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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강의

[스크랩] 제 6 장 현대시조 창작의 실제

작성자오쟁이|작성시간21.04.20|조회수3,237 목록 댓글 0
제6장 현대시조 창작의 실제
■ 나의 시조 이렇게 썼다.

이우걸,박시교,백이운,유재영,박연신,이상범,김월준,이영지,
김연동,염창권,이재창,박기섭,이지엽,조주환,정수자,김제현 순


1. 외우면서 추고하기
1
내게도 비밀한 나만의 시조작법이 있다. 그것은 외우기이다. 시조에 접하게 된 계기도 외우는 과정에서 이루어졌고, 좋은 시조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외우면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외우는 것이 어떤 면에서 좋은 방법이 되는가. 또, 외우면서 무엇을 고치는가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2
나는 초․중학교 시절에 늘 어머니를 위해 고시조를 붓글씨로 써야 했다. 어머니는 그걸 외우시는 것이 당신의 낙이었다. 그 낙은 마치 옛 여인들이 기구한 그들의 한을 노래에 실어 물레를 잣듯 시간을 자아가며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고시조 두루말이는 그 당시 우리 집에선 어머니의 교과서로 여러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 교과서를 외우시는 어머니 곁에서 우리 식구들은 혹시 어느 구절이 틀리나 하고 듣고 있었지만 틀리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이제 나 스스로도 시조를 외는 버릇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조를 자꾸 외우다 보면 3장 12음보의 형식미를 자연스레 알게 될 뿐 아니라 그 작품이 그려보이는 정경까지도 상상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시조를 쓰는 시인이 되었다. 어쩌면, 어머니의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시조감상 방법대로 지금은 내 시조를 감상하는 것이다. 그 감상 과정에서 문제점이 생기면 손질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나의 추고방법이다. 그렇다면 내가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얘기해야 할 순서가 된 것 같다.
첫째로는 형식에 대한 점검이다. 시조는 두루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정형시다. 특히, 자수로 해결되지 않는 운율의 미학을 시조는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자수는 맞으나 시조가 아닌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자수로는 넘쳐나는 듯한데도 시조의 형식미를 잘 갖춘 시조가 있다. 이에 대한 감식안은 시조를 많이 외운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법 아닌 비법이다.
두번째로는 동원된 언어에 대한 점검이다. 가령, 격을 낮춘 비어를 발견했을 때 이 비어를 동원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에 대해 심사숙고 하게 된다. 또 모음의 지나친 반복이나 받침 사용의 문제점, 동어 반복의 문제점을 따지는 것이다. 지나치게 율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 가벼운 서정시로서는 장점이 될 것이고 무거운 서정시의 경우는 단점이 될 것이다. 또 모음의 반복이 리듬감을 살리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지루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받침의 경우도 점검 대상이 되어야 한다. 발음해서 경쾌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경우 발랄한 서정시의 분위기를 필요로 할 때는 어휘를 바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로는 내용에 대한 점검이다. 여기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구조의 완결성이다. 시조는 초, 중, 종장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시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초, 중, 종장은 서로 관계해야 한다. 또, 연시조의 경우 첫 수와 둘째 수 혹은 셋째 수는 독립해 있으면서도 서로 한 시세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서로 관계없는 연시조라면 함께 묶어 같은 제목을 붙일 이유가 없다.

3
이제 나의 시조 쓰기 방법을 보이기 위해 몇 편의 작품을 들어보고 싶다.

어릴 때 누나는 창녕에서 자랐고
자라서 누나는 파주에서 살지만
당신은 우리 누나를 욕하지 못한다.

강도 산도 해도 달도 산 자의 인연일 뿐
핏줄처럼 엉켜붙은 잡초들을 후벼파다가
사변이 나던 이듬해 밤차를 타고 떠났다.

이따금 엽서에다 누나는 소식을 쓴다
성한 그, 다리로는 밟지 못할 고향땅에
어머니 추우실까 봐 털옷도 짜 보낸다.
우리 누나 ――6․25

유월 어느 날이었다. 반공 구호가 신문이나 방송 채널에서 계속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신문이나 티비 채널의 도식적이고 의례적인 행사에 식상해서 몸서리치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시인인 나는 6․ 25를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내용을 시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글을 써 본 사람이면 경험하곤 하지만 정말 막막했다. 그 때 얼른 머리 속을 스쳐가는 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릴 때 아랫동네 한 처녀에 관한 것이었다. 즉, 그 처녀는 6․25이후 너무 가난해서 거리의 여인이 되어 파주에 살고 있는데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고향 땅 발 못디딘다.」고 외치던 그 처녀 아버지가 죽은 이듬해에 노랑머리 남자 아이와 얼굴이 검은 아이를 데리고 몰래 밤에 고향에 왔다가 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6․25의 참상 중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가장 아픈 사건은 바로 죄없는 이 처녀의 인생사다. 따라서, 실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우리 누나」의 일로 바꾸어 써 본 것이다. 처음엔 제목을 「6․25」로 했다가 다시 「편지」로 했다가 최종적으로 「우리 누나」로 바꾸었다.

나는 그대 이름을 새라고 적지 않는다
나는 그대 이름을 별이라고 적지 않는다
깊숙이 닿는 여운을
마침표로 지워버리며.

새는 날아서 하늘에 닿을 수 있고
무성한 별들은 어둠 속에 빛날 테지만
실로폰 소리를 내는
가을날의 기인 편지.
「 비 」

어느 가을날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나는 어떤 사람에게 열심히 사랑의 편지를 썼다. 그러나, 한번도 부치지는 못했다. 그 때 내가 하숙한 집은 일본식 가옥이었다. 그 지붕 끝에 양철 물받침이 있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지면 실로폰 소리 같은 게 났다.
대학 2학년 어느 가을날, 나는 다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위의 시조를 썼다. 비상과 하강의 이미지 배치. 그리고 사랑의 감정 ―― 어쩌면 가을에 내가 만난 비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썼던 완성되지 못한 편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은 씌어진 것이다. 제목도 「편지」, 「가을 비」, 「비」를 두고 많은 시간을 보낸 뒤 「비」로 정했다. 고심한 덕분으로 이 작품이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4
이제 다시 좋은 시조를 쓰는 방법으로 돌아가서 얘기해보자. 나는 그 비법으로 외우기를 들었다. 그렇다. 시조는 특히 외우면서 추고해야 한다. 추고 기간은 길게 잡을수록 좋다. 어떤 작품의 경우는 창작할 때부터 수작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많은 모순을 안고 태어난다. 그 모순은 추고라는 작자의 애프터 서비스를 통해 말끔히 지워지게 된다. 어제까지 몰랐던 작품의 문제점을 오늘 다시 발견하고 그 문제점을 잘 고치면서 느끼는 희열 또한 작은 것이 아니다. 과작이라도 좋다. 시인은 완결된 한편의 작품을 묘비명에 새기기 위해 생애를 투자하는 사람이 아닌가 !
< 이우걸 >


․ 형식과 내용의 발전적 모색

꽃잎 분분히 지던 지난 봄 그 어느 날

마침내 실직의 그 긴 대열에 끼이고야 만
나를 우정 위로한다며 불러낸 거래처 공장장,
눈물 글썽이며 두 손 꼭 잡는 그 힘이 너무도
따뜻했다. '우리 께도 지난 달로 거덜 났어요...'
내 일보다도 그의 실직을 더 걱정하며
거푸거푸 잔을 채운다. 취하라고, 취하자고.

답답한 마음 비켜서
--보옴나알은 가안다.

누가 적막강산을 함부로 노래하는가.

저마다 가슴에 묻는 깊이 모를 아픔 있어

꽃은 또 파르르 파르르 저렇듯 지누나.
박시교 『낙화』

시조의 형식이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은 등단 십여 년이 넘어서였다. 그리고 사설시조만으로는 무언가 미진하다는 생각에서 사설시조와 평시조를 혼합한 내 나름의 한 형식을 창출한 것이 80년대 후반에 와서였다.
『낙화』는 사설+평시조 형태로서 내용에서도 조금은 파격을 허용 범위 내에서 시도해 본 작품이다.
예컨대, 앞 사설 중장에 따옴표를 사용한 대화의 삽입이라든지, 역시 사설 종장의 마지막 구 노랫말'--보옴나알은 가안다.' 도입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소위 아이엠에프로 실직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내 이웃들에게 바치는 헌시로서, 화자를 그 대열에 넣음으로써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성을 띠도록 유도하였다.
봄날의 꽃잎 지는 모습과 실직의 아픔을 하나의 화폭에 담으려는 작자의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몫이지만, 아주 평이한 묘법의 진술 형식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고통의 반추라는 측면에서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아픈 현실을 꼬집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형식의 변화는 어디까지나 정형의 틀이 절대 단순하지만 않다는 것을 직접 체험해 보인 예에 불과한다.
대개 평시조의 틀로 한정하여 시조를 정형시의 고정 형식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세상에 고정불변이란 없다. 따라서 시조의 형식도 새로운 도전을 수없이 받아야 하고 그런 가운데 발전적인 모색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시는 형식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용이 중요하다. 형식은 그야말로 내용을 담는 그릇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 시조도 그 내용에 독자들이 호감을 갖고 접근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보다 현실적인 노래이어야 한다. 『낙화』가 그러한 생각에 어느 정도 부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러한 생각의 밑바탕 위에 세우고자 한 화자의 노력이 있었음을 여기서는 밝혀둘 뿐이다. 시조와 형식 그리고 내용의 발전적 모색은 바로 시문학의 영원한 테마이다.
< 박시교 >

2. 온몸의 느낌으로

철쭉에 대하여

살짝 간 그 여자와 맛이 간 그 남자가 만나
배꼽 드러내고 밤새 시시덕거렸던 게야
한겨울 때 아니게 핀 철쭉꽃을 보자니.
저 옛날 寒山拾得 헤프게 웃던 웃음
아마 그 웃음자투리 몰래 고아 먹었던 게야
붉은 뺨 멍자죽도 잊고 배배틀고 있으라니.
백이운『철쭉에 대하여』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날씨가 추워서라기 보다는 아마도 마음의 체감 온도가 더욱더 뼛속 깊이 시렸던 것이리라. 그 전전해 4월에 이미 나는 형제들에 의해 거액의 부도를 맞았던 터라 출판사마저 휘청거려 정신없는 세월을 보내던 때였다.
전해 3월에 있었던 어머니 회갑연 때 문단의 지우들로부터 커다란 철쭉 한 그루를 분에 넘치게 선사받았는데, 그 꽃이 이 해엔 때 아니게 1월초에 꽃을 피운 것이다.
때마침 우리 집에서는 해마다 1월이면 시작되는 겨울 수행이, 교단의 허락을 받아 절에서와 똑같이 행해지고 있었다. 멀리 오사카에서 온, 수행을 오래한 한 교포 할머니는 뭔가 부처님의 뜻이 있는 것 같다며 신기해 했다. 새벽 여섯 시까지 눈길을 달려온 교도의 집에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이 마치 부처님 세계의 장엄을 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두들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무렵 태어난 시가 바로 『철쭉에 대하여』이다.
그렇건만 어느 날 앞집 아주머니가 꽃핀 것을 들여다보더니 '집안을 따뜻하게 해놓으니까 꽃도 일찍 피나봐요'하고 별스럽지 않게 해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꽃 하나 피어나는 데도 마음이 구구하다.
한산과 습득은 당나라 때 사람으로 절에서 살면서 대중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얻어먹고 살았다. 한산은 문수보살의 재현이라고 하는데 어느 날 습득과 함께 바위 속으로 들어가 영영 자취를 감춰버렸다.
전해 내려오는 목판화를 보면, 더부룩한 머리에 헐렁한 옷은 걸친 둥 만 둥, 배꼽을 드러낸 채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대는 모습이 보는 이를 같이 깔깔대게 만든다. 나는 이 한산 습득의 웃음만큼 뱃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웃음을 달리 본 적이 없다.

철쭉은 일없이 正月에도 피어나네

1 호랑이 목에 걸린 은비녀 뽑아 주고
명당 자리 하나 좋아라 얻어들었던
떠돌이 南師古 바람 오늘 다시 눈뜨네.

2 佛手로 들어올린 텅 빈 세상 한 끝
두려움 반만 열고 보는 서느런 發福之地
진저리 진저리치며 적막 함께 껴안았네.

전작 『철쭉에 대하여』를 쓰던 해 8월, 마침내 나는 내가 만들어 키워온 출판사를 떠나게 되었다. 어렵게 된 살림살이를 딴에는 살려보겠다고 온갖 지혜를 다 짜냈지만 결국은 마지막으로 둔 것이 묘수가 아니라 악수였던 것 같다.
하루아침에 생활 터전을 잃고 행동반경이 좁아진 내게 이번엔 詩神이 묘하게도 그 자린고비같은 얼굴을 감추고 줄곧 미소를 보내왔다. 결코 작품이 씌어질 것 같지 않은 절박한 상황에서 오히려 많은 작품을 이 시기에 건졌는데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이다.
해를 넘긴 정월, 이때 철쭉은 2층 마루에 올려 놓여 있었다.
그 전해 정월 무렵의 고통과는 이미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막한 상태에서 맞는 새해였다. 1월 4일쯤이었을까. 이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독경을 올리려 2층 서재엘 올라갔다.
그랬는데, 텅 빈 공간 속에, 그 추워 보이는 푸른 잎 사이로 뭔가 따뜻한 기운이 얼핏 비치는 것이었다.
아! 밤새 두어 송이 꽃망울이 터진 것이었다.
가진 것을 다 잃고 망연해 있는 한 부족한 영혼에게 우주를 다 갖다 안겨 주는 따뜻한 손길! 꽃잎 하나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가르침을 확연히 깨닫는 (깨닫는다는 말에 어폐가 있다면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 때 터져나온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삼십대에서 사십대로 넘어오면서 겪었던 현실적인 쓰라림, 돌아보면 그 인과의 소용돌이를 이 두 작품이 징검돌 놓아주어 결코 허우적거리지 않고 건너온 듯도 싶다.
시인이 시를 만들기도 하지만 시도 분명 시인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 백이운 >

그 해 가을 월정리의 작시 과정

'월정리'는 경기도 철원군 소재 월정역(月井驛)이 있는 마을 이름이다.
이곳은 내가 평소 존경하는 시인 민영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거니와, 야트막한 구릉과 멀리 임진강을 두고 있는 조그마한 한촌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이름만큼이나 분단의 아픈 흔적도 많은 곳이다. 아직도 6․25의 상흔이 여기저기 남아 있어 민족 전쟁의 슬픔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 나는 우연히 한 옛 잡지에서 월정역사의 흑백사진 한 장을 보고 '월정리'를 소재로 두 편의 시조를 썼다.
처음으로 쓴 작품은 <그해 가을 월정리> 였다.

적막한 무게 이고 서서 피는 들꽃이여
투명한 기척으로 낯선 별이 지고 있다
길 숨긴 잡목림 너머 등불 켜는 작은 집

어느 마을 누군가 이별을 하고 있나
가을 새 날개 소리 먹물처럼 번져가는
대숲은 음력달 한 채 가슴 속에 묻었다
-그해 가을 월정리

'들꽃''낯선별''작은집'이 등장하는 첫 수에서 '작은집'은 추사의 <세한도>에서나 볼 수 있는 단칸방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한 선비의 정서라고 해야 될까. 한 많은 어느 민중의 적막이라고 해야 될까. 어쨌든 나는 그곳에서 우리나라의 가을 풍경 하나를 찾아냈다. 그것도 누군가 혼자서 등불을 켜는 길 숨긴 집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것일까. 거기에다가 이별의 모습으로 여겨지는 가을 새 날개 소리가 먹물처럼 번져가는 밤, 대숲 사이로 모습을 숨긴 '음력달'이 있는 '월정리'에서 나는 그 가을의 깊고 깊은 정한(情恨)을 느껴야만 했다.

정강이 말간 곤충 은실짜듯 울고 있는
등 굽은 언덕 아래 추녀 낮은 집 한 채
나뭇잎 지는 소리가 작은 창을 가리고

갈대꽃 하얀 바람 목이 쉬는 저문 강을
집 나간 소식들이 말없이 건너온다.
내 생애 깊은 적막도 모로 눕는 월정리
-다시 월정리에서

내가 다시 '월정리'를 찾은 것은 정강이 말간 곤충들이 '은실짜듯' 울어대는 가을이었다. 나는 '월정리'의 모습을 더욱 구체화시키고 싶었다. 어느 쓸쓸한 가문처럼 등 굽은 언덕 아래로 추녀 낮은 집 한 채가 보였다. 그 집의 작은 창으로 나뭇잎 지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문득 갈대꽃이 하얀 저문 강을 바라보며 나는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불쑥 찾아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적막과 기다림은 한 가지의 의미인가, 그날 내가 느낀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의 본질같은 것이었다.
<유재영>

․「제삿날 밤 천상에 뜬 달」의 작시 과정

흑백사진
다 바래어
낙엽처럼 낡았어도

행여
비 내릴라
무덤가를 맴돌을 때

육성은
달빛을 타고
앞강물 건너왔네.

그리고
수십 년
먹장구름 무겁더니

오늘은
비온 뒤
갈하늘 눈 시린데

어머니
극락 가셨다고
둥근 달이 밝게 떴네.



내 나이 아홉 살 때 어머니와 사별했고 거의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밤낮으로 어머니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마를 새 없이 서글프게 살았다. 그러다가 나이 40줄에 들면서부터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못이룰 그리움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 차츰 무슨 기원같은 것으로 승화되어지고 있음을 감득하게 되었다.
비로소 소망도 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나는 가끔 절에 가서 고달픈 심사를 맑고 향기롭게 닦으려 애쓰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음력 8월, 다시 어머니의 제일을 맞아 우리 형제들이 모여 어머니 제사예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는데 밝은 달빛이 세상을 대낮처럼 비추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내려가던 발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섰다. 달은 나를 바라보며 뭐라고 무슨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코스모스 꽃들이 만발한 가을 풍광은 아름다운 수틀처럼 꽃무늬와 잘 익은 열매들로 오색찬란 했지만 내 가슴 속에서 몇 십년동안 시냇물같이 졸졸 흐르는 어머니 그리움은, 어린 나이에 그것도 학살이라는 피치 못할 서러운 운명의 희생자가 된 나로서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기만 했다.
이런 상흔의 조각들이 심상으로 남아 나를 괴롭히면 나는 그것을 시로 쓰려고 몰두하면서 감성 훈련의 문을 열고 몰입했다. 그래서 내 나이 20세부터는 무엇이든 시적으로 '새롭게 보기'에 열중했지만 쏟은 눈물만큼 시는 빚어지지 않았고 내 머리는 헝클어진 쑥대밭이 되었으며 밤잠을 못 이루고 쏟은 코피로 물든 치마를 바라보면 금방 동백이나 장미같은 뜨거운 꽃으로 피어날 것만 같이 그 핏빛은 선연했다.
나는 늘 어머니를 생각하며 시를 썼다.
그것은 그리움의 노래가 되거나 갈원의 호소로 발현되었다. '제삿날 밤 천상에 뜬 달'은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마흔일곱번째의 제사를 모시고 암자를 나와 산 길을 걷다 밝은 달을 바라보았을 때 "얘야, 이제 나는 하늘나라 아주 좋은 곳에 있으니 엄마 염려 말고 기운내어 활발하게 살으려므나." 문득 달로 뜨신 어머니의 육성이 들려왔다.
어머니와 사별한 후 제사를 마흔일곱번이나 모셔왔는데 이런 안도감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른 볼펜을 꺼내 손바닥에다 '둥근 달 어머니로 떠서 연꽃같이 환하시네.'라고 저절로 터져나오는 소리를 써놓고 시상을 다듬기 위하여 적요한 밤 산길을 천천히 걸었다.
거의 세 시간 동안이나 암자에서 머물며 '달'이라고 제목을 정하고 나니 시상이 구체적으로 잡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달'을 체험하려 오감을 동원, 말초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달'에 집착했다. 역시 그랬다. '달'이라고만 제목을 붙이면 사물 제시에서 끝나게 되고 시도 어머니 그리움이 전개될 수가 없게 된다. 내 의도가 빗나간 본질을 써야 마땅하리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나는 승화된 어머니 그리움을 써야 하므로 심상의 달을 제목으로 해야했다. 그리고는 마치 신음과도 같은 첫째 수 초장을 '그리고 수 십년 먹장구름 무겁더니'라고 써놓고 상징과 은유의 간결미가 돋보이는 단수로 쓰리라 맘 먹었지만 막상 덤벼보니 상징과 은유의 표현 기법은 많은 사유 공간을 확보해야 하므로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고도의 상상력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단수처리, 그것의 획득에 몰두하여 달이라는 사물과 극락에 가셨다는 안도감을 붙잡고 해결하려 했다. 많은 상상의 여백을 독자들에게 맡기려고 처음 시작할 때는 단수 문장구성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수 십년
먹장구름 무겁더니

오늘은
비온 뒤
갈하늘 눈 시린데

어머니
극락가셨다고
둥근달이 밝게 떴네.


이렇게 단수로 완성한 후 여러 번 소리내어 읽어 보았더니 단수로서의 명징성은 획득되었는데 눈앞에 떠오르는 장면이 너무 단조로워 시적 감정 흥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당장 시행 구성에 기교를 부려 보았지만 흡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두편의 연작으로 뜯어 고치는 작업에 들어가며 탄탄한 구성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연시조에서는 짜임이 생명이고 그것이 잘못되면 시적 성취도는 실패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제삿날 밤은 현재이고 단수로 썼을 경우 현재만 존재하기 때문에 단조로웠으므로 미래의 화자를 대입시켜 보니까 막막한 추상이 되겠기에 '과거의 화자'를 끌어와서 시적 감흥호소 성과도 높이고 부모님 섬기는 효심도 일깨워야겠다는 계산까지 하고서 첫째 수 초장 첫 구에서 애절한 장면으로 호소하려는 의도로 '행여 비 내릴라 무덤가를 맴돌을 때'라고 썼지만 '흑백사진 다 바래어 낙엽처럼 낡았어도'라고 쓴 중장이 더 애잔한 느낌이 들어 초, 중장을 자리바꿈 시켰다.
시인이 시를 썼으면 그 시에서 독자가 얻는 게 있어야 성공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에서는 부모님 생각하는 효심을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영상효과까지를 얻으려 했기에 단수이었던 것을 두 수짜리로 다시 짠 것이다. 시는 한 개인의 감성이고 개성 발휘이다. 시는 유치한 감정의 유희가 아니고 언어의 장난이 아니고 한 개인의 처절한 절망이고 이상의 표현이다.
적어도 이러한 시적 요건들이 확보되었을 때에만 비로소 시로서의 파워가 발휘된다. 그래서 훌륭한 시는 표현이 아니고 정신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객관적으로 파악할 땐 시의 정의가 되겠지만 주관적으로 접근하고 보면 내게는 나의 시에 대한 신뢰라고 믿는다. 이 시에서 굳이 영상 효과까지를 염두에 두고 미적 감흥에까지 접근했던 것은 바로 나 개인의 감성까지도 표현해야겠다는 나의 탐미주의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시조는 정형시조라는 특성을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그 까닭으로 율조를 무시하면 시조는 파괴된다. 그것을 고려해서 자수 맞춤과 적확한 시어찾기와 종장의 매력포인트인 파격을 중시했다.
아무래도 종장처리에 고심했다. 첫째 수의 종장도 초고에서는 '귓전에 맴도는 소리 울어머니 젖은 음성' 이렇게 썼던 것을 오랜 생각과 여러 번의 수정 끝에 세련된 표현기법으로 살리기 위해 산소 앞에 없는 앞강물을 상상의 강물을 만들어서

육성은
달빛을 타고
앞강물 건너왔지.

이렇게 바꾸어 표현해서 시의 세계를 확장했다. 그리고 '둥근달 어머니로 떠서 연꽃같이 환하시네'라고 썼던 둘째 수 종장도 이건 시가 아니고 메모라는 생각에 다 지워버리고 '둥근 달'의 내재률인 '극락' 이미지에 유념하여

어머니
극락 가셨다고
둥근 달이 밝게 떴네.

로 바꿔썼다.
나는 시조를 짧고 쉽게 써서 독자들과 만나려 한다. 시 전개에서도 고전과 현대의 접목작업을 시도하므로 고사성어를 굳이 피하지 않는다. 그것이 품고 있는 내밀한 의미의 농밀성 때문에.
그리고 종결어미의 변형에도 관심을 갖고 특히 그것을 명사형으로 처리해서 소리내어 부르는 것이 아닌 머리로 읽는 작품으로 마무리하는 편이다. 단수를 즐겨쓰는 나는 시행 배열에 땀흘리고 문장부호 하나 찍는 데도 안간힘을 쓴다. 특히 내가 즐겨쓰는 소재는 내면 세계이고 시에 고통과 비극성이 없으면 쓰지 않는다. 그리고 전체 시상 마무리는 언제나 이미지 강조다. 단순한 풍류객의 노래는 이제 시조가 아니니까. < 박연신>

․ 「역사 견문록」(우금치)의 시적 배경

마른 풀도 키를 낮춘 우금치란 언덕빼기
뼈와 살 함성마저 바람으로 누워 있다
일백년 잡초의 사발통문 깨지 않는 깊은 잠.
역사란 승자의 몫 죽은 자는 죄도 죽고
후대의 가슴에 남아 울음 우는 그날의 말
절통한 이 땅의 쑥물 대접으로 들이킨다.
송장배미 저수지 위 눈보라가 달려 가며
내뱉는 그 육성을 심장으로 엿듣고 있다
죽창에 쇠스랑을 든 수만 거친 숨소리…….
그날 동학에 합류한 나의 증조 할아버지
평생을 쫓기는 삶 쉬쉬하다 숨을 거두신
봉분에 큰 절 올리지만 아무 말씀 없으시다.
<역사 見聞錄․1> ―우금치․동학농민군 3만이 공주성을 향해 네 갈래로 진군, 관군 왜군과 맞서 싸우다 끝내는 주력군 1만이 우금치서 최후를 마쳤다.

증조부께서 동학에 참여하신 일에 대하여 후손들은 오래도록 입을 다물어 왔다. 여기엔 그 많던 전답을 날리게 한 장본인이었다는 점과 우리에게 오래도록 가난의 멍에를 씌웠다는 일도 얼마간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남은 가족의 피해 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대농의 집안을 증조부 당대에 모두 거두고 떠나신 까닭에서다. 역사적인 소명의식을 갖게 된 건 훨씬 뒤의 일이었다.
동학에 가담한 것이 알려진 까닭에 전답을 죄다 팔아 주거지를 옮기고 또 팔아 옮기는 생활이 되풀이되면서 천석지기가 닷섬지기로 줄어든 상태에서 증조부님의 일생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 같은 상황도 불과 90여 년 전의 일이었으니 그리 멀지가 않다. 농토를 처분해야만 했던 이면을 들춰보면 동학의 자금 조달에 쓰인 것도 적지 않았을 것이고 성가시게 구는 관리들의 입막음에 쓰인 것도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간다. 또한 전답을 팔 땐 헐값에, 살 때엔 비싼 값이 적용되었으리란 상상이 가능해진다. 이같은 추론은 생존해 계신 몇몇 집안 어른들의 귀동냥으로 짐작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동학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시점과 동기가 있었다. 동학혁명이 일어난 지 다음해이면 백주년이 되던 해 9월쯤이었다고 기억된다. 맏형께서 전화를 해오셨다. 너는 시인이잖니? 증조부에 대해 무언가 시로써 한 마디 남겨야 하지 않겠냐며 운을 뗐다. 특히 내년이면 동학 백주년을 기리는 시기이니 고려해 보라는 귓뜸이었다.
그 해 동짓달 공주를 거쳐 우금치 현장을 버스로 찾았다. 때마침 눈이 내려 분위기는 더 할 수 없이 삭막함을 자아냈다. 우금치란 언덕배기는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언덕에 불과했다. 어떻게 저같은 언덕에서 그토록 치열한 전투가 가능했을까 싶었다. 지금도 작은 계곡마다 뼈 부스러기와 해골 등이 흙을 파헤치면 나온다고 했다. 작은 저수지는 송장배미란 이름으로 남아 있었는데 당시의 전사자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방어진지이자 최후저지선을 관군과 왜군이 구축했고 관군에겐 소총, 왜군에겐 스웨덴인가 노르웨이제 기관총이 지급되었다니 당시의 상황이 짐작이 갔다. 동학군에겐 기껏해야 죽창과 쇠스랑 등이 고작이었으니 희생자가 왜 그렇게 많았는지 미루어 짐작할 만했다. 동학군 최후의 격전지였던, 그리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던 전투였으니까. 지금의 송장배미에 쌓였던 시체더미가 산을 방불케 했다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자꾸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당시 증보부도 살아남은 몇백 명 중 한 사람이었겠구나 싶었다.
필자는 그 길로 고향의 증조부님 산소로 향했다. 구멍가게에서 소주와 포를 사 들고 말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뜻깊게 삶을 마무리하신 업적, 지금에 와 생각하니 그것이 결국 커다란 위업이란 생각도 갖게 했다.

2. 「역사 견문록」 창작 동기와 의도

「역사 견문록」이라고 한 것은 역사의 현장을 가 보고 또한, 역사를 읽고 듣는 과정에서 스스로 감지한 기록이란 뜻에서였다.
'우금치'라고 하는 동학 최후의 역사 현장을 언제 가볼 것인가를 중시했다. 여름보다는 가을, 가을보다는 겨울이 시의 카메라 앵글을 대기가 십상이라 여겼다. 보다 비감함을 자아내기가 좋은 계절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눈이 내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른 풀도 키를 낮춘 우금치란 언덕빼기'의 서두(첫수 초장)가 풀리자 작품 전체가 잘 풀려나갔다. 시에서 최초의 첫행은 '신이 준 언어'란 말을 쓴다. 시조도 같다. 역사적 현장을 볼 진데 그 속이 성을 쌓은 곳도 아니요, 나즉한 언덕배기였다. 그러나 죽은 영혼에 대한 경건함에서 였는지 마른 풀마저도 키를 낮춘 듯이 느껴졌다. 다음의 '뼈와 살 함성마저 바람으로 누워 있다'에서 뼈, 살, 함성을 그 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다만 세월 속에 묻혀 있을 뿐, 눈바람만이 들풀을 뉘이고 있었다. 뼈, 살, 함성을 순화시키기 위해 그냥 바람으로 누워 있다고 했다. 언어가 강렬할수록 서정으로 감싸야 시에 있어서의 예술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일백년 잡초의 사발통문 깨지 않는 깊은 잠'. 그러나 동학군이 봉기한 지 백 년이 지난 시점, 당시 있었다는 사발통문 <주모자를 숨기기 위해 관계자의 성명을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삥 돌려 적은 통문(通文)>은 이제 당시 진품인 정본은 몇 장만 남아 있는데 후환이 두려워 없앴기 때문이란다. '잡초의 사발통문'이란 민중의 사발통을 암시한 말이다. '깨지않는 깊은 잠'은 바로 숱하게 죽어서 흙이 된 영혼들을 일컫는다. 여기까지가 네수 중 첫 수에 해당되며 '역사 견문록'의 서장에 해당된다. 이 연시조의 서장에서와 같이 강력한 이미지의 것을 서정으로 순화시킴으로써 안정적인 출발이 가능했다고 본다.
둘째 수의 초장에 '역사란 승자의 몫 죽은 자는 죄도 죽고'의 표현은 사실 결구에 가서나 보여줘야 할 강렬한 말이지만 시에 탄력을 가하기 위해 그냥 구사하기로 한 것이다.
일종의 시를 낯설게 하기 위한 수법이기도 하다. 그렇다. 어찌보면 역사란 이긴자의 기록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말을 진지한 메시지의 전달로 항변과 한탄으로 패러독스가 담긴 대목이다. '죽은 자는 죄도 죽고' 또한, 진한 상실감을 뒤집은 표현임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겠다. '후대의 가슴에 남아 울음 우는 그 날의 말'은 역사의 말인 동시에 죽은 자의 말로 시인 자신의 육감으로 느끼는 말이다. 이제 둘째수 종장의 '절통한 이 땅의 쑥물 대접으로 들이킨다'의 표현에선 삼키고 싶지 않아도 삼켜야 하는 역사적 실체와 진실의 수용을 암시한 말이다. 예서 '절통한 이 땅의 쑥물'은 내전임에도 불구하고 왜군에게 기관총을 사용케 하는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오점을 남긴 일을 개탄하고 있음도 내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접으로 들이킨다'는 표현에서 많다는 의미 외에 당시의 집기를 인용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이제 셋째 수로 들어가자. '송장배미 저수지 위 눈보라가 달려가며' 초장에서 송장배미란 어휘를 살펴봐야 한다. 시체가 얼마나 많았으면 그런 지명(연못의 이름)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같은 송장배미 저수지 위를 눈보라가 달려가며 '내뱉는 그 육성을 심장으로 엿듣고 있다.'의 중장에서 죽어간 그 많은 영혼의 마지막 말을 귀로 듣기보다는 심장으로 엿듣고 있는 것이다. '등살에 못이겨 이렇게 싸우다 우리는 죽었나니 이후론 수탈이 없는 세상,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태평한 나라를 만들어 주십시요!'하는 말을 숙연히 듣는 것이다. 종장의 '죽창에 쇠스랑을 든 수만 거친 숨소리……'의 표현에선 오히려 쉽게 얻어진 부분이라 하겠다. 당시 농민군에겐 신무기(예컨데 기관총, 소총)가 없었으니 죽창이나 쇠스랑 따위가 고작이었다. 기관총과 소총 앞에 죽창과 쇠스랑의 대결이고 보니 전사자가 많았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 마지막 숨소리를 듣는 것이다.
넷째 수는 바로 동학에 가담하신 증조할아버지의 이야기로 끝을 맺고자 했다. '그날 동학에 합류한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바로 나의 조상을 시로 끌어들이려는 표현이다. 일반적인 역사의 상황에서 가족상황으로 옮아가는 대목이다. '평생을 쫓기는 삶 쉬쉬하다 숨을 거두신'은 증조부께서 동학에 가담하신 뒤의 삶은 쫓기는 삶이었고 남에게 알려질까 봐 쉬쉬하던 삶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일생을 마친 것이 증조부님의 삶이었다. '봉분에 큰 절 올리지만 아무 말씀 없으시다' 넷째 수 종장이자, 한 편을 마무리하는 끝말에선 동학에 가담하신 증조부님과의 하직인사다. 무슨 말씀이나 소리라도 귓뜸해 주실 것을 기대했지만 아무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역사 견문록」의 우금치 이야기에서 필자는 호되고 진한 쓰라림, 아픔과 한은 간직했지만 결코 누구에게라도 원한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아픔과 진실,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숨져간 당시의 농민군에 대한 묻혔던 속엣말을 찾으려 했을 뿐이다. 아팠던 여러 정황을 짚어보며 서정으로 감싸야만 했다. 필자는 작품에서 인간회복을 위한 시의 최종 목표를 설정했음을 여기 굳이 밝히는 바이다.
< 이상범 >

․ 혼불의 형상화 작업

나의 시조 <항아리>를 쓰게 된 동기는 고려 청자에 관심을 갖게 된 데부터 비롯된다.
처음에는 고려 청자의 자태와 빛깔에 매료되어 박물관을 자주 찾게 되었다. 아리따운 자태와 그 은은한 빛깔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기도 했다. 흙으로 빚은 것이 어떻게 저처럼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마음속으로 수없이 감탄하면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있기만 했다. 아마 사람이 빚은 것이 아닐 거야, 혹시 신이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어느 날 그러한 착각이 환상으로 바뀌면서 고려청자가 살아 숨쉬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나에게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지, 고려청자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말고! 아마 이 땅의 혼불처럼 영원히 살아 있을 거야. 살아 있고 말고! 그렇지, 살아 있다면 무엇이든지 담고 싶을 거야. 한없이 한량 없이……

한량 없이 담고 싶은
부풀은 가슴결에

첫 수 초장은 이렇게 하여 나도 모르게 나의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오고 말았다.
고려청자가 태어나기까지 그 당시 도공들이 쏟은 정성과 땀, 그리고 그 수많은 어려움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주름 진 시름
여울져 번져 가도

첫 수 중장은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빼어난 청자를 기어코 빚고야 말겠다는 그 당시 도공들의 투철한 장인 정신과 소망은 끝내

비취빛 그리움 속에
웃음 짓고 싶어라.

첫 수 종장은 이렇게 마무리 짓고 말았다.
첫 수 초장 중장 종장에서 <욕구> <시름> <웃음>으로 내면의 세계 즉 그리움을 나타냈다면 둘째 수에서는 외형의 아름다음을 그리고 싶었다.
둘째 수 초장에서는

살결은 곱게 익어
상감청 돋아 나고

상감으로 빚어진 고려청자의 외형을 그리면서 상감 살결이 <곱게 익어> 가는 모습을 이미지로 착상시킴으로써 <상감청>과 함께 그 상감청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시간적인 긴 여운을인식시키고 싶었다. 그러한 아름다운 살결이 이루어지기까지 무한에의 시간에 의함을 <돋아 나고>라는 말로 압축해 보았다.

둘째 수 중장에서는

말 없는 입술에도
사려 담은 푸른 사연

고려청자의 입술에 대한 착상을 해 보았다. <말 없는 입술에도>라는 고려 청자의 조용한 속성과 단아한 모습을 그리면서 <사려 담은 푸른 사연>라는 말로서 연결해 보았다.
입술에 <사려>라는 언어를 갖다 붙임으로써 즉 사려란 "깊은 생각"임을 감안할 때 그 입술의 숭고함은 물론, 근엄한 정절을 함유하는 고고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입이란 무언가를 전할 수 있는 기능임을 감안해서 하고 많는 <푸른 사연>을 지녔음을 나타냄으로써 <푸른>이 주는 이미지를 극대화시켜 보았다.
둘째 수 종장에서는

영원을 향한 그 울음
나래 치는 저 청학(靑鶴) !

나는 고려청자를 볼 때마다 시공을 뛰어넘어 저 영원을 향해 깃을 치며 금방이라도 푸드득 날아오를 것만 같은 한 마리 푸른 학을 연상하게 된다. 이것이 단순한 나의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김월준>

․ 그림으로 떠오르는 마음의 세게

달 먼저 떠 오르면
해는 달, 따라나와
달 밑에 서서 있는
그 차례 하얀 차례
해는 달
하얗게 웃으면
하얀 웃음 보조개

해 먼저 볼 붉히면
달은 해, 활 활 활
속차례 분홍차례
달은 해
함께 웃으면
분홍웃음
보조개
<행복의 순위>

이 작품의 창작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강의가 처음으로 시작되는 학생들에게 나는 하얀 종이를 준비하게 한다.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칠판에 '해','달','나무','호수','집'을 그리게 한다.
엄연히 현실에서는 해와 달이 같이 공존할 수 없지만 시에서는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바로 시적인 기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가지각색의 그림들이 그들의 책상앞에 펼쳐진다. 더러는 해와 달이 나란히 놓이기도 하고, 더러는 호수에 달이 빠져 있기도 한다.
그리고는 그림을 다 그린 학생들을 향하여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해는 자아의 문제로서 해가 그림 중앙에 와 있으면 자신을 항상 중앙에 놓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설명해 준다. 왼쪽이나 오른쪽에 그리게 되면 내가 제일이라는 생각보다는 양보하는 입장에 있는 의식세계라고 이야기해 준다. 달의 위치는 여자의 위치로 내가 여자일 경우 해와 달과 비교하여 해와 나란히 있게 되면 나와 남자의 대한 관점이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본다고 하여 준다. 만약 해 밑에 달이 있으면 해를 높이 받드는, 즉 남자를 받드는 전통적인 사고의식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만약 해보다 달이 높이 있으면 여성 숭배사상이라고 하여 주면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웃는다.
이렇게 하여 해와 달의 관계는 대인관계로 발전하며 상대방을 높이는 감정을 가지면 해를 더 높이 그린다고 하여 준다. 집은 소유욕으로 단층을 짓게 되면 '내 사랑은 오직 그대 하나'의 의식이라고 하여 준다. 만약 아파트를 층층이 짓게 되면 소유욕이 강하여 진시황같이 모든 여자를 자신의 소유로 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고 하여 준다. 나무는 친구의 관계로 나무를 많이 그리면 친구가 많고 큰 나무를 그리게 되면 목숨을 바꿀 친구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해 준다. 호수는 마음의 넓이로 크게 그리면 넉넉하고 넓은 마음이고 좁게 그리면 좁은 마음의 소유자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러나 이 마음의 세계는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이 넓으면 나의 마음은 좁아야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짝의 역할이 된다고 하여 준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학생들은 신이 나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린 좁은 호수도 상대방의 넉넉한 마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에 대하여 넉넉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 세계는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짝과 더불어 그 의미의 폭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원리들은 상대방의 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응관계에서 상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결점을 대응되는 상대방과 더불어 어울려질 수 있는 원리로 나의 시조도 탄생하게 되었다.
마치 그림으로 보듯 시를 써 내려가서 그 글을 보고 그림이 생각나게 하면 잘된 글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이처럼 하여 나의 시조도 탄생하였다. 오래 전에 들은 문학강의에서 탄생한 나의 이 시조는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전통적 한국사상에 심취되어 있고, 또 그것이 나의 고향의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심취되어 있고, 나의 시조의 경우 초장에서 남편이나 남자들의 이야기는 하늘처럼 떠받들어지고 중장에서 나의 이야기는 낮은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쏟아져나온다. 그러기에 순종의 질서를 나타낸 것이 이 <행복의 순위> 시조이다. 이러한 서열은 내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겸손의 위치에서 출발할 때 질서는 유지된다는 점이다.
나의 이 시조는 나보다 높은 자, 하나님을 따르는 의식의 중요성을 주제로 하고 있고 이러한 순서에서만이 행복이 탄생할 수 있다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영지>

․ 처용과의 遭遇

시작동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모양새로 굴러가고 있다. 도무지 가닥
잡을 수 없는 일들이 머리맡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것은 사람이 사는 시대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전환기, 혹은 변환기라서 그럴 것이라는 책
임 없는 말로 단정지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처용」이 씌어진 시기는 우리 나라 정치사의 전환기인 '91년, 그러니까 한 정권의 말
기인 셈이다.
필자가 등단 이후 발표한 졸작들 중 「처용」을 소개하는 것은 그 시대 필자의 심정
을 대변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나온 일이지만 그때도 식자들은 모두
가 우국지사요, 고매한 정치적 식견을 가진 논자들로 두 사람만 모이면 나라 일을 논하
였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강물은 말없는 듯 흘러간다지만, 이러한 시점에서 나의 역할은 무얼까
?
썩어가는 물속일망정 사람들은 신선한 고기를 건져 올리고 싶어한다. 그 낚시대를 아
마도 시인이 쥐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깨인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건 괴로운 일이라 여겨진다. 의식이 깨어 있지 않은 시인에게서 건질 수 있
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곧은 바늘의 낚시를 드리운 태공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다름아
닌 '나'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아내를 빼앗은 역신을 굴복시킬 수 있었던 상황 대처 능력과 그 넉넉함과 느긋함을
필요로 하는 것이 삶이라는 처용가의 시사점은 필자를 더욱 왜소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달빛마저 죽어버린 서울 어느 골목길에 이르게 되었고, 암병실을 지키다 지친
간병인의 핏기 잃은 얼굴, 그것이 바로 나의 얼굴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오늘
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조급함과 옹졸함, 그것의 극복이 올바른 시대상을 조망할 수 있는
넉넉함이라는 데서 「처용」은 비롯되었다.
지친 현대인의 처진 모습을 그리려고 하였다.

□형상화 과정

처 용


천년 유랑아로 돌종 흔든 바람으로

유각을 돌아오던 나는 지금 풍각쟁이

피 묻은 역신의 뜰에

꽃을 심는 풍각쟁이.


북창 문풍지처럼 우는 밤을 이고 앉아

달빛도 죽어버린 서울 어느 골목길을

암병실 간병인 같이

신발 끌며 가고있다.


나의 시적 대상은 늘 현실이다.
따라서 지금껏 써온 대부분의 작품이 문명 혹은 시대 비판적인 면에 치중하면서 현실
과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
에 대한 물음에는 궁색할 수밖에 없다. 본 작품도 그러한 궁색한 답변의 한 맥락에 서
있다 하겠다.
첫 수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 수에서는 향가 중 가장 관심을 많이 끌고 있는 「처용가」의 주인공과 시적 자아와
의 연계성을 무리 없이 형상화하는 데 필자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었다. 이해를 돕
기 위해 향가「처용가」를 먼저 음미해 보는 것이 졸시(拙詩) 「처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서울 밝은 달밤에
밤 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러라
둘은 내것인데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었다마는
빼앗은 것을 어찌하리오.
(양주동 역)

인용된 향가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아름다운 아내를 둔 처용은 풍류를 즐긴 소위 한
량으로 필자는 파악하였다. 그리고 역신(疫神)을 쫓아냈던 그의 주술력(呪術力)은 처용
무로, 벽사(酸邪)의 상징인 부적(符籍)으로 우리 민중과 항상 밀착되어왔던 점에서
「천년 유랑아로 돌종 흔든 바람으로\ 유각을 돌아오던 나」라고 하여 향가 속의 처용
과 시적 자아와의 관계를 설정, 형상화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금의 처용은 어떤가?
그의 주술력까지 상실해 버린, 그래서 피로 얼룩진 역사의 뜰에 「꽃을 심는 풍각쟁이」
에 지나지 않는 한낱 무력한 범부인 시적 자아가 아닌가. 좀더 확대 해석한다면 풍각쟁
이는 천년 전의 처용과 같은 유전인자를 가진 우리들에 해당된다. 온갖 시대의 역신(疫
神)이 우글거리는 이 뜰이지만 그래도 한 송이의 꽃을 심어 아름다움을 가꾸고자하는
변변치 못한 풍각쟁이가 다름 아닌 이 시대의 '나'와 '너'를 아우른 바로 '우리들'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생각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우리들의 야윈 어깨를 처지게 한다.
「북창 문풍지처럼 우는 밤을 이고 앉아」있는 우리가 선 - 우리의 문명의 한복판 그것
은 다름아닌 서울이다. 그곳은 우리들의 절망만 있을 뿐, 희망같은 것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햇빛 아니 처용이 노닐던 태평성대 그 경주의 달빛도 죽어버린 암울한 밤길에
앉은 현대인들의 삶의 현장이다. 「암병실 간병인 같이 신발 끌며 가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적 추구의 본질은 새로운 세계의 도래이다. 필자는
이것을 현실의 아픔 속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절망의 초극을 위한 시적
시도라고 생각하며 시조를 쓰고 있다고 하겠다.
이 시조에서도 필자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절망뿐인 서울이 아니라 「처용가」가
불려졌던 그 시절의 태평성대를 추구하고자 하는 역설적 의도를 이면에 감추고 있다.
오늘도 우리들은 어두운 밤인지조차 잊어버리고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
속에서 고민하며, 넉넉한 처용을 만나러 길을 나서고 있다.
<김연동>


․ 시조도 시이어야 한다

1.
필자는 시조도 시(poem)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
을 것이다. 서정 갈래의 특성을 포괄하는 명칭으로 '시(poem)'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동의한다면, 이 '시'가 발화되는 독특한 양상에 따라 자유시와 정형시를 구분하고, 이를
다시 우리의 문학 현실에 대입하면 시(자유시), 시조(정형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뜻이 큰말로 사용하면, 서정 갈래의 특성을 충족시키는 작품들이 모두 대상이 되
는 것이다.
시조를 쓰는 사람들은 시조가 시(poem)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아
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문학 현실은, 암암리에 시와 시조를 구별해서 보는 시각들이
많다. 시 전문지와 시조 전문지가 따로 발간되는 사정이 그러하며, 몇몇 종합문예지를
제외하고는 아예 시조를 편집에서 제외시키는 경우도 그러하다. 또한, 시조를 창작하는
시조시인들의 작법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드러난다. 그러나, 시이든 시조이든 먼저 시가
갖는 미학적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그 출발점은 동일하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한다면, 시조의 존재 요건을 두 가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앞에
서 말한 바, 우선은 시적인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며, 다음으로는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
의 정형시'로서 형식적 제약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 양자를 어떻게 동시
에 충족시킬 수 있느냐가 창작의 관건이 된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시조가 시적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시적인 발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동일 교수는 서정 갈래의
특성이 '작품 외적 세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세계의 자아화'에 있다고 정의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자아와 세계가 동일성을 지향하는 지점에서 시적 발상이 출발한다고
보겠다. 이는 사물을 완상하거나 경관을 영탄하는 수준에서는 성취할 수 없다. 세계가
자아의 내부에 깃들게 됨으로써 동일성을 성취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시적 초월을 감지
하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시조가 정형시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형식적 제약을 감
수해야 한다. 시조의 정형성은 한시의 경우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롭다는 데 특징이 있
다. 그 자유와 제약의 견딤 속에서 시조는 탄생한다. 그러므로, 기계적으로 글자 수만 맞
추는 시조 작법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가령 시조를 항아리라고 한다면, 독자인 나에게 가장 재미없는 항아리는 내용과 형식이
이분법적으로 주형된 항아리일 것이다. 이 경우의 시인들은, 표정이 똑같은 항아리에 무
엇을 담을 것인가 고민한다. 그러다가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항아리의 입에 무엇이든 마
구 집어넣는다. 독자로서 말하거니와, 이런 항아리에선 질료의 향기가 스며나오지 않는
다.(졸고, "이중의 소외구조 혹은 '시조'라는 항아리", 열린시조, '97 가을호)

2.
아래 시조는 필자의 등단작품(90년 동아일보)이다. 이 시조는 80년대 말에 씌어졌다. 20
대에 광주의 5월을 경험한 필자는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되었다. 처음에는 군사 정
권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시를 습작했다. 그러다가 그 적개심이 결국은, 도망쳐 나
온 자의 비겁함을 위장하는 심리 기제에서 비롯됨을 깨닫고 매우 부끄러워졌다. 습작했
던 많은 시들이 의식의 과잉 상태에서 쓸데없이 길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 필자
가 생각한 것이 시조에 대한 형식 탐구와 시조 습작이었다. 내 자신에 대한 진솔함, 그
비겁함과 부끄러움에 대한 응시 그러한 것들을 시조로 쓰고자 했다. 그러므로, 아래 시
조는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었던 나약한 인간의 자기 반성적 고백으로 읽혀져야 마땅
할 것이다.

강가에서 2

철 지난 가슴으로 강가에 나앉으면
갈대숲은 새 떼를 희게 날려보내고
우리의 아픔은 끝내 물비늘로 저민다.

들판에 홀로 서서 낮은 하늘 바라보다
손사래 여는 눈빛 떠나가던 무딘 팔뚝
보인다, 강울음으로 일어서는 몸짓이…….

밤의 끝엔 길눈 덮는 눈발이 몇 자나 될까
흰옷의 말씀으로 세상이 문득 밝는
기러기 무리져 내려
뉘여보는 바람숲을

굽 도는 마음마다 깊디깊은 흐름으로
이제는 돌아가서 돌아설듯 멈추리라
동백꽃 붉은 가슴에 등불 켜는 그 목소리.

위의 시조가 조금이나마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분노나 적개심을 내면 깊숙이 가라앉
히는 힘에 있었을 것이다. 밖으로 튀는 의욕과 감정의 과잉, 그것을 내적으로 응축시키
는 힘은 시조의 형식적 제약을 견디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으로 필자
는, 고도로 응축된 시 정신, 아포리즘, 삶의 비의를 내포하는 객관적 상관물 따위와 마주
칠 때만 시조를 쓰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시적 순간을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제 20세기도 거의 저물어가고 있다. 새로운 천 년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과연 시조
가 가지는 장르적 의미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필자는 90년대의 시작과 함께
시조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문단에 얼굴을 디밀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시조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고유성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본시 천성이 어느 하나에 진
득하게 몰두하지 못하는 터라, 동시․시․평론 등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시조를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 형식에 관한 문제이다. 여러 장르의 형식을 탐구하
다 보면 시조의 형식에도 어느 정도 눈이 뜨여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시조
의 형식에 대한 회의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700여 년 전쯤에나 씌어졌을 우탁의 [嘆老歌], 고려말에 발견한 그 시조 양식이
우리의 원형적 사유 방식이 되어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놀
라운 일이다. [嘆老歌]를 당대에 유행하던 악곡과 비교해 본다면, 내용과 형식면에서 대
단히 실험적인 작품이라 할 것이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시조가 현대인에게까지 계승될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시정신을 담기 위한 끊임없는 형식탐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
이다. 따라서, 오늘 여기에서 시조를 쓰는 사람은 형식과 내용을 따로 놓지 말고, 과연
왜 시조이어야만 하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창작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겠다. <염창권>


․ 현실 체험과 내적 표현


시조를 창작하는 사람은 시조가 우리 고유의 정형시라는 사실을 모두 다 안다. 민족의
가슴에 면면히 흐르면서 이어져 온 7백여 년의 가락이 지금까지 우리들의 가슴을 유혹
하듯이 살아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하다. 이러한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듯이 우리는 우리 전통문학의 진수인 시조를 계승 발전시키는 노
력들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개인의 노력에서부터 범국가적인 발전론이 미약한 까
닭에 이십세기를 마치는 시점에도 문단의 중심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을 외치면서도 가장 핵심인 우리 문학의 진수를 도외시한 위정자들의 몰상식을 이
해할 수 없다. 세금으로 걷어들인 많은 돈을 흩뿌리면서도 우리의 것 시조에 대한 투자
는 없다. 시조 창작의 길을 걷고 있는 한사람으로써 이러한 자학은 없는 것보다는 낫다
는 생각에서 사족으로 붙인다.
우리나라의 문학교육에는 문제점이 너무 많다. 획일적인 사고를 요하는, 참고서를 보
고 달달 외우는 문학교육은 없는 것만 못하다. 한 개인들의 사고와 다양한 상상력을 인
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문학에 대한 이론이나 창작과정 등
에 대해 무지한 까닭에 참고서만 보고 달달 외우게 만들고 있다. 실제 그런 식으로 가르
치고 있다. 본인도 학창시절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조를 습작하는 사람들의 그 고정화된 어릴 적 사고를 바꾸는 데는
오랜시간이 걸린다. 특히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들의 여가 보내기식의 등단 작품을 보면
그러한 현상은 두드러진다.
고시조와 현대시조는 분명 하나의 뿌리다. 하지만 말 그 자체처럼 고시조와 현대시조
는 다르다. 시조의 룰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현대시조를 창작하면서 가장 핵
심적인 부문은 그 룰에 해당하는 그 시조적 틀 속에 무엇을 담느냐는 데 있다. 고시조에
나타나는 음풍농월적 시조는 현대의 문학적 사고에서 독자들에게 외면받는 그 원인을
제공할 따름이고, 타 장르의 문학에 경쟁력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십일세기를 논
의하며 새로운 담론이 수없이 문단을 휘젓는 시대에 옛날로 돌아가는 인생도피나 서경,
술 한잔 마시고 세상타령이나 하는 시조는 이제는 의미도 없고 시조의 경쟁력을 위해서
는 필요악이다.
현대시조의 그 틀 속에 무엇을 담느냐는 문제는 바로 시정신과 시대정신이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선 지금, 나의 이십대의 생활은 건설공사장의 잡역부와 현장기사로
일했다. 온몸을 쑤셔오는 연대기적 불안과 뼈 마디마다 저려오는 신경통을 데불고 오늘
도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하여 몇 년여를 고민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
십대를 보내면서 나는 <겨울공사장에서>란 시조를 연작시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 중 한
편을 예로들어보자.

1
벌판에서
또다른 풀잎처럼 돋는 눈물.

빙빙 머리 도는 차거운 바람 앞에

무성한
쓸쓸함들이
철새로 날고 있다.

2
내 산하는 빈 가슴의 먹물처럼 뜨거운 땅.

우리 언제 눈을 뜨고
꽃잎으로 피어날까

풍성한
생명의 햇살,
부서지면 나는 삽날.

3
해나 달도 부끄러운
물이 되어 젖는다면

굽은 벌판 억새풀도 이 삽질을 견딘다면

산 밖에
서성이던 겨울,
겨울비는 절고 있다.
-졸작, <겨울공사장에서․Ⅱ>

이른 새벽, 삽날을 세워 황량한 콘크리트와 철근, 시멘트, 통나무들이 나뒹구는 공사현
장을 향하며, 나의 좌절과 희망과 삶의 갈등구조를 셈하다 끝내는 헤진 야전잠바에 빈
몸뚱아리만 처박고 돌아오는 꾀죄죄한 몰골로 나의 이십대 초반은 지나갔다. 이러한 현
실적 체험에서 온몸으로 사는 나의 내적 표현을 시로 나타낸 것이다.
한 편의 시를 완성하면서 그에 동반되는 시적 요인에는 외적인 사물을 보는 시각과 현
실체험,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외적 체험에 대한 내적인 분화과정을 거치면서 형상화된
다. 위 시에서는 공사장에 관련된 단어는 <삽>이라는 단어 하나밖에 없다. 공사장에서
사용되는 수백가지의 공구가 있음에도 사용치 않은 것은 그 하나로도 충분한 공사장의
표정과 내적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벌판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시대 즉 80년대 민주화 과정과 분단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 또는 나의 삶의 표현을 자연의 하나로 비유한 것이다. 고되고 힘든 공사장 생활에
서의 아픈 가슴의 기억은 내 자신이 또다른 대자연의 풀잎처럼 대변되면서 가슴으로 응
어리진 눈물로 표출된다. 황량한 겨울의 콘크리트 골조 속에서 부딪치는 칼바람을 맞으
며 세상 살아가는 의미를 무성한 쓸쓸함들이 철새로 훨훨 날아가고 싶은 심정으로 형상
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 열기와 삶 속에서의 절망과 좌절은 우리들의 산하인 이 땅을 빈
가슴의 먹물로 비유했다. 수묵화를 그리기 전에 먹을 가는 것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우리
의 현실과 나의 삶에 대한 간절한 희망의 애착은 우리 언제 눈을 뜨고 꽃잎으로 태어나
야 하는가로 나타나고, 내가 나를 깨닫지 못하고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지 못할 때 풍성
한 나의 햇살도 결국 삽이고 만다는 나의 의지의 표출이다.
만약 나의 삶과 시대가 좌절하고 해나 달도 부끄러운 물이 되어 젖는다면, 하지만 우리
의 민주화 과정이 성공하고 내가 올바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굽은 벌판 억
새풀도 이 삽질을 견딜 때, 매서운 칼바람과 직립으로 나를 후려치는 겨울비도 결국은
다리 삔 사람처럼 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간단한 설명이지만, 일반적으로 사물은 물리적인 형태가 있기 때문에 감각을 통하여
인식이 용이하고 묘사도 그만큼 쉽다. 그러나 한 시인이 놓여 있는 외재적 조건이 그 시
인의 시에 얼마나 깊게 작용하고 있는가와, 무형적인 정신 상태나 감정을 묘사함에 있어
서 유형적인 사물을 끌어들일 때는 인식의 영역이 확대됨과 동시에 시에 있어서 비본질
적인 요소가 시의 본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또다른 작품 <年代記的 몽타주․21>은 IMF를 지내며 쓴 시이다.

목 잘린 풀꽃처럼 등이 굽어 휘청인다.
빈 자리 곳곳 긴 칼 휘두르는 감원 폭력
밥 먹고 사는 일마저
불확실한 우리 삶터.
불혹의 어깨 위로 흐트러진 반쪽 얼굴
너희는 볼 탱탱한 기름기로 덧칠하지만
목마른, 이 목마른 갈증
우린 어떻게 넘나.
저 싱그런 거리 곳곳 오뉴월의 속울음을
먼저 떠나간 자리 다시 채워지지 않는
불면의 저문 세기말
고개 떨군 아버지.
-졸작 <年代記的몽타주․21>

한국경제가 위기를 맞은 이 시대. 대기업들은 본격적으로 대규모 감원을 하고, 현장의
근로자들을 명예퇴직, 권고사직, 대기발령, 재택근무, 무급휴직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
여 인원을 줄이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
각을 한다. 목 잘린 사람은 사람만큼 살아남은 사람은 사람만큼 그 고통의 흔적은 너무
도 깊고 크다. 위 시는 이러한 세태에 대하여 앞에 인용한 작품보다는 훨씬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리고 시대적인 현상도 너무 다르다. 저문 세기말 잠 못 이루는 우리들의
형제와 고개 떨군 아버지의 모습이다.
위에 인용한 <年代記的 몽타주․21>도 기본 음수율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도 현대적 감각을 잃지 않고 획득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글자수만 맞다고
다 시조는 아니다. 시와 시조가 다른 점이 그것이다.
<이재창>


․ 완결의 미학을 추구한다


그리운, 강


강은 세속도시의 종말 처리장을 휘감아 돌고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로 가는 먼 길이
길게 휜, 수로를 따라
다급하게 풀린다

용케 추슬러 낸 몇 소절 노래도 삭아
더는 흐르지 못할 끈적한 욕망의 진창
또 어떤 격렬함으로 강은 저리 부푸는가

잡풀들의 아랫도리가 툭, 툭 부러지면서
익명의 새떼들만 취수탑 근처를 날고
마침내 뻘물 아래 아득히
혓바닥을 묻는, 강

시조는 맺고 푸는 시가 형식이다. 맺되 옹이를 지우고, 풀되 굽이치는 여울을 둔다.
시조의 생명은 긴장과 탄력, 절제와 함축을 바탕으로 완결의 미학을 추구하는 데 있다.
그러면서 그 가락의 운용은 자연스러움을 요체로 한다.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지만, 나는
시조를 쓰면서 그것이 대상에 대한 설명이나 특정 사실의 묘사 또는 전달에 그치는 일
따위를 무엇보다 경계한다. 시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사상 감정을 개개인의 정서적 반응
을 거쳐 표현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시조가 정형시라고 해서 흔히 닫힌 장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
의 오류는 시조의 정형을 자유시의 자유 개념에 상응하는 폐쇄 구조로 보는 데서 말미
암는다. 자유시라고 해서 무한정의 자유를 누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시를 포함한 모
든 예술 행위는 본질적으로 구속의 속성을 갖기 마련이니까. 궁극의 정형은 절대 자유와
통한다. 구속 속에서 추구하는 정신의 극점에서 한 형식이 완성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정형이야말로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예술적, 정서적 차원에서 가장 진화된 언
술 형식이 아니겠는가.
하나의 정형에는 그 사회의 오랜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습속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따라서 시조의 형식 논리는 우리말과 우리 정서가 어우러져 빚어낸 사유의 총화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시조 3장의 유형화된 미의식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
다. 하지만 이러한 시조 형식의 운용에 창조적 인식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
낱 전통의 단순 변조나 답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또한 내가 시조를 쓰면서 살펴
헤아리는 바다.
안이한 발상으로는 의식의 심층에 닿기 어렵거니와, 단조로운 상의 전개는 자칫 시의
무게를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경험 사실과 상상력의 감각적 육화를 이루는 데서 우리는
시 쓰기의 미묘한 성취감을 맛본다. 시가 이미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면, 이 말은
곧 자연과 우주의 끊임없는 변화와 생성의 이치를 함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운, 강」을 쓸 무렵 나는 의식적으로 자연 파괴나 환경 오염이 주는 생태계 위기
문제에 매달렸다. 까닭인즉 이 방면에 대한 시조단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희박한 데다,
또 그런 현실이 내게 어줍잖은 정서적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태주의
적 세계인식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이 작품도 그런 인식의 토대 위에
서 씌어진 것만은 틀림없다. 우선 이 작품의 제목이「그리운 강」이 아니고「그리운,
강」인 데서 어떤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부러 쉼표를 찍은 것은 강 이미지를 강조함과
동시에 그리움 쪽의 의미를 강하게 부여잡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의미의 집중과 울림을
고려한 포석인 셈이다.
세속도시의 하수며 오․폐수를 정화하는 <종말 처리장을 휘감아 도는 강>과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로 가는 먼 길>은 왜곡되고 변질된 현실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문면에 드러나는 외면적 정황이 그러하듯 이 작품의 무대는 어느 특정 지역에 국
한되지 않고, 여러 곳에서 본 여러 풍경들을 뭉뚱그려 제시한다. <길게 휜, 수로를 따라/
다급하게 풀린다>는 구절은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속절없이 내몰리는 마음의 움직
임을 보여준다. <길게 휜, 수로를 따라>의 <길게 휜,>은 앞뒤에 놓인 <먼길>과 <수로>의
의미를 견인하고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용케 추슬러 낸 몇 소절 노래>는 절박하게 밀어닥치는 오염 현실에 대한 질정의 의지
를 내포한다. 그러나 그 <몇 소절 노래>는 이내 삭아 <더는 흐르지 못할 끈적한 욕망의
진창>에 갇히고 만다. 이것이 강으로 대변되는 자연의 숨길 수 없는 실상이다.
<어떤 격렬함으로> 부푸는 강의 심상에는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기대감이나 희망같은 게
묻혀 있다. 기실 이 구절은 시 문맥의 일관된 흐름에 변화를 주고, 그 틈새로 긴장의 입
김을 강하게 불어넣기도 한다.
셋째 수에서는 첫째 수의 <종말처리장>에 상응하는 <취수탑 근처> 풍경이 배경을 이룬
다. <종말처리장>과 <취수탑>, 정서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두 시설물이 함께 등장함으로
써 상․하수의 이미지가 뒤섞이는 중층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잡풀들의 아랫도리가
툭, 툭 부러>진다는 것은 생태계 파괴의 단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로서, 여기에는
저항할 수 없는 낭패감이 내재해 있다. <취수탑 근처>를 나는 <익명의 새떼들>은 지상에
내려 앉지 못하고 부유하는, 다시 말해 오염 현실에 떠밀려 다니는 존재들을 대변한다.
<마침내 뻘물 아래 아득히/ 혓바닥을 묻는, 강> ─ 이 작품의 마지막 장은 인간의 몸
가운데 가장 민감한 부분의 하나인 <혓바닥>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심층 부분까지 훼손
된 치명적인 상황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제기한다. <혓바닥을 묻는, 강>에 나오는 쉼표는
제목인「그리운, 강」과 의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명사형으로 끝나는 마지막 구에 강조
와 여운의 효과를 주기 위한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시는 내 정신의 재다. 나의 시 쓰기는 꺼질 줄 번연히 알면서도 연신 불을 지피고, 또
그 불씨를 끊임없이 쑤석대는 일인지도 모른다. 집착을 넘어서는 집착, 일탈을 끌어안는
일탈 ─ 그런 부조화의 조화 속에 시조 창작의 좁고 가파른 길이 열려 있다. 될 수만 있
다면 나는 시조의 실험성을 일깨우는 데 가진 힘을 소진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편편
이 낯설고, 비딱하고, 그러면서 뜨거운 각성의 피가 흐르는 그런 시조를 쓰고 싶다. 실험
은 늘 깨어 있는 의식으로 끊임없는 변주와 변용을 추구하는 것.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의식의 내해 그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고, 가늠할 수 없는 인식의 고도를 줄달음쳐 오르
고 싶다. 그리하여 형식과 내용의, 외연과 내포의, 자연과 인위의, 영원과 찰나의, 몸과
넋의 경계를 분주히 넘나들며 그 극점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모든 경계에서 첨단의 길
이 열린다. 나는 나의 시 쓰기가 그런 인식의 경계에서 언어의 상감 세계를 온전히 구현
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환원염의 불 그늘 속에 사위어 가는, 오오 저 소슬한 서정의 흙
빛!
<박기섭>


․ <해남에서 온 편지>와 <한국의 가을>

1.
낮은 산들과 구릉, 아슬히 넘어가는 길들, 층층이 구불구불 이어나간 논 다랑이, 그 사이
마치 초록과 대비를 이루듯 점점이 박힌 황토의 짙은 주황 빛깔… 南道는 이런 것들 때
문에 마음마저 풍요롭고 신선하다. 수시로 나서는 답사길이건만 이 다정스러운 것들과의
만남은 늘 내게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광주의 무등산 자락 광주댐을 끼고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면앙정, 송강정도 그 운치가 그만이지만 강진의 다산 초당, 천일
각에서 바라보는 구강포와 그 호젓한 산길을 넘어 백련사와 영랑 생가, 해남 연동의 고
산 유적지 녹우당과 대흥사, 보길도의 세연정과 정도리 검은 돌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의 정겨움과 깊은 맛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아는 것만큼 느낀다고 하던가.
그래서 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답사를 나서면 나는 이들에게 한 가지라도 더 일러주기
위해서 안달이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욕심을 내어 무리하게 일정을 강행하다보면 여
유가 없어지게 되고 호젓한 산행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러나 또 너무 느슨하게 부
려두면 아예 놀자판이 되어서 종국에는 어디로 이동하는 것조차 원성(?)을 듣기 십상이
어서 그 적당한 수위를 눈대중하는 것이 기분 좋은 답사의 관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눈대중이 없던 교수 초년병 시절 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강진 곳곳을 들러 해남 송
호리 해수욕장을 지나 우리나라에서는 노을이 가장 빼어나다는 사구미 해안가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학과 학생 중에 수녀가 있었는데 이 학생이 조심스레 다가와서 집이 이 근
처인데 들러가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지나는 길목이어서 그 수녀의 집을 들르기로 하
였다. 그러나 정작 집에 들어서고 보니 가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노모 한 분만 있는 것
이었다. 어떻게나 반갑게 맞이하는지……. 오래된 한옥 건물이었고 뜰에는 나무와 꽃들
이 빼곡하게 마치 하나의 숲을 이루듯이 무성하였는데 푸릇한 기운과 화사한 형형의 색
깔들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토방에 걸터앉아 넋을 잃고 할 말도 잊은 채 물끄러
미 그 풍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밭으로 이어지는 곳에도 진달래
와 철쭉꽃들이 만발했고 그 길은 연하여 밭이 끝나는 구릉까지 연결되고 있지 않은가.
그 길을 우리는 걸어가며 '오메메 이것 쪼간 봐바라' 서로 보라고 야단이며 모두가 들
뜬 아이들처럼 신이나 웃음꽃을 피웠다. 밭이 끝나는 구릉에서 우리는 또한번 그 절묘한
풍광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곳에서 바로 보이는 바다는 쪽빛 그 자체였다. 시린 그
물살이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출렁거렸다. 기어코 마다해도 쌀과 깨 등속을
노모는 주렁주렁 담아 챙겨 주었고, 거기에다 아직 열매가 열지 않는 남천나무 몇 그루
와 동백나무, 상사초를 싣고 우리는 일정 때문에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거기
에서 보낸 시간들은 가슴 속에 한동안 남아 있었다. 전해들은 얘기로는 수녀의 아버지
되는 분이 꽃과 나무를 너무도 좋아해서 집 안팎에 그렇게 갖가지 식물을 심게 되었다
는 것이다. 과일만해도 감, 사과, 귤은 물론 약간의 키위까지 재배하고 있었다. 쪽빛 바
다와 지천으로 널린 꽃들과 주글주글한 노모와의 만남…. 그 감흥이 아물아물 잊혀져갈
무렵 집에와 심은 상사초가 죽어간다 싶더니 어느 날 저녁 금빛 꽃대를 가늘하게 밀어
올리며 피어났다. 그 눈부심이라니. 나를 달뜨게 한 그것도 잠시 망각은 아주 빠른 것이
어서 나는 다시 일상에 쫒기면서 잡지와 작품과 강의에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다음해 화창한 봄날이었다. 출근하여 연구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이제 푸릇푸
릇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교정을 유리창으로 내려다보면서 어느 새 이렇게 환한 봄이
이렇게 곁에 와 있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좀체 연구실에는 나타나지 않던 수녀가 밝게
미소지으며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컵에 포도즙을 한 잔 따라서는 내게 건네며 이
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무이가요. 오늘 아침에 전화를 했는디, 꽃이 활짝 피어서 너무 보기 좋다고 안하요…
한 번 댕겨가라는 것 같은 디…'
수녀는 이 말을 채 맺지 못하고 연구실 밖으로 이내 나가버렸다. 나는 한동안 생각이 정
지된 듯 그대로 앉아있었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이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피어 있
는 꽃들을 혼자 보고 있는 노모의 주름진 얼굴, 그 꽃들의 각양각색 아름다운 모습을 딸
에게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으면 전화를 걸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싸늘한 전율과
안타까움이 머리를 관통하여 발끝까지 싸하니 훑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
던 것이다. 이러한 체험이 결국 <해남에서 온 편지>를 쓰게 만든 동인이 되었지만 정작
작품으로 만들어지기까지에는 또 그로부터 2년의 세월이 흐르게 되었다. 수녀가 졸업하
고 졸업식 날 나는 전보다 훨씬 더 늙어버린 노모와 기념촬영을 하고 수녀가 서울의 어
느 복지원으로 옮겨간 후 다음 해 봄날 나는 또 망연히 창가에 서서 오는 봄날의 기운
을 느끼면서 노모의 심정이 되어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어 <해남에서 온 편지>
를 쓰게 된 것이다.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깐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만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냐 안.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란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서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다 제금 나고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해남에서 온 편지>

나는 이 작품을 쓰면서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하나는 서사를 가미한 사실성이
었고 다른 하나는 재미성을 가미한 극적 반전이었다. 전자를 위해서 남도 사투리의 질박
한 부분과 사투리로써 정말 묘미 있는 표현들 (그러냐 안, 전디다, 끈하다 등)을 최대한
살려 쓰고자 노력했다. 후자는 구성면인데 시대상황의 재구성(IMF와 오래비의 오지 않
음, 종신서원의 비극적 상황)과 종장의 극적 묘미에 심사숙고하였다. 발표되자 지우인
한양대 정민 교수는 붓글씨로 전문과 함께 그 애틋함을 보태어 적어 보내주었고, 서울대
장경렬 교수는 세미나에서 하이라이트로 이 작품을 올려 복사꽃처럼 환한 봄날의 시조
시대가 오고 있음을 극찬해주었다. 어줍잖게 수상까지 하게 되었으니 나는 그 노모에게
미안하고 김활란 수녀에게도 빚을 진 셈이다. 수상식장에서 홍성란 시인이 이 작품을 낮
은 톤의 차분한 음성으로 낭송을 구성지게 하여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2.
더위가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 초가을 날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포스코 신문이었다.
원고청탁 전화인데 추석에 맞추어 나갈 시 한 편을 보내달라는 거였다. 조건이 붙었는데
가급적이면 시는 여섯 줄 이내였으면 하고, 한가위에 어울리는 시면 좋겠다는 거였다.
나는 순간 당혹스러웠다. 두 가지 조건이 까다로웠을 뿐만아니라 그만한 시로는 익히 <
옛 마을 지나며>와 <추석 무렵>이라는 명편의 시가 있기 때문에 그만한 작품이 아니면
같은 소재로 모험을 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최고의 원고료를
주는 곳인데 돈 욕심 반(?) 글 욕심 반으로 하는 데까지 해 보마고 반승낙을 하고 말았
다. 정말 이에 걸맞는 시 한편을 써보리라 작정하고 시간을 틈틈이 쪼개어 한 줄씩이라
도 써야겠다는 의무감에서 매일 출․퇴근길에 한 대목씩을 생각하게 되었다. 맨처음 가
을과 연계되어 떠오른 이미지는 어머니였고 좀 선이 굵지만 크게 생각하여 첫 구절을
'우리 나라 가을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라고 잡았다. 이어 둘째 줄에는 추석의 보름달
과 대표적 놀이인 강강술래를 연결하여 '가응가응 수월래 보름달은 떠오르고'로 하였으
며 셋째 줄은 '단풍든 마음들 따라 어머니 곁에 모입니다'로 하였다. 그러고 보니 시보
다는 시조가 적합하리라 생각했고 근 스무날 가까이 지나 다음과 같이 두 수의 시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우리 나라 가을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가응가응 수월래에 보름달은 떠오르고
단풍든 마음들 따라 어머니 곁에 모입니다.
…니가 애썼다 여윈 등을 토닥이는 밤
무릎 꺾인 사랑들이 옹기종기 모닥불 쬡니다.
붉은 감 한 톨에도 천 년, 소슬 바람이 지나갑니다.

둘째 수 초장 그러니까 넷째 행은 어머니가 객지의 아들에게 보내는 위로이고 '무릎 꺾
인 사랑'은 실직이나 실연 등 세상사의 고단함을 암시하는 부분으로 고려해 넣게 되었
다. 마지막 줄은 꽤나 고심을 했는데 아주 작은 것을 통해 아주 큰 것을 보는 이를테면
시적 관찰→거시적 상상력을 가져오는 수법을 활용해 보기로 작정하였다. 사실 한 편의
시에 대한 감동은 미세하고 가늘 한 것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떨림이 기초가 된다. 추상
과 관념은 공허한 것이며 어떠한 시적 감동도 가져오지 못한다. 대표적 가을의 한 형태
를 붉은 감 한 톨에서 우리는 볼 수 있으며 그 곳에는 우리 모두의 지나간 역사, 千年의
세월이 충분히 담길 수도 있는 것이리라. 제목은 사실적 정황이 밑그림을 그리고 있으므
로 <한국의 가을>로 잡았다. 웬만하다 싶어 그냥 보내버릴까 하다, 시 창작 시간에 이
작품을 칠판에 적고 그 동안의 창작 과정을 설명했다. 학생들은 여간 신기해 하는 게 아
니었다. 교수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더구나 처음의 구성 단계부터
한 문장 한 글자씩 고쳐진 과정을 설명하니 피부적으로 와 닿았던 것이리라. 그러면서
표현상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지적해보라고 했더니 '모닥불 쬡니다'라는 부분이 시기상
추석과는 맞지 않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강변을 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일리
가 있어 다시 초고의 작품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다시 시작하였다.

① 조금 더 탄력과 긴장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
② 연결을 좀더 자연스럽게 하도록 할 것.

이 두 가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위해 둘째 줄과 넷째 줄
을 수정하기로 하였다. 둘째 줄은 춤추는 동작과 달 떠오르는 장면을 따로 따로 기술하
는 형태였는데 이의 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응가응 수월래에'를 춤추는 동작이 아
닌 달뜨는 장면으로 해도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서서 보름달을 앞에 배치하여 '보름달
은 가응가응 수월래에 떠오르고'로 하였다. 묘미는 더 살아났으나 걸음이 조금 불완전하
여 '보름달은'을 '강물 끌고 달은'으로 고쳐놓고 보니 더 이미지가 선명해지고 걸음도
더 안정을 찾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들 따라'도 '마음 하나 둘'로 바꾸고 '어머니'의
중복이 마음에 걸려 '단풍이 모이는 곳' 인 동시에 고향을 찾아가는 모든 이의 마음의
고향을 상징하는 단어를 찾아 '어머니 곁에 모입니다'를 '마당 귀로 쌓입니다'로 하였
다. '모닥불 쬡니다'는 학생들의 지적도 지적이지만 결정적으로 다음 행과의 연결도 부
자연스러운 면이 있어 앞, 뒤 각 行이 연결되도록 다시 말해 '여윈 등을 토닥이는 밤'과
바람이 지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기 위해 몇 날을 고민한 끝에 '물소리
에 귀 맑힙니다'로 고치게 되었다. 맑혀진 귀에 감나무 가지 끝의 바람소리가 어우러지
니 앞뒤의 조응이 일치를 본 듯하여 기분이 좋았다. 감이 왜 '알'이 아니고 '톨'이여야
하는 가에 대한 공격도 있긴 했지만 이 점에 대해 나는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톨'을 '알'로 바꾸어 놓고 율독해 보면 붉은 감 하나의 외로운 이미지나 느낌이
반감되어버리므로 '톨'로 해야할 마땅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었고 이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같은 의견이다. 결국 여섯 줄의 이 시는 한 달이 훨씬 지나서야 다음과 같이 완
성되었다.

우리나라 가을에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강물끌고 달은 가응가응 수월래에 떠오르고

단풍 든 마음 하나 둘 마당귀로 쌓입니다

…아가 힘들지야 여윈 등을 토닥이는 밤

무릎 꺾인 사랑들이 물소리에 귀 맑힙니다

붉은 감 한 톨에도 천 년, 푸른 바람이 지납니다
<이지엽>



․ 장편 서사시조의 시도


사할린의 민들레


1. 백두(白頭), 고을물이/ 하늘에 닿아 굽이트던
그날 그 징소리가/ 낙화(落花)로 와 뚝뚝 질 땐
천 길 늪 말굽을 젖히고/ 송이, 떨기 뿜더니,

2. 동해 한 굽이/ 피무늬로 뜨던 그날
찢겨 간 생가지가/ 탄가루에 삭아 떨다
야윈 손 허공에 담군 채/ 꽃대궁만 외로 섰다.

오호츠크 해류에 뜬/ 생채기만 그냥 남아
무명, 흰 옷섶엔/ 이가 누런 사투리들
멍 박힌 씨앗은 벌어/ 갯벌 허허 날고 있다.

3. 누이야, 네 넋이 떨/ 북간도 별빛을 찾아
황토빛 풀씨 하나/ 죽지 떨며 헤어가다
시방도 길섶에 떨어져/ 혼꽃으로 피고 있다.

4. 살아, 단 한 번/ 내 핏줄은 만나고 싶다.
고독이 뼈에 닿아/ 먹빛으로 떨구는
그 목숨 통한(痛恨)의 목청이/ 허공에 떠 울먹인다.

5. 보신각 쇠북에 깬/ 갈숲 먼 산자락엔
긴긴 밤 해류를 건너/ 성묘로 온 메아리에
도래솔 고목이 울어/ 선산(先山)을 죄 흔든다.

6. 북위 오십도 밖/ 뼈에 밴 아픔을 털며
절룩여 헤어와도/ 생살이 터 목맨 강물
칠흑길 어둠을 빠갤/ 쇠북이여 울거라


이 작품을 처음 시작한 1980년대 초 한반도 남녘에서 바라본 북위 50도 밖의 사할린은
동서 냉전으로 인해 닿을 수 없는 섬으로, 칠흑의 얼부푼 이념의 빙벽으로 싸여 오고갈
수 있는 길이 없었음은 물론, 단 한 점의 소식도 들을 수 없는 땅이었다.
그 누가 빙벽이 녹아 오고갈 수 있는 길이 트이리라 짐작이나 했으랴.
작품을 처음 시작한 뒤 6․7년간 이 한편을 붙들고 씨름하는 동안에 체력이 달려 비틀
대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칠흑의 빙벽에 갇혀 뼈에 닿도록 육친을 그리며 서늘히 떨고
있을 사할린의 서느런 핏줄들을 떠올리며 스스로 몸을 가누고 채찍질해 왔다.
사할린의 민들레!
그들은 참담했던 우리 민족사의 한 부분인 일제치하에서 끊일 듯 모진 목숨을 이어가던
이 땅의 소작농, 화전민, 날품꾼 등 대부분 밟히고 짓밟히던 핏줄들로, 징용이란 일제의
사람 사냥의 덫에 걸려 생가지 찢기듯 끌려가 지상 최악의 땅이란 천 길 탄광의 막장에
서 갖은 고통을 당하며 더러는 오호츠크해 물굽이 위나 그 툰드라의 허공에 외마디 비
명을 떨구며 숨져갔고, 살아 목숨이 붙은 사람도 시신같은 눈시울로 종전을 맞았으나,
다시 소련군의 점령으로 칠흑 속에 떨어져 오직 귀국의 꿈만 뼈 속에 새기어 목줄기 빼
어들고 지금도 오호츠크 물굽이 너머 먼 이 땅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 작품에 손을 댄 동기는 실제 징용에 끌려갔던 家親과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의
피묻은 체험담을 듣고 일제에 대한 일종의 증오심을 느꼈고, 어릴 때부터 국사에 무척
흥미를 가졌으며, 중․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역사를 연구하려고, 중등교사 자격
증을 얻기도 했다. 대학이후 더욱 근세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할린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고 버려진 핏줄들이 내 혈육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종전 반세기가 가까워도 끌고 간
일본이나 피해를 당한 우리들마저도 꺼질 듯 깜박이는 제 핏줄을 구출하기 위한 그 어
떤 손길을 건네지 않았음에도 있지만, 그보다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천길 나락의 핏줄들
을 두고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남의 일인 듯 흘려 넘기는 굴절된 인간의 양심에
대한 고발의 뜻이 있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비록 분단된 조국이기는 하지만 내 땅에 발을 붙이고 산다. 끌려가 처절한
고통을 당하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려고 몸부림치고, 울부짖는 핏줄들을 외면하고 권력
을 잡은 자는 정권의 연장이나 억압의 서슬을 펴왔고, 억눌린 자들은 그 억압에 항거하
는 일에 많은 힘을 쏟아왔다.
도대체 조국은 무엇이며, 국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겨레란 또 무엇인가. 역사는 늘 이기
는 자, 힘있는 자들만의 것인가. 외세에 의해 이렇게 밟히고 짓밟힌 제 핏줄을 팽개칠
수 있는 것인가.
이 땅의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 학생 등의 그 수많은 단체나 개인은 끌려간 제 핏줄을
구하기 위한 그 어떤 군중집회나 불덩이같은 구호나 귀환운동같은 것은 왜 하나도 없다
는 것인가. 왜 이런 곳에는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그토록 냉담한가. 그 서느런 목숨을 위
해 한 점 까만 불빛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그 무엇이 내 가슴속에서 영혼의 불길
로 타오르고 있었다. 민족의 한 부분이 천길 나락에서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는데, 민족
의 양심, 시인의 양심은 이를 외면하고, 그 어떤 곳에 마음을 두고 찬란한 조명을 바라
고 있지는 않은가. 모두가 이를 외면한다고 해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시조 속에 이 모
든 것을 담으려고 작정했다.
그리하여 1981년 가을부터 시상을 가다듬으며 고심하다가 `82년 겨울 30여 일의 면벽 고
뇌 끝에 서시에 해당하는 부분(앞에 제시한 8수)을 얻어 발표하게 되었고, 마침 徐伐시
인의 격려와 함께 시조단의 불모지인 대하 서사시조로 써볼 것을 간곡히 권유했다. 여러
번 생각을 거듭했으나 너무나 방대하고 처음 하는 일이라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자유시쪽에서도 素月의 시적 성취나 巴人의 위대한 실패는 둘 다 한국시사에서
시적 진폭과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믿었다. 이
땅의 많은 시인들은 素月쪽을 선호하고 巴人쪽을 피하려 해도 나는 巴人의 위대한 실패
를 그리며, 지금도 흩날리는 눈발을 뚫고 이 반도 빈 벌판이나 깊은 산 응달진 계곡을
절룩이며 걷고 있을 古山子의 드높은 혼을 우러르며, 이 길에 나서리라 다짐했다.
자료 수집에 나서 「조선독립운동전사」며, 일본의 르뽀라이터 三品英彬의 「나의 조국
일본을 고발한다」등 40여 권의 자료를 참고하여 줄거리를 구상하고 대하소설이나 대하
드라마를 연상하며 단형․중형․장형시조 등을 동원하여 그런 것들과는 다른 서사시조
를 써보려고 했으며, 고도의 비유나 상징보다는 가급적 쉽게 읽히게 하려고도 노력했다.
그리하여 당시 백성의 팔할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며 일제의 학정에 시달리다 스러지듯,
일제의 징병에 가장 많이 끌려갔던 삼남지방 농민들의 참상을 배경으로 경상도 동북부
지방인 영덕․ 영양․ 영일(포항) 등을 그리며, 그 속에 실제 사할린에 끌려갔던 영양군
의 이의팔이란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그의 조부와 부, 본인에 이르는 3대의 이야
기를 그리게 되었다.
이야기의 전개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게 했다. 곧 일흔
노구의 주인공이 왓카나이 갯벌에 나와 귀국의 꿈을 그리며 오호츠크해류 너머 먼 동해
를 향해, 사할린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그들의 뿌리인 조국과 민족혼을 깨우치게 하는 내
용(Ⅱ), 한말(韓末)의 흔들리는 왕조와 정세 속에서 평민 의병장 신돌석을 등장시켜 주
인공의 조부와 함께 의병활동을 하는 내용(Ⅲ), 주인공 아버지의 3․1운동 참여와 그 당
시 토지를 빼앗긴 화전민 유랑민의 생활상, 상해 임시정부와 청산리전투 등을 그리며
(Ⅳ), 관동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원산 대파업, 광주 학생의거 및 애국지사들의 활동
(Ⅴ), 일제의 잔악한 수탈과 탄압 등(Ⅵ,Ⅶ)을 그렸으며, 주인공이 노무자 사냥의 덫에
걸려 사할린에 끌려가는 내용(Ⅷ)을, 끌려가 탄광 막장에서 겪은 참상과 2차대전의 진행
(Ⅸ), 종전과 함께 조국은 광복되었으나 소련군의 침공으로 다시 칠흑 속에 떨어진 모습
(Ⅹ), 소련군의 점령아래서의 탄광생활과 무국적이 된 민들레의 아픔(?), 끌려갈 때는
일본 국적이었으나 광복으로 국적을 잃었다며 그들 가족만 귀환시키고 반도인은 팽개치
는 국제사회의 비정함과 북한 노무자들이 밀려오면서 이념으로 인한 동족간의 피흘림
(?), 귀환의 꿈을 안고 몸부림치듯 울부짖는 처절함, 귀환을 기다리며 끝까지 무국적을
고집한 풀꽃들의 골수에 박힌 아픔, 이제 끌려간 세대들은 거의 70대로 스스로 고독이
아파 목숨을 떨구는 참상과 주인공의 죽음(ⅩⅢ)으로 막을 내리게 했다.
인간이 인간을 버린 이 비극을 처음의 각오처럼 모두를 다 바쳐 그린다고 하였으나 워
낙 무딘 사람으로 의욕만 앞서고 거친 곳이 많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또한 비슷한 참
상을 계속 그리자니 같은 말의 중복도 많고 장면을 바꾸는 데 호흡이 단절되는 점도 많
으리라 본다. 처음 발표할 때와는 달리 순서에 다소 차질이 있으나 1,226수로 끝을 맺었
다. <조주환>

․희망에 대한 희망을 담아


힘들게 누웠는데, 왜 다시 일으킬까
어린 아들 눈엔 또, 무얼 심는 걸까`
먼 데서 발만 세우던
파도가 와 본다

아비는 가고 그예 소년 혼자 물을 준다
죽은 나무 발등에 흰 무릎을 꿇고 매일
온 들이 꽃을 피우고
그때마다 종이 운다

그 노래를 입히며 바람은 갸웃댄다
나무가 희생할까, 저의 편한 죽음을
연초록 귀를 내밀어
들어 줄까, 우리 꿈을
<죽은 나무를 심는 父子>

제목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난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은 영상 속에 계속 들어가 있었다.
󰡐죽은󰡑나무를 󰡐심는󰡑다, 그것도 󰡐父子󰡑가. 그런데 제목이 너무 풀어진 것이 아닐
까. 좀 망설였지만 어느 한 단어도 뺄 수 없을 만큼 의미가 깊다 싶어 제목을 그대로 둔
채 차츰 말들을 굴려나갔다.
제목만 보고도 어떤 영화나 내용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
키 감독의 영화 《희생》. 그 영화 한 편이 이 작품을 쓰게 한 직접적인 동기였다. 영화
의 메시지는 희망과 구원이다. 세기말적 절망과 미래에의 불안 속에서 인류의 문명을 비
관적으로 생각하는 주인공은 제3차 세계대전 발발 소식을 듣고 환상으로 핵전쟁을 보면
서 인류의 구원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리고 가족과 어린 아들의 평화를 기원하며 자신
을 희생하는 의식을 치른다. 감독은 영화의 끝에 자기 아들에게 희망과 평화라는 전언을
주는데, 이 영화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 더욱 의미있게 남는다.
이 영화는 내게 강렬한 영상 체험을 주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죽은 나무를
심으며 들려 주는 이야기-죽은 나무를 심고 물을 정성껏 주었더니 잎이 났다는 전설-와
장면이 오래도록 뇌리에 새겨졌다. 아버지가 떠난 뒤 아들 혼자 그 나무에 지성껏 물을
주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나는데 그 모든 장면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심오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 느낌들을 다시 시로 쓰고 싶은 생각이 꿈틀거렸다.
어떻게 써야 할까. 그림이나 음악 등 다른 예술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시로 써서 원래
의 작품에 못지않은 좋은 시를 남기는 시인도 있고, 영화 또한 좋은 영감을 주어 많은
시인들이 詩化했지만, 이 영화는 철학적이고 시적이라서 시로 다시 나타내기가 더 어려
울 것 같았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만만치 않은 깊이와 상징적 의미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구 소련의 억압 속에서도 구도적 삶을 통해
영화를 작업해나간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그런 자세와 영화는 칸느 등 국제영화계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 작가이다.
그런 작품 진행 과정을 꼼꼼히 일기로 기록한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라는 책이
그의 사후에 나왔는데, 영화를 구상하고 고치고 만들며 고뇌하는 타르코프스키의 모습을
보면 정말 진정한 작가로서 존경을 받을 만하다. 감독의 혼이 담기고 인생이 농축된 예
술 영화를 갖고 난 어떻게 시로서 새로운 작품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그때까
지만 해도 시조에서는 별로 없던 시도라 더 써보고 싶었다. 영화는 전세계의 관심있는
사람들이 다 보았지만, 그 감동은 나만이 쓸 수 있는, 나만의 시조로 써보리라.
먼저 죽은 나무에 관한 이미지로만 상을 좁혔다. 죽은 나무에는 많은 상징을 담을 수
있다. 그러면 주제도 보는 사람 관점에 따라 깊이를 달리 할 수 있을 것 같아 더 좋았
다. 죽은 나무는 물질만능의 현대사회, 생태계 파괴의 과학만능, 잘못 기술되는 역사, 인
간을 파멸시키는 전쟁 등의 의미를 담고, 심는 행위 자체는 희망이나 평화 또는 구원의
소망 같은 것을 암시하게 하며, 父子가 그 행위를 같이 하는 것은 희망의 대물림이랄까
밝은 미래에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보자는 생각으로 3首를 구상했다.
첫째 首에는 죽은 나무를 심는 父子의 모습을 그렸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아주 서정
적으로 펼쳐져 보는 사람을 그 장소, 그 시간 속에 들어가 거닐게 한다. 나는 이 장면을
어떻게 詩化할까, 생각을 하다가 죽은 나무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한 그루의 나무가 이
척박해진 지구에서 나무로서의 생을 어렵게 살고 이제는 편안히 누웠는데 왜 다시 일으
키느냐고 묻고 싶었던 것이다 .환경이 점점 심하게 오염되어 이제는 파멸의 지경에 이르
렀으니 나무도 숨쉬고 서 있는 그 자체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멀리 잔잔히 노닐
던 파도가 근심스럽게 와서 살펴보는 것으로 살렸다.
둘째 首에는 어린 소년 혼자 남아 물을 주는 장면을 클로즈업시켰다. 실제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마지막 장면이다. 아이가 물을 준 뒤 나무 아래 누워 있을 때, 나무 밑동부터
꼭대기까지 카메라가 서서히 훑어 올라가며 화면은 정지된다. 그 장면이 나에겐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평화와 희망에의 약속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소년이 혼자 물을 주는 행
위, 순진무구한 믿음의 실천으로 하여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꽃같은 무릎, 희디흰 순한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하듯 물을 주는 모습으로 그렸다,
그것도 매일.
그리고 나니 온 들판이 그 소년의 기도에 응답하는 것 같았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
도 움직인다지 않는가. 작고 여린 풀들이 꽃을 피워 모두 몸을 떨며 기쁨에 겨워 노래하
고 춤추고, 그리하여 그들의 온몸에서 수많은 종소리가 맑게맑게 세상에 울려퍼지는 것
이었다. 그 소리들이 내 귀에는 선명하게 들려 가슴속까지 가득히 고여 넘치고 있었다.
순결한 믿음과 실천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간다는 소망을 담아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평화가 그렇게 쉬이 올까. 바람이 그 들판의 하나 된 노래를 죽은 나무에 불
어 넣어주지만, 과연 우리의 소망대로 나무가 살아나 줄까 갸웃대는 것이다. 세상은 그
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지구는 여전히 가공할 속도로 숲이 사라지고, 쓰레기가 넘
쳐나며, 물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변함없이 눈 앞의 이익과 안락에 급급해 주위
를 둘러보지 않는다. 그래서 지구는 파멸 직전이고 전쟁 위협도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데, 이런 땅을 떠나 휴식에 든 나무가 다시 일어나서 새 잎을 틔워 보인다면 그건 나무
의 희생이라고 생각되었다. 그토록 힘들게 한 인간을 위해 나무는 제 안락한 잠을 희생
할 수 있을까.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과연 들어줄까. 그래서 󰡐연초록 귀를 내밀어 들어
줄까, 우리 꿈을󰡑로 마무리를 했다. 회의하는 어조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욱 강렬한 희
망이 내포되어 있다. 제발 연초록 잎새들이 가득히 피어나 다시 푸르른 노래들을 들려주
었으면, 그래서 싱싱한 웃음들이 널리 퍼져 나갔으면……. 비관적인 인식에서 출발했지
만 진정한 희망에의 열망이 담겨 있다. 그것이 희망에 대한 희망일지라도.
이 작품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 희망과 구원에 대한 간절한 소망 등을 담아 보려
애썼다. 회의하는 듯한 어조는 그런 바탕 위에서 씌어졌다. 확신을 하는 순간 오류를 범
한다던가. 난 회의하지 않는 신념은 모래 위의 집일 뿐이라는 말을 늘 생각한다. 또 섣
부른 낙관적 전망은 가짜이기 쉽다고 믿는다.
한 영화 감독이 평생 사유한 삶과 죽음, 인류에 대한 철학적 고뇌와 심오한 성찰 등을
아름답게 혹은 고통스럽게 펼친 영상을 보고 그 감동을 내 나름의 시로 써 보았지만 부
족하기 짝이 없다. 萬을 하나로 거두어 들이듯, 시조는 특히 응축과 절제를 미덕으로 하
는데 그 풍격을 제대로 살렸을까. 난 작품을 쓰며 이렇게 늘 회의를 거듭한다. 이것이
새로운 작품에의 출발이 되고 그런 반성 속에서 언젠가는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
을까. <정수자>

․ 『돌』의 창작 동기와 의도

나는 불이었다. 그리움이었다.
구름에 싸여 어둠을 떠돌다가
바람을 만나 예까지 와
한 조각 돌이 되었다.

천둥 비 바람에 깨지고 부서지면서도
아얏,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견뎌야 할 목숨이
남아 있음이라.

사람들이 와 '절망을 말하면 절망'이 되고
'소망을 말하면 또 소망'이 되지만
억년을 엎드려도 깨칠 수 없는
하늘 소리.
땅의 소리.
『돌』

산길을 오르자가 돌부리에 채인 적이 있다. 몹시 아팠다. 그래서 그 돌을 뽑아 집으로
가져 왔다. 그 돌과의 인연도 10여 년을 헤아리는 동안 깊어졌다. 그러나 그 돌은 내 집
에 있을 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제자리에 갔다 두게 되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돌은 사람을 차지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 묵묵히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돌에 채였다고 한다. 그것은 '나' 본위로 생각한 억지이며
인간들의 오만함을 그대로 나타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의 모든 물상과 생명체들은
그 자체로서 존재의미와 가치를 인간과 동등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을 제자리에 갖다 두니, 문득 이 돌이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
다. 그래서 그 돌에게 묻게 된 것이 이 시의 작시 동기이다.
『돌』은 시조로 씌어진 것이다. 시조가 과거의 구태의연한 창작품이지 않고, 또한 고
식적이고 갑갑한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전통적인 시조의 면
면함이 생동감 있게 되살아나기를 항상 희망하면서 작품 창작에 임한 것이 곧 『돌』이
다.
돌은 길가이든지 강변이든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하나
의 돌이 다져지고 그런 상태로 우리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세월의 연륜이 요구
될 뿐만 아니라 삶의 궁극적인 연륜이 없이는 결코 돌로 성숙될 수 없다는 데서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을 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돌은 죽은 것이 아니라 나와 끊
임없는 교감을 갖고 생명의 소리를 자아내는 생명체인 셈이다.
『돌』은 3연으로 된 연시조의 형식으로 써 봤다. 제1연은 다음과 같다.

나는 불이었다. 그리움이었다.
구름에 싸여 어둠을 떠돌다가
바람을 만나 예까지 와
한 조각 돌이 되었다.

제1연에서 칭하고자 했던 심상은 생명의 근원성이다. 우선 자아를 먼저 열정이 넘치고
그리는 정서가 듬뿍 배어 있는 생명체로 그리면서 돌을 의인화했다. 하나의 돌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그리고자 했다. 무릇 최초의 상태는 혼돈과 뜨거움이 자리잡기 마련이
다. 천지창조의 순간에도 그러했거니와, 하나의 생명이 잉태될 때에도 반드시 혼돈과 창
조의 뒤섞임이 자리잡게 마련이니 바로 그 점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
는 우주 창조의 근본적 물질로서 사대(四大)라는 용어가 있으니 사대는 지(地)․수(
水)․화(火)․풍(風)이다. 이러한 본질적 구성 요소가 돌로 엉겨붙는 과정을 말하고자
했다.
제2연은 다음과 같다.

천둥 비 바람에 깨지고 부서지면서도
아얏,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견뎌야 할 목숨이
남아 있음이라.

제2연은 돌 자체가 견디고 있는 현재적인 삶의 현상을 말하고자 했다. 하나의 돌로 삶
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농밀하게 형상화되었다. 돌을 돌이게끔 하는 돌 자체의 내성 때
문이기도 하지만, 돌을 둘러싸고 있는 삶의 진정성과 고초를 주는 간고성에 있다. 하나
의 돌에 깃들어 있는 하늘의 천둥과 비바람의 자취가 결국 단단한 하나의 돌을 굳세게
만든다. 그러한 외부적 질곡에도 불구하고 돌은 의연하게 자신의 현재적 삶을 이내하며
기다린다.
제3연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와 '절망을 말하면 절망'이 되고
'소망을 말하면 또 소망'이 되지만
억년을 엎드려도 깨칠 수 없는
하늘 소리.
땅의 소리.

제3연은 돌이 갖고 있는 구도적 자세와 생명에의 자세를 노래하고자 했다. 절망에서 소
망까지, 그리고 하늘에서 땅까지 몸속에 옹송그려 담고자 하는 돌의 생명에 대한 구도적
자세를 작품에 밀도 높게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수만 억겁의 세월 속에서 삶의 궁극적
목적을 지향하는 돌의 구도적 자세는 인간 자신들이 외경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보았
다.
『돌』은 돌이 가지는 생명의 근원성, 돌이 견디고 있는 현재적 삶의 현장성, 돌이 본
연적으로 갖추고 있는 생명의 구도적 자세 등을 차례대로 노래한 작품이다. 돌은 이제
우리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돌과 사람이 서로 상호 교감을 일으키면서 끊임없이 내
밀한 삶의 연속성을 보장한다고 하겠다.
『돌』에서 꿈틀거리는 삶의 약동성을 그리면서도 시조를 택해서 노래한 까닭은 시조
에서 노래한 돌의 전통을 이어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돌을 노래하면서 돌을 현재적 관점
에서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다.





부록-시인의 탄생-신춘문예 당선작

부록 시인의 탄생


한번의 낙선과 한번의 당선

1966년 겨울이었다. 그 겨울 추위는 지독한 것이었다. 제법 강골인 나로서도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살을 에는 추위였다.
서울 미아리의 서라벌 예술대학 근처 텍사스촌 일대를 방황하며 나는 [원형질] 동인
들과 어울려 대포를 들이키거나, 그것도 아니면 술집 여자 근처를 들락거리는 치기에 차
있었다. 그 겨울의 추위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원형질] 동인 여덟명 일당 가운데
한꺼번에 세 명이 문단에 데뷔했다.([원형질] 동인지는 말이 同人誌지 사실은 유치 찬란
하기 이를 데 없는 프린트판이었음) [文學]지에 최범서 형이 소설로, [대한일보] 신춘문
예에 유광우 형이 소설로, 그리고 장지성 형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각각 입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물론 [원형질] 동인의 잔여 세력이 겪는 추위란 지독한 것이었
다.
신춘문예 시상식이 끝난 1월 어느 날이었다. 우리 일당은 우이동 골짜기의 방갈로에서
최형, 유형, 장형의 당선 축하 술타령을 벌였다. 밤새껏 가슴 속 추위를 달래고자 퍼부은
알코올 기운이 거나해지자 드디어 박남규 형이
{금초야, 너는 우리 땜에 망했다, 망했어. 문창과 학회지(文創科 學會誌) 때문에 너까
지 망했단 말이야!}
당시 과대표였던 남규 형이 창자의 어느 한 마디를 다 끊는 듯한 소리를 지르며 내
머리채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나는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학회지인 [서라벌 문학]
창간호를 꾸미는 북새통에 신춘문예나 잡지 등 문예작품 모집에 응모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성님.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이제 우리도 가슴에 칼을 갑시다.}
나도 왈칵 남규 형의 머리채를 마주잡고 쥐어뜯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 악당 여덟 명
은 버마제비처럼 한데 엉클어졌다. 서로 상대방 머리칼을 쥐어 뽑으며 나뒹구는 등 헉헉
거리며 가슴에 칼을 갈기로 말없는 언약을 굳게 했는데, 글쎄 술집 여자들도 괜히 그 썰
렁한 분위기에 휘말려 덩달아 훌쩍거리게 되어 술판은 그만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1966년의 그 쓰라린 추위는 나에게 관점 전환의 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을까. 밤이면
잠 안오는 약 [카페나]를 먹고 어거지로 끙끙댔던 어리석음, 술에 취해 비틀거릴 때 앞
에 지나가는 처녀의 엉덩이 움직이는 모습만 보고도 금방 흥분, 시 한 편씩을 써갈기던
그 졸속공사를 많이 지양해야겠다는 것 등을 조금씩 터득하게 되었다.
어쩌면 시(詩)의 신(神) 뮤즈가 내 안에 와 머무르고 있었던가. 오랫동안 억압상태의
문고리를 따 놓은 것처럼 시내버스 속에 앉아서도 마구 원고를 끄적거리곤 했다. 그러므
로 [내재율(內在律)] 1, 2, 3으로 [시조문학]지에 1회 추천부터 3회 추천완료까지 [내
락]받았고 공보부 신인예술상에도 입상하게 되었다.
서울의 지독한 냉기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방황하던 그 무렵 나에게는 크나큰 충격사
건이 벌어졌다. 베트남 전쟁이래 처음으로 한국군의 월남파병 문제가 불거져 나왔고 상
하(常夏)의 정글 속에, 대리전쟁의 사선(死線)에, 내 아우 주식(周植)이가 끌려간 것이
다.
이방의 국경지대에다 생명을 내맡긴 아우한테서는 1주일이 멀다 하고 거푸 편지가 날
아왔다. 그러나 나는 (잔인하게도)끝끝내 단 한 장의 회답도 띄우지 않았다.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그 아픔을 아우 주식에게, 그리고 미지의 형제들에게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
아니다. 꼭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 없었던 그 뭉클한 가슴 속 응어리, 그 절박
한 사연(체험담)을 나는 [安否]라는 시조에다 뭉뚱그려 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1967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투고했다. 그러나 그 작품은 예심에도 통과하지 못한
채 낙선하고 말았다(그 당시 예심 과정에서 누가 내 원고를 빼버렸는지 확증은 없지만
심증은 가지고 있다).
나에게도 오기라는 것이 있었던가. 이제 비로소 고백하지만 이듬해(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오기로, 진짜 독기(毒氣)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나는 오기로 똑같은 내용의
시조 [안부]를 다시 투고했다. 그런데 67년도에는 예심에도 통과하지 못했던 그 치졸(稚
拙)하기 이를 데 없는 원고가 68년도에는 심사위원이 바뀐 때문이었을까, 내 주변정세를
솔직하게 진술한 [안부]의 당선 통지를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우리 신춘문
예사상 유일하게 한 작품을 가지고 한번의 낙선과 한번의 당선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
화를 남기게 되었다.
시조 공부를 하면서 나는 늘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선생의 말을 떠올리곤 했다.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을 몸소 실천했던 그는 해남 대둔사(대흥사)의 혜장(惠藏) 스
님을 불러 앉혀놓고 이렇게 타일렀다. {시라고 하는 것은 사상의 표현이지. 시를 지으려
고 할 때는 사상(철학)부터 단련하지 않으면 똥무더기 속에서 깨끗한 물을 얻어내려는
것과 같아서 평생토록 애를 써도 이룩하지 못할 것이야. 진실한 글은 있는 그대로를 써
야지. 핍박을 당하는 농민의 괴로움을 그대로 써야 산 글이 되는 게지. 그림도 마찮가지
야. 뜻만 그리고 모습을 그리지 않으면 그것은 그림이 아닌 게야.}
따라서 [시는 말 밖의 말(言之外言), 뜻 밖의 뜻(意之外義), 풍경 밖의 풍경(景之外
景)을 담지 않으면 그 맛은 납을 씹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도 떠올리면서 오늘도
이렇게 서툰 붓놀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윤금초>

安 否
― 어느 싸움터인가 내 아우여

금낚시 드리우는 초승달 앞녘 강에
깎인 돌의 초연 냄새 피로 씻지 못한 자리
어머님 품안을 떠난 죄구렁의 어린 양.

역한 바람 풀어 헤쳐 철새 등에 띄운 안부
못다 푼 긴긴 설화 실꾸리로 감기는데
저 하늘 닫힌 문 밖에 벽을 노려 섰는가.

누다비아 산허린가 빗발치는 가시 덤불
세계의 귀가 얽힌 불행의 수렁길에
거미줄, 거미줄 사이 겨냥하는 눈망울….

선불 맞은 짐승처럼 파닥이는 나비 죽지
한 떨기 목숨 가누어 내젓는 기구의 손,
그 무슨 깃발을 안고 너는 끝내 포복하나.

뒤틀린 사랑 타며 포효하는 나의 士兵.
동남아 밤을 밝혀 무지개 지르는 날
떨리는 그 입술 모아 더운 김을 나누자.



심 사 평
흔히 시조를 일러 李朝의 노래라 한다. 그러나 시조는 어느 한 시대에 얽매인 것이 아
니다. 저 鄕歌 이후 우리 모국어의 미학적 절제를 가한 한 가능성을 보이는 과정에 지나
지 않는다.
때문에 이 절제는 언제나 그대로 고정될 수는 없다. 보다 더 고차적인 이유가 나타날
때 비로소 다시 변형하거나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올해 들어 시조를 응모 대상에서 제외한 신문사도 더러 있었으나 이번 [東亞]에 선보
인 작품들은 의외로 우수한 것이 많았다.
당선작 [安否]와 張正文씨의 [冬柏海曲}은 더욱 빼어났다. 시조의 시적 형태미를 잘
체득하고 있는 점에는 오히려 장씨의 것이 勝하나, 내용에 있어선 [안부]보다 훨씬 劣하
다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안부]가 내용에만 치우친 것은 아니다. <金낚시 드리우는 초승달 앞녘 강에
> <떨리는 그 입술 모아 더운 김을 나누자> 하는 구절. 앞에 것은 唐詩 [峨嵋山月半輪
秋]의 그런 적막감을 현대적인 기교로 다시 대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뒤의 것은 이미 치르고 있는 어느 전쟁을 회의하되, 빨리 승리와 평화를 갈구
하는 외침이 아프도록 생생하다.
그밖에 李靜江, 李炳國, 金履弘, 이태희, 장지성씨의 좀더 피나는 노력을 바란다. 또
[百日頌]을 책으로 엮어보낸 분에게도.
심사위원: 이은상․김상옥


'90년대 신춘문예 당선자 (선)

90 중앙일간지 신촌문예

立石里 산과 바다
강문신/서울신문

또 한해 보내는가,
잿마루에 올라서면

침침한 눈 비비며
바다끝도 잠겨 있다.

海潮音
아득한 너머엔
떠서 도는 馬羅島

우리가 심은 것은
귤나무만 아니었다

마른 나무 가지 끝에
겨우내 감긴 눈발

立石里
애타는 燈불은
귤빛으로 익었었다

漢拏山 눈보라야
모닥불이 아니던가

기슭의 봄소식은
자리마다 밟히는데

풀피리
연련한 가락에
실려도 올 水平錄


당선 소감
나이 40도 기울어가던 88년 10월인가, 서귀포 외곽 어느 허름한 주막에서, 시모임에 참
여해 보라는 덩치 큰 酒母(처녀로 늙는)의 권유를 받고 까마득 잊어버린 詩에의 鄕愁로
가슴 설레이던 밤이 내게 있었다.
이후 時調에 뜻을 두어 농사하며 떠올린 想들을 밤에 정리하는 방법으로 시작에 진력
한 1년 세월이었다.
당선을 갈망하면서도 떨어지면 다시 시작할 각오였는데…….
더욱 정진하라는 뜻임을 명심하겠다.
選에 주신 심사위원님, 走馬加鞭으로 몰아세우던 문학 선배님, 그리고 반평생, 그많은
農事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온 내 아내, 현주․용철이 엄마에게 감사한다.

심사평
해마다 그렇듯이 금년에도 지나치게 신춘문예를 의식한 듯 '신춘문예용'의 모자이크식
작품이 많았다. 작품이란 가장 특색있는 자기 목소리를 내어야 하며 더욱이 新春文藝當
選作品이란 기존의 작품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어야 그 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감각의 참신한 소재․창의적인 제목․강한 주제의식․신인다운 패
기를 필요로 한다. 최종심까지 올라온 4편은 고른 수준을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그중
「立石里 산과 바다」(강문신)를 當選作으로 뽑았다.
이 작품은 상의 흐름이나 전개에 무리가 없고 상당한 연륜이 보이는 작품이어서 안심
이 되었다. 그러나 신선함이 덜해 새 맛의 느낌이 반감되었다는 점도 기억해 주기 바란
다.
「四季」(김해미)는 미완성인 삶을 정감있게 펼쳐 보인 작품으로 그 착상과 표현이 뛰
어났다. 함께 응모한 「항아리」, 「化石」도 호감을 주는 작품이었으나 지나치게 신춘
문예를 의식한 점을 들어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정진바란다.
「막장에서」(김경희)는 평소 시조에 상당한 수련을 쌓은 듯 노련한 솜씨는 보였으나
기존의 작품 수준을 월등 능가하지 못해 탈락되었다.
「등꽃, 그 그늘」(양영길)은 시조의 상징성을 적절히 구사해 낸 작품으로 작품수준은
있었으나 신인다운 패기가 돋보이지 않고 그저 무난하다는 점이 미흡함으로 남았다.
심사위원 : 정완영, 한분순


도계에서
박정수 / 중앙일보

오랜 잠적의 시간을
어둠 속에 묻어 두고
생성의 年代속에
광맥을 더듬다가
한 번은 타올라야 할
原始林의 불꽃이여.

캄캄한 막장의
절망을 걷어내고
살아 아픈 날들을
버팀목으로 이겨내며
뜨거운 폐활량으로
호흡해 온 오지의 땅.

땅 속 깊이 묻은
단단한 불씨의 희망 속에
언 땅의 地脈속을
파돌고 도는 네 사랑은
따스한 이웃의 불로
다시 살아 나는가

선혈의 뜨거움을
가슴 깊이 지닌 채로
新生의 석탄들을
貸車에 실어 보내면
비어 낸 산 하나 무너져
平原 같은 세상 되리.


당선소감
절망으로 드러눕는 山. 저 시린 바닥에는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을 무량의 슬픔이
매장되어 있다. 누대의 눈물이 모여 단단한 지반을 이루듯 켜켜이 층을 이룬 과거의 아
픈 시간 속에는 검은 물줄기로 치솟던 울음이 흘러 생활의 곳곳에 깊이 팬 空洞의 시름
을 실어 내던 탄광촌.
진정 이들에게는 허물어야 할 시련의 벽만 남은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그 수심 뒤에 남은 희망을 알고 있다. 때가 되면 저 헐벗은 山에도 눈
이 내려 드러난 부위의 상처를 사랑이란 두께의 이불로 포근히 덮여질 것을.
수고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이것이 하느님이 주신 최상의 선물임
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심사평
참다운 신인은 一劃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 시조의 더딘 걸음을 재촉하는 계기도 마련
해야 한다. 더구나 새연대를 맞이하는 아침의 新人은 기다려온 것만큼 늠름한 얼굴로 돌
아와야 한다. 가장 잘 닦여진 한국의 감성으로 가장 오래 남는 가락을 만들어 내야 한
다. 그 때문에 응모작품을 읽는 마음은 뜨겁고 숨도 가쁘다.
當選作「도계에서」(박정수)는 오늘의 시조에 새옷을 입히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지
만 이 몇 해동안 보여왔던 新人의 수준을 뛰어넘는 매우 단단한 역량을 밑받침하고 있
다.
시제가 시사하고 있듯이 炭鑛村의 삶을 같은 인식의 눈으로 꿰뚫어 보면서 이 시대의
정신으로 일으켜 세우고 있는 점이 공감을 사기에 넉넉했다. 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것
같은 뛰는 언어와 높낮이를 맞춘 율격은 예사 솜씨가 아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지나치게 규격화됐고 의도적인 것이라 하겠으나 동봉한 다른 시
조들이 朴씨의 기량을 확인시켜 주고 있어 당선작으로 밀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작품으로「태풍권」(한혜영), 「아파트說話」(허혜수), 「藥을 달
이며」(조한석), 「명치 끝에 걸린 詩」(하순희)가 각각 개성있는 어법으로 무게를 지니
고 있었으나 상대평가에서 밀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심사위원 : 이근배, 김제현


강가에서
염 창 권/동아일보

철 지난 가슴으로 강가에 나앉으면
갈대숲은 새 떼를 희게 날려보내고
우리의 아픔은 끝내 물비늘로 저민다.

들판에 홀로 서서 낮은 하늘 바라보다
손사래 여는 눈빛 떠나가던 무딘 팔뚝
보인다, 강울음으로 일어서는 믐짓이 ‥‥

밤의 끝엔 길눈 덮는 눈발이 몇 자나 될까
흰 옷의 말씀으로 세상이 문득 밝는
기러기 무리져 내려
뉘어보는 바람숲을.

굽도는 마음마다 깊디 깊은 흐름으로
이제는 들아가서 돌아설 듯 멈추리라
동백꽃 붉은 가슴에 등불 켜는 그 목소리.


당선소감
우체국을 나오는 내 어깨 위로 겨울 찬바람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추위가 몰려왔
다. 해산을 위해 병원으로 가면서 아내는 나에게 '몸살'이라는 진단을 내려 주었다. 신생
아실에는 만삭의 진통 끝에 어둠을 비집고 태어난 생명들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나는 내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다. 분만실의 벽을 넘어오는 첫아이의 울음소
리. 창 밖에서는 새하얀 눈송이들이 일제히 터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당선 소식
을 받았다.
문득, 80년대의 어둠고 칙칙한 강물 속에 휩쓸려 보낸 내 20대의 겨울들이 그리워진다.
처음에는 울분이었던 목소리가 이제는 진한 부끄러움으로 떨리고 있다. 소심한 가슴으로
목격해 온 시대의 몸살과 어둠을 헤집는 진통의 시간들. 이 땅 위에 다져온 불면의 통과
제의가 앞으로는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동해안에서 이상범 선생님을 뵈었
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그 기쁨으로 이어진 것 같다. 아직은 미숙아인 저의 이
름을 불러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 그리고 아름다운 말씀으로 늘 곁에 함께 계시는 여러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심사평
올해의 시조는 이 몇 해의 作況에 비해 뚜렷한 達境을 보이고 있었다. 정해진 틀 (형
식)을 깨뜨리지 않고 독창성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의 하나다. 시조가 눈
에 띄게 새로워지지 못하는 까닭과 天才를 기대하는 이유가 형식의 제약 때문이다. 신춘
문예는 해마다 시조에 새로운 피를 輸血하는 의식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선작을
내는 일은 어렵게 마련이다.
당선작 「강가에서」(염창권)는 매우 조용한 작품이다. 한 시대를 보내는 자리에서 우
리의 귓전에 울렸던 거친 소리들을 잠재우는 시조의 제 모습찾기를 이 작품은 보여준다.
소재부터가 모나지 않고 말의 꾸밈새도 억지스럽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熱量을 떨어뜨
린 것이 아닌가 하고 잘못 읽을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바로 그런 점이 지은이의 시적
역량에 대한 믿음과 함께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끌어올리는 요소가 되었다. 지은이의 또
다른 작품 「速舟寺」, 「이어도」 등이 주제의식도 강렬하고 무게도 실려 있었지만 의
욕이 넘친 만큼 結構에 있어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 「강가에서」를 택한 것이
다. 두 작품보다 시의 짜임이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창작활동을 크게 기대
한다. 「아버지께」,「白紙」, 「四率」 등이 모두 당선권에서 깊이 있게 검토되었으나
채점에서 다음 차례로 밀려 나게 되었다 더욱 정진 있기를 빈다.
(심사위원 ' 이근배 ․박재삼)



겨울 午陰里
고 규 석/경향신문

눈 내린 막장 저린 세상은 낮아지고
고단한 年代를 앓는 영하의 기침소리
무심히
잠들 수 없는
이웃들이 일어선다.

날품에 굽은 등이 半生의 전부냐고
갱도의 굴뚝새가 객혈을 쏟는 겨을
구차한
목숨을 밝힐
아침 해도 비껴간다.

어둠과 내통하는 암울한 지층마다
침묵을 찍어내는 解氷의 굴착소리
천리 밖
파묻힌 꿈이
불씨로 깨어 난다

햇빛을 쏟아서는 밝히지 못할 이 땅
불문율을 새기는 광부여 내 리 쳐 라
끈질긴
어둠의 습성
뿌리까지 흔들린다

몇 겹을 짓밟혀야 밤하늘 별로 뜨랴
화석처럼 파묻혀 간 시대를 다스리며
한 겨을
어둠을 사뤄
동백꽃을 피운다.


당선소감
페르시아왕 크세록세스는 바다를 처형하라고 명령하였다. 곤장 3백대를 때리고 수 천개
의 족쇄를 채웠지만 바다를 처형할 수는 없었다. 바다는 마치 조개가 한 알의 진주를 품
듯 안으로 생명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바다처럼 안으로 흐르는 울림과 생명력을 가진
작품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요즈음 무서울 정도로 압박하고 짓누른다.
생의 내면에 있는 것일수록 빛이 있다. 빛나는 것은 천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하에
도 있다. 땅 속에 묻힌 보석을 보라. 광부들이 몇 천 피트 어둠 속에서 보석을 찾아 땅
을 파듯, 살아가면서 내 생존 위로 점점 확실하게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命名작업, 즉
생명의 내면에 묻혀 있는 혹은 갇혀 있는 보석을 캐내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바위를 언덕 꼭대기까지 밀어올리는 시지프스의 노동과 동일한
대가를 치른다는 정신으로 써야 할 것이다. 화산의 분화구 속으로 몸을 던진 희랍의 엠
페도클레스처럼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한 점 불티로 사라져간 나의 소품들이여. 그와 같
은 인내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오늘 느낀다. 끝으로, 천 년을 울려퍼지는 熱繼처럼 90
년대 첫 장을 여는 험한 세상으로 나를 타종한 모든 사람들에게 작품으로 보답하겠다.
그리고 출판 준비중인 첫 시조시집 『사랑三味』가 빛을 볼 수 있었으면 바란다.

심사평
이젠 신춘시조의 응모엔 어느 수준 이상의 작품이 선을 보이는 것이 통례로 굳어가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일테면 웬만한 작품 가지고는 안 되리라고 단념한 까닭이다. 때문에
신출시조의 내용이 충실해지고 있다는 선입감을 안았다.
1차선정을 통과한 작품은 김장술의 「새벽을 깨우는 소리」, 서일옥의 「북소리」, 김
진영의 「소리 스케치」, 문창형의 「안개 속에서」, 신문철의 「지하철의 밤」 등이었
고 2차선정에 오른 작품은 金敢洙의 「가을恣書」, 정성욱의 「적막 끝에서」, 李處基의
「鼓手」, 濟瞬經의 「명치 끝에 걸린 誇」, 그리고 고규석의 「겨울 午陰里」 등이었다.
여기서 「가을恣書」는 서정을 이끄는 솜씨에 비해 이미지의 신선도가 덜한 것이 흠이
었고 「적막 끝에서」는 언어의 결이 삭아 잘 배어드는 작품이었으나 평이한 게 아쉬웠
고 「鼓手」는 노력의 흔적은 역력했으나 그것이 술술 풀리지 못해 언어의 조탁이 군데
군데 드러났다. 또한「명치 끝에 걸린 誇」는 역작이라 여겼지만 애쓴 공정에 비해 시조
가 지닌 리듬의 결이 순탄치 못했다 결국 고규석의 「겨을 午漢里」를 당선작으로 미는
데 합의했다. 이유는 시조가 지닌 주제가 일관되었고 그 흐름이 시조의 보법을 준수했지
만 신선감을 잃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시각이 오늘의 한 단면을 잘 천착했다는 데 의견
이 부합되었다.
다섯 수까지 이끌면서 긴박감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은 시적 지구력에서 오는 힘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다만 주제가 이미지 속에 충분히 용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계속 유념
해야 할 것이다.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 김상옥․이상범)


91년 신춘문예 당선작

겨울산 步法
채 천 수/조선일보

다시 침묵을 위해 문을 닫는 산에 든다
빈 나날 이 허망에 무릎까지 오는 낙엽
헛디딘 발자국 찾아 내 여기 또 왔네.

이마를 타고 앉던 굽이친 능선들이
뒷덜미 잡아채서 푼수대로 이던 하늘
흰구름 건너는 갖달 고삐 되어 걸렸었지

힘겨운 글 마루 발 아래 굽어보니
버리면 쉬웠으리 부질없는 짐보따리
이제야 호흡 낮추어 걸음 사려 놓는다

무딘 날 날을 세워 비뚠 가지 잘라 내고
목숨의 눈 먼 둘레 얼룩도 닦아내고
다시금 햇살 창창할 꿈을 찾아볼 일이다

당선소감
오늘은 한 잔 차에 산이 녹는다. 어쩌다 이 부러진 마음 끝에도 새순 하나 돋는가? 상
처와 영광을 온몸으로 받으며 어지럼증이 인다. 터져버릴 것 같은 내연의 연기를 기어이
하늘로 올리며 겸허하게 손잡는 誇.
아프면 아픈 채로, 기쁘면 기쁜 채로, 誇 가까이 살겠다는 내 무식한 고집에 나도 어쩔
수 없어 혼자 외쳐본다. 「시인만세」 첫 출항을 약속해 준 전화를 받고 며칠 동안 내내
바보가 되었다. 아내가 울고, 남매가 따라 울고, 나도 울고 말을 잃어버렸다.
살아 한 때 이 지상에 발을 놓고 영혼의 땅 한 평에 씨앗을 묻는다.
끝까지 등을 대고 밀어준 아내가 여간 고맙지 않다
한 줄의 시를 위해 남은 아홉 줄은 흔쾌히 버린다는 박기섭 시형의 첫 시집을 받으며
혼자 실컷 울 수 있는 행복을 독자로만 가질 수가 없게 되어 두렵다.
이 시대 언어의 탄생을 위해 내 야성의 활을 든다.
산고의 아픔을 가까이서 지켜본 친지와 동료에게 미역국이라도 끓이고 조촐한 식사를
하고 싶다. 안동의 山 값을 비싸게 사 주신 朝鮮日報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심사평
응모 작품수가 3백편에 육박했으니 양적으로는 평년작은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질적으
로는 수준 미달작이 많았고, 그중에는 시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불확실한 태작도
눈에 띄었다.
하기야 시조란 본디 전문 작가만의 전유물이 아니요, 교양 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짓고 즐기는 문학 장르이므로 비록 수준미달작이라 하더라도 우선 짓는다는 것 자체가
반갑고, 또 이런 수련을 거듭하다 보면 스스로 터득하여 그 진수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
라는 점에서 가상타 할 일이다.
이번 심사에서는 옹졸한 완성보다는 다소 미급한 구석이 있더라도 대성의 가능성을 찾
으려 했고, 한시와 같은 자연서정이나 신변 서정 등 진부한 제재따위보다는 왕성한 시정
신과 신인다운 발랄성에 역점을 두었다.
그 결과 십분 만족스러운 작품을 얻지는 못했다는 실토를 먼저하게 된 것이 유감이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송현미씨의 「영산강1․2․3」과 金熙哲씨의 「태
풍」, 그리고 채천수씨의 「겨울산步法」 등 3편이었다.
「영산강1․2․3」은 기법은 신선하나 주제가 허약했고, 「태풍」은 주제는 견고하나 수
련이 미급해 보여 「겨울산步法」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작자는 굴절 많은 인생 역정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생활을 건설하려는 건강한 시정신을
보여 주었다. 회상의 시가 빠지기 쉬운 회한의 넋두리를 초극하고 긍정적, 전진적 자세
를 보인 점을 취한 것이다.
표현에서 상당한 연륜적 숙달이 보이기는 했으나 시조의 핵심인 종장 처리의 안이성이
아쉬웠다. 더러 초장이나 중장은 요식적 구성을 할 수 있어도 종장은 눈이요 심장이요
금고요 태양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이를 위해 각고의 연찬 있기를 당부한다.
(심사위원 : 장순하)



나의 發願

양 영 길/중앙일보

등짐을 부려놓고 秋史誇에 들렀었지
한 평 반 토방에선 강물소리 그득한데
모습도 매운 바람만
지게문을 흔들고.

歲寒圖에 담은 넋을 몇마디 여쭈었지
소나무 저리 두고 눈덮인 동산 향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만 내 저었지 .

두 손을 움켜 쥐면 수선 하나 피워낼까?
감았던 눈을 뜨고 하현달만 바라보며
내 등에 짐을 지운다
그 수선 뿌리 같은

세상의 뒤쪽들엔 저 歌山도 말이 없네
먹을 간다. 가슴을 간다 바닻물로 산을 간다.
붓매에 머무는 눈매
물소리만 들려라.

고개를 끄덕이면 저 달빛은 더 환한데
어인 일로 자지 못해 가지 끝에 걸렸을까?
산자락 저리 휘어도
저 바다는 푸르를까?

돌아서는 내 발길을 하늘만 쳐다보네
뜰 앞 잔설 위를 낙관찍듯 앉아본다.
오늘 밤 나의 발원을
눈송이야 쏟아져라.


당선소감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다. 바다는 항상 나의 존재 앞에 있었다. 하나의 성숙을 위한 기
다림이었다. 바람이 부는 밤이면 수평선 위에 불면의 섬이 떠 흘렀고 가을비가 내리는
밤이면 더욱 그랬다.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몸부림이 探海 속에서 기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네 차례의 본선에서 거론되는 영광(?)은 선뜻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들로 되살아
나곤 했다. 세번째던가 전화 연락 대신 나의 종려나무가 진눈깨비에 몹시 흔들리고 있었
다. 무작정 바다를 향해 걸었던 기억이 더욱 새로워진다.
18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등 뒤에서 웃고 계신다. 古稀를 넘기신 아버님께 안기고
싶다. 우선 졸작을 천해 주시고 밀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고마운 말씀을 올리며, 그 동안
時調의 길을 안내해 주신 「제주시조문학회」 회원님들, 그리고 질책을 아끼지 않아 주
신 「서귀포문학회」 회원님들, 「多層同人」 회원님들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특히 마지막까지 힘을 북돋워 준 梁黑, 그리고 10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어머님같이 포용
해 준 아내와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이 글을 쓰고 밤바닷가를 가리, 한파 뒤에 더욱 붉게 타는 동백꽃잎과 함께. 머리맡까
지 파도소리를 몰고 오리. 그러면 그때 그 진눈깨비 눈이 되어 내리겠지.

심사평
시조의 르네상스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일까. 응모작품 전체를 꼼꼼하게 살펴본 결과 시
조의 새 지평을 열고 나갈 잠재세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응모작 대
부분이 높은 문학적 성취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러한 고무적인 현상은
시조중흥운동을 펼치고 있는 中央日報 공적으로 돌려도 좋을 것이다. 당선권에 오른 작
품은 모두 4편이었다. 梁榮吉의 「등꽃이 피는 밤」과 「나의 發願」, 李鍾文의 「노을
이 있는 掃淸」과 강동구의 「바다의 꿈」으로 압축되었다. 강동구는 신인다운 패기와
재기발랄한 상상력, 언어를 다루는 用兵術 등이 뛰어났다. 그러나 산뜻하고 이 질적인
감수성이 내면적 깊이를 거느리고 있지 못해 그만 시적 존재의 가벼움을 드러내고 말았

李鍾文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공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흠집 작용을
했다 "부처님/고무신 속에/가부좌 튼 저녁 노을" 같은 예스러운 발상법은 무엇인가 낡
았다는 생각, 무엇인가 우리 시조가 자꾸만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
게 했다. 결국 양영길의 「나의 發願」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나의 發願」은 제목이 진부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지만 시조의 행간 속에 철학적 깊
이랄까, 怒隣의 무게(質量感)가 실려 있었다. 寸鐵殺人의 비범함이나 당찬 목소리는 발
견할 수 없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고 담담하게 세상을 읽어내려간 그 문학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기로 했다
시조의 르네상스시대를 예비할 당당한 재목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 이근배․윤금초)


'92년 신춘문예 당선작

목 수
신 희 숙/중앙일보

우리가 잘린 것은 그대의 뜻이었다
살갗을 밀어내고 매끄럽게 다듬어서
망치로 힘껏 두들겨 찌든 벽에 붙였다.

우리가 차렷 자세로 줄을 서 있을 때
목에 박힌 못 빼려고 힘줄을 세웠지만
깊숙이 박힌 상처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때 우리들의 죽음을 확인해 보려고
또다시 쇠망치 내리치려 하는데
적들이 힘없이 무너져 삭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차라리 썩어지길 바랐는데
살갗 틈새마다 방부제 채워 넣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비단가면 씌웠다.

그대 몰래 키운 벌레가 그 가면 갉아먹고
댑사리 비웃고 선 누리팅한 잇사이로
겁먹은 그대의 눈빛이 빨려들고 있었다.


당선소감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시를 쓰다보니 시조에 눈뜨면서 시조
야말로 내가 건방지게도 뭔가 개척할 부분이 있다고 여겼다. 그 일을 밤낮없이 했을 뿐
이다. 언제까지 해와 달과 별만을 얘기할 것인가.
시조만이 갖는 리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지성과 서정이 잘 조화된 현대시조를 써보
리란 각오였다. 리듬은 서정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온 것인데 내용까지 서정만을 다루면
서정 일변도가 되고 말 것이다. 내용만이라도 주지적인 것을 담아야 현대문학으로서의
시조가 살아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정지용 황진이가 시간․공간을 초월해 만인에게 공감
을 주는 이유는 철저한 논리적 사고로 사물의 속성을 끌어내 상징 ․비유를 잘 구사했
기 때문이리라.
요즘 시조를 마치 자유시인 양 행을 알아볼 수 없게 쓴다는 것은 정말로 고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장별의 표시가 꼭 지켜져야 하기에 표기법을 3행으로 썼다.
훌륭한 스승님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새삼 실감이 난다. 귀가 따갑도록
일러주고 또 일러주시며 자상히 이끌어 주신 이우종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그
렇게도 강조하시던 관념어의 탈피, 사물의 속성 끌어내기, 은유와 상징은 두고 두고 나
의 과제가 될 것이다. 관념어를 탈피해야 된다고 그렇게도 강조하는 어느 시인의 작품이
관념어 투성이인 것을 보면서, 꽤나 이름있는 시인들의 관념어 행렬을 보면서 그 과제의
어려움을 새삼 실감한다.
같이 공부하며 격려해주신 문우들과 항상 용기를 북돋워 주며 잘 인내해준 아이들 아
빠와 아이들에게 고맙다.
왜 소설로 등단하고 시조를 쓰느냐고 나무라는 분들도 있지만 지금은 탈 장르의 시대
다. 문학의 어느 분야든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심사위원님들께 충심으로 감사드리며 시조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중앙일보사에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당선작 「목수」는 걸출한 오늘의 시조 면모였다. 남다르면서도 확고한 주제의식 도출
과 전개의 치밀성, 그 뚜렷한 형상화였다.
우리 두 선자는 「목수」 5수에 갖추어진 경이로움에 무릎을 신나게 치면서도 최종심
에 함께 올린 한정임씨의 「세간」 4수, 玄根雨씨의 연작시조 「濫」 4편을 거듭 면밀히
살폈다. 각각 또다른 특징과 설득력을 만만찮게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간」
에 누벼진 특이한 감수성과 세련미는 놓치기 아까운 일품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풍유(課
講)의 쓸모를 활용하여 십분 발휘한 신희숙씨의 「목수」를 선택하기로 했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이 작품을 놓아볼 때 오늘의 한국 사회가 안고 온 제반 난맥상,
갖가지 모순 투성이, 지나치게 빈번한 다방면의 시행착오 등을 언어의 정화(精華)이자
축어적 妙라 할 시의 부면으로 다시 확연히 짚고 넘을 바 있을 터이다. 또한 동구권 혹
은 최근의 소련이 감당하다가 무너진, 그 변화․변동․변혁의 요의와 실상까지 확대시키
면서 비춰볼 수 있을 터이고, 북한이 당면한 실정에도 곧바로 가닿을 것으로 보아 이 작
품의 풍유 성과는 더 한층 값진 것이다.
이처럼 차원 높인 목소리로 따지고 비꼬고 타박주면서 뭔가를 우리 모두에게 크게 자
성하도록 다부지게 짠 시조 성과가 흔치 않았다기보다 아주 드물었던 일이다. 이런 경우
가 곧 참신성이며 기존 시조의 전반성에 도전한 개척이고 개가라 할 것이다. 정진을 大
成쪽으로 끌어 그 대성을 누구 아닌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바란다.
(심사위원 : 김제현․서 벌)



이중섭의 흰소를 보며
하 순 희/서울신문

한 획 등뼈처럼 내리그은 화필 끝에
언 땅을 노려보는 잠들 수 없는 눈빛
삭혀도 되살아나는
어쩔 수 없는 멍울인가

네 뿔이 이고 있는 군청(群靑)의 하늘 아래
주린 창자 안고 가는 흰옷 입은 이웃들과
뒤틀린 발자국 같은
배리(背理)의 길도 있었지.

나눠 지닌 궁핍 앞에 바람막이로, 버티면서
묵묵히 네가 갈던 이 땅의 묵정밭에
오늘은 또 다른 문명이
짙은 그늘 딛고 섰다.


당선소감
가슴에 수만도의 용광로 하나 지니고 싶다.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의 온기로 이웃의 시
린 아픔도 녹이고 삶의 길목을 훈기로 채을 수만 있다면‥‥.
당선 소식을 받기 전날 밤, 꿈 속에서 황소를 보았다. 새벽예불을 다녀오며 스쳐지나가
던 예감, 내게는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소식 앞에서 어깨가 더욱 무거움을 느낀
다. 글을 쓴다는 것은 깨달음 얻고자 하는 열망만큼 영원한 구도의 길이요 필연의 작업
이었다. 때로는 고뇌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더라도 그 절망에서 다시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유일한 그 무엇이었기에 .
"2099년에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딸 아이의 느닷없는 선문답 같은 질문은 어리석
음을 깨우쳐준 새로운 눈들의 세계였다.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리며 경남시조문학회 이우걸 회장님 및 회원
님․동료들, 좋은 글 쓰라고 격려해 준 사랑하는 그이와 선혜 ․선우, 이끌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하며 도약의 기틀을 마련해 준 서울신문사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주어
진 길에 최선을 다하는 새로운 날이기를 기원하면서.

심사평
시조라는 장르상의 성격이 민족적 정서의 전통성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
늘의 시조가 현대시조이기 위해서는 시대정신과 현실적 체험요소가 융화된 현대성이 의
미망을 구축한 바탕 위에 감성적인 표현법이 추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본심에서 주목된 작품들로서는 이재형의 「바위섬」, 하만수의 「새벽」, 정경수의「獨
島」, 김무영의 「徐廣촉에서 만난‥‥ ~, 전용순의 「蘇蒸浦團」, 하순희의 「이중섭의
흰 소를 보며」 등으로 모두 뛰어난 기량을 지닌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와 같은 서정세계를 펼쳐보인 「蘇業浦騷」와 든든한 골격에 감성적
세계를 구축한 「이중섭의 흰소를 보며」는 각기 개성적이고 특징적인 표현법으로 서정
세계를 열고 있어 그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앞의 작품이 시조로서의 전통적인 원숙미
를 보인다면 뒷작품은 현대적인 감각과 탄력적인 음률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듭 검토․숙의한 바 결국, 현대시조의 개혁의지와 실험정신을 엿보인 하순희의 이중
섭의 「이중섭의 흰소를 보며」를 당선작으로 미는 데 심사자들은 합의를 보게 되었다
(심사위원 : 정완영 ․김제현)

처용의 탈
권 갑 하/조선일보_

돌아서 그림자 하나
짓이기듯 뭉개본다

미처 다 풀지 못해
추를 달아내린 목숨

벗어 둔
허무 한 자락
일어섰다 쓰러진다

말 없는 입술에도
사려 담은 푸른 사연

한생애 무게 만큼
애증의 불은 밝아

슬픔도
미소를 물고
여운인 듯 물이 드네.

웃지도 말 양이면
울어서는 무엇하리

눈물의 깊은 이랑
목이 메인 바람 속을

휘감아
장삼자락에
명실대는 춤사위 .



당선소감
동료들로부터 항상 듣는 말은 내가 쓴 시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왜 자유시처럼 보
다 서정적이고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시조를 쓸수 없느냐는 따가운 질책인 것이다. 그렇
다. 시란 마땅히 시로서 생명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앞서야함은 다수로부터 공감할
수 있는 시상을 구축하는 일일 것이다. 정형시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시상 전개가 그렇게
수월하지 못함은 항상 깊이 깨닫는 바다. 그래서 시조에 대한 얘기가 화제가 될 때면 그
냥 미완(?)의 시로 치부하고 만다.
수십 번을 고치고 또 지우고‥‥‥‥ 그러나 지금부터는 더욱 더 고치고 또 써야 하리
라. 그리하여 오늘의 우리 시조가 부딪히고 있는 감상주의나 관습적인 시작태도의 구틀
을 깨고 현대시조로 거듭 깨어나기 위한 노력에 모든 정열을 다 바쳐 나가리라. 이것이
오늘 이 부족한 작품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노력이 계속될 때 동료들이 던지는 이 커다란 충고에 어느 정도나마 시원
한 대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조를 쓴답시고 여러 가지로 소홀했던 모든 일들이 지금 아픔으로 머리를 스쳐간다.
고향에 계신 늙으신 부모님과 항상 어려움을 함께 나누길 원하는 아내에게 이 영광을
바치고자 한다. 그리고 항상 사랑과 따가운 질책으로 지도와 편달을 아끼지 않으신 선배
시인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전국의 「나래」동인들과 따뜻한 기쁨을 나누고자 한
다.
다시 한번 미숙한 글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심사평
응모 편수는 모두 3백 17편, 작년에 비해 60여편이 불어났다. 양만이 아니라 질에 있어
서도 일반적인 수준은 다소 향상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시조 고유의 정형성, 결구
의 특이성을 제대로 이해 못한 응모자가 적지 않은 안타까움은 그대로 남는다. 1차적으
로 걸러져 나온 작품은 朴玉埼, 윤정, 金容革 및 玄根雨, 권갑하, 이 다섯분의 시조였다.
사람 수는 다섯이지만 작품수는 20편에 가까웠다.
앞의 세 분의 작품은 나름대로 수준에는 올라 있었으나 각기 허약한 구석이 뚜렷하여
열외로 물러났다. 朴崙埼씨의 경우는 매끄럽게 정돈은 되어 있으나 개성이 없고, 윤정씨
의 경우는 결구에 정돈이 미흡했다. 또 金容草씨의 경우는 이미지와 표현이 상응하지 않
고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근래에 신춘시조의 질적 향상으로 욕심을 부리는 소
리이지 수년 전만 해도 이만한 작품들이면 당선권에서 저울질되었을 것이니 좌절 말고
더욱 정진하기 바란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것은 현근우, 권갑하 양씨였다. 이 두 분은 각기 장단점을 가
지고 있어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玄씨의 장점은 신선하다는 데 있다. 상념이나 감각이 개성적이다. 남의 흉내에 식상한
요즘 풍조 속에서 이만큼 자기의 목청을 세운 작품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구성에
헛점이 있고 표현이 미숙한 것이 흠이었다. 특히 종장의 갈무리가 잘 안되어 해바라진
것은 큰 결함이었다. 제목도 너무 안이하게 처리되어 긴장을 주지 못했다.
이에 비해 권갑하씨의 작품은 표현에 무리가 더러 있으나 짜임새 있는 결구, 견실한 상
념 처리에다 자기의 개성을 추구하려고 한 노력이 뚜렷하여 아쉬운 대로 그중 「처용의
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모두 가면극을 배우거나 관객일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 이

(심사위원 : 장순하)


'93년 신춘문예 당선작

석상의 노래
이종문/경향신문

경주 박물관 뜰에 병신들이 모여 산다
자비를 돌로 찍었던
그 죄마저 감싸안고
아파도 들눕지 않는 돌부처가 모여 산다.

목없는 돌부처 위에 숙연처럼 앉아 있는
풀무치 날개 끝에
장삼빛 밤이 오면
천 년을 숨어 산 이의 가을 병이 도진다.

눈물나네, 눈물이 나서 눈 뒤집힌 들계집이
돌부처 코를 깨어
산약으로 다려 먹고
코없는 돌부처 앞에 밤새도록 빌었구나!

대대로 이 땅의 일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봄을 봄되게 했던
섭리의 손 잃고서도
보얗게 웃는 백모란 병보다도 아파라.

천 년을 하루같이 남의 머리 이고 서서
피도 안도는데
숨인들 쉬었을까
산처럼 밀려온 놀을 어이 참고 견뎠노!

경주 박물관 뜰에 병신들이 모여 산다
말 못할 억하심정을
자비로 눌러놓고
퍼붓는 비를 맞으며 돌부처가 모여 산다.


당선소감

만병 통치하는 靈藥이라고 생각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나는 고민에 고민
을 거듭하던 끝에 창작을 일단 접어두기로 결정하였다. 그것은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만
한 나의 세계가 준비되지 못했다는 인식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따라서 문학의 세
계를 떠난다는 것은 언젠가는 다시 문학의 세계로 돌아옴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
나 막상 문학이란 늪을 빠져나와서 다시 문학을 보았을 때 그것은 인간의 다양한 정신
활동 중 그저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한 분야일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문학
보다 더욱더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하나의 신념
으로 자리잡게 되자 구태여 문학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필요 자체가 없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근년에 와서 오랫동안 잠복되어 있던 창작에의 욕구가 무시로 재발하기 시
작하면서 결국은 다시 문학의 세계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나 돌아왔다고 하여 문학보
다 고귀한 것이 없어진 것은 아니므로 앞으로 나는 문학보다 더 고귀한 것을 키워나가
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문학을 가꿈으로써 이 賞이 지닌 권위와 이 賞을 주신 분의 명예
를 끝까지 지키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不惑이 가까운 나이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 쑥스러운 일인지 기쁜 일인지 도무지
구별이 잘 안되는 아침에, 나의 삶이 행복하도록 알게 모르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
사드린다. 이승에 계시기도 하고 저승에 계시기도 한 참으로 고마운 분들께…….


심사평

시조의 응모편수는 다소 준 듯했으나 본심에 오른 작품의 수는 늘었고 기량도 그만큼
평준을 웃돌았다. 결국 시조는 우선 시로서 성공을 거두어야 하고 시조가 지닌 리듬을
수용해야 한다는 二重苦를 재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꾸준히 시조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도전해오고 있다는 데 수긍의 눈을 크게 뜨게 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을 정
휘립의 「돌의 悲歌」, 김대현의 「겨울 건너기」, 채풍묵의 「여의도」, 임정엽의 「영
종도」, 서윤규의 「손뜨개질」, 정민기의 「겨울 벌판에서」, 그리고 이종문의「石像의
노래」 등이 있었다.
앞의 작품중 시조로서 현실의 단면을 부각하려는 의욕은 인정되었으나 그것이 미처 작
품성에는 이르지 못해 정휘립․김대현․채풍묵․임정엽씨의 작품이 탈락되었고 남은 세
편을 놓고 최종심을 치르게 되었다.
「손뜨개질」의 경우 남북한 상황을 뜨개질의 털옷으로 감싸려는 직조의 서정이 인정
되었고, 「겨울 벌판에서」의 작품에선 황량한 겨울벌판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가는 내
적 극복이 역량을 인정받게 했다. 이에 비해 「石像의 노래」에선 우리의 설화와 전통,
그리고 역사성과 오늘의 아픔을 차분하고 능숙한 시조의 리듬으로 용해해 가는 과정이
연륜을 의식하게 했고 구김살이 없어 범상치 않은 역량을 보여주었다. 이에 「石像의 노
래」에 영예의 낙점을 주는 데 합의했다. 앞으로 당선자는 각고의 정진을 해야 할 것이
다.
<심사위원 : 김상옥․이상범>


94년 신춘문예 당선작

새벽공단
나순옥 / 조선일보

나른한 신새벽
가슴팍 두드리고
종소리 되돌아가는
회색 벽 공단 구역
밤 새운 공적 조서가
철망 위에 걸렸다.

피곤한 시간들이
더께로 엉겨붙어
야적장 포장 아래
선하품을 하고 있다
핏기를 잃은 외등은
잔기침만 해 대고.

등 굽은 소망들이
고철로 쌓인 자리
차라리 용광로를
가슴으로 껴안으면
의지의 굴뚝 끝에서
푸른 연기 뿜을까.


당선소감
새하얀 눈발이 축복처럼 온 하늘과 땅의 뒤덮던 날 당선통보를 받았다.
울컥 치밀어 오는 기쁨과 두려움에 나는 눈시울을 적셨고 한동안 어깨를 들먹였다. 참
으로 얼마만에 되찾은 울음인가.
이제 내 심혼에 알알이 박힌 진주는 토해내어 우리 나라 고유의 정형시의 율격 속에
척박한 이 시대의 마음 밭을 일구는 작은 쟁기로 어눌한 내 노래는 묵묵히 경작되리라.
언제나 말없이 지켜봐주시던 그이와 사랑스런 내 아이들, 그리고 나를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또한 미진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심사평
시조 응모작 속에 시가 섞여 나오기도 하고 개화기의 창가 가사 같은 것이 끼여 있기
도 해서 실소케하는 일이 아직도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에 전반적인 작품 수준은
크게 향상되어 선자가 즐거운 고역을 치러야 하게 되었다.
94년도 총응모작은 3백 23편 그 중에서 먼저 가려 뽑은 우수작 5편은 다음과 같다. 이
용운씨의 「시계는 아직도 요란하다」와 임동윤씨의 「果樹밭에서」는 서정의 바탕 위
에 인생의 무게를 실어본 것들이다. 또 나순옥씨의 「새벽공단」과 이우식씨의「막장에
서」는 다분히 사회문제에 접근한 것들이다. 그리고 박정애씨의 「河回里에서」는 4수로
1편을 이룬 연작 사설시조다.
이들은 각기 너댓 편 또는 그 이상의 작품을 함께 내서 그 역량에 의심은 없었으나 저
마다 장단을 함께 가지고 있어서 우열의 저울질을 여러 번 반복했다. 특히 박정애씨의
경우는 3연 이상씩 되는 연작 사설을 8편이나 다발로 내서 의욕과 정열을 과시했는데
양뿐만 아니라 출중한 시적 才分까지 함께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도 「十長生圖」는 족
히 2백자 원고지 20장분이 넘는 대작이다. 그는 이들 작품 속에다 자칫 외면하기 쉬운
전통적인 우리 것을 따뜻한 애정으로 담고 거기서 긍정적 해석을 도출하려고 시도하여
주목을 끌었으나 애석하게도 사설시조의 구조적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나순옥씨의 「새벽공단」을 당선작으로 뽑고 나서 그래도 미심쩍어 다시
검토해 봐도 역시 옳게 되었다고 확신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감상적 서정에 식상한
시조단에 신선한 새 국면을 보여주었다. 다분히 사회성을 띤 제재인데도 관념에 빠지지
않고 부정적 상황에서도 적극적 의지를 잃지 않은 삶의 자세가 미더웠다. 끝으로 한 가
지 언급해 두고자 하는 게 있다.
대개의 시조 짓는 이들이 제목을 소홀히 하는 경향인데 제목은 작품의 눈, 좀더 세련되
고 신선한 눈을 달아주자는 의견이다.
<심사위원 : 장순하>

겨울 벌판에서
정성욱/동아일보

저 몇 겹 氷河의 땅 눈발이 날리고 있다
눈보라에 실려가는 가벼운 너의 중량
하늘로 가 닿은 길이 폭설 속에 지워진다.

사랑은 빙판 위로 맨발로 걸어오고
오랑캐꽃 속살로써 해빙하는 겨울벌판
빛살의 은하를 굴리듯 눈이 부신 凍土여.

갈증으로 찢긴 깃털 겨울새가 날아든다
첨탑에 머문 바람 지상에서 풀어지고
발목을 끌며 끌며 오는 예감의 삼월 봄날.

가슴안 푸른 수액 신열을 뒤척인다
소금끼에 절은 아픔 풀꽃으로 피어나고
다 떠난 적막을 쓸며 꿈을 꾸는 모둠발.

빛이여, 새의 부리 끝으로 돋아나는 기운이여
무시로 젖어드는 무한 속의 떠돌이 별
마지막 살에 살 비비며 어둠 속을 걷는다.


당선소감
무인도에서 탈출한 느낌이다. 지난날은 내게 개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순전히 오기
였다. 아니 조금이라도 마음의 보상을 받고 싶었다.
생각하면 엄청난 熱病이었다. 온 겨울산을 다 태우고도 남을 지독한 病을 앓아온 지 10
년. 이제야 그것에서 벗어난 것 같다. 이젠 부단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이 나았다. 당
선, 그것은 내게 또 다른 출발이라는 과제를 던져주었다. 미치도록 시조를 쓸 것이다. 결
코 잊혀지지 않는 시인이 되겠다. 안이하게 시조의 정형에 갇히지는 않겠다. 부드러움
속에 서정의 힘이 가득한, 쉽게 부러지지 않는 시조를 쓰겠다.
현대시조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떤 틀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시다운
시조, 시조다운 시를 위해 열심히 탐구하고 노력할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양산되는 요즈음 진정한 시인은 과연 몇인가. 시인의 꿈을 위해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불면으로 흘려 보내었던가. 경기도 백마의 자취방, 청사포의 겨울
골방, 수북했던 담배꽁초들, 독한 소주병들이 새삼 가슴아프게 찔러온다.
조금만 더 일찍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이나마 천만다행인 것 같다. 민기,
민혁아 나의 두 살배기 아이들아 이 모든 기쁨을 너희들에게 돌린다.
끝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정일근, 허철주, 최영철 형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또한 뽑아주신 심사위원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지금까지 시조는 시대의 벽을 깨뜨리면서 그 생명력을 끈질기게 키워왔다. 이러한 시조
의 창조적 전진을 뒷받침해준 것이 신춘문예였다. 정형시가 갖는 제약과 구속은 여간한
천재가 아니고는 자유시와 경쟁할 수 있는 앞서가는 현대시를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올해도 많은 응모편수가 말해주듯 시에 있어서 우리의 것을 찾기
위해 장애물을 거침없이 뛰어넘는 신인들이 시조의 내일을 밝게 해주고 있다.
당선작「겨울 벌판에서」(정성욱)는 우선 시를 이끌어 가는 힘이 넘쳐 있다.「겨울」이
라는 상징성은 이미 새로울 것이 없지만 낱말 하나에 따뜻함을 담고자 하는 의지가 비
쳐 있고 무엇보다도 시조의 가락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기량도 갖추고 있었다. "소금
끼에 절은 아픔 풀꽃으로 피어나고","마지막 살에 살 비비며 어둠 속을 걷는다" 등의 대
목에서 새 사람으로 한 몫을 해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시조
에 대한 더 힘을 쏟으라고 권하고 싶다. 끝까지 남은 작품으로「화장을 하면서」(원영
인),「바다의 꿈」(강동구),「舞天」(정능아),「고드름에 관하여」(김수엽) 등이 있었음
을 밝힌다.
<심사위원 : 박재삼․이근배>

靑桐의 바람
손수성/경향신문

누군가 경운기로 벌목 소리를 부리고 있다
잘 벼린 원형 톱날 자정 하늘 높이 들고
모두들 떠나간 들에 口號처럼 채우고 있다.

톱날을 곧추 세우고 어둠의 가지를 치고 있다
마음 속 튀는 불꽃, 하늘을 나는 톱밥
수천의 부리로 내려, 겨울의 발등을 쪼고 있다.

톱날이 부러지면 가슴의 날 갈아 끼우고
아름드리 어둠을 베며 막힌 길을 열고 있다.
쌓이는 톱질 소리로 겨울의 발목을 묻고 있다.

이웃해 떨고 있는 키 작은 저 떡갈나무
흔들리는 가지엔 힘살 더러 붙여 주고
언 손쯤 녹일 수 있게 흰 옷자락 감싸주고…….

베면 베는 만큼, 열려 오는 이승 벌판
못 박힌 손마디로 새벽 하늘 일구고 있다
가슴 속 가장 찬란한, 봄의 씨앗 부리고 있다.


당선소감
결혼기념일에 당선 통보를 받았다. 기쁘다. 그동안 지방 명문고 3학년 담임 4년만에 내
시는 시들대로 시들었다. 시보다 진학지도에 힘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제자들은 ○○대
단과대 수석을 하는 등 명성을 날렸으나 내 시는 잡초로 남다 못해 떡잎마저 시들었다.
국어교사로서 우리 고유의 문학장르인 시조의 계승을 위해 빈 들 어느 구석에서나마 푸
르름을 유지시켜 보겠다던 그 꿈도, 능력에 부딪쳐 허공에 맴도는 구호가 되어갔다. 시
조를 공부해 보겠다던 생각도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였다.
오그라든 내 시의 잎을 펴면서, 천우신조로 살아나기를 기원하면서, 필명으로 투고를 하
였다. 그 결과 초정 선생님과 야정 선생님께서 시들었던 내 시를 살려주셨다. 그분들께
허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의 절을 올린다. 그러나 한편으로 회한도 크게 밀려온다. 젊고
패기 있는 후배시인의 앞길을 또 가로막은 점 때문이다. 그저 죄송할 뿐이다. 지금까지
따스한 눈길로 항상 나를 사랑해 주신 사람들, 깨우쳐주신 은사님들, 인사도 제대로 드
리지 못하고 지냈던 친척들, 그리고 교장선생님 이하 여러 동료 교사들과 이 영광을 함
께 나누고 싶다. 끝으로 경향신문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오그라들었던 내 시의
잎을 다시 펴 본다. 이젠 싱싱하게 키울 것을 다짐 다짐하면서……

심사평
선자는 어떤 경우든 고정관념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가령 작품이 농익은 서정의 바
탕 위에 꽃피운 완숙미이거나 아니면 현실성 내지는 시대의식을 깔고 엮어 풋풋한 이미
지의 역작이든 그것이 작품성에 대인다면 어느 작품을 뽑아 들어도 좋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그것이 새로움으로 다가와야만 한다는 데 선자는 견해를 같이했다는 것을 여기 굳
이 밝힌다. 응모작을 압축해 가는 과정에서 끝까지 남은 작품이「개마고원」(이경학),
「21세기 빗장을 열며」(윤영인),「이중창문」(김수엽)과「겨울 벌판에서」(정민기),
「청동의 바람」(손수성) 등 5명이었다. 이들 5편 중 「개마고원」은 주제 의식이 약해
의미있는 이야기에 머물렀고「21세기……」에선 정보화사회에서 컴퓨터를 매체로 한 질
곡에서 인간성 회복을 노래하려 했으나 작품성이 뒷받침되지 못해 아깝다는 생각을 남
겼다. 또한「이중창문」에선 그가 의도하는 바에 일관성과 선명성이 따르지 않아 감동에
이르지 못한 흠을 남겼다. 결국「겨울 벌판에서」,「청동의 바람」을 숙의하면서 위 두
작품은 당선권에 든 작품이라는 데 이의가 없었다.
「겨울 벌판에서」는 눈보라와 빙판으로 표현되는 통한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 선은 다
소 가늘지만 내용이 싱그러워 오랜 공정을 의식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비
해 「청동의 바람」은 톱날로 이어지는 이미지가 굳건하고 선이 굵어 작품전체가 선명
했다. 그러기에 번뜩이는 새로움에 대하게 한다. 여기서 선자는 풋풋한 패기의 「청동의
바람」(손수성)을 당선작으로 미는 데 합의했다. 앞으로 서정의 자양도 흠씬 활용했으면
싶었다.
<심사위원 : 김상옥․이상범>

廢苑에서
정휘립/중앙일보

1 저 눈(眼)은 파충류처럼 쉬이 죽은 듯싶지 않다.
제 몸을 잘라내며 꿈꾸듯 앓던 고열로
자다가 다시 일어나 視界 밖을 떠도는 돌.

2 아, 나는 아직도 배내옷 벗지 못하고
자갈뿐인 회한의 집터에 버려져 길을 잃었다,
누워야 구를 줄 아는 태엽 끊긴 시간 속에서.

3 우리는 왜 이곳에 왔는가, 먼 후손이 되어,
先史 깊이 퇴적된 잠과 죽음의 경련으로
바람 끝 온갖 신음들 우듬지에 스산한데…….

4 저 눈(雪)은 수장된 지 오랜 꽃잎을 띄워 날린다.
결정체만 남기고 모두 매설해버린 욕망,
명맥이 허리를 틀며 손 끝마다 돋는다.


당선소감
나는 예술작품이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루카치의 견해에 동조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
금 "廢苑"안에 서 있다는 생각을 했다. 드높은 나뭇가지마다 찢어 매달고 있다. 무너져
가는 돌담벽 끝에는 비갈(碑碣)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고, 웅크린 채 시퍼런 눈을 굴리고
있는 "파충류 같은" 조각돌 하나가 殘雪 속에서 버티고 있는 것도 보았다.
그 돌은 우리의 변절․食言․탐욕․이기심을 준엄하게 책망하였고, 나는 그 꾸지람을
들으며 스산한 폐원에 대해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꽃눈․잎눈들의
그 오기에 찬 미래를 보았다.
시조처럼 체질에 맞는 문학장르가 내겐 없다. 반면 요즘 시조처럼 진부하기 짝이 없는
수준의 장르가 또 어디 있겠는가.
전통은 그 뿌리를 근간으로 하여 자꾸 새로운 가지 뻗기를 부단히 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자멸을 자초하는 일이리라. 즉 예술에 있어 '停滯'란 '표절'보다 더 치명
적인 행위임을 잊어선 안된다. 예술은 하극상, 아니 타당한 하극상인 것이다.
최남선 등의 '3․4․3․4'하는 시조정형이론은 일제식 발상으로 구시대적 단견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수많은 고시조를 포괄하는 해법은 가람 이병기 선생의 정형이론에서 찾
을 수 있으며, 그것만이 시조 특유의 행보를 부흥시킬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서구식 자
유시의 흉내에 급급한 아류들은 시조라는 이름 근처에도 머뭇거리지 말기를 부디 촉구
하면서…….
이제부터 탄력 있는 시조의 틀 안에서 무한한 시적 세계와 그 생성을 드러내 보여주고
싶다. 이러한 바람을 성원해주는 것이라 믿으니,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들께 진심으로 감
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심사평
시조부문 작품수준에 대한 전체 개념도를 그리면 그것은 다이아몬드형이었다. 다이아몬
드의 그것처럼 중위그룹에 해당되는 작품편수가 엄청나게 많았고 그만큼 시조인구의 저
변이 확대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논의의 대상으로 떠오른 작품은 정남채의 「주문진 출항기․2」, 강현덕의 「낙
동강」, 정일균의 「廢苑에서」였다. 앞에 열거한 세 작품을 놓고 심사를 맡은 우리 두
사람은 긴 시간 토의를 거듭했다. 당선권에 든 이 세 편은 각각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
큼 미학과 정서에서 남다른 장점과 단점을 도시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부들의 삶을 그린 「주문진…」은 현장감이 물씬 배어 있었으나 문학적 성숙도가 낮
았다. 가야금을 발명한 우륵의 이야기를 강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접목시킨 「낙동강」은
뛰어난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발상의 참신성이나 표현의 진정성을 평가기준으로 삼는다면 이 시조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함께 보내온 「수몰지역」외 2편이 「낙동강」의 수준을 유지하지 못
했다는 점이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정일균의 「廢苑에서」는 군데군데 '관념의 유희'가
엿보였으며, 호흡이 거칠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우리는 결국 단순평가보다 신인다운 패기와 저력, 치열한 시정신, 끈끈한 장인의식, 그
리고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신뢰감쪽에 비중을 두기로 합의하고 정일균의 「廢苑에
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廢苑에서」는 앞으로 우리 시조가 지향해야 할 덕목 가운
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언어의 이지적 통어능력을 갖추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평가
되었다.
심사위원 : 김제현, 윤금초


95년 신춘문예 당선작

섬억새 겨울나기
홍성운 / 서울신문

황산도의 겨울은 억새가 먼저 안다
비릿한 근성으로 아무데나 눈발치네
유배지 어진 달빛이
잎새마다 배어나는

대물림에 살아간다 그리움은 습성이다
먼 바다 바라보는 연북정* 그 수평선
분분한 떼울음 앞에
순백으로 직립한다

또 한 차례 하늬바람 연착된 하늬바람
과분한 귤나무를 벌채하는 이 땅에
그래도 밑동 따스한
기다리는 뜻이 있다.

뉘 한 번 흔들어 보라 내 또한 흔들리마
오일장 좌판 같은 한 푼어치 손짓이여
섬 하나 외고집으로
갈 데까진 내가 간다.

* 연북정(戀北亭) : 제주에 유배와서 북녘의 임금을 사모하던 정자


당선소감
섬 어디에서나 피어난 억새를 보며 나는 그 모습에서 정형의 꽃대를 발견하곤 한다. 직
립한 형상, 넉넉한 율동,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형식 속의 자유다. 한때 몰두했던 프랑스
의 상징주의 시인들- 말라르메, 랭보, 베를레느, 보들레르 등. 그들의 상징은 소네트(14
행시)에서 더 빛을 발하였음을 알 때 나의 시는 뭍을 향한 외침만이 아니었다. 시적 유
배는 꽤 길었다.
경작지를 찾아 떠나는 화전민처럼……. 따져보면 그 기간에 내가 경작해야 할 분야가
무엇이며 어디에 씨를 뿌려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제주시조 문학인회, 한라산 문학동인, 특히 가능성을 점치시던 김영홍․오승철 시인께
감사드린다. 한라산 중턱에는 제 생각만큼 눈이 내렸는지, 섬억새 겨울나듯 시를 쓰고
싶다.

심사평
새봄의 문학이 다시 태어난다. 신춘문예는 해마다 새봄에 피는 꽃만큼이나 이 땅의 문
학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새옷을 갈아입게 한다. 시조는 더욱 그렇다. 어느 분야보다도
시조는 신춘문예를 통해서 한 뼘씩 자라왔다. 올해에도 기다린 것만큼 시조는 움쑥 키가
자라서 당당한 걸음으로 우리 앞에 왔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당선작「섬억새 겨울나기」(홍성운)는 제주도가 안고 있는 역사적 삶의 내면세계를 매
운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적이라는 말과 시조적이라는 말이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이 땅의 시는 가장 시적인 것이 시조적인 것이고 가장 시조적
인 것이 시적인 것이 된다는 가까운 이치를 이 작품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섬억새 겨울나기」는 가장 한국적인 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
지막까지 개성과 저력으로 당선권에 머문 작품으로 「겨울 일기」(임한), 「임진강」(임
동훈), 「바둑을 두며」(이용진), 「비무장지대」(백정분)가 있었음을 밝혀둔다.
심사위원 : 이근배, 조오현



낙동강 - 우륵에게
강현덕/ 조선일보

한 점 수묵화처럼 낙동강에 밤이 왔다
늘어진 강줄기로 달빛은 풀려있고
이제는 낡은 나룻배 흔들리지 않는다

한 그루 오동나무로 이 강을 건너와서
하늘을 강물을 풀잎을 잠재우고
저 혼자 바람도 없이 울고 있는 악사여

소리 소리가 깨어 나를 일으킨다
목타는 12현금 어둠에 잘리고
가락국 그 먼 나라가 내게로 오고 있다



당선소감
자유를 갖고 싶었다. 그 어떤 세상에도 가 닿을 수 있고 그 어떤 사물도 내게 끌고 올
수 있는 바람 같은 자유를 갖고 싶었다. 나는 바람에게 매달려 언제나 충분했던 내 눈물
을 뿌려 보았다. 그러자 바람은 내게 사방이 막혀 있는 방 하나를 던져주고는 손 흔들었
다. 아 - 아, 그 방속에서 나는 머리를 흔들며 깊게깊게 울어댔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벽은 있었으나 벽이 없는 꿈. 문은 없었으나 사방이 문이
었던 그런 꿈. 나는 그 속에서 줄지어 날아오르는 빛 고운 새들의 힘찬 행렬을 보았다.
그러나 불현듯 내게도 날개가 솟아났고 그 날개는 진정한 자유 몇 개를 내게 던져 주었
다. 이것이 가능한 내가 지닌 감각을 현대의 창법에 맞게 객관화시키고 싶은 나의 시조
론이다. 이런 나를 아껴주시고 다독여 주셨던 몇 분 선생님과 냉혹한 관찰자로 남기 원
했던 다정한 문우들, 미흡한 글을 이렇듯 높은 반속 위에 세워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부족한 아내를 마다 않고 항상 손 내밀어주는 고마운 남
편에게 오늘의 이 영광을 돌린다.

심사평
총응모 3백35편 중에서 현우근, 김진희, 박옥균, 임남재, 박정야, 강현덕 등 여섯분의 작
품을 놓고 수일을 저울질해야 했다. 단 한 사람의 단 한편을 가려 뽑는 신춘문예만 아니
라면 이들은 다 당선시켜도 좋을 만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러나 신인들의 작품답게 장단
점을 아울러 가지고 있었으므로 들었다 놓았다를 되풀이한 끝에 큰 짐을 부리는 기분으
로 선고를 마쳤다.
현우근씨의「검은 漢江, 1994」는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시대적․사회적 문제의식을
부각시킨 것을 좋았으나 형사화가 미숙했다. 김진휘씨의 「난」은 동양적 정서를 잔잔히
다스렸으나 시대감각에서 뒤진 흠이 있었다. 박옥균씨의 「生命練習」은 내밀한 세계를
추구하고는 있으나 표현이 불투명하여 전달력이 약했고, 임남재씨의 「동진강」은 동학
혁명을 제재로 하여 「동학 100년」이라는 시의에는 맞을 성싶지만 영사물(泳史物)의
함정인 관념에 흐름 느낌이었다. 박정애씨는 작년에도 결선에서 탈락해서 주목했으나 어
찌된 일인지 작년과 똑같이 시조의 고유한 율격(정형률)을 소홀히 하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꼭 바둑판 같이 3-4-3-4를 고수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시조적 가락에서
멀리 벗어나면 그것은 시조라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강현덕씨를 당선작으로 확정을 해 놓고도 당선작으로 또 망설였다. 모두 5
편 중에서 처음에는 「내 안에 나를 넣고」를 지목했다. 이것은 순수한 자의식의 세계를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처리해서 지극히 난해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문이라는 대중매체
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싶어「낙동강」으로 바꾸고 말았다.「낙동강」은 표제에도 빛
나는 지적 번득임이 보석 같다. 여기서는 상징도 적절한 비유를 만나 무리 없이 넘어갔
다. 일찍이 이 강가에서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어 현묘한 가락을 연주하던 낙동강이 이제
는 흉물스런 몰골로 시대의 아픔을 울고 있는 것이다. 부제의 「우륵에게」는 해설적 의
미로 썼을 것이다.
심사위원 : 장순하


入冬 부근
최 준 / 중앙일보

새들이 돌아온다 四季의 저녁이다
이마를 짚고 서서 문밖에 나서보다
뽀족한 햇살이 끝이 鐵針으로 내리다.

가출했던 마음이여 雷雨를 맞았는지
속울음 아물리며 떨어진 열매라니!
인연을 먼저 벗으면 天地가 다 환한 것을.

눈 맑게 다스리고 기다려 볼 일이다
가슴 한켠 둥지에로 돌아와 잠드는 새
回歸의 어느 자리에 그대 먼저 가 있어도.

늦가을 저녁 門前 날개짓 잦아든다
앙다문 부리마다 꾸던 꿈 물고 있다
겨울行 깃을 고르는 푸른 예감의 시간.


당선소감
어떤 때는 세상을 살아낸다는 말보다 세상에서 견딘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일 거라
는 생각이 든다. 인공에 길들여지면 몸이 편하고, 자연에 길들여지면 마음이 편하다. 주
위엔 마음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이 많다. 몸의 길과 마음의 길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침 주는 산 스승이 바로 세상이다.
이 세상의 한 자리, 서울에서 보낸 밤이 약 사천 개 된다. 어머어마한 시간을 견뎠다.
길에 대한 탐험이었으나, 한편으로 그것은 무모한 모험이었다. 몸이 가는 길과 마음이
가고자 하는 길과의 거리가 너무도 멀었으므로.
시조에 손을 대면서, 처음엔 그 엄격한 형식적 제약에 많이 치였다. 소위 자유시라는
걸 쓰는 데 오래 길들여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부딪쳐 가다 보니 시조의 그런 형식적 제
약이 묘한 매력을 변했다. 시조는 특히 산문의 대척점에 서 있는 우리 고유의 문학양식
이라는 자존심도 창작욕을 불러일으킨 원인이다. 허락받았으므로, 열심해 해 볼 작정이
다. 잠도 좀더 줄이고, 부지런을 떨어야 하리라.
길지 않은 삶인데, 은혜 입은 분들을 다 부르기가 불가능하다. 주신 복이 가슴 안에 산
적해 있다. 일일이 거명하지 않더라도 그분들이 먼저 아실 것이다. 무엇으로도 갚을 길
이 보이지 않는다. 깊은 감사로 다만 읍할 뿐.

심사평
다채로운 색채와 질감으로 다가오는 수백 편의 응모작 중에서 변별성이 도드라진 작품
을 가려내기란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그 가운데서 1차로 가려 뽑은 우수작은 다음
여섯 편이었다.
윤영인의 「허수아비」와 이해운의「入冬 부근」은 순수 서정을 바탕으로 세상읽기 시
학을 펼친 것이었고, 최성재의 「물의 얼굴」과 장재의 「아직도 바람소리」는 열린 시
조의 모색을, 양승준의 「茶山別曲」과 박정애의 「영동기행」은 각각 사회학적 접근법
을 시도한 것이었다.
최성재의 「물의 얼굴」과 장재의 「아직도 바람소리」는 사설시조였다. 「물의 얼굴」
은 평시조․사설시조․평시조 구조를 이룬, 형식적 도전을 시도한 작품이었고 「아직도
바람소리」는 매우 상큼한 분위기를 연출한 단수 사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은 사
설시조의 특징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 성숙도가 낮다는 것이
취약점으로 드러나 먼저 탈락되었다.
양승준「茶山別曲」은 1편 18수로 이뤄진 대작이었다. 장편 서사시조의 가능성을 예고
한 이 작품은 다산 정약용과 그가 살았던 암울했던 시대상황을 점묘법으로 서술하면서
군데군데 역사의 현장들을 삽화처럼 삽입하는 등 남다른 기법을 구사해 눈길을 끌었으
나 작자의 의욕과 열정에 비해 시조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종장 처리 미숙으로 애석하
게 밀려나고 말았다.
박정애의 「영동기행」역시 시조의 가락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등 그 역량은 신뢰가
갔지만 종장의 율격 처리에 불안감을 노출, 당선권에서 제외됐다.
마지막 논의의 대상으로 떠오른 작품은 윤영인의 「허수아비」와 이해운의 「入冬부
근」이었다. 당선 후보에 오른 이 두 편은 서로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미학과 정
서에서 남다른 장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은 긴 시간
토의를 거듭했다.
우리는 오랜 검토 끝에 「入冬 부근」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를 보았다. 「入
冬 부근」이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된 배경에는 함께 보내온 그의 다른 작품이 버팀목 구
실을 톡톡히 했다.
심사위원 : 김제현, 윤금초


96년 신춘문예 당선작

造花를 향하여
김성영/ 서울신문

달빛 한 줄 없는 깊고 어두운 그늘
그대는 저만치 정지한 기억 속에서
늘 깨어 이 세상 바라보는
의식(意識)으로 피어 있다

긴 평생 슬픈 내력 미소로 비워 두고
투명한 지조(志操)마저 먼 데 숨겨 놓은 태
계절의 뒤뜨락에 선
이름없는 그대여

착한 나무인형 하나 가만히 세워 두고
그 어깨에 살폿 앉아 그대를 바라보리
그렇게 그대 내면 속에
깨어 있는 나비로


당선소감
무정한 바람들이 잠 못드는 나의 밤을 에워싼 채 심검(心劍)을 뽑아 들고 우우우- 처
절한 울음 울다 떠나간 뒤 시린 아침 햇살 아래 수북이 쌓여 노랗게 반짝이던 은행잎들
은 나의 시(詩)였으며, 나의 아픔이었으며, 다시 매운 바람 달려와 거리를 휩쓸면 은행
잎들은 속절없이 흩어져 갔다. 나의 시, 나의 아픔은 그렇게 나의 계절로부터 떠나갔었
다.
나는 자신이 녹슬고 있다, 녹슬고 있다. 자괴하다가 마침내 녹스는 것과 자괴감조차 잊
어 버린지 오래이던 어느 날 문득 내 안에 돋아난 하나의 생명체를 발견했다. 그것은 아
직도 녹슬고 있다는 자괴와 아픔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내 심연에서 저절로 자라난 한
그루 어린 나무였다. 그리하여 3년 전 봄에 꼭 한 번 시조를 써 보았는데 그 율격과 가
락이 내 정서에 참 제격이다 싶어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시조에 대해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은 풋내기임을 생각하면 내 모습이 꼭 천둥벌거
숭이인 것만 같아 자꾸 부끄러워진다.

심사평
올해는 예년에 비해 시조의 키가 한뼘쯤 높아진 것 같다. 응모작의 편수는 줄어들었지
만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을 나타냈고 특히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어느 작품을 뽑아도
예년의 당선작 수준을 웃돌 만큼 각각의 개성과 시적 성숙을 보여주고 있었다.「갈대」
(김현)는 서정적 결구가 탄탄하나 '완벽의 物證'등의 관념적 어투가 거슬렸고 「석모도
에서」(효산화)는 비교적 안정감 있는 솜씨로 기량을 모였으나 지나치게 사실(史實)에
얽매였던 점이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렸다.「사물놀이」(박창섭)는 소재를 주제로 끌어
올리는 힘이 부족하여 결국 김성영의 「조화를 향하여」를 선택하게 되었다.
당선작「造花를 향하여」는 사물에 대한 직관과 그것에 생명을 주어 살아 움직이게 하
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엮어지고 있다. 시의 접근에 있어 대상을 정확히 포착하고 초점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시조의 운율을 적절히 배합한 것이 돋보였다.
당선작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 땅의 시조시인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한눈을 팔지
말고 더 부지런히 시조를 갈고 닦아 달라는 것이다.
심사위원 : 이근배, 김제현

新羅 甕官 앞에서
이황진 / 동아일보

한 사내의 오랜 잠이 신라를 굴리며 온다.
눈 감았다 뜨는 사이 천 년이 흘러갔다.
둥글게, 둥글게 굴러오는 古墳群의 수레바퀴.

흙은 구워져서 붉은 몸을 드러내고
시간이 그 몸 속에 無紋으로 새겨놓은
鷄林의 배부른 달이 툭, 툭 털고 돌아온다

누가 나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겠는가
또다시 천 년 세월이 푸르게 흘러간 뒤
한 몸의 시작과 끝이 옹관 사이 놓였을 때

내게 뜨는 붉은 달을 흰 맨발로 굴리면서
輪廻의 먼 바다를 아득히 건너간다
마침내 삶과 죽음이 한 몸으로 눕는다


당선소감
한강에 서면, 고향 주남 저수지의 가을 물빛이 생각난다. 저수지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립다. 가을강, 겨울강, 그리고 새벽강. 고향으로 가는 미명의 새벽
길을 얼마나 찾고 찾았던가. 또 얼마나 긴 불면의 밤과 불임의 세월을 살았던가.
이젠 두려운 생각도 든다. 혼절할 때까지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차라리 홀홀 털고, 살
고 싶었는데 또다른 멍에를 짊어진 기분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고향의
어머니가 손맛으로 마련해 주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밥상같은 시 한 수 남기고 싶다.
감사할 분들, 이야기를 나눌 분들 너무나 많다. 언제나 힘이 되어주신 신상철 은사님께
감사드리며 늘 성원을 아끼지 않은 정일근 학형, 문학세계 주간님과 여러분, 동인, 육군
정훈 공보실의 여러분, 부모님과 가족들, 기도해 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심사평
시조의 광맥(鑛脈)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천년토록 파들어 왔어도 여기 이렇게 천착
(穿鑿)의 삽질은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의 응모작들은 바로 시조가 무한한 매장량을 갖
고 있음을 확인시키기라도 하듯이 다양하면서도 생기 있는 작품들이 서로 힘줄을 세우
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참숯」(박정애),「안개숲」(김충국),「木船」(양재호),「대패질을 하
며」(김선준), 「新羅 甕棺 앞에서」(이황진) 등이 불꽃 튀는 맞서기를 하고 있었고 그
밖에도 만만치 않은 솜씨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참숯」은 시를 끌고 가는 완력이 출중해서 좀처럼 놓기 어려웠으나 세기(細技)에서
밀렸고 「안개숲」은 이미지의 투명함에 비해 시의 크기가 작았으며「木船」은 기법의
여러 모습을 보인 것은 호감이 갔으나 '목선의 그 말씀을'같은 관념적 수사가 거슬렸고
「대패질을 하며」는 시적 긴장감을 살린다는 것이 '죽은 皮로 일어선다'같은 어이없는
실족(失足)을 범한 것이 흠이었다.
당선작「新羅 甕棺 앞에서」는 첫째, 소재의 선택에서 자신감을 보였고 둘째, 시조의
형식미를 자기의 빛깔로 나타낼 수 있는 익숙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셋째, 사물의 외연성
을 벗겨내고 내포성을 살려가면서 화자와의 교감을 잘 살리고 있음이 다른 경쟁자들을
밀어내는 데 밑받침이 되었다. 어찌 보면 신라에서 시를 끌어냈다는 것이 신선감이 없어
보이지만 「新羅 甕棺 앞에서」는 마치 천마총 같은 고분에서 새 유물이 깨어나기라도
하듯이 우리 앞에 눈부신 시의 한 세계를 펼쳐주고 있다. 시조의 광맥을 더 깊이 파들어
가는 데 힘을 쏟아주기 바란다.
심사위원 : 이근배


산, 무너짐에 관하여
한점숙 / 중앙일보

바람이 몰고 온 녹두빛 깃발 아래
하늘에 닿아 있던 나무들 베어 내고
누군가 추억과 같이 그대를 무너뜨린다.

물소리 새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한데
우리 먼 시야에서 능선을 지우며
점점이 살을 저미어 어디론가 보낸다.

기나긴 세월에도 삭지 않은 돌덩이를
울분을 괴로움을 토하듯 쏟으면서
태초의 텅 빈 들처럼 낮아지는 산이여.


당선 소감
나는 한때 안데르센 같은 동화작가를 꿈꾸며 밤새워 동화를 써서는 신춘문예에 응모했
었다.
그러나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고(본선에 든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내 마음이 순수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생각과 함께 문학에의 길을 더 멀게 하였다.
결혼을 하고 생활에 바쁘다 보니, 늘 꿈꾸면서도 가까이 갈 수 없었던 길, 그러다가 10
여년 전 우연히 시조를 알게 되었고 시조에 반하여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서툰 솜
씨로 시조 부문에 응모해 낙선 또 낙선, 대여섯번 하고 보니 신춘문예와 나와는 정말 인
연이 없다는 결론을 지었고, 그쪽에 아예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시 도전장을 내게 된 것이다. 이제 그 밉기까지
했던 관문을 넘고 보니 가벼워질 줄 알았던 어깨다 오히려 더 무겁다.
오늘은 눈 내리는 고향 벌판을 맨발로 달려가 어머니 무덤 앞에서 실컷 울고만 싶다.
집 뒤에 산이 있어 가슴에 늘 푸름을 주던 고향. 꽃수레 굴러오듯 진달래 피던 그 고향
산을 나는 무척 좋아했다. 그리 높지 않은 이름도 없는 산이었지만 어린 시절 무수한 추
억이 있기에 꿈에도 못 잊는지 모른다. 지금은 모두 허물어져 공장이 들어앉고 또 아파
트까지 들어선다는 슬픈 소식이 내 가슴을 이리 무겁게 짓누르는데도 말이다.
많은 가르침을 주신 이우종 선생님과 미흡한 글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
드린다. 문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시조는 가장 인기가 없지만 우리 것을 한다는 자부심
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해서 영원한 시를 남기고 싶다.

심사평
'전통과 혁신'이 주요과제로 떠오른 큰 물줄기 속에서 '의식의 복고'와 '전통의 파괴'라
는 양극을 사이에 두고 갈등해 온 시조문학. 올해 신춘문예 도전작품의 흐름도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수백편의 응모작 중에서 1차로 가려낸 우수작은 다음 여섯 편이었다.
임인순씨의 「겨울 우화 속에」는 지구 환경파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메시지를 담
은 것이었고 김영수씨의「까마귀」는 사물의 존재의미 탐구에 남다른 공력을 들인 작품
이었다. 김강호씨의「공단 민들레」와 서길석씨의「도시의 뻐꾸기」는 현실적 삶에 대한
고통스런 인식이 우화적 접근법으로 시도된 것이었다. 그리고 박정민씨의「보길도」와
한점숙씨의「산, 무너집에 관하여」는 순수서정을 배경에 깔면서 세상읽기 시학을 펼친
것이었다.
「도시의 뻐꾸기」나 「까마귀」는 치밀한 기하학적 얼개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되지 못한 품사로 인해 불협화음을 일으켰고,「공단 민들레」와「겨울 우화 속에」
는 새내기다운 패기와 열정은 높이 평가할 수 있었으나 문학적 성취도가 낮다는 것이
취약점으로 드러나 먼저 탈락되었다.
마지막으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오른 작품은 박정민씨의「보길도」와 한점숙씨의 「산,
무너짐에 관하여」였다. 당선 후보에 오른 이 두 작품은 각각 장단점을 아우르고 있어
그 우열을 가리기가 무척 어려웠다. 「보길도」에 담긴 복고주의 미학과 정서를 취할 것
인가, 아니면「산, 무너짐에 관하여」에 녹아 있는 상큼한 발상법과 음색(音色)을 띤 미
래지향적 시조문법을 취할 것인가.
결국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은 참신한 감성의 열린 시조를 시도할 것으로 기대되는 한점
숙씨의「산, 무너짐에 관하여」에 힘을 보태주기로 합의했다. 그것은 한점숙씨의 작품이
가능성의 영역이 더 넓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난 한 해의 한국 상황을 간추린 밑그림은「붕괴」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었다. 대구
가스폭발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에 이어 5․6공 주역들이 잇따라 '고개 수그린 남자'가 되
어 무너져 내렸고, 돈깨나 주무르던 재벌총수들의 '가면'도 함께 벗겨져 내렸다. 당선작
「산, 무너짐에 관하여」는 이런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지난 한 해의 한국 상황…… '붕
괴'의 이미지와 맞물려 있어 한결 돋보였다.
심사위원 : 윤금초, 유재영


97년 신춘문예 당선작

강위에 서서
김정훈 / 중앙일보

노을은 붉은 장작으로 어둠을 지피고
강위에 잉걸들이 모여서 재잘거리며
아버지 앉아있었던 강위에 둥글게 앉는다.

물풀처럼 흔들리던 그들의 이야기는
쭈뼛 키 커버린 갈대 속에 그림자를 잠시 묻고
길 떠날 쉼터를 찾아 서성임이 사라진다.

내려만 주었던 깊어진 시간들과
물결처럼 등이 파인 세월의 고단함을
어떻게 한 번이라도 내색하지 않았을까?

강위에 서서 보면 강이 못 된 내가 있다.
둔덕을 갉아 먹고 아프다고 했던 날들
삼키던 울음소리가 땅을 울린다는 그걸 모르고.


당선소감
이모님이 돌아가신 날 당선소식을 들었다. 슬픔 속에서 당선을 알려주는 전화 한통화에
기쁨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을 열어둔 마음에 대한 당혹감. 아주 거대한 백지 한 장을 선
물 받았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잡고 덮으면 이 우주가 다 덮일 만큼 큰 백지를…….
이 백지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칸 한칸씩 사랑과 따뜻함과 진실이 담긴 글을
쓰고 싶다. 언제 끝이 날지는 모르지만 이 작업이 끝나는 날 이쪽 끝과 저쪽 끝을 잡고
'툭'털면 세상 위로 사랑과 따뜻함과 진실이 '후두둑' 떨어져 곳곳에 새로운 싹이 피어날
수 있도록…….
그 싹이 피어나 세상을 환히 밝힐 수 있게 땅속에서 밑거름이 되고 싶다. 항상 지켜주
시는 하나님과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바친다. 몇 달만에 겨우 한 번씩 보는 스물여섯 살
인 아들에게 아직까지 팔베개를 해주시는 아버지, 내 머리가 커갈수록 점점 수척해지는
아버지의 팔.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쳐 주신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
이 당황되고 아름다운 자리에 설 수 있게 지도해주신 추계예대 문창과 교수님들과 늘
자신감을 주신 박시교 선생님, 심사위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좋은 시조 많
이 써서 보답하고자 한다. 기도해주신 어머니, 목사님, 그리고 산악반 형님들, 친구(진․
배․영․미)와 기쁨을 나누고 싶다.

심사평
용호상박(龍虎相搏)의 격전장이 따로 없었다. 저마다 이지적 몸짓으로 정련된 칼끝언어
를 구사, 진검승부(眞劍勝負)를 겨루는 격전장이 바로 신춘문예 마당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신춘 '중앙문예' 시조부문 응모작은 모두 4백70여편이었다. 이
가운데 우수작 반열에 떠오른 작품은 다음 일곱 편이었다.
이재현의 「일몰의 바다」와 김정훈의「강위에 서서」그리고 서한기의「식물원」등에
는 상큼하고 풋풋한 시적 감수성이 묻어나 있었다. 순수 서정의 바탕 위에 인생의 무게
를 실은, 이른바 「세상읽기 시학」을 펼친 것들이었다. 김가영의「나사처럼」과 김준엽
의「綠」도 앞서 지적한 작품들과 엇비슷한 발상법을 취하면서 사회학적 접근법을 시도
하고 있었다.
박정해의「해빙기」와 10편은 당차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편마다 다
섯 혹은 여섯 수(首)와 긴 호흡을 유지한 「땅끝에서 돌아보다」등 그의 시조는 어느
응모작보다 스케일의 웅장함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당차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는 우리
시조가 지향해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였으며, 필요한 피라는 당위성 때문에 눈길을 끌었
다. 그러나 군데군데 여과장치를 덜 거친 듯한, 표현의 생경한 대목이 노출되기도 했다.
마지막 '점검승부'를 겨룬 작품은 김준엽의「綠」과 김정훈의 「강위에 서서」였다. 당
선후보에 오른 두 작품을 놓고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은 긴 시간 검색작업 끝에「강위에
서서」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합의를 보았다.'노을은 붉은 장작으로 어둠을 지피고/
강위에 잉걸들이 모여서 재잘거리며'같은 표현을 이끌어낸 김정훈의 본새가 한두 해 시
조 글밭을 일구고 경영해온 솜씨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심사위원 : 김제현, 윤금초



겨울 舍北行
전정희 /조선일보

사북으로 가는 버스는 오늘도 결행이었다.
진창의 비포장길 뻥뻥 뚫힌 산 구멍들
흑백의 사진 속에는 햇살조차 비켜 갔다.

준령을 넘어올 때 따라 넘던 진눈깨비
불 그리운 가슴들을 질척질척 적시면서
기적도 없는 탄차가 막장으로 가고 있다.

부슬부슬 눈을 쓰고 꿈을 꾸는 녹슨 레일
온종일 구르다가 돌아와서 멈춘 자리
구멍난 폐부 안에서 기침 소리 울려 온다.

눈 시린 알전구가 조명하는 판자촌
가난도 모가 닳아 치수 재는 마름질에
연극은 아직 삼막이 시작되지 않았다.


당선 소감
눈이 아프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빛바늘에 찔려 눈이 아프다. 수천 개의 밤을 통해 조
심스레 뽑아낸 체액으로 몸을 옭아 매었던 질긴 어둠. 여린 애벌레. 스스로의 덫에 치여
밀폐된 어둠으로부터의 좌절과 고통, 고치를 뚫고 나온 한 마리 부나비.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수난이 한없이 두렵고 어지럽다. 그러나 어떠랴. 이미 비상은 시
작되었으니. 불을 찾아 헤매리라. 벌겋게 달구어진 신시어(新詩語)들이 탁탁 튀는 소리
들으며 이글거리는 시조시의 불 속을 몸을 던지리라.
어머니! 당신이 걸어오신 삶의 편린들을 시조라는 베틀 위에 얹어 아름다운 무늬로 직
조하여 굽이굽이 펼쳐 보이겠습니다. 우주의 미아처럼 떠돌던 나에게 손 내밀어 시조의
길로 물꼬를 터 주신 박영식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1997년 파이팅!


심사평
응모 편수는 작년과 비슷했으나 질적으로는 다이아몬드형으로 중간층이 두터워가는 매
우 바람직스런 현상을 보였다.
예심에서 김진희․박연홍․양길동․윤미정․이준구․임세한․전영주․전정희(가나다
순) 등 8명이 올라왔다. 이 분들은 일단 당선권에 드는 수준이었다. 그만큼 조선일보 신
춘문예 시조부문의 경합이 치열했음을 뜻한다.
이 중에서 김진희씨의「터」, 박연홍씨의「초당별곡」, 전정희씨의「겨울 사북행」3편
이 결선을 겨루었다. 사실 이 작품들은 어느 것이나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굳이 따진다면 「초당별곡」은 사설시조로서의 구조적 결함과 엮음의 부조리성에 다 종
장의 허약이 지적되겠고,「터」는 거제 포로수용소 터의 현장감에 치중한 나머지 주제성
이 흐려진 흠이 없지 않았다. 그에 비해 「겨울 사북행」은 더러 표현의 미숙성이 보이
기는 했으나 겨울 탄광촌의 암울한 정황을 체감한 본원적 휴머니티를 비교적 명징한 상
징으로 처리한 점을 평가하여 당선작으로 삼았다. 최종 결정 단계에서는 동일 작품의 다
른 작가들도 역량 비교의 자료로 삼았다.
심사위원 : 장순하


98년 신춘문예 당선작

겨울지도
김동석 /조선일보

겨울은 점령군처럼 그렇게 내게 왔다.

시간이 어설픈 자세로 가을 문턱 넘어서면 창백한 햇빛 고개숙인
그곳, 잡풀 무성한 숲속에는 지친 새떼들 날개를 접고 잘려진 그루터
기는 깊은 한숨으로 날밤을 샜다. 뽀얀 안개 속 헤집고 달빛이 잦아
들면, 떨리는 마음은 아스라히 은백의 침묵만 펼쳐놓는가.

울음을 참아내느라 숨죽이는 겨울숲.


당선소감
겨울이 되자 나는 바다로 떠났다. 기차에서 본 하늘은 금세라도 눈을 뿌릴 것 같았다.
그러나 눈은 내리지 않았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남해를, 왁자지껄한 자갈치시장의 활기
를 보면서 나는 오랜만에 웃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미흡한 작품에도 불구하고
뽑아주신 것은 부단히 정진하라는 의미이리라. 가진 것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
답은 늘 깨어 좋은 글을 쓰는 길뿐이다.


심사평
시조부문 응모작은 모두 5백26편이었다. 다채로운 빛깔의 언어 풍경을 연출한 이들 작
품 속에서 1차로 가려낸 우수작은 세 편이었다. 추창호씨의「아름다운 공구를 위하여(
1)」와 김동석씨의「겨울지도」는 현실 삶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법을 시도한 것이었고,
양승준의「다산별곡(茶山別曲)」은 역사의식에 무게 중심을 실은 작품이었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다산별곡」이었다. 웅장한 스케일, 걸쭉한 입심, 장편 서
사시조의 가능성 등 남다른 특색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선뜻 당선작으로 밀
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새내기다운 패기와 참신성 부족, 다시 말해 발상법
이 진부하다는 인상을 지워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아름다운 공구를 위하여(1)」는
건강한 시정신을 읽을 수 있었으나 어색한 표현이 여러 곳 발견되어 당선권에서 밀려났
다.
당선작「겨울지도」는 등푸른 생선 고등어회맛을 내는 사설시조였다. 짠맛과 비린내가
어우러져 절묘한 맛을 내는 고등어회의 담백한 맛 바로 그것이었다. 이 작품이 사설시조
의 구성요건을 완벽하게 갖춘 것은 아니지만 사설시조․산문정신․현실인식이라는 등식
을 도출해 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겨울지도」가 던지는 파장은 그 동심
원의 세계를 더욱 넓게 확대해나갈 것으로 보인다.「겨울지도」가 신춘문예 사상 최초로
<사설시조 당선>의 영예를 누리게 된 배경에는 함께 보내온 김동석씨의 다른 작품들이
버팀목 구실을 단단히 했다.
심사위원 : 윤금초


밤에 눈 뜨는 강
우은숙/ 동아일보

검푸른 이마 위에 별빛을 따서 담고
물결따라 일렁이는 오늘의 발자국들
총총히 물을 건너며 하나 둘 깨어난다.

계절의 뜰 안에서 혼절한 목마름
물굽이 돌아돌아 밤으로 향하는데
스며라 깊은 숨소리, 밤의 허울 속으로.

달빛에 아롱지는 등 시린 환한 속살
어둠을 마시며 끝없이 달려가는
숨쉬는 강물 사이로 내 비치는 숨은 내력.

투명한 거울 속에 또 다른 내일 위해
길게 누워 서성이다 허공 가른 기침소리
밤에만 눈을 뜨는 강, 그 강에 내가 있다.


당선소감
젖은 안개를 하나씩 털어 내며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
이 도시를 끼고 흐르는 강물은 얄팍한 나의 시심(詩心) 흔들어 깨운다. 물결따라 일렁
이는 그 강에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진한 삶의 냄새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하나의 깨달
음이었다. 강은 모든 사물에 대한 '새로움'을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사이로 내 인식의 눈이 '불꽃 튀는 눈짓'을 보낼 때, 강은 또 다른 의미를 남기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흐르고 있었다.
겨울강가에 차디차게 묻어나는 냉철함을 보면서 스스로의 무능함에 자책도 해 보고, 어
렵게 부여잡은 언어 하나 붙들고 온몸으로 아파하기도 하였다. 앞으로도 계속 호수에 둘
러싸여 안개와 친구하는 이 도시에서 언어를 가꾸는 일에 최선을 다하련다. 이제 '시작'
이라는 단어가 두려움과 함께 참지 못할 기쁨으로 다가온다. 두 개의 강줄기가 몸을 섞
으며 흐르는 소양강처럼 내 속에서 기쁨과 부끄러움이 합강되어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다. 어느 때보다 겸허함을 배워야 한다며 이 땅에 씨뿌림과 거둠을 가슴으로 마주하고
있는 별님에게 흙냄새 가득 담은 진한 사랑과 함께 이 기쁨을 바친다.
고마운 얼굴들, 진정 함께 기뻐해 줄 얼굴들이 하나 둘 지나간다. 특히, 시심을 일깨워
주신 허대영 연구사님, 신춘(新春)의 문을 두들리게 한 조규영 선생님, 선택해 주신 심
사위원님께 이 기쁨의 크기만큼 따뜻한 인사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좋은 시, 발전하는
시로써 이 고마움에 대신하고 싶다. 기쁨과 떨림 속에서 큰 소리로 파이팅 외치며 온
1998년! 벅찬 감격의 팔을 들어 힘껏 포옹하리라. 호수에 던진 조약돌의 울림이 이전에
는 느끼지 못한 무거운 의미로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느끼며 오늘도 나는 강가에 서
있다.

심사평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다시 쓰는 처용 설화(서연정)」「남산을 오르며(윤성길)」
「눈그친 산(배한봉)」「장작을 패며(김종렬)」「과원에서(서한기)」「밤에 눈 뜨는 江
(우은숙)」「화석 연료에 대한 통찰(이우식)」등이었다. 이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작
품을 우은숙씨의 「밤에 눈 뜨는 江」과 이우식씨의 「화석 연료에 대한 통찰」이었다.
두 사람의 작품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당선권에 접근해 있었다. 우은숙씨의
작품은 서정을 앞세운 균형미가 돋보였으며, 이우식씨의 작품은 시종 패기와 시험성을
시적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작품의 완성도면에서 볼 때 이우식씨의 작품의
경우 시어끼리의 충돌이 심하고 상상력의 공간이 너무 커보이는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
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수사학적 기교면에서는 매력적인 한 방편이 될 수 있었으나
완전한 시인의 탄생으로 기대하기는 미흡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이에 비해 우은숙씨는 당
선작으로 뽑힌「밤에 눈 뜨는 江」이외에도 투고한 작품 모두가 한결같이 안정된 수준
을 유지하고 있어 시적인 능력에서도 든든한 신뢰를 갖게 했으며 선명한 이미지, 정갈한
언어들은 기존 시조단의 상투성을 벗어나기에 충분했다.
당선작으로 뽑은 또 다른 이유로 응모된 어느 작품들보다 시조 형식에 충실했다는 점
을 들고 싶다. 최근 형식의 일탈이 새로움인 줄 아는 일부 시조단의 그릇된 풍조에서 볼
때 당선작이 지니고 있는 빈틈없는 전형의 미덕은 상대적으로 커다란 장점이 되었으며
'강'이라는 보편적인 시적 대상을 가지고 이처럼 힘 있고 부드러운 정서적 공간을 마련
한 것도 정형에 대한 그의 남다른 인식의 결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심사위원 : 유재영


'99년 신춘문예 당선작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 - 석화리
송광룡/중앙일보
1
돌꽃 피는 것 보러
돌곶이 마을 갔었다.

길은 굽이 돌면 또 한 굽이 숨어들고 산은 올라서면 또 첩첩 산이었다. 지칠대로 지쳐
돌아서려 했을 때 눈 앞에 나타난 가랑잎 같은 마을들, 무엇이 이 먼 곳까지 사람들을
불러냈나. 살며시 내려가 보니 무덤처럼 고요했다. 가끔 바람이 옥수수 붉은 수염을 흔
들 뿐,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사람의 자취 묘연했다.

여러 날 헤매이다가
텅 빈 집처럼 허물어졌다.

2
화르르 타오르는 내 몸엔 열꽃이 돋고
세상은 천길 쑥구렁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누군가 눈 좀 뜨라고 내 이마를 짚었다.

나, 그 서늘함에 화들짝 깨어났다
눈 뜬 돌들이 지천으로 가득했다
온전히 제 안을 향한 환한 꽃밭이었다.


당선소감
이태 전 가을, 나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에 이르렀다. 세부도(細部圖)를 펼쳐들 때 '돌
곶이'라는 마을 이름이 눈에 쏙 들어왔다. 돌꽃, 돌에 꽃이 피는 마을이라 생각하니 조급
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물어물어 찾아간 그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지천에 널린 게 돌
이었으나 꽃 핀 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것이 일생에 꽃 한 번 피우고자
했던 사람살이의 한 상징임을 깨달았다. 차갑고 딱딱한 돌에도 따습고 나붓나붓한 꽃이
피기를 열망했던 삶, 그 그지 없는 향기에 나는 취했고, 보았다. 세상은 천길 쑥구렁 나
락으로 떨어지는데, 돌들은 저마다 제 중심을 향해 눈을 뜨고 있었다.
어떤 마을을 찾아 헤매었던 날들을 나는 이제 잊으려 한다. 그 마을에 가려 했던 게 언
제였는지, 그 마을이 어떻게 우릴 배반했는지, 아니 우리가 그 마을을 왜 배반하게 돼버
렸는지도….
대신, 흔하디 흔한, 그러나 뜨겁게 제 중심을 응시하는 돌처럼 나는 나를 좀더 지켜볼
작정이다. 그런 시를 쓰고 싶다. 안팎으로 어려울수록 웃음을 잃지 말라고 가르쳐 준 심
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많은 분들, 괄호 속 말줄임표(…)로 묶어 가슴에 새기
고 싶다. 그 끝에, 야윈 아내의 얼굴 보인다.

심사평
마지막 각축을 벌인 작품은 김상기씨의 '우일(雨日), 비탈에 서서'와 김순연씨의 '주전
동 이야기1', 송광룡씨의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이다. 이 세 편은 언어를 다루는 용병술
(用兵術)이 뛰어났다.
'주전동 이야기'시리즈는 '바다를 떼어 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삶의 궤적을 구어체
로 그리고 있다. 연륜이 짧은 신인의 경우 주제의식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거기에 압도
당한 나머지 중도에서 서사구조를 포기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십상인데 이 작품은 그 함
정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끈기를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종장 처리의 미숙함이 드러나
먼저 탈락했다.
감각에 의탁하여 시문학을 경영하는 시대라면 아마 김상기씨의 '우일, 비탈에 서서'나
그의 다른 작품 '섬'이 타이틀을 거머쥐었을 것이다. '머리채를 풀어헤친 전라(全裸)의
파도'같은 대목은 이미지를 전개해나가는 기량은 탁월했으나 시적 상상력의 공간이 좁아
보였다.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아우르는 미학적 균형미를 살리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
이다.
당선작 '돌곶이 마을에서의 꿈'은 현실을 끌어 안되 그 현실을 날것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끈끈하게 발효시켜 새로운 힘으로 환치한다. '날것'을 날것으로 드러내지 않은 그
절제의 미학이 작품 전체의 탄력을 유지하는 핵산(核酸)역활을 한다.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돌곶이…'은 비극적 세계인식이 아닌, 척박한 시대를 뛰어넘으려는 강한 의
지가 담겨있다.
심사위원 김제현․윤금초

강, 침몰하는 노을
장수현/조선일보
저 강에 가라앉은 울창한 대마무숲
단단한 마디처럼 상처가 새겨지고
따숩던 마을 언저리 침몰한다 노을이…

지난 여름 물살에 등 떠밀린 사람들
반지하 셋방까지 장대비 쏟아졌을까
때절은 家族史처럼 물주름 번져간다

마을로 가 닿은 길 아득하게 깊어서
강과 함께 걸으며 질척이는 내 발자국
들판을 핥고 흐르는 물소리만 가득하다

허물어진 강기슭에 一家 이룬 갈대꽃
시린 몸 껴안으며 힘겹게 살아왔구나
귀 닳은 세간에도 눈꽃이 피는 겨울.

●당선소감
고향의 빈 들판과 은어떼가 오르던 탐진강을 떠올릴 때마다 내 발은 땀에 흠씬 젖곤
한다. 분명 달려가고 싶은 까닭이다. 누구는 내게 지나친 감상주의의 산물을 글러 쓴다
며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상처난 삶에 대한 포용의 자세를 잊지 않기 위해 몸이
아프도록 시조를 쓸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글로써 모든 답을 대신할 뿐이다.
산은 멀고 강은 가까웠던 동네. 비록 몸은 떠나왔지만 내 시조의 원천이 되어준 곳이
다. 겨울이 가기 전에 찾아가서 작은 돌맹이라도 하나 주워오고 싶다. 그 돌맹이처럼 단
단한 시조를 쓰고 싶다.
기쁨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많다. 사랑하는 가족과 평생 글벗이 되어줄 안나와 친구
들…. 막막하기만 했던 시조 쓰기의 앞날에 등불을 달아주신 이지엽 교수님, 현덕형, 우
리詩 동인 그리고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응모작품 수효가 작년보다 훨씬 불어난 시조 부문의 경우 두가지 색다른 현상을 발견
할 수 있다. 요즘 한창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사설시조와 「옴니버스 시조」(평시조-엇
시조-사설시조 혼작)가 대폭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산문시대라고 불리는 오늘
의 문화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겠지만, 지난 해 이맘 때 조선일보가 신춘문예 사상 최
초로 사설시조를 들고 도전한 신인에게 「월계관」을 씌워준 것이 크나큰 자극제가 되
었다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과 혁신이 주요과제로 떠옿른 큰 물줄기 속에서 의식의 복고와 전통의 파괴라는
양극을 사이에 두고 눈치 살피는 시조문학. 일찍이 서민대중을 중심으로 뿌리내렸던 그
사설시조는 새 물결이며, 그것은 분명 의식의 복고나 전통의 파괴가 아니라 산문시대에
걸맞는 「발전적 변화」의 모습이다.
당선작 「강, 침몰하는 노을」은 앞에서 언급한 사설시조는 아니다. 그러나 장수현씨
의 원고 여섯편 가운데 「청동물고기」 등 사설시조가 포함돼 있고 당선작에 버금가는
「大耳里의 겨울」 같은 일련의 작품이 서사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데서 그는 이미 당당
하게 누벨 바그(새 물결)대열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강, 침몰하는…」은 이른바 이미지와 담론의 시학을 절묘하게 펼치면서 그 위에 청
승미를 얹었다. 수마(水磨)가 할퀴고 간 지난 여름 그 「삶의 상처」라는 실존적 명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일가를 이룬 갈대꽃처럼 힘겹게 살아온 가족사를 선명하게
부각한 점이 이 작품의 최대미덕이요, 남다른 매력이다. 당선권 반열에 오른 김춘규 신
수현 장원이 황미경에게 격려를 보낸다. 「겨울 바다」 등을 한 권 책으로 엮어온 신익
교씨의 열정에도.
심사위원<윤금초>

명경대
- 단원의 그림을 보고
김강호/ 동아일보

태초의 고요를 붓끝에 적신 걸까
신들린 듯 휘두른
황천강 변 금강절경
섬악한 질감 속에서 백마소리 들려온다

아프도록 푸른 빛 한줄기 뽑아내어
운림소립수법(雲林疏林樹法)위에
힘있게 세운 솔잎
이 시대 어둠 깊은 곳 송곳으로 파고든다

죽창보다 날 선 침묵 어리는 연못 앞에
내 감히 설 수 없어
돌아서는 명경대여
단원의 맑은 숨결이 벽공을 울려간다.

당선소감
안개에 묻힌 새벽은 평화로웠다. 산을 휘여 감은 칡덩쿨도, 악취에 찌든 채 뒤척이던
강물의 몸부림도, 질퍽거리는 진흙땅을 맨발로 걸어다니며 주린 베를 채우기 위해 쓰레
기통을 뒤적거리는 꽂제비들의 처절한 모습도, 역류하던 역사의 뒤덜미를 잡고 포효하던
짐승들의 소리고 들리지 않았다.
십자가 끝에 유나스레 맑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지상의 아픔을 송두리째 안고 뜨
거운 붉기로 타오르던 이 시대 빈자의 영원한 어머니 테레사 수녀의 별이리라. 별빛을
조심스레 가슴에 담았다. 별은 꽃이 되고 꽃은 거울이 된다. 거울속을 들여다 보면 많
은 사람들이 죄목을 지고 십자가 아래 부려 놓으며 어매이징 그레이스를 부른다. " 나같
은 죄인을 살린 주 은혜 놀라워 읽었던 생명을 찼았고 광명을 얻었네…" 새벽기도를 마
치고 돌아오는 길은 기픔이 넘쳤다.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뜻밖의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이 보다 더 기쁜날이 어디 있
겠는가! 시인이 되는 것보다 시인답게 살아가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리라. 시의 길로 이
끌어 주신 김환식(당숙)과 새벽동인, 부족한 글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
다.

심사평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박구하의 '달빛 소감', 이다원의 '장숭곁에서', 임성화의 '봉길리
여행', 유종인의 '대설부, 최보월의 '백자다완․2', 이용택의 '유년의 달', 김강호의 ' 명경
대' 이렇게 모두 7편. 이중에서 임성화 최보월 김강호의 작품이 당선을 놓고 마지막까지
겨루게 되었다.
'봉길리 기행'은 역사 현장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각이 결코 만만치 않았으며, '백자다완․
2' 역시 섬세한 묘사와 간결한 서정이 돋보이는 가작(佳作)이었다. 여기에 '명경대'는 역사의
식을 바탕으로 한 시대정신 또한 간과할 수 없어서 그만큼 심사의 고충이 따라야만 했다.
그러나 '봉길리 기행'은 미학적인 측면에서 다소 흠이 있었고, '백자다완․2'는 지나친 예스
럼이 흠이 되었다.
당선작 '명경대'는 이러한 부분을 훌륭히 극복하고 있었으며, 아울러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은유적 긴장미가 큰 장정으로 꼽혔다. 또다른 응모작 '남한강에서', '테레사 수녀의 별' 역시
당선작 못지않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어 선자는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주저할 필요가 없었
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함께 차세대 시조단의 주자로써 정진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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