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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소리없는 폭력에 민감하기

작성자대자대비|작성시간26.06.15|조회수20 목록 댓글 0

<마태오 복음 5장 38절~42절>

폭력을 포기하여라

38“‘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아멘...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참으로 참으로 감사를 드리옵나이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성숙한 신심으로 성장을 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어떤 굴레속에서 패턴에 따라 살아가고들 있는것 같습니다.

나이가 드신분들 일수록
그런 모습이 더욱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 사람안에 본심을
가려진 것들이 다 걷어지면서 더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처럼
숨겨지지가 않나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이요...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줄 우리는 모르고 살아가나 봅니다.

저또한...

맨날 제 머리속에는
봉사 할 것만 들어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마음은 다른곳에 가 있었으니까요...

어제는
하루종일 온전히 마음까지도 함께 하고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이
제일 가까운 가족,친인척,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

나를
힘들게 하는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의 나를 바라보기 였습니다..

어제는
아무렇지 않는 저를 보면서..

참사랑은
이처럼 제일 가까운 이웃인 가족, 친인척,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임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사실,
그동안 스트레스 받는것을 봉사활동으로 풀어 내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 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짜여진 틀속에
맞춰가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정도 극에 도달하니
에고의 끝장을 보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중엔 저를 보니까..

차라리
죽는것이 나아서
죽음을 선택 하더라고요.

그러고나서도
그 에고의 끝은 아니더라고요.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저를 보았습니다.

악인에서
맞서지 말라는 성서 말씀이
저에겐 악인을 박살을 내야만 속히 후련한 사람이었습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않는 사람에게
더 화가 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하는 것처럼 가만 있는 사람에게 더 화가 났던 사람이었습니다.

제 안에
분노가 화산폭팔이 된 거였습니다.

그렇게
제 안에 있는 악과
제가 맞서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악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으로 '어떻게 저럴수가 있을까'?
열심히 판단하던 제가..

'저 사람 마음은 얼마나 괴로울까'
그 사람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제가 되어 있더라고요 아버지께서
그렇게 저를 만들어 놓으셨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악의 편에 서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도
환경에.. 상황에... 따라서
저런 모습으로 변하지 않은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더 그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하는 것이...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요..

극한 상황속에서 느껴졌습니다.

말한마디가
얼마나 큰 폭력이고 행동 하나가
극도의 공포속으로 몰고가는 또다른 폭력이라는 것을이요...


말한마디가 얼마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지를요...

아버지...

제 안에서
어떠한 악도 꼼짝을 못하게

저를

통째로..

온전히 아버지께 봉헌되도록

이끌어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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