7」--놀빛 考

시조의 의미란 인간 개체마다 비밀스럽게 경험한 체험의 내용이며 발견이자 깨달음이다.
그리고 그 진실의 나타남을 단순한 지각적인 의미가 아니라 저마다 느끼고 판단하고
깨우쳐진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예의 시조에서는 관념적인 세계를 깨뜨린, 새로운 깨달음의 지각 상태가 엿보이고 있다. '다 꽃이 아니듯이 ', '그냥 산색이 아니듯이', '꼭 밤이 아니다', '그게, 불꽃만은/ 아니다' 등의 부정적 구절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외형적, 관념적인 의미가 아니라 물상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탐구이며 시적 자아에 대한 재발견을 의미한다.
"만약 지각의 눈을 맑게 한다면 모든 것은 그대로 무한감(無限感)을 가진 것 같이 보일 것"이라는 W.블레크의 말과 같이 시인의 맑은 지각은 불가적(佛家的)인 무상(無想), 무심(無心)에 대한 내면적 각성으로써 진실에 접근하게 한다. 시조의 의미는 시인의 의(意圖), 언어의 의미, 독자의 의지가 유기적인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 의미작용이 시인에 의해서 전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가지 하나 흔들면
따라서 흔들리는 하늘
하늘 그 빈 자리에
오월이 또 오면
잊었던 얼굴 하나
가만히 다가온다.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겨놓은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곳엣
조금씩 흔들리다가
별들이 우수수 지듯
감꽃이 쌓인다.
전원범 「감꽃을 주우며」

시조의 표현 매체인 언어는그 자체가 이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언어의 형식이 소리이며 내용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시상은 이러한 언어들의 구조에 의해서 시적 표현을 얻게 되며 동시에 시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예시한 시조에서는 '가지, 하늘, 자리, 오월, 얼굴, 별, 감꽃'이라는 낱말들의 의미가 연결되어 하나의 시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사물들이 주제적 요소로 작용하면서 '그리움'이라는 주제 의미를 형상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흔들면, 다가온다, 쌓인다' 등의 동사와 '빈, 보이지 않는, 우수수' 등의 형용어구들이 낱말의 의미들을 흔들고 뒤섞어 '감꽃'이라는 상징물을 만들어 내면서 그립고 안타까운 정서를 환기시킨다.
이렇듯 낱말의 의미들은 시인의 심리적 지향에 따라 그 의미작용을 일으키게 되고 상징적 의미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시조의 한 장(章)은 하나의 문장이다. 따라서 한 장은 하나의 의미덩이를 이룸과 동시에 시상의 한 단락(단위)을 이루게 된다. 비록 그 표현의 효과에 따라 문법적 문장이 아닌 여러 형태의 문장으로 변형되기도 하지만, 각 장은 하나의 문장이라는 의식을 바탕에 두고 표현의 기교를 부릴 뿐이다.

가진 것 훌훌 다 털고
가벼운 나들이다.
더러는 가슴으로
채워 온 이야기며
애절한 노랫가락은
바람으로 날리고.

내 비로소 산에 올라
옷깃 여미고 섰다.
지금 飄飄이 날리는
풍성한 말씀들을
거두어 불밝히리라
봄아침을 열리라.
김준 「겨울 나들이」1, 3수

'가진 것~털고', '가벼운 나들이다'와 같이 각 장이 서술형 종결사(어미)와 연결어미 및 목적절 등으로 이루어진 예이다. 각 장은 낱말이 모여 구(句)를 이루고 2개의 구가 합쳐 의미덩이를 이룬다. 즉 2개의 음보(3․4조)는 하나의 구에 해당하는 의미의 조성이며 동시에 음율의 조성이 된다. 이러한 구의 의미구조는 2개의 낱말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며, 한 편의 시조에서는 이러한 의미 조성이 6번 반복됨으로써 의미율이 형성되어진다. 왜냐하면 시조의 구조는 3장 6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조는 내적 의미구조를 갖추면서 율격 규칙에 따라 작시(作詩)되는 것이며, 시상 또한 이러한 정형성(定型性)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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