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쉼표를 맡겨 봐, 느낌표로 만들어 줄게 쉼표를 생각하면 사무실에 의자가 사라진다 갔다가 쓸쓸히 돌아나온다 그 후엔 푸른 하늘이 보이지 붉은 단풍이 살랑이지 구름처럼 슬픈데 표정 보고 웃는 꽃들 의자의 뒤집힘 온통 너를 쳐다보는 눈동자들만 있어 마라톤 도중에 뛰기를 포기한 것 같은 죽음의 밥상 앞에 앉은 것 같은 돌발적 반환점이라 해두자 연못가에 앉아 한숨 푹푹 쉬는 일 자갈을 굴리다 돌아가는 파도를 보는 일 꽃을 보며 헤어진 애인을 떠올리는 일도 모처럼 휴식 같은 의자의 진실 따윈 생각하지 말자 넓은 유리창 때문에 카페에 가는 건 아니잖아 저마다 다른 이유를 말할 때 너의 쉼표를 생각해 봐 연못을 오래 들여다보면 햇빛에 흔들리는 물의 심리를 읽을 수 있지 시간을 몰고와 부서지는 파도의 외침도 헤아릴 수 있을 거야 애인이 떠난 이유도 문득 깨달음으로 오지 그 쉼표 맡겨 봐 그다음에 오는 건 느낌표야 오후의 습관들 새장 문을 열어도 태양은 날아가지 않는다 깃털에 저당 잡히지 않는 죽음처럼 태양 빛으로 가득 찬 골목은 찬란하다 여름은 기어이 여름까지 왓으나 미처 골목을 빠져나오지 못한 창문 하나 혹은 라일락 벽 속에서 빛의 유령들이 윤슬처럼 걸어 나온다 현관문 열어 놓고 마당 한편에 차려진 오동나무 그늘에 기대는 오후와 음악 태양이 토해 놓는 빛살에 잠식당하며 행간과 행간을 움켜쥔 불안전한 시간은 눈높이보다 위쪽에 걸린다 깎아놓은 사돠의 징후는 나를 버리지 못하고 말라 가는 중이다 시들시들한 나를 흔드는 오후를 다 버리고도 결국 열린 새장에 저당 잡히는 나와 나들 슬픔의 속도 여승들의 긴 장삼이 구름처럼 흐르는 국악기와 포개질 때 스물스물 울음이 올라왔다 슬픔은 어디 고여 있다 솟는 걸까 춤의 움직임은 나를 이끌고 걷다가 머뭇거리다 혹은 걷다가 당신을 짊어지고 떠나가듯 당신만큼 무거운 속도로 급기야 허물어진 몸을 떠받치는 바닥, 바닥은 슬픔의 편이다 슬픔을 이해하는 속도는 아무도 찾지 않는 밤처럼 밟지 못한 그림자를 펼쳐놓는다 춤의 환희가 있는지 없는지 대책 없이 눈물을 찍어낼 뿐이다 을음 끝에 새어 나오는 흐느낌은 위로인가 위안인가 울음은 바닥에 정지해 있다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다 성향숙 경기 화성 출생 200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집 <<엄마, 엄마들>> <<염소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무중력에서 할 수 있는 일들>> *성향숙의 시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에다 작은 이미지들을 덧붙어 다른 한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시는 이미지로 된 진경들을 시어로 엮어낼 뿐만아니라 이미지들을 활용하여 존재에 대한 서사와 서정을 사유의 폭으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큰 특징을 지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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